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결점 없는 세상을 꿈꾸다
단결정 성장법 소개
작성자 : 김승현 ㅣ 등록일 : 2022-04-21 ㅣ 조회수 : 5,410 ㅣ DOI : 10.3938/PhiT.31.015
김승현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고체물리학 실험 연구로 박사 학위(2013)를 받았다. 이후 박사 후 연구원으로 독일 고체물질연구소(IFW-Dresden)를 거쳐 막스플랑크 이화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chemical physics of solids)에서 근무했고, 2021년부터 같은 연구소에서 양자물질 합성 그룹을 이끌고 있다. 초전도체를 비롯하여 강상관계에서 복잡한 양자 현상을 보이는 신물질을 합성하는 것이 주된 연구 관심사다. (seunghyun.khim@cpfs.mpg.de)
Brief Introduction to Single Crystal Growth Techniques
Seunghyun KHIM
This article aims to introduce several synthesis methods to grow single-crystalline samples, which are widely used in experimental condensed matter physics studies. In order to understand the crystal growth in high-temperature melts, the concept of congruent/incongruent melting is explained based on a binary phase diagram. Then principles and practices of the Czochralski, flux-growth, and floating-zone growth methods are described. In addition, the chemical vapor transport method is briefly mentioned.
들어가며
고체 물리 실험 연구에서는 시료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외부 연구 그룹과 협업 관계를 맺고 시료를 얻거나, 또는 합성 장비를 구축하여 스스로 시료를 길러야 한다. 시료를 합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보다 자유로운 연구 주제 선정이 가능하다. 흥미로운 물리 현상이 기대되는 동시에 물성 연구가 자세히 되어 있지 않은 물질을 찾고 이를 합성함으로써 차별화된 연구를 설계할 수 있다. 한편, 시료 연구는 주로 단결정에서 이루어진다. 물리학이 연구하는 물질의 본래 물성은 켜켜이 반복되어 쌓인 원자의 격자 구조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반복된 미시적인 결정 구조가 거시적인 크기로 구현된 단결정 시료가 적절한 관찰 대상이다. 강한 이방성을 가지는 흥미로운 양자 현상이 예상되는 저차원 물질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결정의 방향에 따라 물성을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위상물질의 특이한 현상은 특정 결정 방향이나 표면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따라서 최신 양자 물질 연구에 있어서 단결정 연구는 필수적이다.
필자가 박사 연구에서 결정 성장을 주요한 실험 방법으로 삼게 된 계기는 2008년 호소노 교수의 철-기반 고온 초전도체의 발견이었다.1)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새로운 물질군이 보고되며 신물질 연구가 활발한 시기였다. 당시 선배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시료 합성 장비를 구축하여 합성법을 익힐 수 있었고, 직접 합성한 다양한 시료들의 이방적인 초전도 특성을 보고함으로써 무사히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이후 계속해서 결정 합성을 주된 연구 방법으로 이어오고 있다[그림 1]. 결정 성장법을 응집물질 연구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련한 화학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결정 성장 과정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지식을 실제 연구에 적용을 해보고 이를 통해 실용적인 노하우를 쌓아 나가는 것에 즐거움이 컸다. 이 글에서는 필자의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응집물질 연구에서 주요하게 쓰이는 성장법과 그 원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온의 용융체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평형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이와 연관된 초크랄스키(Czochralski), 플럭스(flux), 플로팅존(floating zone) 성장법의 원리와 실제에 대해 알아본다. 덧붙여 자주 쓰이는 화학증기 수송법(chemical vapor transport)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할 것이다.
조화 용융의 상평형도
고온의 용융체(melts)에서 단결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상평형도를 설명하고자 한다. 두 물질이 섞인 평형 상태의 혼합계가 온도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도표를 이성분 상평형도(binary phase diagram)라고 한다. [그림 2]는 물질 A와 B가 이루는 가상의 상평형도이다. 가로축의 양 끝은 순수한 물질 A와 B에 해당한다. 이들이 단일한 고체상을 가진다면 세로축에는 각각의 녹는점(\(\small T_m\))이 표시된다. 가로축은 혼합물의 조성을 나타내는데 각 물질의 비율은 가로축의 주어진 지점에서 대응되는 끝점까지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특정 조성에서 녹는점이 국소적으로 최소가 되면서 두 상의 공존 없이 고체상과 액체상 사이의 전이가 일어나는데 이를 공융점(eutectic point)이라고 한다. 순수 물질의 두 녹는점과 공융점들을 이으며 최외곽에 그어지는 선은 액상선(liquidus line)에 해당하고 이는 고체상과 완전한 용융상의 경계를 표시한다. 공융점을 지나는 수평으로 그어진 선은 공융선(eutectic line)인데 이를 경계로 낮은 온도에서는 고체상이, 높은 온도에서는 고체와 액체의 공존상이 나타난다. 특정 조성의 화합물을 고체상으로 가질 때, 그 조성에 해당하는 가로축 위로 수직선이 그어진다. 예시로 든 상평형도는 AB2의 단일한 화합물만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제 각 영역은 폐쇄된 경계를 가지며 대응되는 혼합물의 상태가 정해졌다. 주어진 조성과 온도에서 존재하는 상과 그들의 조성은 이에 해당하는 상평형도 상의 점에서 수평선을 그어보면 알 수 있다. 가령 X라는 점을 지나는 가상의 수평선은 왼쪽으로는 \(\small X_m\)에 해당하는 액상선과 만나고 오른쪽으로는 고체상 AB2에 해당하는 수직선과 만난다. 따라서 X에 대응되는 조성과 온도에서는 고체상 AB2와 조성 \(\small X_m\)의 용융상이 공존한다. 이제 AB2에 대응하는 수직선이 액상선과 만나는 점을 주목해보자. 여기서는 낮은 온도에서의 고체상과 높은 온도에서의 액체상의 조성이 동일하다. 이러한 특성을 조화융용(congruent melting)이라고 부른다. AB2 조성의 용융체의 온도를 서서히 낮추면 같은 조성의 고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크랄스키 성장법
초크랄스키법(용융인상법)은 조화용융의 특성을 가진 물질의 단결정 성장법으로 1917년 폴란드 태생의 초크랄스키(Jan Czochralski, 1885‒1953)가 처음으로 보고하였다.2) 초크랄스키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이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금속의 결정 성장속도를 연구하던 초크랄스키는 어느 날 실험을 마친 후 녹아있는 주석(Sn)이 든 도가니를 책상 한 구석에 밀어 두었다고 한다. 잉크와 펜을 필기에 사용하던 시대였는데, 실험 노트 작성에 몰두하던 중 그는 펜촉을 잉크병 대신 도가니에 담그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다. 놀란 초크랄스키는 펜촉을 재빨리 도가니에서 꺼냈는데 가늘고 긴 실과 같은 형태의 결정이 그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 관찰에 착안하여 결정 성장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고안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유리관 안에 금속 용융체를 채워놓고 금속의 결정화가 진행되는 것을 육안으로 관찰함으로써 결정성장 속도를 측정했다. 초크랄스키는 이 측정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장비를 고안하는데 그가 보고한 논문에서 묘사된 장치의 모양은 다음과 같다.2) [그림 3(a)]에 나타난 것처럼 아래에는 금속 용융체(S)가 담긴 도가니(T)가 위치하고 그 위로 모세관(K)이 모터와 연결된 줄(F)에 매달려 있다. 모세관이 용융체의 표면에 닿을 때 모세관 안으로 빨려들어간 용융체가 단결정이 되면서 종자(seed) 역할을 한다. 이 단결정을 용융체와 접촉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끌어올리면 경계면에서 지속적인 용융체의 냉각이 일어나 결정 기둥이 만들어진다. 초크랄스키는 이 장치를 이용해서 끊어지지 않으면서도 결정 기둥을 가장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임계 속도를 측정하여 이를 결정 성장 속도로 결정했다. 이것이 나중에 결정 성장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초크랄스키 성장법을 실제 연구에서 어떻게 구현하는지 알아보자. 금속 화합물의 녹는점은 대개 섭씨 1000도 이상이므로 이를 담을 수 있는 도가니와 고온의 용융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발열체가 필요하다. 연구용 장비에서는 주로 고주파 유도로 시료를 가열한다. 시료를 코일 안에 두고 여기에 교류 전류를 흘려 자기장을 발생시키면 금속 시료에 전류가 유도되고 내부 저항으로 인한 열이 발생한다. 가열이 효율적이며 접촉이 필요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부도체 물질을 가열하기 위해서는 이리듐, 백금, 그라파이드 등의 전도성 도가니를 사용한다. 2000도에 이르는 고온이 요구되는 경우, 고전압을 이용해 아크를 생성하여 가열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용융체의 표면에 준비된 종자 결정을 접촉시키고 회전과 동시에 천천히 끌어 올린다. 이 과정에서 용융체는 켜쌓는(epitaxial) 방식으로 결정화된다. 결정 성장 과정을 내부에 장착된 카메라나 외부로 열린 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성장 조건을 조정할 수 있다.
초크랄스키 성장법의 장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종자 결정의 품질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보통의 결정성장법에서는 도가니 안의 시약을 모두 녹인 다음 이를 천천히 고체화하기 때문에 종자 결정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초크랄스키법에서는 얻어진 결정에서 가장 질 좋은 부분을 채취해 다음 결정성장의 종자로 사용할 수 있고 이 과정을 거듭하면 결정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 둘째로, 결정의 굵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양산을 위한 비용을 낮추기 위해 가공 후 버려지는 부분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성장된 결정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생산 수율이 낮다. 초크랄스키법은 성장 환경이 안정화되면 같은 크기의 시료를 일관되게 뽑아올릴 수 있기 때문에 산업에서의 응용이 용이하다. 셋째로는 고순도, 고품위 결정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전기장을 인가하거나 불활성기체를 채워주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결정 내부에 생기는 결정립경계(grain boundary) 등을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다.
초크랄스키법으로는 KBr처럼 비교적 낮은 융점을 갖는 물질도 성장이 가능하지만 1600도 이상의 온도에서 녹는 고융점 물질도 성장이 가능하여 성장 가능한 결정의 종류는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실리콘(Si) 단결정 잉곳은 우리나라에서 이전 LG실트론에서 최근 이름이 바뀐 SK실트론에서 대량 생산을 하고 있고 이는 세계 실리콘 웨이퍼 생산의 11.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실리콘의 경우 현재 30센티미터 직경의 단결정이 양산되고 있다. 실리콘 다음으로 많이 성장되는 반도체용 결정은 GaAs이다. 실리콘 성장법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길러지지만 성장온도에서 GaAs가 쉽게 분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1센티미터 두께의 B2O3 층을 액상 캡슐 보호제로 사용한다. 이 보호제는 GaAs와 반응을 하지 않으면서 GaAs의 분해를 막아준다. 이렇게 비교적 단순한 결정 성장법이 기술의 고도화와 결합되어 시료의 품질 및 수율의 향상과 웨이퍼의 대형화로 이어졌고 이것이 소자의 생산의 단가를 낮추어 기술 혁신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비스무스 단결정 기르기
단일원소 물질은 대부분 조화용융의 특성을 가지는데 이를 이용하여 실험실에서 비교적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비스무스 단결정 성장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막스플랑크-드레스덴 연구소에서 주기적으로 열리는 오픈랩 행사에서 시연되는 실험인데 간단한 장비로도 보기 좋은 형태의 단결정을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얻을 수 있다. 비스무스는 녹는점이 섭씨 271도로 실험용 전열기를 이용하여 쉽게 녹일 수 있다. 형성된 결정을 끌어 올리기 위한 긴 금속 탐침을 핸들을 돌려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일 수 있게끔 장치를 만든다. 비스무스 금속 덩어리를 가열해 녹인 후 탐침을 용융체의 표면 아래로 대략 5 밀리미터 정도 담근 다음 전기로를 끈다. 외부와 이어진 탐침이 용융체와 닿는 부분에서부터 냉각이 일어나고 여기를 성장점으로 단결정이 점진적으로 자란다. 결정이 어느 정도의 크기와 형태를 갖출 때까지 기다린 다음 천천히 탐침을 끌어올리면 용융체와 완전하게 분리된다. 비스무스 단결정 표면에 형성되는 얇은 산화물층이 일으키는 간섭 현상으로 다양한 색의 단결정이 얻어진다.[그림 4]
부조화 용융의 상평형도
[그림 5]는 앞서 소개한 것과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진 상평형도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AB2 상에 대응하는 수직선이 액상선과 만나지 못하고 공액선과 만난다. 이는 AB2 상의 온도를 올리면 고체상 B와 특정 조성의 액체상으로 분해된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말로 AB2 조성의 용융체가 고온에서부터 온도가 낮아지면 고체상 B가 나타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부조화 용융(incongruent melting)이라고 부른다. 이런 특성을 가진 물질 AB2의 단결정은 초크랄스키법으로 얻기 힘들다. 그렇다면 부조화용융의 특성을 가진 물질의 단결정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다시 상평형도로 돌아가서, AB2상의 왼쪽에 위치한 A의 상대조성이 더 높은 \(\small X_m\) 조성을 가지는 액상선 위의 X 지점을 보자. 앞서 소개한 방식으로 상평형도를 읽어보면 이 지점에서는 고체상 AB2와 액체상 \(\small X_m\)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X 지점에서 온도가 낮아지는 순간 AB2의 고체상이 나타나는데, 용융체의 조성 \(\small X_m\)보다 상대적으로 B를 더 많이 함유한 AB2의 고체상이 석출된 결과 용융체의 조성 \(\small X_m\)은 A의 조성이 더 높아지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온도를 서서히 내리면 용융체는 상평형도의 X 지점에서 액상선을 따라 왼쪽으로 이동하고 동시에 고체상 AB2가 내부에서 자란다. 이 과정은 액상선이 낮은 온도에 위치한 공융선을 만날 때까지 계속된다. 여기서 온도를 더 낮추면 용융체는 A와 AB2가 혼합된 고체상으로 고착된다. 정리하면 부조화용융의 특성을 가지는 조성의 단결정은 그와 상이한 조성의 용융체를 특정 온도 구간 사이에서 천천히 냉각하여 얻을 수 있다. 결정 성장이 가능한 조성을 얻기 위해 추가하는 물질이 플럭스(flux)에 해당하고, 이 원리에 기반하여 결정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플럭스 성장법이라고 통칭한다.
플럭스 성장법
상평형도가 비교적 잘 알려진 이종 금속 화합물의 경우 위에서 서술한 과정을 통해 단결정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세 종류 이상의 원자로 이루어진 화합물은 상평형도가 상세하게 알려진 경우가 드물다. 닉토젠(pnictogen), 찰코겐(chalcogen)족에 속하는 원소를 포함하는 물질은 이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증기압 때문에 녹는점에 도달하기 전에 일부가 기체상으로 분해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존재하는 상평형도에 기반하여 결정 성장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금속 화합물에 한정될 것이다.
앞서 소개한 부조화용융 조건의 결정 형성 과정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 결정이 생성되는 구간은 녹는점이 높은 AB2 상과 녹는점이 낮은 공융점 사이의 액상선상에 위치한다. 바꾸어 말하면 AB2상을 공융점에 대응하는 녹는점이 낮은 물질에 녹이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따뜻한 물에 소금을 녹이고 가만히 두면 소금 결정이 석출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일반화하면, 기르고자 하는 물질에 녹는점이 낮은 플럭스 물질을 다량으로 섞어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용융체를 만들고 이를 서서히 냉각시켜 결정을 얻는 것이 플럭스 성장법이다. 따라서 금속 화합물 단결정의 합성에는 녹는 점이 낮은 주석(Sn), 납(Pb), 인듐(In), 안티모니(Sb), 비스무스(Bi) 등이 플럭스 물질로 자주 사용된다. 산화물 합성의 경우 알칼리 금속과 염소가 결합한 염(salt) 또는 탄산염 물질이 사용된다. 녹는점이 801도인 염화나트륨(NaCl)이 이에 해당한다. 적절히 낮은 녹는점을 가지면서도 의도하지 않은 안정된 상을 만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물질이 플럭스의 후보가 될 수 있다.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CeRh2As2 초전도 금속의 경우 시차열분석(Differential Thermal Analysis)을 통하여 녹는점이 1500도 이상이고 이 온도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상이 분해됨을 알 수 있었고 따라서 조화용융 특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양한 플럭스 물질을 시도해 본 결과 30배의 몰(mole) 비에 해당하는 비스무스와 화합물 조성에 맞는 각 원소물질을 섞으면 혼합체의 녹는점을 1000도 이하로 낮출 수 있음을 확인했고 이를 서서히 냉각시켜 단결정을 기를 수 있었다[그림 6].4) 다만 냉각 온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CeRh2As2 이외에 RhAs2 상이 형성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물론 예기치 않게 얻은 단결정이 흥미로운 연구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결정 성장의 매력이다. 플럭스 물질이 성장시키고자 하는 물질의 구성 원자와 다른 경우, 플럭스 물질이 성장된 결정의 격자구조 안으로 들어가 불순물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로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의 화합물 중에서 플럭스 물질을 선택하는게 이상적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철-기반 초전도체 물질계인 BaFe2As2의 결정 성장 연구 초기에는 주석이 플럭스로 사용되었지만 주석이 결정 안으로 들어가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관찰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보고가 알려졌다. 이후 녹는 점이 1000도 가량 되는 FeAs가 플럭스 물질로 제안되었고 이는 시료 품질의 향상을 가져왔다.5)
플럭스 성장법이 실험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아보자. 금속화합물 합성의 경우 고온에서 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공 또는 불활성기체의 대기 조건이 요구된다. 보통 시료 또는 시료가 든 도가니를 석영관 안에 넣고 진공 상태로 밀봉한다. 고순도의 석영(SiO2)은 대략 섭씨 1100도까지 역학적 특성이 유지되며 적절한 압력으로 고순도 아르곤 가스를 채워주면 고온에서 연화에 의한 함몰 변형을 줄일 수 있다. 이보다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한 경우 나이오비움(Nb), 탄탈륨(Ta) 등의 가공성이 좋고 반응성이 비교적 낮은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용기 안에 도가니를 넣고 용접으로 밀봉한다. 금속 용기는 고온뿐만 아니라 고압을 견딜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기체상태에서 석영과 반응이 우려되는 알칼리 금속, 또는 고온에서 높은 증기압을 형성하는 비소, 인 등의 닉토젠 원소를 함유하는 물질의 합성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금속 용기는 지르코늄(Zr) 포일에 쌓여 고순도 아르곤 분위기에서 가열된다. 지르코늄은 고온에서 잔존 산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더 높은 온도 조건이 요구되는 경우 텅스텐(W)을 소재로 된 용기를 사용한다. 산화물 합성의 경우 대개 알루미나(Al2O3)나 백금 도가니를 사용하여 대기에서 가열한다. 특별한 산소의 전자가를 얻기 위해 튜브 전기로 안에서 산소 농도를 조절하여 산화/환원 대기 조건 하에서 가열하기도 한다.
결정 성장이 끝난 이후에는 플럭스 물질과 성장된 단결정을 분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시료가 위치한 도가니의 반대편에 뚜껑의 역할을 하는 다른 도가니를 놓고 그 사이에 거름망의 역할의 구멍이 뚫려있는 구조물이나 석영솜을 놓는다. 플럭스가 액체 상태로 남아있는 고온에서 시료가 들어 있는 용기를 뒤집거나 원심분리기를 이용하면 플럭스는 거름망을 통과하는 반면 결정은 거름망 위에 걸러지게 된다. 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플럭스 물질만 선택적으로 용해하여 결정을 분리할 수도 있다. 희석된 염산이나 질산, 아세트산 등이 금속 플럭스 물질을 녹이는데 사용된다. 앞서 설명한 물리적인 방식에 비해 과정이 용이하지만 성장된 결정과는 반응하지 않는 적절한 용액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플럭스 성장법에서는 도가니의 표면이나 용융체 내부의 불순물 등이 성장핵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료의 크기와 갯수의 제어가 쉽지 않다. 또한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이 성장하는 것을 유도하기가 힘들다. 도가니의 크기나 성장 물질의 양을 늘리는 것으로 큰 결정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특정한 온도 구배를 주면 성장 방향이 유도될 수도 있다. 성장한 결정을 플럭스 물질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추가적인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산업에서의 생산공정에 적용되기에는 제약이 있다. 그러나 비교적 간단한 장비로 결정 성장 실험을 구축할 수 있으므로 물질 연구에서는 폭넓게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다.6)
플로팅존 방법
플로팅존 또는 Travelling Solvent Floating Zone(TSFZ) 방법도 용융체로부터 결정을 성장시킨다. 녹는점이 높은 물질을 도가니를 사용하지 않고도 용융시켜 단결정을 얻을 수 있다. [그림 7(a)]는 개략적인 플로팅존 장비를 보여준다. 할로겐 램프의 빛을 주변에 위치한 타원 형태의 도금된 거울면을 이용해 중앙에 직접한다. 레이저 빛을 열원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초점을 맞추기 위해 광학장치를 정렬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는 있지만 시료가 레이저 파장대의 빛을 흡수해야 열이 발생하므로 부도체 산화물을 가열하는데는 제약이 따른다. 빛이 모여 가열되는 지점의 위쪽과 아랫쪽에는 시료를 고정해 회전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다. 소결된 다결정 시료나 종자가 되는 단결정, 또는 플럭스 물질을 아래 회전축에 위치시키고, 피드(feed)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다결정 막대 시료를 위쪽 회전축에 매단다. 이 두 막대가 고온의 초점에서 만나도록 근접시키며 국소적으로 용융체를 형성시킨다[그림 7(b)]. 용융체 안에서는 온도 분포에 따라 대류가 일어나는데 균일한 조성을 만들기 위해 아래쪽 막대와 위쪽 막대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 용융체가 섞이도록 돕는다. 용융부분이 안정된 상태에 이르면 두 막대를 같은 속도로 아랫쪽으로 서서히 내려 용융된 부분이 윗방향으로 이동하게 한다. 초크랄스키법과 유사하게 용융된 부분이 고온 영역을 벗어나며 냉각되면서 단결정이 생성된다[그림 7(c)].
플로팅존 방법은 조화용융 물질뿐만 아니라 부조화용융 물질의 성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부조화용융의 경우 용융체와 여기에서 석출되는 결정의 조성이 다르다고 설명하였다. 이 특성에 따라 피드의 시작 부분을 부조화용융 성장 조건에 맞는 조성으로 제작하여 용융체 만든다. 한편 기르고자 하는 물질의 조성으로 피드 시료를 만든다. 이렇게 하면 용융부분의 조성이 성장 과정 동안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다. 조성이 상이한 용융부분이 막대 형태의 시료를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travelling solvent floating zone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용융부분이 안정되도록 제어하여 일관된 성장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용융체의 형태는 점도와 표면 장력이 중력과 균형을 이루는 조건에서 결정되며, 온도, 피드의 회전 속도 등이 제어 변수가 된다. 발열체와 거울의 오염을 막기 위해 시료는 석영으로 만든 실린더 안에 위치해 외부와 차단된다. 이는 특정한 대기 종류와 압력 하에서 결정 성장이 가능하게 한다. 냉각 중 구조 상전이를 겪는 물질은 합성 이후 물질의 온도가 낮아지며서 막대가 부서질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플로팅존 성장법은 합성 가능 여부를 시험하고 성장 조건을 최적화하는데 많은 수고가 들지만 고품질의 단결정을 얻을 수 있는 성장법이다. 도가니와의 접촉에 따른 시료와의 반응, 또는 오염에서 원천적으로 자유롭다. 피드 시료에 불순물이 존재하더라도 용융 부분이 피드를 따라 이동함에 따라 불순물을 용융 부분에 남아 정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고품질의 결정 성장이 가능하다. 고품질의 단결정이 요구되는 경우 산업에서 소량 생산에 이용되기도 한다.
화학 증기 수송법
앞서 소개한 방법들과는 달리 화학 증기 수송법은 결정 성장 원리로 고체상과 기체상의 가역 반응을 이용한다. 성장시키고자 하는 화합물(AB)이 수송기체(T)와 반응하여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기체상으로 분해되고, 이들이 특정 온도에서 다시 원래의 물질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단결정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AB(고체) + T(기체) ↔ AT(기체) + B(기체)와 같은 반응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염소나 요오드와 같은 할로겐, 또는 셀레늄 등의 찰코젠 계열의 휘발성과 반응성이 강한 물질이 수송기체(T)로 이용된다. 기체상으로 변하는 과정이 흡열반응(endothermic)인 경우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수송이 일어나고 발열발응(exothermic)의 경우 그 반대가 된다.
소결 반응으로 얻은 다결정 시료를 원천(source) 물질로 이용한다. 고체상과 기체상이 닫힌계에서 반응해야 하므로 수송물질과 시료는 석영관에 밀봉된다. 염소와 같은 가스 상태의 수송 기체를 석영관 안에 주입할 수도 있지만, 고온에서 분해되어 수송기체를 생성하는 고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다루기 안전하고 편리하다. 고상의 요오드 또는 요오드 화합물, 200도 근방에서 분해되어 염소 가스가 생성되는 TeCl4 물질 등이 수송기체 물질로 사용된다. 이 물질들은 상온에서 상당한 증기압을 가지므로 얼음이나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시료가 위치한 부분을 냉각하면 석영관을 밀봉하기 위해 진공을 조성할 때 기화를 통한 손실을 억제할 수 있다. 이상 기체 방정식을 적용하여 결정 성장 온도에서 대략 1기압의 수송기체 압력이 형성되도록 수송 물질의 양을 결정한다. 이렇게 준비한 석영관을 온도 구배(temperature gradient)가 있는 튜브 형태의 전기로에서 가열해 결정을 성장시킨다[그림 8]. 석영관 양 끝부분의 온도를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이구간 전기로(two-zone furnace)를 사용하면 좋지만, 일반 튜브형 전기로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온도 분포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석영관 양 끝부분에 열전대(thermocouple)를 위치시켜 정확한 온도를 측정하면 성장 조건을 개선하는데 유용하다. 전기로의 내부 구경이 작을 수록 더 가파른 온도 구배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큰 단결정을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석영관 내부 표면의 이물질을 가능한 제거해 원치 않은 결정핵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물질의 수송은 밀폐된 석영관 안에서 확산(diffusion) 또는 대류(convection)에 의해 일어난다. 다양한 수송물질과 온도 조건에서 결정 성장을 시도해 수송 반응의 유무를 확인하고 성장 조건을 개선한다. 원천 물질과 떨어진 곳에서 열역학에 의해 허락된 화학 반응을 통해서 결정 성장이 일어나므로 얻어진 결정은 원천 물질의 순도보다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고온의 용융체에서 얻는 단결정보다 시료의 품질이 좋다. 안정된 반응 조건에서 성장 시간을 지속시키면 큰 단결정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화학 증기 수송법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Chemical Vapor Transport Reactions라는 책을 추천한다.7) 성장 원리에 대한 자세한 소개뿐만 아니라 원소마다 대응되는 수송 물질이 상세하게 망라되어 있어 실제 실험을 설계하는데에도 유용하다. 한 가지 사소한 노하우를 나누자면 결정 성장을 위한 온도 구배를 만들어 주기 전에 하루 정도 역방향의 온도 구배를 유지시키면 시료가 생성되는 지점의 불순물을 제거해 의도하지 않은 성장핵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맺음말
상평형도에서 조화용융과 부조화용융의 특성을 소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실제 연구소에서 주로 쓰이는 초크랄스키, 플럭스 방법, 프롤팅존 방법의 성장 원리를 알아보았다. 또한 기체상에서 단결정을 얻는 화학 증기 수송법도 간략히 소개했다. 초크랄스키 방법은 실리콘이나 갈륨화비소와 같은 반도체 단결정을 성장시키는 핵심 원리로서 산업에서의 양산에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결정 성장 방법이다. 현대 첨단 전자 기술의 바탕이 되는 단결정 소재가 백여 년 전에 발견된 오래된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이 논문에 묘사되는 물질 합성법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질 합성과 신물질 탐구는 들이는 노력에 대비하여 기대되는 단기적인 연구 성과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물질 또는 품질이 향상된 시료가 새로운 물리 연구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8) 이 글이 미처 다루지 못한 방법들은 2011년 6월 특집 기사 ‘단결정 성장 기술과 단결정 은행’에서 잘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를 바란다.9)
- 각주
- 1)Y. Kamihara et al., J. Am. Chem. Soc. 130, 11, 3296 (2008).
- 2)J. Czochralski, Z. Phys. Chem. (München) 92, 219 (1918).
- 3)J. Evers, R. Staudigl et al., Angew. Chem. Int. Ed. 42, 5684 (2003).
- 4)S. Khim et al., Science 373, 1012 (2021).
- 5)R. Morinaga et al., Jpn. J. Appl. Phys. 48, 013004 (2009).
- 6)M. Tachibana, Beginner’s Guide to Flux Crystal Growth (Springer, 2017).
- 7)M. Binnewies, R. Glaum, M. Schmidt and P. Schmidt, Chemical Vapor Transport Reactions (Berlin, Boston: De Gruyter, 2012), https://doi.org/10.1515/9783110254655.
- 8)P. C. Canfield, Nature Physics 4, 167 (2008).
- 9)Se-Young Jeong, Phys. High Technol. 20(6), 29 (2011), DOI: 10.3938/PhiT.2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