특집
아인슈타인의 한계를 넘어서
영화 컨택트: 왜 물리학자가 주인공일까?
작성자 : 이창환 ㅣ 등록일 : 2021-07-12 ㅣ 조회수 : 3,306 ㅣ DOI : 10.3938/PhiT.30.016
이창환 교수는 1995년 서울대학교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고등과학원, 서울대 BK사업단을 거쳐 2003년부터 부산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성자별 관련 핵물리 및 천체물리 현상을 연구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 한국물리학회 천체물리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jkim@kasi.re.kr)
Why a Physicist Is the Protagonist in Arrival ?
Chang-Hwan LEE
Arrival, a film in 2016, is based on a short story by Ted Chiang in which two main characters (a physicist and a linguist) decipher an alien language Heptapod-B. Heptapod-B is composed of ring images similar to the Einstein Ring. Based on this observation, I will discuss why the knowledge of modern physics, including General Relativity, is crucial for understanding the movie.
일반상대론 특집호를 구성하며
1915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탄생한 일반상대론은 2015년 중력파 검출 성공 및 2019년 블랙홀 이미지 촬영 성공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3번의 노벨물리학상이 일반상대론 관련 연구에 주어진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17년에는 중력파 존재를 실험으로 검증한 3인의 물리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였으며, 2019년에는 우주론의 이론적 발전을 이끈 피블스가, 2020년에는 블랙홀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검증한 펜로즈가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물리학과 첨단기술에도 최근 5번 특집호가 발간되었다.1)2)3)4)5) 하지만, 일반상대론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본 특집은 일반상대론의 현주소를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5편의 글로 구성하였다. 기존의 특집과 중복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특정 물리 현상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상대론 관련하여 현재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영화와 인공지능 등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도 활용하고 대담 형식의 글도 구성하여 독자들이 일반상대론에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글에서는 2017년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컨택트(Arrival, 2016)를 다루었다. 영화 속 내용 중 일부를 일반상대론 관련 물리 현상 및 이론과 연관시켜 해석한 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힌다. 이러한 개인적인 해석이 독자들로 하여금 영화를 통해 물리학에 관심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화 컨택트(Arrival, 2016)와 물리학자
일반상대론과 관련된 대표적인 영화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이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직설적인 대사를 이용하여, 시간 지연, 블랙홀, 웜홀 등, 일반상대론의 주요 주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영화가 2017년 노벨상을 수상한 이론물리학자 킵손 교수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점에서 보면, 직설적이고 교육적인 대사는 영화를 위한 필수 조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2년 뒤에 개봉된 영화 컨택트(Arrival, 2016)는, 인터스텔라와 달리, 일반상대론 관련 소재들을 매우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인터스텔라가 일반상대론의 이과생 버전이라면 컨택트는 문과생 버전에 비유될 수 있다.
컨택트는 언어학자인 여자 주인공과 물리학자인 남자 주인공이 외계인이 스크린을 통해 보여 준 언어를 해석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 소설(Story of your life; 1998)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6)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일곱 개의 팔다리와 일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헵타포드로 불린다. 대부분의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와 달리 헵타포드는 전혀 공격적이지 않다. 헵타포드는 고리 모양의 외계 언어를 지구인에게 소개해 주고는 조용히 지구를 떠난다. 3,000년 뒤에 지구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왔다는 여운을 남기고.
원작 소설에는 체경(looking glass)이란 별명을 가진 외계인의 기계 장치가 112대 등장하는데,6) 영화에서는 지구 곳곳에 12대의 럭비공 모양의 우주선이 대기 중에서 갑자기 나타난다. 이 우주선 내부에 존재하는 2차원 스크린을 통해 헵타포드는 인류와 소통을 하고 있다. 헵타포드와의 소통을 위해 두 주인공이 우주선 속으로 들어가는데, 우주선 내의 중력의 방향은 지면에서의 방향과 다르다. 헵타포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고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외계언어를 다룬 영화인만큼 언어학자의 등장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 왜 물리학자가 등장할까. 물리학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차원 세계의 언어는 어떤 모습일까? 중력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우주선 속에서 물리학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인슈타인 고리와 외계언어
헵타포드가 보여준 언어는 고리 모양이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작과 끝이 있는 우리의 언어와 달리 헵타포드의 언어는 시작과 끝이 없는 고리 모양의 시각적 언어이다. 영화에서는 시각적인 헵타포드의 언어에 헵타포드-B란 이름을 붙였다. 헵타포드-B를 보는 순간 일반상대론을 배운 필자의 눈에는 아인슈타인의 고리가 보였다[그림 1]. 직접 확인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원작 소설 작가와 영화 감독이 아인슈타인의 고리에서 헵타포드-B를 착안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왜 아인슈타인의 고리는 고차원 세계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 고리는 중력 렌즈 현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1915년에 탄생한 일반상대론에 의하면 빛도 중력을 받아 휜다. 별빛이 휘는 현상은 1919년 개기일식 때 관측으로 확인이 되었다. 먼 은하의 빛이 다른 은하의 렌즈 효과로 휘어져서 고리 모양으로 보이는 것이 아인슈타인 고리이다[그림 2]. 그런데 아인슈타인 고리는 빛을 발생시킨 은하뿐 아니라 그 빛이 지나온 우주 공간에 대한 정보도 담고 있다. 즉, 공간뿐 아니라 시간의 역사가 아인슈타인 고리 속에 담겨 있다. 미래와 과거가 얽힐 수 있는 고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헵타포트들이 시공간의 정보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언어로 아인슈타인 고리 모양을 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인슈타인 고리가 헵타포드의 언어가 된 이상, 물리학자의 등장은 필수적이다. 헵타포드-B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리학 지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 숨겨진 물리학 지식을 찾아 보자.
미래의 기억과 우주의 시간
언어학자인 여주인공은 외계인을 스크린을 통해 만난 뒤에 미래에 대한 기억이 생긴다. 우리에게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고, 우리의 기억은 현재에 남아 있는 과거의 정보이다. 그런데, 어떻게 미래의 기억이 가능한가. 물리학자인 남자 주인공은 미래의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화 속에서 헵타포드는 인류와 직접 만나지 않고 2차원 스크린을 통해 만난다. 서로 차원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인류가 볼 수 있는 헵타포드는 일부 차원에 투영된 단면일 뿐이다. 영화에서는 2차원 스크린에 투영된 헵타포드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생명체와 만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여자 주인공은 헵타포드와의 만남 이후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기 딸이 죽어가는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미래의 기억이 가능한 영화 속 시간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실체는 무엇이며, 우리의 시간은 왜 미래로만 흐르는지는 아직도 물리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7)8)9)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른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 정도를 나타낸다. 아주 많은 입자를 포함한 거시적인 계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의 흐름을 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확대하여 입자 한두 개가 포함된 미시적인 세계를 보면 시간의 미래와 과거의 구분이 없어진다. 예로써, 작은 두 입자의 충돌을 촬영한 뒤, 필름을 거꾸로 돌려 보면 필름을 거꾸로 돌린다는 것을 전혀 인식할 수 없다. 엔트로피로 이해하는 시간의 흐름은 세상을 자세히 보지 않고 희미하게 보는데서 발생한다.7) 아인슈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반상대론에 의해 시간 자체가 물질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였다.
현대물리학에서 시간과 길이의 기준은 빛이다. 세슘 원자에서 나오는 특정 파장 빛의 진동수를 기준으로 시간의 단위를 정하고, 우주에서 빛의 속도는 일정하므로, 빛이 1초간 진행하는 거리가 바로 길이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중력렌즈처럼 빛이 휘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지구 표면에 있는 세슘원자에서 나온 빛은 인공위성에 있는 세슘원자에서 나온 빛보다 더 많이 휜다. 휘는 정도가 다른 두 빛으로 시간과 길이의 단위를 정하는데 시간이 어떻게 같이 흐를 수가 있을까. 일반상대론에 의해 주위 환경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이 당연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 대사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원작 소설에는 페르마 원리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페르마 원리는 휘어진 공간에서 최소시간 경로를 따라 빛이 이동한다는 원리이다. 페르마 원리의 도입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빛으로 판단하는 우주 시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블랙홀의 존재가 관측으로 확인되면서 시간은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림 3]은 인류 최초로 촬영에 성공한 블랙홀 모습이다. 블랙홀 내부에서 빛이 빠져 나올 수는 없으므로 블랙홀 이미지는 블랙홀에서 직접 나온 빛을 촬영한 것은 아니다. 먼 우주에서 와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블랙홀 주위를 맴돌다 온 빛을 촬영한 것이다. 아인슈타인 고리처럼 블랙홀 이미지도 고리 모양이므로 헵타포드-B의 후보가 될 수 있다. 일반상대론에 의하면 빛이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면 중심부 특이점에서 사라진다. 빛이 특이점에서 사라진다면 시간도 사라지는 것일까? 블랙홀로 빨려들어간 에너지는 어떻게 될까? 블랙홀 특이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답하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존재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으며, 웜홀을 통한 시간 여행 가능성까지 연구되고 있다.
비록 컨택트에는, 블랙홀이나 웜홀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차원의 존재를 전제로 고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외계인을 가정했다. 컨택트에서는 미래에 대한 기억을 도입하여 고차원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억은 영화 속 여러 장면에 등장한다. 태어나지 않은 딸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 헵파포드-B를 해설하는 미래 강연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헵타포드의 의미를 찾는 장면. 미래에 이루어진 중국 장군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장군을 설득하여 외계인과의 전쟁을 막는 장면. 3,000년 뒤에 인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왔다는 헵파포드를 등장시킨 장면 등.
새로운 차원을 통한 시간 여행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기억을 전제로 한 영화 속 스토리의 얽힌 인과관계는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영화 속 미래와 현재의 인과관계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헵타포드-B에 숨겨진 리만제타함수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수많은 고리모양의 헵타포드-B를 분석하여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헵타포드-B를 분석하여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 빈 공간을 분석하여 “1/12”를 찾아낸 것이다. 분모의 12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외계 우주선의 수와도 일치한다. 원작 소설의 112대의 외계인 기계 장치가 영화에서 12대로 변경된 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1/12”는 왜 영화에 등장해야만 했을까. 영화 속 “1/12”를 본 순간 리만제타함수가 떠올랐다. 물리학자만의 특권이랄까. 영화를 보면 볼수록 “1/12”은 리만제타함수를 의미한다는 확신으로 들었다. 리만제타함수는 다음과 같은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1 + 2 + 3 + 4 + \cdots \cdots = - \frac{1}{12} \]양의 정수를 무한히 더하면 음수가 되며, 더군다나 분수가 된다. 이 식은 유한한 정수의 합으로는 유도될 수 없는 무한대만의 특이한 성질이다. 물론 이 식에서 “같다(=)”의 의미는 단순한 산술적인 의미는 아니다. 리만제타함수에 담겨진 무한한 우주 진공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무한대를 다룰 때 자주 등장하는 힐버트 호텔이 있다. [그림 4]와 같이 무한개의 방이 있는 호텔이 힐버트 호텔인데 모든 방에 손님이 꽉 차있다. 빈방이 없는 호텔에 새로운 손님을 받을 수 있을까? 답은 “예”이다. 손님을 한 명씩 옆방으로 옮기면 빈 방을 하나 마련할 수 있다. 1번방 손님은 2번방으로, 2번방 손님은 3번방으로, n번방 손님은 n+1번 방으로. ... ... 모든 손님을 한 칸씩 옆방으로 옮기는 데는 무한한 일이 필요하지만 결과는 빈방 하나이다. 무한한 양의 일을 합하면 음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방의 개수가 유한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정확한 값 “‒1/12”는 간단히 유도할 수는 없지만, 리만제타함수와 힐버트호텔을 생각나게 하는 이 분수가 왜 영화에 등장하는지는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주진공 –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우주 공간은 빛이 휘어질 수도 있고 우주배경복사와 암흑에너지도 존재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채워진 우주 진공에서 리만제타함수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진작가 김아타의 「뉴욕-10,000」은 뉴욕에서 찍은 사진 1만 장을 디지털로 합성한 작품이다[그림 5]. 사진 속에 있던 뉴욕의 생생한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작품에는 뿌연 흔적만 남아있다. 창작 과정을 모르고 작품을 본다면, 「뉴욕-10,000」의 첫인상은 “아무것도 없다”일 것이다. 이 작품은 무한한 가능성이 합쳐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진공의 현대물리학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진공의 현대물리학적 특성은 입자-반입자의 생성과 소멸을 관측함으로써 확인되었다. 반입자는, 지상의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들이 공기 분자와 충돌하여 생성되거나 가속기 실험실에서 생성된다. [그림 6]은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국경 지대에 위치한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 강입자가속기에서 두 양성자가 충돌하여 새로운 입자가 생성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새로운 입자 중에는 힉스 입자도 포함된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의 존재는 2012년에 실험으로 확인되어 2013년 노벨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이미지의 가는 실선은 전하를 가진 입자와 반입자들의 경로를 나타낸다. 전하가 0인 힉스입자는, 이미지에서 직접 찾을 수는 없지만, 전하를 가진 다른 입자로 붕괴하는 경로를 역으로 추적하여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힉스입자의 질량은 양성자 질량의 130배가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양성자가 130배나 무거운 힉스입자를 자신 속에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두 개의 양성자가 충돌하여 자신보다 130배나 무거운 힉스입자를 생성할 수 있을까. 답은 진공 자체에 있다. 입자의 속력이 커지면 에너지도 증가하므로, 매우 빠르게 이동하는 양성자는 힉스입자를 생성할 만큼 큰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이 에너지가 충돌 지점의 진공을 흔들어 진공 속에 숨어 있던 힉스입자를 실제 입자로 바꾼 것이다.
리만제타함수는 위에서 설명한 무한한 진공에서 새로운 입자가 들어갈 빈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진공 자체의 무한한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차원 세계 언어인 헵파포드-B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진공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물리학자인 주인공이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 빈공간을 비교하여 “1/12”를 찾는 영화 장면은 인류가 가진 우주 진공에 대한 현대물리학의 이해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물리학 언어를 기대하며
헵타포드는 3,000년 뒤에 인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고차원 세계의 언어인 헵타포드-B를 인류에게 가르치고 떠난다. 이는 언어가 사고 체계를 바꿀 수 있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가설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을 떠나, 일반상대론을 알고 나면 우주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컨택트에 물리학자가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기억이 있을 때, 현재를 사는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태어나지도 않은 딸이 죽어가는 미래의 기억을 간직한 채, 영화 속 주인공은 그 미래의 기억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선택을 한다. 어차피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면 현재의 선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비록 영어 제목은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한글 제목의 영화 콘택트(Contact, 1997)에도 웜홀을 통한 시간 여행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칼세이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소설 속 웜홀은 인터스텔라 제작자인 킵손 교수의 자문을 받아 도입되었다. 칼세이건의 소설은 킵손 교수가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웜홀을 연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10) 킵손 교수가 연구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웜홀은 인터스텔라 영화에 직접 등장한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도 미래와 과거가 얽히는 인과 관계는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고차원 우주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인과관계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의 언어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반상대성을 포함하는 현대 물리학 이론에는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친구였던 수학자 괴델은 일반상대론의 시공간 구조에 미래가 과거로 돌아가는 ‘닫힌 시간선’이 존재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7) 그런데, 괴델은 괴델수를 도입하여 “모든 수학적 체계 안에는 증명될 수 없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음”을 증명하였다.9)11) 리처드 뮬러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괴델이 준 충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9)
“괴델의 정리는 우리로 하여금 물리학의 완전성에 대해, 개별 이론이 아니라 물리학 그 자체의 완전성에 대해 궁금하도록 만든다.”
영화 컨택트처럼 새로운 고차원 과학 언어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우주 어딘가에 인류에게 새로운 언어를 가르쳐 줄 문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 본다.
- 각주
- 1)Hyung Mok Lee et al., Gravitational Waves Detected - 100 Years After Einstein’s Prediction, Phys. High Technol. 25(3), 2-43 (2016).
- 2)John J. Oh et al., 2017 Nobel Prize in Physics, Phys. High Technol. 26(11), 3-20 (2017).
- 3)Jinn-Ouk Gong et al., 2019 Nobel Prize in Physics, Phys. High Technol. 28(12), 2-23 (2019).
- 4)Bogeun Gwak et al., New Perspectives of the Gravity, Phys. High Technol. 29(11), 2-36 (2020).
- 5)Gungwon Kang et al., 2020 Nobel Prize in Physics, Phys. High Technol. 29(12), 3-28 (2020).
- 6)Ted Chiang, Stories of your life (Vintage Books, 2002);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소설, 김상훈 옮김 (엘리, 2016).
- 7)Carlo Rovelli, L’ordine del tempo (The order of time) (Adelphi Edizioni SPA, 2017);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쌤앤파커스, 2019).
- 8)Carlo Rovelli, La realtà non è come ci appare (Reality is not what it seems) (Raffaello Cortina, 2018);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 2018).
- 9)Richard A Muller, Now: The Physics of Time (Brockman, Inc., 2016); 나우 (Now) 시간의 물리학, 리쳐드 뮬러 지음, 강형구, 장종훈 옮김 (바다출판사, 2019).
- 10)Kip Thorne, The Science of Interstellar (Norton, 2014).
- 11)Douglas R. Hofstadter, 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Basic Books, 1979);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 안병서 옮김 (까치,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