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0 노벨물리학상
블랙홀을 관측하다
작성자 : 손봉원 ㅣ 등록일 : 2021-01-15 ㅣ 조회수 : 5,265 ㅣ DOI : 10.3938/PhiT.29.046
손봉원 박사는 연세대 천문대기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Bonn 대학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사건지평선망원경 협력단 한국 대표와 과학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bwsohn@kasi.re.kr)
Black Hole, Observed
Bong Won SOHN
The author explains black holes in the context of astronomy and astrophysics. The history of black hole research and black hole discovery are covered briefly. The author explains why supermassive black holes in active galactic nuclei are the most promising candidates for imaging black holes. The principles of radio interferometers used as observation methods are covered. The Event Horizon Telescope Collaboration, its future plans, and the role of the Korean members are introduced.
서 론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하는 천체임이 LIGO/VIRGO의 중력파 검출(The Nobel Committee for Physics, Scientific Background 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17))과 우리은하 중심 초대질량블랙홀 근접 별의 공전궤도 관측과 그의 중력적 적색편이 관측(The Nobel Committee for Physics, Scientific Background 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20)) 등으로 입증되고 있다. 블랙홀이 우주에 실제로 존재함이 명확해짐에 따라 블랙홀의 강한 중력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블랙홀은 중력 연구는 물론 우주의 진화 연구에도 중요한 천체다. 블랙홀이 물질을 끌어들여 질량을 늘려가는 과정은 강력한 물질과 에너지의 방출을 동반하고, 이 방출 현상이 별, 은하, 그리고 우주의 진화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별 정도의 질량을 가진 블랙홀에서 거의 모든(아마도 모든) 은하의 중심에서 발견되는 초대질량블랙홀 – 질량이 태양의 백만 배 이상인 블랙홀을 초대질량블랙홀이라고 한다 – 까지 모든 종류의 블랙홀에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는 물질(별, 가스, 먼지 등)이 블랙홀로 유입되면서 마찰과 폭발로부터 발생하는 에너지(지구로 떨어지는 운석이 발생하는 열, 빛, 소리, 충격파를 생각하면 블랙홀로 떨어지는 물질이 얼마나 큰 마찰과 폭발을 겪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와 자기화된 블랙홀이 회전하며 발전기 역할을 해서 발생하는 에너지에 의한 것이다. 초대질량블랙홀이 활발히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블랙홀이 방출하는 순간 에너지(파워)는 그 초대질량블랙홀이 속한 은하 전체가 발생하는 파워보다 더 큰 경우도 많다. 초대질량블랙홀 중에서도 가장 질량이 큰 축에 속하는 M87([그림 1]의 블랙홀, 태양의 65억 배 질량)의 반지름이 100 AU 가량(1 AU(천문단위)는 지구와 태양의 거리)이고 이는 해왕성 공전궤도 반지름(30 AU, 원 궤도에 가깝다)의 세 배를 조금 넘어선 수준이다. 이 은하가 차지하는 부피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공간을 차지한 천체가 내는 밝기가 은하 전체가 내는 밝기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중심부가 매우 밝은 은하를 활동성은하라고 하고 그 중심부를 활동성은하핵이라고 한다. 이러한 특이한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은 20세기 초에 이미 알려졌다.1) 은하의 10퍼센트 가량이 활동성은하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실인즉,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자 초대질량블랙홀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었고,2) 70년대에 활발한 이론 연구가 수행되며 블랙홀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블랙홀의 크기
블랙홀의 크기는 블랙홀 중심에서 사건지평선까지의 길이를 반지름으로 한 구의 부피이다. 이 길이를 슈바르쯔실드 반지름이라고 하는데, 이는 블랙홀의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
슈바르쯔실드 반지름(\(\small R_s\))은 \(\small R_s = \frac{2GM}{c^2}\) 이를 경계로 안쪽의 정보는 바깥으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이는 블랙홀의 경계 그리고 크기에 대한 타당한 정의이다. 여기서 우리 주변의 물질과는 다른 블랙홀의 특별한 성질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물체의 질량은 물체의 부피에 비례한다. 즉, 물체의 밀도는 일정하다. 그런데 블랙홀의 밀도는 일정하지 않다. 블랙홀의 크기가 질량과 비례하여 커지므로 블랙홀의 부피는 질량의 세제곱에 비례하여 빠르게 부풀게 된다. 이러한 블랙홀의 특징 때문에 M87과 같은 초대질량블랙홀의 밀도는 물보다 작은 값이다! 질량과 크기가 비례하는 특징은 사건지평선망원경으로 관측할 블랙홀을 선정하는데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블랙홀, 활동성은하핵
활동성은하핵의 블랙홀은 매우 효율적인 엔진이다. 빛의 속도에 가까운 자전속도를 가진 블랙홀의 경우, 유입되는 질량의 42퍼센트까지 에너지로 방출할 수 있다. 정지해 있는 슈바르쯔쉴드 블랙홀의 경우는 6퍼센트까지 에너지로 방출한다.3) 이는 핵융합반응의 효율이 1퍼센트가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효율임을 알 수 있다. 초신성이 태양의 천억 배 이상의 파워를 수 개월간 방출하는데, 평균적인 활동성은하핵은 그보다 10배 정도의 파워를 수백만 년 동안 방출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은하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초신성은 은하 내의 다양한 위치에서 폭발하고 활동성은하핵은 은하의 중심에 있으므로, 은하 중심부에서는 활동성은하핵의 영향이 더 크고, 은하 바깥쪽으로 갈수록 초신성폭발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으로 여겨진다. 활동성은하핵으로 분류되는 초대질량블랙홀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물질 유입량이 많을수록 그리고 블랙홀의 회전속도가 빠를수록 강력하다. 이들 중 특히 강력한 부류는 퀘이사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우주의 반대편 끝에서도 보일 만큼 밝다. 이러한 강력한 에너지 방출의 원인은 은하의 병합과 그에 따른 초대질량블랙홀의 병합, 그리고 동반되는 엄청난 양의 블랙홀로의 물질 유입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그 구체적인 과정의 규명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의 숙제로 남아 있다. 강력한 활동성은하핵이 방출하는 막대한 에너지는 은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경우에는 은하를 데워서 차가운 가스구름이 모여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멈추게도 하고, 다른 경우에는 충격파가 특정 지역의 가스 밀도를 높여 별이 더 쉽게 만들어지도록 돕기도 한다. 별의 생성과 물질의 순환에 활동성은하핵이 미치는 영향은 결국 우주에서 생명체의 탄생에까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더욱 극적인 경우, 활동성은하핵은 레이저 빔과 같이 날카로운 형태의 자기화된 플라즈마 제트를 뿜어내는데 그 제트는 상대론적 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은하는 물론 은하단 규모를 넘어 수백만 광년의 거리까지 뻗어나가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활동성은하핵은 그 구조가 전파(radio wave) 대역에서 관측되기 때문에 전파은하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활동성은하핵의 10퍼센트 정도가 이러한 ‘강전파 활동성은하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우주 전체에 퍼져있는 자기장 그리고 고에너지 입자의 근원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림 2]는 대표적인 거대 전파은하 3C236의 영상이다. 이 전파은하의 양끝단 사이의 거리는 천오백만 광년에 이른다. 이러한 매력적이나 강력한 파워의 방출 현상을 이해하려면 그 근원인 블랙홀와 그 주변을 자세히 관측해야만 한다. ‘블랙홀을 본다, 블랙홀을 관측한다’는 말은 설명이 필요하다. 블랙홀은 빛을 내지 않는다. 관측을 천체 또는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을 보는 것으로 한정한다면 이 표현은 모순이다. 그러나 블랙홀에 의해 가려진 공간(검은 구멍)과 사건지평선 규모에서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그림 1).
‘블랙홀’ 용어의 유래
블랙홀이란 표현은 60년대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제안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티븐 호킹이 ‘시간의 역사’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현대 블랙홀 연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휠러(John A. Wheeler)가 69년 처음 제안했다는 설도 있다. 사실은 67년 그의 수업을 듣던 학생이 처음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MIT의 마르샤 바르투삭은 그보다 앞선 63년 과학기자 앤 유잉(Ann Ewing)이 블랙홀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어 발표한 바 있다. ‘블랙홀’ 최초 사용자를 찾는 그의 연구는 계속 되었는데, 60년대 초 역시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디키가 이 강한 중력을 가진 천체를 ‘캘커타의 블랙홀’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비유했음을 확인했다. ‘캘커타의 블랙홀’은 1756년 6월 20일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인데, 이는 존 미첼이 빛도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가진 천체를 처음 제안했던 것보다 거의 30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다. 벵골군의 공격에 콜카타(당시 영국령 캘커타)의 윌리엄 요새가 함락된 후 146명의 포로가 7평이 조금 넘는 감옥에 갇혀 하룻밤 사이에 123명이 질식과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인데, 디키 교수는 빛조차 빠져 나올 수 없는 천체를 살아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캘커타의 블랙홀’에 비유한 것이었다.
어떤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나?
블랙홀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블랙홀의 배경에 광원 (별, 은하)이나 활동성은하핵과 같이 블랙홀 사건지평선 주변에 광원(물질을 유입하는 강착원반과 제트의 시작점)이 있다면 블랙홀에 광원이 가리는 현상과 블랙홀의 강한 중력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림 3]은 전자의 예이고 [그림 4]는 후자의 예이다. 물질 유입이 없는 조용한 블랙홀도 배경에 빽빽한 광원이 있다면, 블랙홀이 가려 광원(별, 은하)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그림 3은 시뮬레이션 영상이다). 이런 방법으로 블랙홀을 찾는 방법의 장점은 물질 유입이 활발하지 않은 조용한 블랙홀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블랙홀이 광학 망원경이나 적외선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광학과 적외선 대역에서 이런 영상을 얻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블랙홀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더 멀리 있는 블랙홀을 보기 위해 높은 공간 분해능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전파간섭계를 사용하는 것이다.4) 전파라는 빛은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 전파보다 파장이 짧은 빛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 있다. 전파는 변조와 증폭이 가능하다. 그리고 정밀한 시계를 이용하면 전파의 위상을 정확히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전파보다 짧은 파장인 적외선과 그보다 짧은 파장의 빛은 양자역학적 한계 때문에 위상 정보를 정확히 기록할 수 없다. 전파의 위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자기파(빛)의 위상을 기록할 수 있다면 이를 관측 순간에 관측 장소에서 모아서 스크린에 비추어 간섭무늬를 만드는 과정, 간섭계의 구성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전파 신호를 정확한 시각 정보와 함께 기록할 수 있다면 간섭계를 만드는데 두 가지 자유가 생긴다. 하나는 간섭계를 구성하는 망원경으로 관측한 정보를 기록하기 때문에 간섭무늬를 만드는 과정을 원하는 시간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기록해 둔 정보로부터 간섭무늬를 만드는 과정(상관처리 과정)은 나중에 컴퓨터가 맡는다. 전파 신호의 기록이 가능하여 간섭무늬 만들기를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은 망원경이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간섭계 관측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어디에 있는 망원경이든 동시에 관측하여 정확한 시각정보와 함께 기록해두면 나중에 모아서 상관처리를 할 수 있다. 지구 크기를 이용한 전파간섭계의 구성, 더 나아가 인공위성을 이용한 지구보다 큰 전파간섭계의 구성도 가능하다. 상관처리 후 나오는 전파 정보는 간섭무늬(‘가시함수’라고 한다)이다. 영이 빛의 이중슬릿 실험으로 스크린에 얻은 간섭무늬를 생각하면 된다. 가시함수는 영상의 정보를 공간 좌표가 아닌, 공간주파수 좌표에 담고 있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간섭무늬를 얻거나 전파망원경에서 기록한 신호를 상관처리하는 과정에서 영상정보가 푸리에 변환되어 공간주파수에 대한 정보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역푸리에 변환하면 영상을 복원할 수 있다.
사건지평선망원경
전파간섭계 기술을 이용하여 사건지평선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은 25 마이크로각초(백만분의 일 각초)의 분해능을 구현하였다.5) 전파간섭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마틴 라일의 197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강연록을 추천한다.4) 그는 전파간섭계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전파간섭계를 활용하여 관측하려면 전파 대역에서 밝은 블랙홀을 찾아야 한다. 활동성은하핵 중 일부가 이 조건을 만족한다. 이들은 전파 대역에서 관측이 용이한 싱크로트론 복사를 내는 전파원(radio source)이다. 1930년대 초반 AT&T Bell 연구소의 무선 통신 연구에 참여 중이던 칼 쟌스키(Karl G. Jansky)의 우주 전파원 발견에 의해 전파천문학이 시작되었는데, 그가 발견한 전파원들은 우리은하 중심의 Sgr A*를 비롯한 싱크로트론 복사를 내는 천체들이다. 싱크로트론 복사에 대해 설명해 보자. 싱크로트론 복사란 상대론적 속도의 하전 입자가 자기장에 걸려, 자기장 주변에서 나선운동을 하며, 잃은 에너지가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것이다. 양성자와 같이 무거운 하전 입자도 싱크로트론 복사를 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질량 대비 전하량이 가장 크며 상대론적 속도를 얻기 쉬운 전자와 양전자가 가장 효율적인 싱크로트론 복사 입자다. 블랙홀의 강착원반과 제트에서는 강력한 싱크로트론 복사가 관측된다. 강착원반은 유입물질을 이온화하여 하전입자를 공급하며 블랙홀과 강착원반이 강력한 자기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그림 4].
1.3 mm 전파대역(주파수 230 GHz)에서 지구 크기의 간섭계를 구성하면 몇몇 활동성은하핵의 초대질량블랙홀에 대한 사건지평선 규모 관측이 가능함을 확인한 후 이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2000년대에 진행되었다.6) 이러한 노력의 결과 남극(SPT)과 그린랜드(GLT)의 망원경을 포함한 지구 규모의 전파간섭계 구성과 관측이 2017년 실현되었다(*GLT의 관측은 2018년부터 수행되어서, 그림 1의 2017년 M87 관측에 GLT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림 5]는 사건지평선망원경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9개 망원경과 그들의 지리적 위치를 보여준다. 9개의 망원경 중 SMA와 JCMT는 하와이 마우나케아산 정상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ALMA와 APEX 역시 칠레 아타카마 고원 사막의 근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관측 가능한 블랙홀은?
사건지평선망원경의 분해능으로 관측할 수 있는 블랙홀은 몇 개나 될까? 사건지평선망원경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춘 블랙홀을 관측할 수 있다. 우선 강착원반 또는 제트 혹은 그 둘 모두에서 강한 싱크로트론 복사가 전파대역에서 관측되는 천체여야 한다. 우리 은하 내의 천체 중에는 몇몇 엑스선 쌍성(X-ray binary)이 여기에 속한다. 엑스선 쌍성은 블랙홀이나 중성자 별이 주변의 다른 별과 쌍성계를 이루고 있는 천체인데, 블랙홀의 강착원반에서 엑스선이 방출되어 엑스선 쌍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엑스선 쌍성으로는 Cygnus X-1과 SS 433 있다. Cygnus X-1은 가장 먼저 알려진 별 질량(태양의 15배 질량) 블랙홀을 포함한 쌍성계이다. 엑스선 관측에서 마치 인공적인 신호와 같은 주기적 밝기 변화를 보이며 쌍성을 이루는 동반성에 의해 가려진 매우 작은 크기의 천체, 블랙홀과 그 주변에서 X-선을 내는 강착원반의 존재가 처음 관측으로 확인된 천체인데, 이 천체는 태양계로부터 6,100광년 떨어져 있다. 게다가 이 천체는 전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SS 433은 1만8천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데,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3배에서 30배 사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각크기(겉보기 크기)는 사건지평선 망원경으로 관측하기에는 너무 작다. 이 정도 거리에서 사건지평선을 보려면 블랙홀의 질량이 적어도 태양의 백만 배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 정도 질량을 가진 블랙홀은 우리 은하에는 단 하나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Sgr A*이 있다. 이번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겐쩰과 게즈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Sgr A*의 정확한 질량 측정이다. Sgr A*는 태양 4백만 배의 질량을 가지고 있으며, 태양계로부터 2만5천 광년 떨어진 우리 은하 중심에 있다. Sgr A*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는 50마이크로 각초로 예측되었다. Sgr A*은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겉보기가 가장 큰 블랙홀이지만 몇 가지 관측상의 난점이 있다. 태양계와 Sgr A*은 함께 은하면에 놓여 있어 그 사이에는 많은 성간물질이 놓여 있고, 이들의 밀도는 은하 중심으로 갈수록 높아져 상당한 산란 효과를 일으킨다. 또한 슈바르쯔쉴드 반지름은 0.08AU으로 수성의 공전궤도 장반경의 1/4에 불과하다. 물리적 크기가 작기 때문에 불과 수십 분 내에 밝기와 형태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사건지평선망원경으로 블랙홀의 그림자를 관측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초대질량블랙홀은 M87이다. M87은 거대타원은하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거대타원은하는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단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초대형 은하다. 그 중심의 초대질량블랙홀 역시 M87이라고 부르는데, 은하와 구분하고자 M87*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M87의 질량 역시 그 주변 별들의 분광학 관측으로부터 태양 질량의 65억 배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또한 M87까지의 거리는 5천5백만 광년으로 Sgr A*와 비교하면 2,200배 먼 거리에 있지만 질량이 1600배 이상 더 나가기 때문에 블랙홀 그림자의 겉보기 크기는 Sgr A*의 80% 정도인 40마이크로 각초로 예측되었다.7) M87은 Sgr A*와 비교하여 관측상의 장점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우선 M87는 적위 +12도에 위치하여 지구 북반구에서 오랜 시간 관측이 가능하다. 전파간섭계 관측은 지구의 자전을 이용하여 다양한 공간주파수 정보를 합성하여 하나의 영상을 만든다. 따라서 적위 –29도인 Sgr A*는 남반구에서 더 오래 관측할 수 있다. 그림 5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30 GHz 주파수 관측이 가능한 대부분의 망원경이 지구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다. 그 결과, 사건지평선망원경은 Sgr A*과 비교하면 M87로부터 더 많은 영상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영상화 역시 더 용이하게 진행되어 2019년 4월 10일 M87의 영상이 먼저 공개되었다. 북반구에서 잘 보인다는 점 외에도 M87 블랙홀이 속한 M87 타원은하는 나선 은하인 우리 은하와 비교하여 성간물질이 적게 분포하여 블랙홀 영상이 산란을 덜 겪게 된다. 이는 산란효과를 제거하기 위한 복잡한 복원 작업을 거치지 않고 영상화를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M87의 질량이 Sgr A*에 비하여 1600배 가량 무겁기 때문에 크기도 그만큼 더 크다는 점도 관측을 용이하게 한다. 비록 2,200배 더 먼 거리에 있어서 겉보기 크기는 Sgr A*보다 20% 정도 작지만, 실제 크기는 1600배 정도 크기 때문에 밝기와 형태의 변화 속도는 그만큼 느리게 된다. 따라서 사건지평선망원경이 지구자전을 이용하여 하루 관측한 결과를 합성하여 영상화하는 과정에 M87의 밝기와 형태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위의 여러 요소가 모두 M87의 영상화 작업을 Sgr A*의 경우보다 쉽게 하여 사건지평선망원경 협력단은 2019년 4월 10일 M87 블랙홀의 영상을 먼저 공개하였다. 반면 빠르게 변하는 Sgr A*의 영상화는 보다 적은 관측 정보로부터 그리고 산란효과의 제거라는 문제도 해결하며 진행 중에 있다. M87에서 관측한 빛의 고리의 크기는 M87 질량에 해당하는 슈바르쯔실드 블랙홀이 가지는 광자 포획 고리(Photon Capture Ring)의 크기와 오차 범위 내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아직 광원의 성격(제트와 강착원반 중 어느 쪽의 광원으로서 기여가 큰지), 블랙홀의 자전속도, 강착원반의 자기화 정도 등의 물리적 특징이 편광 분석과 후속 관측으로 보다 정밀하게 결정되어야 빛의 고리의 성격이 명확히 규명될 것이다. 고리에서 보이는 밝기 비대칭은 블랙홀 제트와 강착원반의 상대론적 속도의 회전에 따른 도플러 증폭과 감쇄 효과로 해석된다.7) 겐쩰과 게즈 등이 Sgr A*의 질량 결정과 블랙홀의 강한 중력 효과를 측정하는데 활용한 별 중 가장 블랙홀에 근접한 공전궤도를 가진 별은 S2이다. S2의 근점(pericenter)은 슈바르쯔쉴드 반지름(Rs)을 단위로 1400 Rs에 해당한다(120 AU). 사건지평선망원경이 M87에서 관측한 빛의 고리의 반지름은 5 Rs이다. 두 블랙홀의 질량이 상이하지만, 겉보기 크기가 20%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점을 고려하면, 사건지평선망원경은 S2의 적외선 관측보다 200배 이상 블랙홀과 가까운 사건지평선 규모의 관측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건지평선망원경이 블랙홀의 강한 중력 효과, 물질유입과 에너지 방출을 직접 관측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보여준다.
맺음말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규모에서 일어나는 강한 중력 효과와 물질 유입과 에너지 방출 현상을 관측하는 사건지평선망원경 협력단의 성공적인 첫 영상 이후, 협력단은 보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수행 중이다. 매년 2주간 수행되는 230 GHz 관측 외에도 강착원반과 제트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고자 전파에서부터 감마선에 이르는 모든 전자기파 대역의 관측을 수행 중이며, 관측 결과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수행 중이다. 보다 정밀한 영상을 얻기 위하여 참여 망원경을 추가하고 관측을 대역폭으로 늘여 감도를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또한 분해능 향상을 위해 345 GHz 주파수 테스트에 착수하였다. 345 GHz 관측을 수행할 수 있는 망원경의 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당분간 230 GHz 관측이 중심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230 GHz와 345 GHz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다수의 새로운 망원경을 건설하고자 하는 차세대 사건지평선망원경 계획이 진행 중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한국 사건지평선망원경 팀(EHT Korea)은 관측 수행, 자료처리, 영상 분석과 논문 작성 등 사건지평선망원경 협력단 연구활동의 전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30 GHz 본 관측 외에도 M87의 제트 진화 과정과 Sgr A*의 산란효과 해석에 중요한 저주파수 전파간섭계 관측을 천문연의 한국우주전파망원경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초장기선전파간섭계를 활용하여 수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우주전파망원경으로 Sgr A*의 싱크로트론 복사 기작(제트와 강착원반 중 어느 쪽이 주요한 광원인지)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한국우주전파망원경의 다주파수 동시 관측 기능은 차세대 사건지평선망원경 계획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다주파수 동시 관측 기능을 활용하여 낮은 주파수(예를 들어 86 GHz)를 230 GHz, 345 GHz와 동시에 관측하면, 높은 주파수 전파간섭계 관측의 가장 어려운 문제인 지구 대기의 흔들림에 의한 간섭계의 감도 감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지평선망원경 협력단은 인류 최초의 블랙홀 영상을 촬영한 공로로 과학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브레이크스루 상 2020년 기초 물리학 분야 수상자가 되었다 (https://breakthroughprize.org/News/54). 347명의 수상자 명단에는 국내 연구진 8명과 해외 한국인 과학자 2명도 포함되어 있다. 사건지평선망원경 협력단은 수상 상금 3백만 달러를 347명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지급하였다.
- 각주
- 1)E. A. Fath, Lick Obs. Bull. 5, 71 (1909).
- 2)F. Hoyle and W. Fowler, Nature 197, 533 (1963).
- 3)M. S. Longair, High Energy Astrophys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 4)M. Ryle, Radio Telescopes of Large Resolving Power, the Nobel lecture (1974).
- 5)EHT collaboration, First M87 Event Horizon Telescope Results. II. Array and Instrumentation, ApJL (2019).
- 6)e.g. T. P. Krichabuam, D. A. Graham, W. Alef, A. Kraus, B. W. Sohn et al., Towards the Event Horizon - The Vicinity of AGN at Micro-Arcsecond Resolution, Proceedings of the 7th EVN Symp. (2004).
- 7)EHT collaboration, First M87 Event Horizon Telescope Results. I. The Shadow of the Supermassive Black Hole, ApJL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