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양자 기술의 새로운 지평: 양자 시뮬레이터와 계산과학의 만남
편집후기
작성자 : 이진형 ㅣ 등록일 : 2025-06-11 ㅣ 조회수 : 108
양자 시뮬레이션은 기존 고전 계산 방식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양자계의 복잡한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있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단지 계산 기법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물리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 방식을 새롭게 열어가는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에는 이론, 실험, 계산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양자 시뮬레이션 연구가 그 깊이와 폭을 동시에 확장해 가고 있다.
이번 특집호는 양자 시뮬레이션의 주요 분야를 아우르는 세 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각각 이론적 기초, 실험적 구현, 그리고 계산과학적 응용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양자 시뮬레이션의 현재와 미래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첫 번째 주제인 “양자 시뮬레이션의 기초”는 양자 시뮬레이션의 개념적 출발점과 이론적 틀을 다룬다. 양자 시뮬레이터는 통제 가능한 양자 시스템을 이용하여 보다 복잡한 양자계를 모사하는 장치로, 이 글에서는 특히 해밀토니언의 구현 방식, 슈뢰딩거 방정식의 시간 진화, 그리고 아날로그 및 디지털 시뮬레이션의 구분과 특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디지털 방식에서는 Trotter-Suzuki 분해, QPE (Quantum Phase Estimation), VQE(Variational Quantum Eigensolver)와 같은 대표적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최근의 구현 가능성과 한계를 고찰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고찰은 양자 시뮬레이션이 단순한 기술적 응용을 넘어서 과학적 문제 해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주제인 “극저온 중성원자 양자 시뮬레이션 연구”는 실험적 측면에서 양자 시뮬레이터 구현의 가능성과 성과를 소개한다. 레이저 냉각과 광격자 기술을 통해 중성 원자를 마이크로 켈빈 수준으로 냉각하고 격자 배열에 가두는 실험은, 복잡한 다체계의 시간 동역학 및 상전이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을 제공한다. 특히 양자 기체 현미경을 통해 단일 격자 해상도의 이미징과 고차 상관 함수의 측정이 가능해졌으며, 이러한 기술은 고온 초전도, 양자 정보 스크램블링, 다체 국소화 등 고전 계산이 어려운 영역에 대한 실험적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이번 글에서는 국내 연구진들의 주요 성과도 함께 소개되어, 중성원자 기반 플랫폼이 한국 양자 분야 연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주제인 “계산과학에서 양자 시뮬레이션의 활용”은 양자 시뮬레이션을 전통적 계산과학 및 재료 과학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다룬다. 분자 구조 및 화학 반응의 미시적 메커니즘을 양자역학적으로 정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계산화학의 문제들은, 기존 알고리즘의 한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 글에서는 중성원자, 이온 트랩, 리드버그 원자 등의 실험 플랫폼뿐 아니라, 디지털 양자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에너지 고유값 계산과 시간 동역학 시뮬레이션이 어떻게 계산과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지 설명한다. 특히 VQE 및 TDVP(Time-Dependent Variational Principle)와 같은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분자 수준의 동역학을 구현하는 방식은, 실험과 계산의 경계를 허무는 창의적인 융합 연구의 예로 주목할 만하다.
이번 특집호에 원고를 집필해 주신 세 팀의 연구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세 편의 글은 각각의 시각에서 양자 시뮬레이션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전체는 마치 하나의 입체적인 연구 지형도를 그려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독자 여러분이 이 글들을 통해 양자 시뮬레이션의 핵심 원리를 이해하고, 앞으로 펼쳐질 연구의 지평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물리학과 첨단기술”이 양자 기술의 발전과 융합을 촉진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객원 책임편집위원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KIST 소재 혁신 양자시뮬레이터 개발 사업단장 이진형 (hyoun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