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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창립 70주년을 앞두고 초창기 20년을 돌아보다

작성자 : 조성호 ㅣ 등록일 : 2021-11-24 ㅣ 조회수 : 783

저자약력

조성호 교수는 Brown대학교 이학박사(1968)로 1971년부터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 교수, 1989-1993년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겸 학술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동대학교 명예교수, 영국물리학회 펠로,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springchoh@hanmail.net)


사진 1. 서울대 물리학과 12회 동기생들이 1956년 두 교수님을 모시고 실험실 앞에서 (사진 배경에 한국물리학회 간판이 보인다).사진 1. 서울대 물리학과 12회 동기생들이 1956년 두 교수님을 모시고 실험실 앞에서 (사진 배경에 한국물리학회 간판이 보인다).

2022년은 우리 한국물리학회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2월 7일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당시 서울대학교 본부에서 총장이신 최규남 박사님(미국 Univ. of Michigan, Ph. D)을 회장, 박철재 박사님(일본 교토제대, 이학박사)을 부회장으로 추대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참석 회원 수는 34명이었다 한다(<한국물리학회 50년사>). 1953년 7월 전쟁은 휴전되고, 필자가 1954년 입학하였을 때 서울대학교는 이미 서울로 환도한 상태였다. 한국물리학회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었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에 자리 잡은 시점은 1956년경으로 보인다. 1956년 6월 서울대학교에서 개최한 제4회 정기총회 때 전국 물리학과 친선배구대회가 있었음을 필자는 기억하는데, 당시에 연구논문 발표가 활발하지 못하였기에 친선 운동경기로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던 연유였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실험실 앞에서 우리 동기생들이 1956년에 찍은 [사진 1]에서 오른편 의자에 앉으신 권녕대 교수님은 1961년부터 1970년까지, 왼편의 지창렬 교수님은 1971년부터 1972년까지 한국물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다.

1972년 학회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20년 약사(새물리 12, 225-229, 편집위원회 위원장 김정흠 교수)에 의하면 52년 창립 이후 53, 55, 56, 59, 60, 61년에 총회가 연 1회 열렸으나. 1962년부터 2회로 확대되었다(54, 57, 58년엔 없었음). 10주년이 되는 1962년 총회 시 회원 사진이 <한국물리학회 50년사>에 나와 있어서 그것을 여기에 전재한다[사진 2]. 필자는 당시 연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봉직하고 있었다.

사진 2. 1962년 6월 30일 연세대에서의 한국물리학회 총회 때 사진.
사진 2. 1962년 6월 30일 연세대에서의 한국물리학회 총회 때 사진.

이 무렵 학회의 전문학술지 <새물리>가 1961년에 창간된 것은 학회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학회가 창립된 지 9년만의 큰 발걸음이었다. 여기에는 국문 및 구문 논문과 연관 기사들이 실렸는데, 올해(2021년)가 창간 60주년이다. 그리고 1968년에 (JKPS)가 창간되어 영문 학술지를 별도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새물리>와 가 모두 1960년대, 학회창립 후 20년 안에 창간되었음을 회고할 때, 당시 권녕대 학회장님을 위시한 학회집행부 임원께 후학으로서 찬사를 올리고 감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의 창간과 관련하여 외국의 사례를 알아보려고 필자의 전공 분야인 응집물질 관련 영문 학술지를 살펴보았더니(대한민국학술원통신 제235호, 7~8), 영국의 가 1869년으로 가장 빠르고, 미국의 가 1880년, 가 1893년, 가 1923년, 네덜란드의 가 1934년, (JPSJ)이 1946년 등이다. 의 1946년에 대하여 첨언한다면 일본이 1945년 이차대전 패전 직후 그들의 일본어 학술지 부쯔리(物理)에서 발 빠르게 세계 조류에 편승하는 민첩함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의 1968년이 과학 학술지의 선조라 할 수 있는 Nature보다 두 자리수(99) 이내에, 그리고 보다 22년밖에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진 3. 1972년 9월 7일 학회창립 20주년 기념행사 때 사진.
사진 3. 1972년 9월 7일 학회창립 20주년 기념행사 때 사진.

1972년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서울 홍릉에 새로 건조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최되었다. <한국물리학회 50년사>에 들어있지 않은 기념학술회의 때 참석 회원 사진을 필자가 가지고 있어서 위에 넣었다.(사진 3)

사진 4. 미국물리학회 50주년 기념회원증.사진 4. 미국물리학회 50주년 기념회원증.

수년 전 미국물리학회로부터 학회 회원 50주년 기념회원증을 받았다[사진 4]. 미국물리학회는 1999년에 100주년을 기념하였는데, 1899년 100여 명으로 창립하여 1999년 회원이 4만 명인 세계 최대의 물리학회이다. 한국물리학회가 회원 34명으로 1952년에 시작하여 1965년 500명, 1972년에 1,000명을 돌파하고, 2002년 50주년을 맞이하였을 때 회원 수가 8,902명이라는 50년사의 숫자를 원용한다면, 미국이 20세기 100년간 회원이 4백 배 증가하는 기간의 후반부 50년간 한국물리학회는 240배가 된 셈이다. 이 숫자는 400의 반보다 더 많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진 4와 관련하여 우리 학회도 혹 기념회원증 제정을 고려한다면 21세기가 100세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50년보다 회갑(60년) 기념회원증은 어떨지요? 한번 우리 학회집행부의 고려를 건의하고 싶다.

2022년이 한국물리학회 창립 70주년이 되는데, 끝으로 한 가지 부언한다면, 2005년 Einstein의 1905년 업적 100주년을 맞이하여 학회가 Time Capsule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역사의 광장에 매설한 바 있다. 이것을 학회창립 77주년(희수)이 되는 2029년에 개봉하게 될 행사도 2022년과 함께 2020년대에 있을 것을 언급하며 이 글을 마친다.

각주
1)김정흠, 새물리 12(4), 176 (1972).
2)한국물리학회 50년사 (2002).
3)대한민국학술원통신 제325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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