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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PLAZA

물리 이야기

맹목(盲目)과 신의 계명(誡命) 사이

작성자 : 김영균 ㅣ 등록일 : 2024-03-07 ㅣ 조회수 : 359

저자약력

김영균 교수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이학사)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ygkim@gnue.ac.kr)

테드 창(Ted Chiang)의 SF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는 지구를 찾아온 외계 생명체와 인류의 첫 접촉을 다룬다.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와 물리학자 게리 도널리는 지구 곳곳에 나타난 외계의 기계장치 중 하나에 접근해 외계인들과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루이즈와 게리 그리고 다른 언어학자-물리학자 팀들은 서서히 헵타포드(7개의 다리를 가진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외계인의 별명)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지만, 그들의 과학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질량이나 가속도 따위의 기본적인 물리학 특성을 전달하고 이에 해당하는 그들의 용어를 끌어내려고 시도했지만, 헵타포드들은 더 명확하게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할 뿐이었다.” 최초의 돌파구를 제공한 것은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였다.

페르마의 원리는 Pierre de Fermat (1601‒1665)가 발견한 원리로, 빛이 공간의 두 점 사이를 진행할 때 수많은 가능한 경로 중에서 최소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빛이 공기 중에서 직진하다 물속으로 들어갈 때 굴절하여 직진하는데, 그 빛의 경로가 (공기 중의) 출발점과 (물속의) 도착점을 잇는 경로 중 가장 시간이 적게 드는 경로이다. 빛은 공기보다 물속에서 더 느리므로, 출발점과 도착점을 잇는 직선이 최소 시간의 경로가 아니며, 두 점을 잇는 그 어떤 가상 경로도 실제의 굴절 경로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당신이 해변의 모래사장에 있는데 근처 바다에 사람이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자. 물에 빠진 사람을 향해 똑바로 직진하는 것이 가장 짧은 경로이기는 하지만, 가장 빠른 경로는 아니다. 모래사장에서 달리는 것은 빠르지만,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느리기 때문이다. 직선 경로보다 조금 더 길게 모래사장을 달리다가 물속으로 들어가서 조금 더 짧게 헤엄치는 것이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페르마의 원리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루이즈에게 게리는 이렇게 말한다. “페르마의 원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빛의 행동을 목표 지향적인 표현을 써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야. 마치 광선에 대한 계명(誡命)의 느낌이랄까. ‘네 목표로 갈 때는 도달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최대화할지어다’하는 식으로 말이야.”

Pierre Louis Moreau de Maupertuis (1698‒1759)에게 이 ‘계명의 느낌’은 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는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 대신에 자연을 기술하는 보편적 원리로서 ‘최소 작용의 원리’(Principle of least action)를 제시했다. 이 원리는 물체의 실제 운동 경로에서 이른바 ‘작용(action)’이라는 양이 최소가 된다는 것이었다. Maupertuis는 이로부터 빛의 반사와 굴절의 법칙뿐만 아니라 물체의 충돌 법칙도 도출하고자 했다. 그에게 최소 작용의 원리는 자연은 그 모든 ‘작용’에서 검약하다는 것을, 즉 자연은 불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신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Maupertuis의 원리는 Leonhard Euler (1707‒1783)와 Joseph Louis Lagrange (1736‒1813)에 의해 극치(極値)의 경로를 찾는 변분법(calculus of variations)이 도입되면서 수학적으로 정교화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최소 작용의 원리가 William Rowan Hamilton(1805‒1865)에 의해 제시되었다. Hamilton의 ‘작용’은 시공간의 고정된 두 점(사건)을 잇는 경로들에 대해 계산되는데, 운동에너지와 퍼텐셜에너지의 차이를 시간에 대해 적분한 양이다. 작용이 최소화되는 (더 정확히는 극치를 갖는) 경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을 만족한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게리의 말에 의하면 헵타포드의 물리학 체계는 정말로 우리 것과는 반대였다. 인간이 적분학을 써서 정의하는 물리학적 속성들을 헵타포드는 기본적인 것들로 간주하는 듯했다.” ‘작용’이 “우리에게는 복잡한 적분이지만, 그들에게는 기초적인 개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현실의 이론 물리학자들은 (비록 헵타포드 같은 외계인은 아니지만) 작용을 기본적인 혹은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뉴턴 이래로 확립된 모든 물리학의 ‘근본적인’ 이론은 최소 작용의 원리로 표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맥스웰의 전자기학 방정식도,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도 간단하고 우아한 ‘작용’들로 정리된다. 그리고 “물리 이론이 어떤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작용’이 대칭성과 연관된 변환에 대해 불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요약하자면, ‘작용’은 물리적 실체의 구조를 구현한다.” 또한 ‘작용’은 양자물리를 기술하는 데도 적합한 양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어느 물리학자의 말처럼, 그는 ‘작용’의 관점으로 생각할 것이다.

각주
1)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16).
2)Y. Van den Abbeel, “The tension between the mathematical and metaphysical strands of Maupertuis’ Principle of Least Action,” Noctua 4(1-2), 56 (2017).
3)J. Ogborn, J. Hanc and E. F. Taylor, Action on Stage: Historical Introduction.
4)A. Zee, Fearful Symmet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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