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소금에서 나노소자까지 100년
강유전체 연구의 새로운 도전
작성자 : 양찬호 ㅣ 등록일 : 2021-09-08 ㅣ 조회수 : 4,582 ㅣ DOI : 10.3938/PhiT.30.029
양찬호 교수는 2005년 포항공과대학교에서 물리학으로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동 기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2006년부터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2010년부터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기능성 산화물 박막의 합성과 물성 평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chyang@kaist.ac.kr)
New Horizons for Ferroelectrics
Chan-Ho YANG
Since the discovery of ferroelectricity in 1920, dielectric research has provided a variety of fundamental physics problems and sustainable applications. Advances in synthesis and nanoscale characterization, along with theoretical innovations, have made ferroelectrics more versatile. In this perspective, we discuss several directions for future ferroelectric research in terms of flexoelectricity, ferroelectric topology, and lattice defects, as well as cooperation with associated fields.
들어가며
강유전성 발견 100주년을 기념하는 세션이 2020년 추계 한국물리학회에서 개최되었다. 한 세기가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인류사적 측면에서는 극히 짧은 시간이다. 강자성체는 마그네시아 지방의 자철석(magnetite)에 어원을 두고 있고 최초의 발견이 아득히 오래된 선사시대에 이루어졌을 터이니, 강유전체의 발견은 극히 근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발견 시기의 차이는, 맥스웰 방정식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와 자기의 대칭성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기적 전하(electric charge)라는 단극자(monopole)가 존재하여 강유전체가 생성하는 전기장을 스크린하기에 자석에서처럼 먼 거리에서 상호작용하는 힘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러닉하게도 전하가 존재하기에 전자공학이 태동한 것이고, 우리의 문명을 지탱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현재에도 유전분극(electric polarization)을 절대적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유전분극의 변화에 의해 유발된 전하의 흐름, 곧 전류를 통해 강유전체의 존재를 상대적으로 인지한다. 최근 나노스케일의 측정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미시적 이론들이 진전을 이룸에 따라 강유전체 연구는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강유전체라는 넓은 연구 분야의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고 연구자별 견해차가 클 것이다. 좁은 소견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본 글에서는 강유전체 본연의 특성 연구와 더불어 인접분야와의 융합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음을 미리 밝힌다.
서 론
원자들이 수 옹스트롬만큼 떨어지고 자발적으로 응집되어 결정성 고체를 형성한다. 강유전체는 구성 원자의 위치를 피코미터 수준으로 미세하게 조정하여 고집적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물질이다. 절연체이기에 줄-가열(Joule heating)을 최소화하여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작동이 가능하다. 고도화된 정보화 사회를 지탱할 궁극의 정보저장 및 논리(Logic) 소자를 구현할 핵심 물질로 강유전체가 주목받고 있다.
강유전체 연구는, 원자 수준의 미시적 이해와 거시적 물성에 대한 실험적 규명을 추구한다. 유전분극의 거동을 기술하는 현상론은 이러한 연구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며 시스템을 이해하는 통찰을 제공한다. 최근, 원자 및 중시(mesoscopic) 스케일의 합성 및 특성평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이론과 실험의 시너지를 발생시키고 있다. 켜쌓기 증착(epitaxial deposition)을 통해 저차원 박막 및 계면의 생성이 가능하다. 주사탐침현미경을 활용하여 강유전 구역구조(domain structure) 및 구역벽(domain wall)을 시각화하고, 투과전자현미경을 이용하여 원자 수준의 전기 쌍극자 분포를 관측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중시 강유전 현상은 거시적 강유전 성질로부터 변조되거나 창발적으로 나타나며, 고체 내의 다양한 요소들과 상호작용한다. 창출되고 있는 연구주제 중에서 본 저자가 익숙한 몇 주제에 한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변전효과(Flexoelectric effect)
원자의 규칙적 배열을 통한 격자(lattice)의 형성은 고체를 이해하는 뼈대이다. 완벽하게 규칙적인 고체에서의 전자의 거동과 물성은 블로흐 정리(Bloch theorem)를 위시한 고체물리의 주된 성취를 토대로 사고의 틀을 형성한다. 기체와 같이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에 대한 성질도 통계적인 접근을 통해 효과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상태는 완전한 질서와 무질서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며 이러한 상태에 대한 이해는 강유전성 연구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격자의 상태를 기술하기 위하여 변형(strain)이라는 현상론적 변수를 사용한다. 자발적으로 변형이 발생하는 물질을 강탄성체라 부르고, 응력(stress)에 의해 상태 제어가 가능하다. 대다수의 강유전체가 강탄성체의 성질을 보이고 있고, 변형성과 강유전성의 상호작용은 강하여 압전(piezoelectricity)이라는 유용한 전기기계적 성질을 낳고 있다. 만약 이러한 변형이 공간적으로 균일하지 못하다면 유전 현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관하여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기본적인 현상론은 변전효과(flexoelectric effect)라고 일컬어지고, 다음의 식으로 기술된다.
\[\delta P_i = \mu_{ijkl} \frac{\partial \varepsilon_{jk}}{\partial x_l}\]변형구배(strain gradient)에 선형적으로 비례하여 유전분극(\(\small P_i\))이 유도되는 현상이다[그림 1]. 아래 첨자들은 공간의 세 차원을 나타내고 아인슈타인 합 규약을 따른다. 변전계수(\(\small \mu_{ijkl}\))는 4차 텐서로서 물질이 반전대칭성을 가졌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영이 아닐 수 있고, 통상적인 크기는 ~1 nC/m 정도가 됨을 SrTiO3 물질에서 측정한 바 있다.1) 변전계수가 대단히 작기 때문에 물질을 거시적으로 구부려서는 유의미한 유전분극을 유도할 수 없다. 하지만, 나노스케일의 작은 세상에서는 수십 나노미터의 곡률로 휘어지는 영역이 흔히 발견되기에 변전효과가 중요해진다. 충분히 얇은 에피박막은 기판과 일치된 수평방향 격자상수를 가진다. 박막의 두께가 두꺼워짐에 따라 변형이 완화되어 박막 두께 방향으로 큰 변형구배를 보인다. 변전효과에 의해 특정 방향의 유전분극을 선호하는 자체-극성화(self-poling)를 유발할 수 있다.2) 또한, 경쟁 상(phase)들이 혼재되어 있거나,3) 강탄성 트윈벽(twin wall)과 갈라진 금(crack)에서도 변전효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사현미경 탐침을 통해 국소적인 수백-nm2 영역에 ~μN 정도의 역학적 힘을 가하여 유전분극의 반전을 유도하는 기술도 이미 정립되었다.4)5)
Fig. 1. (a) Schematic diagram of the electrical polarization induced by a transverse strain gradient due to the asymmetry of chemical bonds between cations and anions. (b) Lattice deformation for each of the six strain gradients in two-dimensional space (cf, eighteen components in the three-dimensional space). Adapted from [7] for (a).
발산법칙(divergence law)에 따라 유전분극의 공간적 분포가 속박 전하의 위치와 연관되어 있다. 양/음 이온의 재배치에 의해 생성된 속박전하를 스크린하기 위해 자유전자/양공이 모여들어 국소적으로 전기전도성을 높일 수 있다. 특수한 구역벽들에서 이러한 현상이 관측되었고, 강유전 구역벽은 전기적으로 임의로 쓰고 지울 수 있기에, “domain wall nanoelectronics” 라는 기치 아래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가 되었다.6)
강유전체에서 변형구배가 대단히 큰 경우 비선형 변전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현상론이 더욱 풍부해졌다.7) 변형구배에 이차 의존성(quadratic dependence)을 보이는 비선형 현상은 반전 대칭성이 깨진 경우에만 허락되기에 나노 강유전체에서 중요해질 수 있다.
작금에 와서는 변형구배와 여타 물리현상과의 상관관계가 연구되고 있다. 플렉소자성,8) 플렉소광전효과,3)9) 플렉소터널링저항,10) 플렉소압전,11) 플렉소포논닉스 등의 분야로 창의적으로 확장되고 있다[그림 2]. 플렉소 현상학은 변형의 불균일성과 관련한 대칭성의 문제이기에 더욱 다양한 분야들로 전파될 것이 기대된다. 개념의 유연성이 크고,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중요한 학문적 관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Fig. 2. Various flexophenomena. (a) Observation of piezoelectric response at the ferroelastic twin walls of centrosymmetric WO3 (flexopiezoelectricity). (b) Magnetic anisotropy due to strain gradient (flexomagnetism). (c) Tip-induced strain gradient modulates the tunneling current (flexoresistance). Adapted from Ref. [11] for (a); Ref. [8] for (b); Ref. [10] for (c).
강유전 위상학(Ferroelectric Topology)
최근 응집물질물리 및 재료과학 분야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화두는 위상학이다. 원자의 배치와 전자의 전하 및 스핀 상태에 기인한 물리학적 상태를 기술하기 위하여 위상학이 도입되고 있다. 위상학은 수학의 한 분야로서 컴퓨터 그래픽스를 비롯한 많은 응용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의 위상학은 크게 운동량공간(momentum space)에서의 위상학과 실공간(real space)에서의 위상학으로 나눌 수 있다. 천수(Chern number), 양자 홀 전도도, 그리고 강유전체의 벌크분극 등을 결정하기 위하여 기하학적 위상 계산을 한다.12) 구체적인 벡터량의 물리적 의미가 다르지만, 운동량공간 혹은 확장된 공간에서의 벡터분포에 대한 주회횟수(winding number)라는 위상수(topological number) 계산을 하기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실공간에서의 위상학적 개체들은 쉽게 시각화된다. 유전분극들의 소용돌이, 반소용돌이 구조, 스커미온(skyrmion), 메론(meron) 혹은 버블 구조 등이 위상학적 개체로 여겨진다.13)14)15)16)17) 이들은 주회횟수 혹은 스커미온수라는 위상수가 0이 아닌 특수한 경우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질서맺음변수가 정의되는 많은 물리학적 시스템들에서 위상학적 물체들은 실공간에서 유사하게 정의된다. 자성, 초전도체, 액정들이 그러한 예이다. 이러한 점결함 외에도 실공간 위상학적 결함은 구역벽 등의 솔리톤(solitons) 현상들을 아우른다.6)18)
강유전체와 위상학의 접점에서 창의적인 연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강유전체는 전기장에 직접적으로 반응하고 고밀도 구조를 제공하기에 학술적으로 독특하고 응용적으로 잠재가치가 높다. 미국 아칸소 대학교의 연구진이 나노판상구조에서 강유전 소용돌이의 생성을 일찍이 이론적으로 예측하였다.19) 이후 플럭스 폐쇄 구조(flux closure structures)가 실험적으로 관측되었다.20) 근래에 이르러 극성 소용돌이(polar vortex)가 PbTiO3/SrTiO3 초격자에서 구현되어 학문적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13) 수백 nm 크기의 BiFeO3 사각판에서 전기적으로 제어될 수 있는 위상학적 텍스처의 구현도 이루어졌다.15) 산소결핍의 비균일 분포와 위상학적 구조와의 상호작용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그림 3].
Fig. 3. Topological or ionic lattice defects. (a) Configurable topological textures forced by strain gradients in ferroelectric BiFeO3 nanoplatelets. (b) Detection of vortex-antivortex pairs by angle-resolved piezoresponse force microscopy. (c) Collective electromigration of ionic defects in a crystalline solid. Adapted from Ref. [15] for (a) and (b); Ref. [35] for (c).
강유전 위상학 연구가 여타 자성체 및 액정 기반 연구에 비해 뒤늦게 활성화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공간 강유전 위상구조가 대단히 작기 때문이다. 원자수준에서 수십 나노미터의 크기를 가지기에 통상적인 광학적 관측을 불허한다. 고분해능 전자현미경과 압전감응 힘 현미경(piezoresponse force microscopy) 기술의 발전이 강유전 위상학 연구의 진척을 이끌었다. 이미지 처리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21)22)23)24)
전자현미경 기술은 원자수준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역학적 경계조건을 달리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압전감응 힘 현미경 기술은 10 nm 이하의 공간 분해능을 제공하고 비파괴적 방법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압전반응벡터를 측정하여 유전분극을 간접적으로 추정하고 표면 이미지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복잡한 3차원 구조의 관측이 어려운 단점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방법이 상호보완적으로 사용되어 미시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위상구조를 밝혀내고 있다.
위상학적 구조는 소용돌이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인접한 전기쌍극자가 평행하지 않다. 쌍극자 간의 상호작용 측면에서는 불안정함에도 이러한 꼬임구조를 가지는 원인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탈분극장 에너지(depolarized field energy)를 낮추기 위해 구역구조를 가지는 것과 비슷하게 시스템 전체의 측면에서 자유 에너지가 낮기 때문인데, 초격자 박막합성과 변형 공학을 통해 다양한 상태들을 도출하고 경쟁구조들을 연구하고 있다. 한편, 위상수는 일종의 보존량으로 경계조건의 강제에 의해 시스템 내에 특이구조를 유발할 수 있다. 대다수 연구가 박막 혹은 나노결정체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 있다. 경계에는 결함이 집약되고, 변형구배가 클 수 있다.15)25) 이러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위상학적으로 보호된 흥미로운 구조들의 출현이 최근까지 다수 보고되고 있다.
더 나아가 균일한 공간에서 보다 미시적 원인에 근거하여 스커미온과 같은 극성 위상 구조체가 나타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위상수는 연속적이지 않아, 그 값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다른 섭동이 가해져야 한다. 위상학적으로 보호된다는 말이 이러한 수학적 사실에 근거한다. 하지만 특이 구조가 준안정화될 수 있는 근거는 물리적 사실에 근원을 둔다. 강유전체에는 전기 쌍극자가 서로 평행하게 배열되고자 하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이와 경쟁하는 비평행(non-collinear) 상호작용이 존재해야 한다. 마치 자성체의 쟈로신스키-모리야(Dzyaloshinskii-Moriya, DM) 상호작용과 같이, 전기 쌍극자가 서로 90도를 이루는 것을 선호한다면 스커미온의 생성을 미시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탈분극장은 장거리 상호작용으로 보다 큰 스케일에서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고, 실제 전술하였듯이 많은 나노 위상 구조체의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지만, 보다 작은 스케일에서 독립된 하나의 준입자로서 행동하는 극성 스커미온을 생성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듯 보인다. 역변전 효과(converse flexoelectric effect)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17) 유전분극의 구배와 변형의 상호작용으로써 소용돌이 구조를 안정화시킬 수 있음이 제시된 바 있다.
강유전 위상학 연구는 아직 도입기에 머물고 있다고 본다. 아직 신뢰할 수 있는 스커미온 격자의 자발적 생성은 보고되고 있지 않다. 정적(static) 구조의 생성과 스위칭 제어26)를 넘어 동역학적 움직임 조정(dynamics)에 관한 연구가 필요할 터인데, 아직은 진척이 미미하다. 대단히 작은 강유전 특이 상태를 읽는 방법도 아직 모호한 단계에 있다. 무엇보다 강유전 위상학적 정보를 제어하는 소자의 원형(prototype)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유전 위상학 연구가 의미를 가지는 연유가 있다. 궁극의 데이터 처리 저장 매체는 빠르고 고집적에 높은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27) 몇 백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작은 구조체가 수 nm 거리로 배열되고, 대단히 높은 안정성을 가지며, 각기 전기적으로 제어되는 초저전력(~aJ) 소자가 인류의 미래에 구현될 것인데, 위상학적으로 보호되는 강유전 위상구조가 그 중심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결함 제어(Lattice Defectronics)
유전분극은 전기장에 직접적으로 반응하고, 그 자체로 전기장을 생성한다. 변형과도 강한 상호작용을 한다. 불순물(impurity), 빈자리(vacancy), 격자간원자(interstitial), 그리고 이들이 복합된 프렌켈(Frenkel) 및 쇼트키(Schottky) 결함과 같은 이온성 점결함(point defect)은 결정 내에 항시 존재하고, 주위에 전기장 혹은 전도성을 생성할 뿐만 아니라 국소적인 변형을 유발한다.28)29)30) 따라서 강유전성과 결함과의 상호작용은 복잡한 비선형 현상을 유발한다. 결함 쌍극자(defect dipoles) 혹은 릴렉서 강유전성(relaxor ferroelectricity)은 오랜 난제로 여겨지고 있다.30)31)
격자결함의 제어연구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 인류 사회의 지속성을 위한 많은 응용 사례가 고체 내 격자 결함의 수송 및 제어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리튬이온전지, 고체산화물연료전지, 저항변환메모리,32) 멤리스터 및 뉴로모픽 소자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다.
고체 내에서의 원자 및 이온의 배치와 전기적 조정에 관한 연구는 전기화학(electrochemistry)이라는 학문분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물리학의 지식과 관점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다면 좁게는 물리학의 지평을 넓히는 일일 것이고, 해당 연구주제들의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학문적 울타리를 넘어 협력과 상호보완적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결함의 농도가 충분히 높다면, 결함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상관 현상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에 관한 기초 연구는 이미 통계 물리학의 범주에 속해 있고 많은 포멀리즘이 정립되어 있다.33) 결함의 분포와 변색성(electrochromism), 그리고 이송성(mobility)에 관한 원자 및 마이크론스케일 특성평가 기술이 고도화되고, 다양한 소재에 관한 실체가 상세하게 밝혀지고 있다.34)35)36)37)38)39)40) 미시적 이론과 실험의 협력이 필요한 분야로 성장하고 있다.
강유전체는 분극성(polarizability)이 대체로 크다. 전통적인 반도체에 비해 무르고 결함 생성에너지가 작다. 결국 많은 강유전체 혹은 강유전 불안정성(instability)이 큰 물질들에서 결함이 자발적으로 생성될 가능성이 높다. 결함의 전하 및 쌍극자 생성 기작과 유전분극에 끼치는 영향, 결함의 질서를 통한 새로운 구조의 생성, 다중 구조들 간의 경쟁 및 전이, 상태 전이를 책임지는 새로운 무른 포논, 상전이 지점에서 보이는 결함의 집단적 행동, 양자 결함으로서의 가능성 등이 연구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양한 측정과 이론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차고조파생성,41) 브릴루앙 및 라만 산란,42) 연엑스선 및 적외선 분광학43)44)을 비롯한 미시적 정보를 줄 수 있는 실험들도 요긴할 것이고, 초고속 엑스선 산란을 통한 동역학적 구조정보의 수집도 필요할 것이다.45)
자성체와의 협력
강유전성과 자성이 공존하는 다강체(multiferroics)에 대한 논의도 지난 20여 년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비스무트 철산화물(BiFeO3)이 대표적인 상온 다강체로서 연구되었다. 벌크 상과는 구분되는 준안정한(metastable) 상태들이 박막의 형태로 구현될 수 있었고, 자기전기(magnetoelectric, ME) 커플링을 비롯한 다양한 현상을 내어 놓았다.43)46)47) 역-DM 기작 혹은 교환 변형(exchange striction)에 근원을 둔 타입-II 다강성이 망간산화물 계열의 물질들에서 발견되었다.48)49) 이들은 강유전성과 자성의 연관성이 직접적이어서 흥미롭고 변화무쌍한 커플링 현상을 내어놓았으나 대체로 작동 온도가 저온이었다. 예외적인 물질이 헥사페라이트 계열의 물질인데, 상온에서 자기전기현상이 발현되는 흥미로운 물질이다.50) 구조가 복잡하여 박막으로의 구현이 어려우리라 예상되지만, 합성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후속 연구를 내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
단일 물질이 아닌 복합구조(composite structure)를 이용한 자기전기 응용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압전체와 자기변형(magnetostrictive) 소재가 서로 접합된 구조이다.51)52) 전기장을 통해 변형을 유발하고, 물질의 변형이 자성을 변조한다. 역의 과정으로 자기장에 의해 자기변형 소재에 변형이 유발되고, 접합된 압전체에 전기장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민감한 자기장 감지 기술과 에너지 하베스팅에 응용되어질 수 있다. 변형을 통한 매개가 극대화되도록 물질의 모양과 크기를 디자인하는 공학적 노력이 필요하다. 최적화된 소자는 역학적 떨림의 공명 현상이 발생되도록 설계된다. 터페놀-D(Tb1-xDyxFe2, Terfenol-D)와 PMN-PT(Pb(Mg1/3Nb2/3)O3–PbTiO3)의 복합구조의 경우는 1 Oe 당 ~10 V/cm라는 놀라운 자기전기 현상을 나타내기도 하였다.51)
한편, 다강체 연구는 ME 커플링을 활용한 초저전력 논리 소자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R. Ramesh 교수팀과 인텔이 제안한 구조는, ME 스위칭을 담당하는 다강체/자성체 복합 구조 파트와 자성체의 스핀 정보를 감지하는 스핀트로닉스 소자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53) 많은 상온 다강체가 반강자성체인데, 전기적으로 자화 용이축을 조정할 수 있다. 접합된 강자성체의 자화가 자기교환상호작용을 통해 뒤이어 변화한다.
ME 스위칭 파트는, 시모스(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CMOS) 트랜지스터의 한계인 60 mV/decade 이하라는 초고속 스위칭을 달성하기 위해 0.1 V 이하의 작동 전압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공학적 요구사항은 핵심이 되는 다강체의 강유전 스위칭 특성의 한계를 탐험하게 한다. 누설전류와 강유전성 임계두께 문제는 강유전 박막의 두께가 임의로 얇아질 수 없음을 시사한다. 대다수 강유전체들에서 신뢰성 있는 0.1 V 이하의 보자력(coercive voltage)을 달성하는 것은 난제로 남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화학적 조성 연구가 촉발되었다. 란타넘(La)이 도핑된 비스무트 철산화물은 ~1010 Ωm 정도의 높은 전기 저항비를 가지고 보자력 문제 또한 개선되기에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소재 중 하나이다.47)
저전압으로 급격한 스위칭을 이루고, 절연체이기에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을 줄인다. 이를 통해 빠르고 저전력으로 작동하는 ME 스위칭을 달성한다. 비휘발적으로 쓰여진 자성 정보를 읽는 과정도 별도로 연구되어지고 있고, 통상 스핀트로닉스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부분이다. 쓰여진 자성정보는 스핀 확산을 통해 리딩 파트에 전달되고, 역-라쉬바-에델스타인(inverse Rashba-Edelstein) 기작에 의해 스핀에서 전하로 변환되어 최종적으로 전기적 신호로 인지된다.
일명, MESO (magnetoelectric spin-orbit) 트랜지스터가 제안된 것으로 학제간 협력을 요구한다.53) 소자 연구와 더불어 핵심 소재의 발굴이 연구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표준 시료 외에도 다양한 양자물질(quantum materials)로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54) 스핀 감지 파트를 산화물 계열로 구성하는 노력도 존재한다. 전산화물 소자(all-oxide-based device) 구현을 통해 소재 간의 유기성과 공정의 단순화를 도모한다.
자연스럽게 산화물 스핀트로닉스(oxide spintronics)는 중요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고이동도 반도체에 기반한 중시계 양자 수송 연구와 메탈 자성체 기반의 스핀트로닉스, 그리고 전이금속산화물을 위시한 강상관계 물리학 분야에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고 융합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맺음말 및 양자 유전성
격자, 스핀, 오비탈, 전하의 자유도가 상호작용하는 강상관계 물질은 새로운 양자 상태의 산실이고, 변화무쌍한 물성이 발현되는 시스템이다. 최근 강한 스핀-오비탈 상호작용 효과에 기원을 둔 다양한 물리 현상이 제안되고 있다. 반전 대칭성의 파괴는 이러한 현상의 발현에 도움을 준다. 또한, 오비탈 자유도는 격자 자유도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강유전체는 자발적으로 반전 대칭성이 파괴된 물질의 대명사이고, 전기적으로 대칭성을 조정할 수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물질에 전하와 스핀의 자유도를 더한다면 재미있는 물리현상의 창발이 기대된다. 최근 극성금속(polar metal)에 관한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55) 오비탈 홀 효과,56) 포논 홀 효과57) 등과 같이 전하가 아닌 준입자들의 수송성에 관한 이론 연구도 활발하다. 유전체는 강한 전기장을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인가할 수 있고 포논에 관한 지식도 축적되어 있어 이론적 예측을 검증할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격자는 결정성 고체를 정의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격자 자유도가 중요하지 않는 물리 현상은 굳이 고체에서만 연구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격자의 문제는 원자의 배열과 대칭성의 문제이기에 보편적이다. 산화물 이종켜쌓기(heteroepitaxy), 박리화(exfoliation), 뒤틀림(twisting)접합, 리소그래피 및 자기조립법(self-assembly) 등의 기술을 동원하여 다양하게 디자인된 격자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창의성이고 새로운 도전에 담대하게 나아갈 의지와 시간이다.
최근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유전체를 활용한 뉴로모픽 계산에 관하여 다른 리뷰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면, 강유전체 기반의 양자 컴퓨터는 불가능할까? 양자 상전이(quantum phase transition)의 초창기 예가 SrTiO3에서 보이는 양자 상유전성(quantum paraelectricity)이었다. 충분히 강한 전기 쌍극자 간의 상호작용에도 불구하고 양자요동(quantum fluctuation)에 의해 무질서한 양자 상태가 발현되었다.58) 구리계 산화물에서 고온초전도성을 발견하여 198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카를 알렉산더 뮐러(Karl Alexander Müller) 선생의 업적이니, 통찰력 있는 연구자는 분야를 넘어 학계에 보편적 가치를 선사하는 것 같다. 격자와 오비탈의 유사스핀(pseudospin)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은 화학결합(chemical bond)의 비등방성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쿠겔-촘스키(Kugel-Khomskii) 접근법59)에 기반한 콤파스 모델(compass model)60)에서 예측되고 있듯이 오비탈 액체(orbital liquid) 상태 등의 새로운 양자 유전 현상(quantum dielectric phenomena)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이는 얽힘과 중첩의 새로운 기저를 구현하는 것이다.
응집상 고체 물질은 다양한 자유도로 인해 고도로 훈련되지 않으면 그 이면에 내재하는 핵심 요소를 간파하기 쉽지 않다. 이온 트랩 등의 기술을 이용해서 간단한 양자 시스템을 구현하고 양자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도 하니, 일종의 아날로그 계산이겠다. 궁극에는 고체 시스템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예견해 본다. 자발적으로 자연이 선사한 고밀도 원자 시스템인 고체는 그 자체로 양자 시뮬레이터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직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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