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물리올림피아드: 노력과 성과
근래 국제정세와 IPhO의 운영
작성자 : 이무희 ㅣ 등록일 : 2024-06-25 ㅣ 조회수 : 282 ㅣ DOI : 10.3938/PhiT.33.017
이무희 교수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1982), 동 대학교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이학박사(1989)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Science and Technology Center for Superconductivity에서 박사후 연구원(1989-1992)을 거쳐 건국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물리학회 물리올림피아드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mhlee@konkuk.ac.kr)
Recent International Situation and Operations of IPhO
Moohee LEE
For recent years, the world has faced a turmoil situation such as the COVID-19 Pandemic crisis and the Russian invasion into Ukraine. This year the Israeli government has bombed the Iranian city of Isfahan, the venue of 2024 IPhO. This international situation has caused unprecedented problems in IPhO operations. These were resolved by considering various opinions and arguments from IPhO member states with the decisions that the 2020 IPhO in Lithuania would be postponed for a year and eventually converted to an online competition in 2021, while Belarus’s right to hold the 2022 IPhO would be withdrawn. Alternative competitions for canceled IPhOs were arranged and held in 2020 and 2022. In this article, the detailed process leading up to these decisions is explained.
들어가는 글
필자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물리학회 물리올림피아드위원회의 부위원장이었고, IPhO(국제물리올림피아드)의 44회 덴마크 코펜하겐 대회부터 시작하여 이후 한국대표단 부단장 및 리더로서 참가하였다. 2021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대회와 2022년 스위스 취리히 대회에는 한국대표단 단장 및 리더로 참가하였고, 2019년 초 이후로 IPhO의 President Advisory Committee (이후 회장자문단으로 약칭함)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기간에 IPhO에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근래 국제정세와 관련된 IPhO의 운영상 고충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그동안 중요 문제는 2019년 발생한 COVID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올해 54회 IPhO도 대회 개최지인 이란 이스파한(Isfahan)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에 현장개최의 대안으로 온라인으로 전환이 논의되었고, 각국 대표와 학생들의 대면대회 참가 결정도 고민되고 있다.
IPhO와 회장자문단에 대한 소개
IPhO는 물리학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보이는 각국의 청소년을 위한 세계적 경시대회로 물리교육의 강화와 교류를 위해 196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1회 대회가 개최되었다. 초기 10년간은 동유럽 10여 국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IPhO가 각국의 과학교육 수준을 비교하는 기회로 인식되면서, 1999년 이후로 60개국 이상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행사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는 1992년에 23회 핀란드 헬싱키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한 이후 2004년 포항에서 35회 개최를 하였으며 2028년에도 58회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IPhO는 올림픽의 정신을 계승하여 세계 물리학도의 선의경쟁을 통하여 친목과 교류를 쌓아 국적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정신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바, 이것이 IPhO의 헌장(Statue)에 나타나 있다. IPhO의 최고결정기구는 130여 개 회원국마다 2명의 리더들로 구성된 IBM (International Board Meeting)이고 관례상 매년 IPhO 각 대회 기간 동안에 서너 번 열린다. IBM에서는 개최국이 출제한 이론 및 실험 문제를 검토하고 승인하며, 제안된 Statue의 수정항목을 심의 및 의결한다. 매년 마지막 IBM에서는 그 대회의 수상자들을 결정하고 차년도 개최지를 소개하며, 장래 대회 유치를 희망하는 회원국을 승인하고 그 외 기타 안건을 심의한다. 통상 IBM은 매년 대회 기간 중에만 열리는데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문제를 의결하기 때문에 논의 시간이 부족하여 심층적인 판단이 결여될 수도 있다. 특히 IPhO Statue의 개정에는 각국의 교육환경이 서로 크게 다르기에 종종 생각지도 못한 복잡한 문제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Statue는 1967년 창립 이후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정을 반영하여 60여 년간 다듬어져 왔기 때문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크게 낭패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고자 회장자문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회장자문단은 회장이 임명하는 8명 내외의 위원(Member)과 당연직 위원인 IPhO 회장, Secretary, Treasurer 3인을 합해 11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IPhO 회장이 유럽 회원국 중에서 선출되었기 때문에 회장자문단도 대부분 동유럽의 위원들로 구성되었으나, 2018년 포르투갈 리스본 대회에서 처음으로 싱가포르의 Rawat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아시아 회원국의 위원이 필자를 포함하여 3명이다. 회장자문단의 대다수 위원은 IPhO 참가경험이 많아 IPhO에 상정되는 여러 문제, 특히 Statue 개정에 수반되는 복잡한 문제를 130여 개 회원국의 사정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논의한다. 특히 동유럽의 위원들은 수십 년 전 학생시절부터 국가대표로서 IPhO에 참가했던 경험 때문에 그 연륜에서 나오는 혜안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회장자문단의 역할은 회장 또는 회장단이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기 위한 것인데, 그동안 통상적으로는 Statue 개정에 대한 제안을 논의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즉, 매년 2월 초까지 IBM에 제출할 Statue의 개정사항에 대한 2‒3개의 제안서가 각국의 리더들로부터 접수되면, 이후로 회장이 회장자문단에게 제안서를 소개하고 각 위원들의 의견을 요청한다. 제안서에는 현재 Statue의 어떤 조항으로 어떠한 문제들이 발생하는가를 설명한 후, 이에 대한 대책으로 어떻게 조항문구를 수정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각 위원들은 자신의 소속국의 사정과 다른 나라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개정 시 예상되는 장점과 문제점을 다양한 관점에서 전체 이메일을 통해 자유롭게 발표한다. 제안서에는 개정의 필요성 등은 잘 기술되어 있지만, 정작 새롭게 포함될 Statue 문구는 다듬어져 있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이것도 면밀하게 검토하여 조문을 정제한다. 회장은 이를 5월 말경 수합하고 핵심을 요약하여 회장은 각국의 리더들에게 발송하고, 7월 대회 기간 중에 개최되는 IBM 회의 중 Statue 개정 제안서와 함께 회장자문단의 검토의견도 게시한다. 이를 통해 각 회원국 리더들이 빠르게 파악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IPhO Statue 개정을 위한 IBM은 이론이나 실험문제의 확정 후 번역하는 동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Statue 개정은 뒷전일 경우가 태반이고, 개정에 대한 필요성과 개정 시 발생할 제반 문제점을 단시간에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렇기 때문에 회장자문단의 검토의견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2019년 COVID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2024년 중동전쟁으로 인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제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하느라 IPhO 운영에 있어서도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고, 회장자문단도 통상적 논의주제에 크게 벗어난 사안에 대해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다. 회장자문단은 매년 IPhO 대회 기간 중에 회의가 열리지만, 보통은 안건이 있을 때마다 전체 이메일이나 화상회의를 통하여 수시로 논의를 진행한다.
2019년 COVID의 여파
2019년 말에 COVID가 발생하여 그로 인해 IPhO 운영에 유례가 없는 지장을 초래했다. 원래 2020년 대회의 개최국은 리투아니아였다. 그런데 COVID 사태로 인해 현장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장자문단 회의가 줌미팅으로 여러 번 소집되었다. 회의의 결론에 따라 리투아니아 조직위원회에게 온라인으로 개최할 것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측은 이미 수년 전부터 현장대회를 준비하였고 이론문제 준비뿐만 아니라 실험문제 출제와 실험키트 제작도 끝나서 상당한 예산도 소진된 상태라는 것이다. 더구나 1991년 구소련연방으로부터 재독립한 신생독립국가로서 리투아니아를 세계에 알리고자 IPhO를 유치했기에 현장대회를 고수하고자 하니 다음 연도인 2021년으로 연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매년 예정된 개최국들이 일파만파로 1년씩 순연되기에 여러 나라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였다. 원래는 한국물리학회 창립 75주년인 2017년을 기념하고 최근 물리학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하고자 IPhO 대회 유치를 제안했던 것인데, 이러한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의견수렴과 논의를 거치고 COVID 팬데믹과 리투아니아 사정을 고려하여 한국물리학회가 어렵게도 이를 승인해 주어 2028년 대회유치로 변경된 것이다. 그 외에도 2022년 벨라루스, 2023년 일본, 2024년 이란, 2025년 프랑스 등도 함께 동의해 주었다.
리투아니아 대회가 2021년으로 연기된 이후, 이에 대한 대안을 회장자문단에서 논의되었다. 2020년 대회가 무산되었기에 그해 세계의 3학년 학생들은 평생에 IPhO에 참가할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IPhO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IPhO Statue에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회장자문단의 기본정신은 세계 모든 학생들의 물리 실력이 성장해 나가도록 격려하고 최대한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2020년에 EuPhO는 COVID 사태로 인해 온라인 대회로 개최할 것을 결정하였다. 회장자문단의 다수 위원은 유럽물리올림피아드(EuPhO)에도 회원국이었다. 하지만 IPhO의 대다수 국가는 EuPhO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회장자문단의 유럽 위원들이 EuPhO를 설득하였고, 이 결과로 IPhO의 회원국을 2020년에 한해 EuPhO 온라인 대회에 참관국(Observer)의 자격으로 초청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57개국이 온라인으로 참가한 2020년 7월 유럽물리올림피아드(EuPhO)에 참가하여 대표 5명 전원이 금메달을 받았고, 중국과 함께 세계 1위를 공동으로 달성하였다.
한편 다른 대안으로, 러시아 측이 온라인 대회와 비슷한 형식의 International Distributed Physics Olympiad (IdPhO)를 개최하고자 하니 2020년에만 한정하여 IPhO의 공식대회로서 대체될 것을 승인해 주면 정부의 자금지원을 마련해 보겠다는 제안서가 러시아의 물리올림피아드위원회로부터 회장에게 접수되어 회장자문단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러시아는 영토가 광활하여 시차가 10시간이나 발생하기에 130여 개 IPhO 회원국의 시차를 모두 대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고, 또한 자국의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서도 수백 명 학생을 한곳에 모이게 하지 않고 거점지역별로 따로 분산하여(distributed) 모여서 온라인 형식의 대회로 선발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각 나라별 시차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가장 일찍 시작하는 나라의 시험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 국가의 시험이 시작되도록 보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 나라별로 러시아 언어를 구사하는 인물을 통해 이론문제를 전달하고 실험키트를 발송하고, 이를 통해 문제유출 방지와 보안 등을 감독하고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회장자문단은 검토를 거쳐 승인할 것을 권고하였고, 회장은 러시아 정부에게 2020년에 한해 IPhO를 대체하는 공식대회로 승인한다는 서명서를 발송하였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대회를 추진하였고 준비기간을 거쳐 12월 7일에서야 대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40여 개국에서 140여 명이 참가하였던바, 한국은 그 기간이 국가대표들의 대학입시 기간과 겹쳐서 참가하지 못하였다.
정작 2021년이 되어서도 COVID 상황이 진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었고, 결국 2021년 리투아니아는 온라인으로 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리투아니아 조직위원회는 실험키트를 각국에서 지정한 감독관에게 발송하여 감독관이 실험 당일까지 보관하고, 각국의 리더 및 참관자(Observer)들은 학생들의 숙소와 시험장으로부터 수 km 이상의 거리로 충분하게 떨어져 있을 것을 감시하였다. 학생들은 감독관의 통제하에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고, 시험장에는 카메라를 설치하여 리투아니아 조직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2021년 리투아니아 대회에서 한국은 중국과 함께 금 5로 공동 세계 1위를 달성하였다(사진 1).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한국이 3개의 Top Gold 모두를 차지하여, 한 나라가 세계 1등과 Top Gold 3개를 모두 획득하는 초유의 영광을 누리게 된 사실이다. 즉, 한국대표 중 김경민 군이 이론 1등을 중국대표와 공동수상하였고, 실험 1등과 이론과 실험점수를 합한 종합 1등의 3개 모두를 석권하는 쾌거를 맛본 것이다. 이에 리투아니아 조직위원회로부터 명장이 손수 만든 수제 체스판을 특별상으로 배송받기도 하였다. 1992년부터 한국이 IPhO에 참가한 이래 한국의 최고 성적은 금 4, 은 1로 중국의 금 5에 뒤진 세계 2등이었다. 2018년 대만 타이완 대회에서 중국이 조류독감(SARS) 때문에 불참하여, 한국이 금 3, 은 2로 세계 1위를 처음 하였다. 하지만, 2013년 이후로는 한국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어 세계 1위를 중국과 함께 공동으로 거의 매년 달성하고 있다. 2015년 인도대회에서는 김태형 군이 이론 1등과 종합 1등을 하고 김솔 군이 실험 1등을 하여 Top Gold를 모두 차지한 바 있지만, 아쉽게도 금 4, 은 1로 세계 1등은 놓친 경우가 있었다. 한국의 성적이 괄목하게 성장한 배경에는 실험장비의 확충 및 교육의 강화와, 국가대표 선배들의 지도 및 유대관계가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한다.
COVID 기간 동안 한국물리학회 올림피아드위원회의 운영에도 많은 고충이 있었다. 통신교육에 대한 1, 2차 평가고사뿐만 아니라 겨울학교 선발시험, 겨울학교 교육, 국가대표선발을 위한 면접도 모두 온라인으로 치러야 했다. 이를 위해 웹카메라는 수험자를 보이게 하고, 핸드폰 카메라는 수험자의 모니터를 비추어 부정행위를 방지하는 등, 여러 가지 세세한 시행기준을 준비해야 했다. 국가대표선발을 위한 최종단계의 실험시험은 실험키트를 미리 발송하고 당일 시험 직전에 개봉 여부를 확인하였고, 실험과정을 화상으로 감독하였다. 이러한 과정들이 까다로웠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여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2020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제52회 대회는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벨라루스가 러시아를 도와 우크라이나 침공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국가의 리더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유럽국가들은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인접국 리더나 회장자문단 위원들이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전쟁 난민들의 처참한 사정을 직접 보고 느끼는 동병상련과 위기감은 매우 심각했다. IPhO를 창립한 동유럽국가들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벨라루스가 2022년 IPhO를 개최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고 이를 막고 개최 권한을 몰수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IPhO가 올림픽처럼 평화의 제전인데 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어떻게 평화의 제전을 주관한다는 말이냐, 우크라이나 대표 학생들이 벨라루스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참가할 엄두가 나겠는가, 벨라루스의 IPhO 개최를 묵인하여 세계의 160명에 달하는 리더들과 4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한다면 IPhO가 침략자를 지지하는 꼴이 되는데 참가하는 학생들이 이를 납득하겠는가, 유럽국가들은 모두 불참할 것이다, 전쟁으로 가족, 친구나 친척을 잃은 우크라이나 대표학생들이 대회 기간 동안 러시아 및 벨라루스 대표들과 서로 낯을 맞대고 사이좋게 친목하며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 등이다.
이럴 때 수학, 화학, 생물 등 다른 올림피아드의 대응이 궁금하였다. 그중 일부는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국가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은 막되, 학생들에게는 국가명을 제외하고 개인자격으로 참가를 허용하였다. 대표학생들은 국제정치의 희생양이니 국가 간의 문제로 학생들의 참여를 막지 말자는 취지였다. 다른 올림피아드의 경우는 두 나라가 단순히 참가국 중 하나이기에 그 정도에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IPhO의 경우는 달랐다. 왜냐하면 전쟁 도발국이 대회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회원국의 대회 유치를 승인했다가 대회 개최를 서너달 앞두고 주최권을 취소하는 전례가 그동안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IPhO가 그러한 권한이 있는가도 따져봐야 했다. 유치를 승인하는 조항만 있지 몰수하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벨라루스가 스스로 대회를 포기하는 것이 제안되었다. 대다수 유럽국가들이 벨라루스 대회의 불참을 공언하니 벨라루스가 스스로 대회를 반납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냐는 회장자문단의 권고를 벨라루스 조직위원회에 전달했다. 하지만 벨라루스 교육부와 조직위원회는 대회 강행 의지를 확고하게 피력했다.
벨라루스 조직위원회도 황당한 상황이었다. 2‒3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고 대회를 3‒4개월 앞둔 시점이니 이론 및 실험문제는 모두 출제된 상태이고 500여 개 실험키트는 모두 제작 준비되었을 것이며 채점, 행사, 홍보 등의 모든 진행인력에 대한 교육도 마치고 대부분의 예산도 지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기에 갑자기 전쟁으로 대회를 취소해야 한다니......
하지만 벨라루스와 러시아에 대한 동유럽 국가들의 반대가 워낙 거셌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의 입장이 특히 완강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폴란드에 유입된 전쟁 난민이 공식적으로 4백만인데 실제로는 훨씬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스위스는 한술 더 떠서, 2016년 스위스 대회 때 자국이 개발하여 그 이후 쭉 사용해왔던 IPhO 전용 번역 프로그램인 OlyExams을 벨라루스가 사용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벨라루스는 대회를 3개월을 앞두고 번역 프로그램을 갑자기 새로 마련해야 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대다수 유럽국가들은 벨라루스 대회를 불참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전쟁도발국의 책임을 물어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IPhO 회원국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것에 대해 필자를 비롯한 몇몇 비유럽국가의 회장자문단 위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전쟁도발국이라고 축출한다면 IPhO 회원국이 얼마나 남아나겠는가, 그러면 그 나라의 학생들은 IPhO에 영영 참가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으로 저지했다. 논란 끝에 벨라루스의 52회 IPhO 대회 개최권을 몰수하기로 2022년 4월 1일 회장자문단 회의에서 최종 결정했다. 또한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학생들은 국가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참가를 허용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하지만 IPhO의 모든 결정은 IBM에서만 의결할 수 있기에 IBM을 개최하는 것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Zoom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비상회의 (Extraordinary IBM) 회의를 4월 3일 11시 UTC (Coordinated Universal Time)에 개최하였다. 그날 회의에 수십 개국의 백 명이 넘는 리더들이 참가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벨라루스의 대회유치를 몰수하고,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학생들은 국가대표가 아닌 개인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다, 벨라루스 대회에 대한 대안으로 스위스에서 2022년 52회 대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하되 특별한 상황을 고려하여 실험문제를 시뮬레이션으로 출제할 수 있다’의 세 가지 사항이었다. 벨라루스와 러시아 측은 이와 같은 IBM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여 잘 마무리되었다. 2021년 리투아니아 대회도 온라인으로 치렀지만, 실험키트를 우편으로 발송하여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스위스 조직위원회가 준비를 거쳐 52회 IPhO를 온라인으로 2022년 7월 10‒17일에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 한국대표단이 참가하여 중국의 금 5에 이어 금 4, 은 1로 세계 2위를 차지하였다(사진 2)
2024년 이스라엘의 이란 이스파한 폭격
올해 54회 IPhO도 이스라엘과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으로 대회의 현장개최 및 참가 여부가 현재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2024년 IPhO 개최지인 이스파한을 이스라엘이 4월 중순 폭격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각국 대표단의 안전이 매우 걱정되기에 현장개최를 취소하고 온라인 대회로 전환할 것을 대다수 국가에서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회장자문단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여러 국가의 우려와 권고를 이란 조직위원회에 전달했고, 이란 측은 정부 3개 관련 부처와 협의한 결과 5월 초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이스라엘과의 긴장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7월 중순 대회에 즈음해서는 상황이 안정될 것이다. 따라서 각국 대표단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현장개최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고 수많은 인력에 대한 교육이 완료되었다, 따라서 온라인이 아닌 대면대회로 추진할 것이다. 이러한 이란 측의 입장에 대해 회장자문단에서도 더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2020‒2021년과 같은 COVID 창궐도 아니고, 2022년과 같이 이란이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각국 대표단의 안전이 심각하게 우려되어 자국 학생들의 파견을 취소하거나 주저하는 모양새다. 이 글이 출판되는 시점에는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종결될지 필자도 궁금하다.
비슷한 상황이 2009년 멕시코 메리다 대회에서도 발생했다. 당시 북미대륙에 창궐했던 Swine flu 때문에 다른 대륙의 국가들은 40회 IPhO 참가를 매우 꺼리는 분위기였다. 마지막 단계까지 파견 여부를 놓고 창의재단 및 한국물리학회는 찬반이 갈렸고 대표학생들과 부모들의 좌불안석도 대단했는데, 결국 전원 예방주사를 맞고 참가했던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한국대표단 부단장으로 참가했고, 한국은 예년과 같이 금 4, 은 1로 금 5의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었다.
맺는말
2019년 이스라엘 대회 이후 최근 IPhO 개최는 국제정세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다행히 2023년 일본대회는 오랜만에 대면대회로 개최되었다. 세계의 물리학도가 한데 모여 선의의 경쟁을 통해 물리학에 대한 열정을 키우고, 함께 어울려 즐기고 여행하는 대면대회가 몇 년만에 개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IPhO는 국가, 인종, 이념 및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친목과 교류를 통하여 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과 궤를 같이하는 바, 유행병이나 전쟁같은 사태로 인해 위협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개최되어 세계 물리학도들의 우정과 연대를 쌓은 평화의 제전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