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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개구리와 수상한 절연체

작성자 : 김기덕 ㅣ 등록일 : 2024-04-15 ㅣ 조회수 : 213

저자약력

김기덕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 취득 후, 독일 막스플랑크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나노구조물리연구센터와 삼성 반도체연구소를 거쳐 현재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에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초전도체>와 <물질의 재발견>이 있으며, 과학잡지 <스켑틱>에 물질의 물리적 성질에 대한 글을 연재했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3월이다. 독일은 우리처럼 따로 경칩이라 부르는 절기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라 벌써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집 앞 도보가 얼어서 그 위에 재를 뿌리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그 옆에 핀 키 작은 꽃들 위를 보송보송 털이 난 호박벌이 날아다닌다. 통통한 호박벌이 꽃 안에 머리를 박으면, 아직 다 자라지 못해 연약한 꽃은 호박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처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호박벌은 왜 식사를 방해하냐는 듯이 늑장을 부리며 느릿느릿 꽃 밖으로 기어 나온다. 외진 곳에 사는 것이 지루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봄에 자연이 다시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 시골 생활에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이 온 것을 알리는 또 다른 대상은 연구소 안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이 연못은 겨울에는 얼어서 단단한 고체 상태가 되었다가, 날씨가 풀리면 다시 액체로 돌아와서 물이 흐른다. 그러면 이른 아침에 동네에 있는 사슴이나 여우가 연못으로 찾아와서 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단단하게 얼었던 연못이 녹아 다시 흐르는 것을 볼 때면 2017년에 참여했던 학회에서 들었던 한 발표가 생각난다. 베를린에서 열린 이 학회는 양자 물질 심포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교토 대학 물리학과의 요시테루 마에노 교수의 발표이다. 그는 스트론튬(Sr), 루테늄(Ru), 산소(O)가 포함되어 있는 Sr2RuO4 물질의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인데, 이 물질은 전기가 아주 잘 흐르며, 영하 272도의 저온에서는 전기 저항이 0으로 뚝 떨어지는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 이렇게 낮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이 물질의 초전도 상태는 일반적인 초전도체와는 다른 특이한 성질을 보이기에, 1994년 처음 발견된 후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Triplet 초전도라고 불리는 이 특이한 상태에 대해서는 나중에 초전도 현상에 대해 다루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학회에서 마에노 교수는 자신의 히트작인 스트론튬이 들어간 물질 대신에 칼슘(Ca)이 들어간 Ca2RuO4라는 물질에 대해서 발표했다. 스트론튬과 칼슘은 주기율표에서 같은 족(세로 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전자의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Sr2RuO4처럼 전기가 잘 흘러야 하지만, 1997년 마에노 교수에 의해 처음 합성된 Ca2RuO4은 전기가 잘 흐르지 않는 절연체로 밝혀졌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발표의 도입부에서 물질의 전기적 성질을 흐르는 계곡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그가 보여준 슬라이드의 왼편에는 물이 많아 잘 흐르는 계곡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물이 마른 계곡이 있었다. 전자가 자유롭게 흐르는 전도체가 물이 많은 계곡이고, 움직일 전자가 없는 절연체는 물이 말라서 흐르지 않는 계곡이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보여준 사진은 추운 겨울이 되어서 물이 얼어버린 계곡이었다. 이 상태가 바로 절연체인 Ca2RuO4가 처한 상황이었다. 흐를 수 있는 전자도 있고 옆으로 넘어갈 자리도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물질 안에서 전자들은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는 무슨 이유로 얼어붙은 것일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이 물질의 상태는 모트 절연체(Mott insulator)로 불린다. 197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네빌 모트(Neville Mott)가 처음 그 원리를 밝혀낸 이 물질 군은, 지난 글에 소개되었던 논리로는 전기가 잘 흐르는 전도체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측정을 해보면 전기가 흐르지 않는 이상한 물질 군이다. 마에노 교수가 합성한 물질처럼 구조나 조성이 복잡할 필요도 없다. 니켈(Ni)과 철(Fe)을 산소와 반응시켜서 얻을 수 있는 산화니켈(NiO)과 산화철(FeO)도 모트 절연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질의 성질을 이해했다고 자신했을 물리학자들에게, 이렇게 간단한 조성을 가진 물질의 성질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물질의 작동 원리는 모트가 그 설명을 찾기 전까지 10년 넘게 물리학자들을 괴롭혔다.

이번 글에서는 절연체와 전도체를 분류했던 지난번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상한 물질의 상태인 모트 절연체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다. 따라서 지난번 글보다 난이도가 조금 있다는 점을 미리 알린다. 혹시라도 지난번 글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시리즈의 지난 글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빈자리를 찾아 떠나는 전자

그림 1. 절연체와 전도체의 차이.
그림 1. 절연체와 전도체의 차이.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원자핵의 인력에 묶여 있는 전자는 마치 우물 안에 빠진 개구리와 같다. 그리고 전기의 흐름은 전자가 한 원자에서 다른 원자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지/없는지로 결정된다. 그림 1에 절연체와 전도체의 차이를 표현해 놓았다. 그림을 보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은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의하면 전자는 한 에너지 층에 최대 두 개의 전자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머리 한편에 두고 위쪽의 그림을 보자. 이 상황에서는 두 원자의 낮은 에너지 층이 꽉 차 있고, 높은 에너지 층은 비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전자가 옆으로 쉽게 이동할 수 없으며, 옆에 있는 원자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에너지에 있는 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전자가 더 높은 에너지를 갖는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에너지를 추가로 공급받아야 하므로 전자는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고로 이 상황은 절연체를 나타낸다.

그림 2. 에너지 층이 겹쳐 있는 경우.그림 2. 에너지 층이 겹쳐 있는 경우.

그림 1의 아래쪽에 표현된 전도체의 상황은 절연체보다 간단하다. 옆에 빈자리가 있기 때문에 전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옆으로 넘어갈 수 있다. 꼭 그림에서 표현한 것처럼 한 자리가 텅 비어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에너지 층이 여러 개 겹쳐 있고, 이 중 일부가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을 보면 세 개의 에너지 층이 겹쳐 있어서 총 여섯 개의 전자가 같은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이렇게 겹쳐진 층에 그림처럼 전자가 다섯 개가 차 있다고 해도 한 자리는 항상 비어있으므로, 이 원자로 만들어진 물질은 전도체가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지난 글에 대한 짧은 요약이었다. 이제 모트 절연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이기적 전자

모트 절연체에서 전자의 행동을 알아보기 전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전자의 가장 기본적인 성질 중 하나인 전자가 전하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자는 육중한 원자핵과 가볍고 작은 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원자핵은 양(+)의 전하를 띠고 전자는 음(–)의 전하를 띤다. 이렇게 전하를 띠는 물체들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는데, 이 힘을 정전기력이라 부른다. 그리고 정전기력은 쿨롱의 법칙에 의해 기술된다. 이 법칙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양전하와 음전하는 서로 잡아당긴다. 2) 두 물체가 띠는 전하의 부호가 같다면 두 물체는 서로 밀어낸다. 즉, 양전하끼리는 서로 밀어내고, 음전하끼리도 서로 밀어낸다. 여기에 한 가지 항목만 추가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쿨롱의 법칙이 완성된다. 3) 전하를 띤 물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이 세진다는 것이다. 다시 원자로 돌아가면 원자핵과 전자는 서로 다른 부호를 띠기 때문에, 상호 간에 인력이 작용한다. 덕분에 전자는 원자핵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정전기력 중에서 우리가 계속 간과해왔던 힘이 있다. 바로 전자와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정전기적 척력이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으로 전자가 원자 안에 있다는 것은 고려했지만, 전자와 전자 사이에 척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자는 음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전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기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특히 쿨롱의 법칙에 의해서 공간이 좁을 때에는 다른 전자를 더욱 강하게 밀어낸다.

그림 3. 모트 절연체에서의 전자.그림 3. 모트 절연체에서의 전자.

모트 절연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자들이 서로 밀어내는 힘을 고려해야 한다. 그림 3은 모트 절연체 안에서 전자의 상태를 나타낸다. 에너지 층에 전자가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빈 곳이 있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 나타낸 물질은 전도체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물질은 절연체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던 정전기적 척력 때문이다. 전자는 빈 에너지 층으로 넘어가려 하지만, 원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기적 전자가 밀어내기 때문에 빈 자리가 있음에도 넘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전자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절연체가 되는 것이다. 이제 마에노 교수의 표현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이 있다. 모든 물질에서 이렇게 전자 사이의 척력이 큰 영향을 가진다면, 아마 세상에 전도체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이런 원리로 인해서 절연체가 되는 물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전자의 행동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면 두 가지 힘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가 터널링을 통해 옆에 있는 원자로 넘어가려는 것과 그리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전자기적 척력이다. 이 둘 사이의 세기는 어떤 종류의 원자로 물질이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이 원자들이 모여서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이 되며, 모트 절연체가 되는 경우는 둘 중 전자기적 척력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특별한 경우이다.

이기적 전자와 자석

다른 전자를 밀어내려는 전자의 이기적 특성은 모트 절연체뿐 아니라 또 하나의 놀라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자석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냉장고 문과 칠판에 ‘척’하고 달라붙는 그 자석 말이다. 다음 글에서는 전자의 특성에 기반해 자석이 어떻게 냉장고 문에 달라붙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던 전자 개구리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도 의미를 갖게 되니, 왜 지금까지 개구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궁금했던 독자는 다시 한번 이 연재를 찾아오길 바란다.


*아태이론물리센터의 <크로스로드>지와의 상호 협약에 따라 크로스로드에 게재되는 원고를 본 칼럼에 게재합니다. 본 원고의 저작권은 아태이론물리센터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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