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난호





|

특집

결점 없는 세상을 꿈꾸다

새로운 우주를 만든다: 빛과 전자의 이중성이 발견한 결정 이야기

작성자 : 정세영 ㅣ 등록일 : 2022-04-21 ㅣ 조회수 : 2,958 ㅣ DOI : 10.3938/PhiT.31.014

저자약력

정세영 교수는 1990년 독일 쾰른(Köln)대학교 결정학과에서 결정물리학 실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부산대학교 물리학과에서 2003년부터 현재까지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성반도체, 유전체 등의 결정물리학적 특성을 연구해왔으며 최근에는 금속 단결정박막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물성을 연구하고 있다. (syjeong@pusan.ac.kr)

Creating a New Universe: The Story of the Crystal Discovered by the Duality of Light and Electron

Se-Young JEONG

The study of crystals is like the beginning of solid state physics. Crystallography was developed rapidly with the discovery of X-ray. Recently, the era of physics is enriching with the emergence of new material groups such as graphene, topological insulators, and TMD materials. In a way, it is very interesting to see that the providence of the universe and the philosophy of life are reflected in the small crystal structure. However, unfortunately, little is known about when and how crystal growth began. How did our ancestors in the beginning grow and study crystal? This article examines the history of early crystal growth, the development of crystallography,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crystallography and physics.

X-선과 결정학

빌헬름 뢴트겐(Wilhelm Röntgen)은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University of Würzburg) 재직 중인 1895년 12월 28일 “새 종류의 광선에 대하여(On A New Kind Of Rays: 원제 Über eine neue Art von Strahlen)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Röntgen Rays나 X선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광선의 발견은 진단방사선학(diagnostic radiology)의 수준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 X선이 원자의 구조를 규명하는 중요한 돌파구가 되었고 이로 인해 실험 물리학은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의 업적은 1901년 노벨물리학상 1회 수상이라는 영광스러운 결과로 보상되었다. 아마 뢴트겐 자신도 이 새로운 광선의 발견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X선의 가치는 결정 구조 연구와 그 응용에서 위력을 가장 잘 발휘하였으며, 사람들은 X-선을 결정학에 적용한 성과로 라우에(Max von Laue)가 노벨상을 받은 1914년을 결정학 원년으로 꼽는다. United Nations(UN)은 유네스코 및 국제결정학연합(International Union of Crystallography, IUCr)과 함께 결정학 100주년을 기념하고 인간 생활에 미친 결정학의 전 세계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2014년 국제 결정학의 해(International Year of Crystallography, IYCr2014)를 추진한 바 있다.

뢴트겐이 X선 발견한 시점은 빛의 이중성에 관한 관심이 높은 시기였고, 파장이 아주 짧다고 여겨진 X선이 입자인지 혹은 파동인지에 대한 관심이 그 시기에 가장 첨단의 연구주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뢴트겐 그룹의 이론 물리학자였던 좀머펠트(Sommerfeld) 연구실에 연구원이었던 라우에는 X선의 특성을 확인할 새로운 슬릿 장치가 필요했고, 에봘드(Ewald)의 학위 논문 주제인 원자의 주기적인 배열로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모델(Edwald’s crystal model)에 근거해서 짧은 파장의 X선이 매질(황산아연 결정) 내에 들어가면 회절이나 간섭현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X선이 파동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비록 좀머펠트(Sommerfeld)나 빈(Wien)을 비롯한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으나, 라우에는 끈질긴 설득 끝에, 크니핑(Knipping)과 좀머펠트의 제자였던 프레드리히(Friedrich) 등이 실험을 도와 마침내 1912년 실험에 성공하였다. 이 실험은 X선이 파동이라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논쟁에 정답을 제공하는 동시에 결정체에 의한 X선 회절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수학적 공식으로 만들어 내어 결정체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에 그의 연구는 윌리엄 브라그(William Bragg)와 그의 아들 로렌스 브라그(Lawrence Bragg)의 브라그 회절 연구(1915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의 기초가 되었다. 초기 결정학에 X선이 중요하게 기여한 것은 결정 내 입자의 주기적 배열 내로 빛의 파동이 통과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수백 나노미터 수준이어서 주기적 원자간격이 수 Å 수준인 결정 내에서 회절현상을 보이지 않지만, X선은 그 파장이 매우 짧아(10 nm~10‒2 nm), 결정 내 원자 주기와 비슷한 X선 파장을 선택하면 회절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이 당시는 이미 빛은 전자기파의 하나이고 파동이어서 반사, 간섭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X선의 발견으로 전자기파의 범위는 더 넓어졌고 결정체 내에서의 전자기파의 회절현상은 현대물리학사에 중요한 주제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자기파의 회절현상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최첨단 회절 장비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X선 회절이 결정 구조를 조사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물질의 표면을 더 정밀하게 관측하는 장비인 투과전자현미경(TEM)이나 주사전자현미경(SEM)은 X선이 아니라 전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X선 장비는 전자기파의 파동성을 사용하지만 전자는 입자가 아닌가? 전자가 이러한 첨단 관측 장비에 사용되게 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첨단 나노기술의 아버지를 루이 드 브루이(Louis de Broglie)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전자와 같은 매질(matter)도 파동성을 갖는다는 것을 처음 주장했기 때문이다. 드 브루이의 이런 주장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은 클린턴 데이비슨(Clinton Davisson)과 리스터 저머(Lester Germer)였다. 데이비슨은 1921년부터 러더포트(Rutherford)가 알파입자를 사용하여 핵에 대한 산란 실험을 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원자의 전자 배열에 대해 실험을 하고 있었고 1924년 저머가 이 실험에 합류하였다. 그 실험에서 데이비슨은 진공에서 니켈 시료를 사용하여 실험을 하였는데 실수로 챔버 내에 공기가 새어 들어가 니켈 표면에 산화막이 형성되었다. 이 산화막을 없애기 위해 데이비슨과 저머는 고온전기로에 시료를 넣고 가열을 하였고 이 가열하는 과정에서 다결정 구조이던 니켈이 전자빔에 감지될 만큼 충분한 크기의 결정면을 갖는 단결정 영역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정작 이들은 처음에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차후 반복 실험을 통해 전자가 표면을 때렸을 때 결정면에 있는 니켈 원자에 의해 산란된다는 것을 알았고 1925년 전자에 의한 회절 패턴을 얻게 되자 아예 단결정을 사용하여 반복 실험을 수행하였다. 전자가 결정 표면에서 회절한다는 결과는 입자의 파동성을 증명하는 획기적 실험증거였다. 데이비슨과 저머에 의해 입자의 파동성이 입증된 후 드 브루이는 1929년 노벨상을 수상하였고 데이비슨은 1937년에 노벨상을 수상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현대물리학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한가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라우에나 데이비슨 등이 X선 실험이나 전자 산란 실험에 결정을 사용하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X선이 발견되기 이전부터 결정 성장과 결정 구조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뜻 아닌가? 과연 결정과 결정성장에 대한 사용이나 지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결정화의 역사

결정화의 기술은 아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기록된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한다.1)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 결정을 얻는 일은 선사 시대 여러 곳에서 이미 시행되었고 재료를 변형시키는 가장 오래된 기술 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문서로 기록된 결정화 관련 내용은 기독교 시대 훨씬 이전부터 있었는데 예로 로만 피니우스(Roman Piinius)의 자연의 역사(Naturalis historia)에는 비트리올스(Vitriols: 구리 황산염이나 철 황산염과 같은 금속 황산염을 포함하는 화합물)와 같은 염의 결정화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황산염(SO4‒2)은 전체 전하가 ‒2인 사면체 구조로 구리(Cu) 원자를 만나면 황산구리(CuSO4)가 되어 안정한 분자 모양이 된다. 황산구리는 물질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쉽게 만들어 볼 수 있는 결정 들 중의 하나이다. 필자는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꽤 오래 결정성장대회를 개최하였었는데 이때 결정성장의 대상으로 등장한 물질 중의 하나가 황산구리였다[그림 1]. 우선 집에서도 손쉽게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큼 잘 자라고 시약가격도 싸서 가족들이 다 같이 한번 재미삼아 해봐도 좋을 만하다. 황산구리 원료 시약을 맑은 증류수에 녹인 다음 천천히 그 용액을 증발시키면 결정이 만들어지는데 아주 빨리 증발을 시키면 매우 작은 결정체들이 동시에 출현하여 좋은 하나의 결정을 얻기는 어렵다.2)

Fig. 1. Copper sulfate (CuSO4․5H2O) single crystal.(황산구리(CuSO4․5H2O) 단결정)Fig. 1. Copper sulfate (CuSO4․5H2O) single crystal.(황산구리(CuSO4․5H2O) 단결정)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첨단 기술을 동원한 결정성장장치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지만 결정을 성장하는 기본 법칙은 단 하나이다. 용액(solution)에서 혹은 융액(melt)에서 단 하나만의 핵형성이 일어나도록 유도하고 천천히 원자들이 지속적으로 쌓여 나가서 하나의 결정이 형성되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용액에서 결정이 얻어지면 수용액 법이 되고 융액에서 만들어지면 용융법이라고 크게 나눌 수 있다. 고대에 이러한 원리까지는 다 이해를 하지 못했겠지만 용액을 증발시키면 고체 입자들이 석출되고 석출된 입자들이 반짝 반짝하여 일반 물질과 형태가 다르다는 정도는 이해를 한 것 같다. 중세에 이르러 유럽과 아라비아 등지에 상당한 수준의 연금술사들이 등장하여 결정화 현상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었고 12‒13세기 연금술사 게버(Geber)가 작성한 논문에는3) 승화 및 증류, 재결정화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16세기 중반에 비링구치(Birringuccio, 1540)는4) 염석을 침출시키거나 재결정화시켜 정제를 하는 방법을 자세히 기록했으며, 작센 과학자 아그리콜라(Agricola, 1556)는5) 그의 대표저서인 “De re Metallica”에서 여러 종류의 염을 생산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17세기 들어 크리스탈(crystal)이라는 용어가 현대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처음 얼음 결정에 대해 crystallos라고 하던 표현이 점점 석영 결정(quartz crystal, rock crystal)으로 확장되었다. 결정화(crystallization)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응축(condensation) 혹은 응고(coagulation)와 같은 표현을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Fig. 2. Even in the process of crystal growth, the angle between the faces of a material is maintained constant. (Law of constant dihedral angle) (결정이 자라는 과정에서도 한 물질의 면간의 각은 일정하다. (면각일정의 법칙))Fig. 2. Even in the process of crystal growth, the angle between the faces of a material is maintained constant. (Law of constant dihedral angle) (결정이 자라는 과정에서도 한 물질의 면간의 각은 일정하다. (면각일정의 법칙))

케플러의 법칙으로 유명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가 눈결정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는 1611년 눈결정은 밀집된 구형입자(closed packed spherical particles) 형태로 만들어지고 결정학적 형태로 구조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서술하였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후크의 법칙(Hooke’s law)으로 잘 알고 있는 후크는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라는6) 저서를 출판할 정도로 현미경학에 전문가였고 “세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현미경을 사용하여 화석을 관찰하거나 초기 진화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결정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결정 성장과 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내용을 고찰하면 결정학에 대한 “현재적” 과학적 발전은 17세기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독일 쾰른(Köln) 대학의 결정학과를 다니면서 초기에 “결정의 면간 각은 일정하다”는 결정면각 일정의 법칙을 배운 적이 있는데 이 법칙은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가7) 1669년에 발견하였다고 한다[그림 2].

Fig. 3. 3D video of the preparation and process for growing crystals by the aqueous solution method. (수용액법으로 결정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과 결정성장과정의 3D 동영상)

지금도 자연 속에서 혹은 수용액에서 고유한 형태(morphology)를 갖고 자란 결정들이 무슨 물질인지를 알기 위해 면각을 측정하여 분석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X-ray 회절법에 의한 결정 구조 분석 프로그램 내에도 면각일정의 법칙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현미경을 비롯하여 당시로서는 첨단인 많은 과학적 도구가 동원되었음에도 당시 결정의 생성과 성장 과정 등은 동물이나 식물과 유사하게 결정이 자란다는 사실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 오랫동안 의문과 신비의 대상이었다. 보일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보일(Robert Boyle)도 결정학 분야에 한몫을 하였는데, 1666년 용액에서 성장되는 결정들의 성질은 불순물과 성장속도에 의존한다고 기술함으로써 결정의 성장 속도(growth rate)가 결정의 물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일은 결정의 성장과정이 비물질적이고 가늠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스테노(1669)는 결정이 식물 성장 방식이 아니라 물질 위에 외부에서 뭔가가 추가로 부착되어서 성장한다고 주장하였고 그 뒤 다른 학자들에 의해 그의 주장이 뒷받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말, 18세기까지도 저명학자들조차 여전히 결정이 식물의 성장 방식을 따른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림 3]과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6USpOS0XnxQ)는 중고생들과 일반인들을 위해 단결정연구소에서 만든 수용액 단결정 성장방법에 대한 교육용 동영상이다. 수용액 방법으로 결정을 성장하기 위해 종자 결정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결정이 크게 자라는 성장과정을 3D 이미지로 제작한 것이어서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액 단결정 성장방법”으로 동영상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Fig. 4. 7 crystal systems. (7가지의 결정계)Fig. 4. 7 crystal systems. (7가지의 결정계)

결정체, 광물 등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이해는 18세기 동안 카펠러(Cappeller, 1723)8)나 린네(Linnaeus, 1768)9)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상당한 진전을 이루게 된다. 1813년 쉬바이거(Schweigger)는 결정화가 시작되기 위해 종자나 핵이 특정 크기여야 한다는 중요한 관찰 결과를 보고하였는데 이는 핵의 임계 크기에서 결정으로 자라는 연속적 과정을 설명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몇몇 앞선 연구에 이어 아우이(Haüy, 1782; 1784)는10) “결정을 계속 쪼개어 나가면 궁극적으로 가능한 가장 작은 단위로 구성될 것이다. 즉 전체 결정은 “분자 통합체(molecule integrante)의 반복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주기적인 결정 구조의 개념은 이때 잘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고 분자 성장 단위의 개념도 결정학 커뮤니티에 도입되었다. 크리스쳔 바이스(Cristian Samuel Weiss, 1780‒1856)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결정이 비등방성 매질임을 이해하고 현대 결정학에 매개변수(parameter)들을 도입함으로써 결정학을 수학적 과학의 한 분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그는 결정 내에 방향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결정학적 축이 결정을 분류하는 기본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침내 결정계(crystal system)를 분류하는 체계를 도출하였으며 결정학의 기본 법칙인 바이스 영역법칙(Weiss zone law)을 만들었다. 이때 입방(Cubic), 정방(tetragonal), 사방(orthorhombic), 육방(hexagonal), 삼방(trigonal), 단사(monoclinic), 및 삼사(triclinic) 정계 등 7가지의 결정계가 정해지게 된다[그림 4].

시버(Seeber, 1824)는 평행 육면체적 배열을 갖는 격자(lattice) 개념을 제안하였고 브라베(Bravais, 1849)는 결정 내 원자 간격 등의 주기성을 고려하여 처음 15개의 분류로 판단하였던 체계를 14개의 격자 형태(Bravais lattices)로 최종 분류하였고 결정학에 대한 회고록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이 7가지의 결정계와 Bravais lattices는 고체물리학 교재(Kittel 저) 9페이지에 나온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이 1895년이기 때문에 19세기 중반에는 X선도 없었는데 이미 결정계와 결정격자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고 그 당시의 학자들의 탐구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현대화된 결정성장법

이제 좀 더 결정성장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뢰뵐(Löwel, 1857)이 Na2SO4-H2O계에 대한 연구에서 과포화된 용액에서 결정성장이 용이해짐을 언급한 것으로11) 보아 이 당시 수용액 결정 성장이 활발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오스왈드 마이어(Ostwald-Miers) 영역이라 불리는 준안정성(metastability, 1893), 과냉각상태의 준안정성(metastable region of supercooling) 혹은 과용해도(supersolubility, 1897)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었다. 드 코페(De Coppet, 1872; 1875)는 핵형성 관점에서 집중 연구를 하던 중 과포화된 용액이나 과냉각된 용융물이 일정 시간 동안만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 시간이 시료의 크기에 의존한다고 밝혔다. 실제 그는 결정화가 일어날 때까지 글라우버의 소금(Glauber’s salt)12) 용액을 거의 35년간 과포화된 상태로 유지하였다고 발표하여 핵형성 이론가들 사이에 논쟁을 야기시키기도 하였다. 결정의 선형 성장 속도에 대한 첫 정량적 측정은 게르네즈(Gernez, 1882)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는 긴 유리 모세관을 사용하여 용융물 내에서 황과 인의 결정화를 정량화하였는데 뒤에 탐만(Tammann, 1898; 1903)의 핵 생성과 결정 성장 속도의 정량적 측정에 대한 주요 지수가 되었다. 이때 이질적 평형(heterogeneous equilibria)에 대한 깁스(Gibbs,1878)의 탁월한 이론적 논문이 발표되지만13) 이 논문의 가치는 한참이 지나서야 인정받게 된다. 깁스는 핵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결정하고 최소 총 자유 표면 에너지 조건을 충족하는 결정의 평형 형태를 유도하였다. 큐리(Curie, 1885)는 이와는 독립적으로 결정의 안정적인 형태가 표면 장력과 표면적을 곱한 곱의 최소값에 의해 결정된다고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고,14) 울프의 그물(Wulff’s net)로 유명한 울프(George Wulff, 1895; 1901)는 3차원적 결정 형태를 2차원 평면에 옮기는 입체투영(stereographic projection)을 완성하고 X선 결정학을 처음 개척하기 시작하였다.15)

20세기 들어오면서 라우에와 브라그 등에 의해 X선을 사용한 결정 내부 구조 연구가 획기적으로 진전됨에 따라 그 동안 싹트고 있던 결정 성장 기술 분야에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고 광물학 분야, 특히 합성 보석 분야에 그 합성법을 찾는 데 자극제가 되었다. 고딘(Gaudin, 1837)과 뵈트거(Böttger, 1839), 엘스너(Elsner, 1839) 등은 칼륨 명반과 크롬산 칼륨의 혼합물을 녹여 작은 루비 결정을 제조하는데 성공했고 페레미(Fremy, 1891)는 베르누이(Verneuil)와 공동으로 대형도가니를 사용한 보석 등 결정들을 고온용액에서 키우는 시도를 하였으나 당시 장비가 온도를 안정되게 유지하지 못하여 수 mm 크기의 결정만 얻을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는 노력은 무수히 많았는데 하나이(Hannay, 1880)는 두꺼운 철로 만든 관에서 리튬, 파라핀 및 뼈 기름의 혼합물을 가열했을 때 우연히 다이아몬드를 발견한다. 모이산(Moissan, 1894)은 녹은 철 용액에 탄소를 포화시키면 다이아몬드가 얻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당시 베르누이(1902, 1904)는 큰 루비 결정을 성장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이 성장법이 그 유명한 불꽃(화염) 융합법(flame fusion method)이다. 국내에서 이 불꽃융합법을 사용해서 결정을 성장하는 업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가 2010년 일본의 한 결정성장회사를 방문했을 때 공장 내에 수백대 베르누이 법 성장장치를 설치해 두고 사파이어 결정을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LED TV에 들어가는 백라이트로 사파이어기판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사파이어를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대부분 러시아 기술이나 폴랜드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베르누이 법은 당시로는 큰 결정이라고 하지만 그 크기가 대체로 손가락 굵기 정도에 해당하여서, 지름 20‒30 cm 크기로 성장되는 지금의 대형 사파이어 결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가지 상식으로 알면 좋을 듯한 것은 루비와 사파이어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산화알루미늄(화학식 Al2O3)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Cr이 첨가되어 붉은 빛을 띠면 루비라고 하고 그 외 다른 색은 보통 사파이어라 한다.

Fig. 5. Copper single crystal grown by Chochralski method. (Chochralski법으로 성장된 구리단결정)Fig. 5. Copper single crystal grown by Chochralski method. (Chochralski법으로 성장된 구리단결정)

승화법(sublimation)도 결정성장법 중의 하나인데 이 방법에 의한 결정성장은 더로셔(Durocher, 1849, 1851)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해당 염화물 위로 황화수소를 흘려 금속 황화물 결정을 제조하였다. 현재의 결정성장법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오면서가 아닌가 싶다. Spezia(1905; 1906; 1909)와 Naken(1915; 1916) 등은 고온 용융 방법에 의해 결정을 합성하였고 이를 수정한 방법이 현재 사파이어 성장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카이로퍼러스(Kyropoulos, 1926)법이다.16) 이 방법은 녹아 있는 용융물에 종자결정을 접촉시킨 다음 천천히 끌어올리면서 성장하는 방법인데 다 자란 결정모양이 아주 대칭적이지 않고 고구마 모양으로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카이로퍼러스 법보다 조금 더 일찍 개발된 쵸크랄스키(Czochralski, 1918)법은17) 카이로퍼러스 법과 매우 유사하지만 결정성장 동안 냉각수가 흐르는 회전축을 통해 회전을 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매우 대칭적으로 성장되며 고온에서도 성장이 가능하고 매번 종자 결정을 바꾸어 성장을 반복함에 따라 결정질이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장법이 아닐까 한다. 현재 반도체산업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실리콘(Si) 단결정은 대부분 쵸크랄스키 성장법을 사용하여 성장된다[그림 5]. 필자는 석사과정에서 이 쵸크랄스키 성장법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다 박사학위를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갔는데 지도교수가 연구 주제로 나열해준 6개 주제 중에 쵸크랄스키법이라는 아는 장비 이름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선뜻 선택했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 장비가 지멘스(Simens)회사에서 버리는 30년된 고철덩어리여서 가동이 된다 안된다로 지도교수와 연구교수가 내기를 걸었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이 장비를 주연구 장비로 받아 6개월 내내 수리하는 동안 독 일 애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느꼈었는데 수리가 완성되고 처음 작동이 되던 날 큰 실험실에 있던 십여 명의 동료들이 모두 박수를 쳐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장비를 모두 새로 만들다시피 해서 한국 와서 새 결정 성장 장비를 만들고 개발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다. 당시에 고철과 싸울 당시에는 이러다 학위 받고 돌아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우울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반드시 힘든 일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곰페르즈(Gomperz, 1921)는 운모판을 용융액 표면에 놓아 결정의 직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끌어 올리는 성장하는 방법을 고안하였고 이 방법들은 스테파노프(Stepanov, 1959)와 그의 동료에 의해 1950년대까지 꾸준히 재발명되었는데 필자도 쵸크랄스키 성장 시에 운모판을 사용하여 결정의 직경을 조절한 경험이 있다.

용용액에서 끌어 올리는 pulling 방법이 아닌 또 다른 방법은 도가니 내에서 냉각시켜 결정화하는 방법인데 처음 탐만(Tammann, 1914)이 수직하게 배열된 가는 관에서 그 방향을 따라 고체화시키는 방식으로 금속 결정을 성장시키는 시도를 했는데 이 방법은 오브레이모프(Obreimov)와 숩니코프(Schubnikov, 1924)에 의해 더 정교해졌다.18) 브릿지만(Bridgman, 1923; 1925)은 이 방법에 긴 가는 관 모양의 도가니를 아래로 천천히 내리는 기술을 도입하였는데19)20) 이 방법이 현재 많은 연구실에서 고온 결정성장을 위해 사용하는 브릿지만 결정성장법이다. 스톡바거(Stockbarger, 1936)는 이 방법을 좀 더 큰 알칼리 할로겐화물 결정을 성장하는데 활용하였고21) Kapitza (1928)는 개방된 보트형 도가니에 수평 구배를 주어 비스무트 결정을 성장시켰다.22) 여기서 결정성장에 전문가가 아닌 독자를 위해 온도 구배를 준다거나 도가니를 천천히 아래로 내린다거나 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50 cm쯤 되는 긴 관을 수직으로 세워두고 그 관주변에 실린더형 도가니를 만들어 열을 가해 그 관 내에 들어 있는 원료 시약을 모두 녹게 만들었다고 하자. 이때 맨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고체로 만들면 결정화가 일어난다. 이때 얼마나 천천히 잘 냉각을 시키느냐가 얼마나 좋은 결정을 얻느냐와 직결된다. 결정이 성장되는 포인트는 녹아 있는 용융상태와 응고되는 고체 상태의 바로 경계부분에서 일어나는데 온도분포를 변하게 하여 이 포인트를 이동시킬 수도 있고 온도분포는 일정하게 해 두고 긴관이 아래의 온도가 낮은 영역으로 내려가도록 해서 결정화가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시기에 변형-어닐링 기술을 사용한 알루미늄 결정의 성장이 쇼비에(Sauveur, 1912; cf. Carpenter, 1922; 1926)에 의해 수행되었다.23) 결정성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결정을 사용한 연구가 많은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결정성장에 대한 이론도 같이 발달이 되기 시작하였다. 볼머(Volmer, 1922)는 처음 결정 표면에 성장의 기본 단위들이 어떻게 흡착되고 표면을 따라 확산되며 2차원 형태로 핵 생성을 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안하였다.24) 그런 다음 볼머와 베버(Weber, 1926)는 열역학 논의에서 핵 생성 속도의 기본 표현을 유도하였다. 동시에 결정성장에 대한 분자동역학이론은 코젤(Kossel, 1927)과 스트란스키(Stranski, 1928)에 의해 정립이 된다.25)26) 버턴(Burton, 1949), 카브레라(Cabrera, 1949) 및 프랑크(Frank, 1949) 등은 BCF 이론으로 알려진 나선형 성장 이론을 수립하여 성장 이론과 실제 측정된 성장률 사이의 현저한 불일치를 해결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결정 성장 기술이 현대화되기 시작한 것은 주로 전자, 광학 및 과학 기기용 결정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이다.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는 수요의 증가에 의해 경제적 이유 때문에 가끔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많은 결정성장 연구와 개발이 곳곳에서 진행되었고 50년대 반도체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 크게 나타났다. 반도체 분야의 본격적인 발전은 게르마늄 결정을 성장하는데 Czochralski 방법을 적용하면서 이루어졌고27) 이어서 Zone melting method가 발명되고,28) 실리콘 결정을 키우기 위해 플로팅 존(floating zone) 기술이 개발되면서 가속되었다.29) 그 중에서도 특히 결정을 성장하는 사람들의 오랜 염원은 인공 다이아몬드의 합성이었을 것이다. 번디(Bundy), 홀(Hall), 스트롱(Strong)과 벤토르프(Wentorf)는 1955년에 처음 인공다이아몬드 제조법을 발표하였는데30) 비슷한 시기에 세계 3개 지역에서 결정 성장이 시도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산업에 사용되는 다이아몬드는 대부분 합성된 인공다이아몬드이다.

결정성장에 초점을 둔 첫 국제 회의는 1949년 Faraday Society에 의해 브리스톨(Bristol)에서 처음 개최되고 이어 1958년 뉴욕 쿠퍼스타운(Cooperstown)에서 개최되었다. 60년이 지난 2020년대에 우리나라는 실리콘 결정이나 사파이어 결정 등 몇몇 상업적으로 성공한 결정들 외에는 여전히 별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마을 운동 등으로 산업화가 급격히 일어나던 1970‒1980년대에 우리는 바로 박막(thin film) 산업을 거쳐 최근에는 나노산업에 주력하여 다소 약했던 결정분야 기반에도 불구하고 단결정을 사용한 산업에서의 경제력 창출에 비교적 선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응집물리학이나 재료과학의 관심은 박막과 나노에 대한 연구로 이동하였다. 현재 전 세계적 소재의 관심은 그래핀과 같은 2D 물질이다. 2D 물질에 그래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이금속 칼코겐 화합물(transition metal dichalcogenides, TMD) 등은 그래핀처럼 원자 한 층이면서 MX2의 화학식을 갖는 반도체이며 비정상적 거대 자기 저항(anomalous colossal magnetic resistance, ACMR)이나 초전성을 갖기도 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양자적 특성과 여러 층을 겹쳐 새로운 물성을 창출해 내는 복합적 기능성 등이 겹쳐 현재 결정성장은 언뜻 과학의 끝단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글에서 박막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기회로 남겨둔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취지가 결정학과 결정성장의 초기 발전상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학과 물리

필자는 수학이 단순한 숫자가 아닌 것은 물리와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의 구조와 수학이 만났을 때는 결정학이라는 수학과학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나 결정학이 물리학에 더 가까운 것은 대칭성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대칭성은 물리학 전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뉴턴역학은 서울에서나 뉴욕에서나 공히 성립한다. 동서남북을 회전하더라도 여전히 뉴턴역학은 성립하여야 하므로 회전에 대해 대칭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전기장과 자기장은 게이지변환에 대해 대칭이다고 말한다. 이 게이지 대칭성(gauge symmetry)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칭성이다. 게이지는 기준 또는 척도를 의미하는데 측정 기준, 척도, 혹은 측정을 하는 시공간의 위치를 변환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물리량을 게이지 대칭성을 갖는다고 한다. 결정학적 대칭성은 우리 눈에 보이는 구조에 대한 대칭성이라고 한다면 게이지 대칭성은 내부에 숨어 있는 성질에 대한 대칭성이라 할 수 있다. 게이지 대칭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맥스웰 방정식을 유도해 낼 수 있으니 전기장과 자기장도 대칭성으로 설명이 된다. 1964년 피터 힉스 등은 게이지 대칭성의 자발적 대칭성 깨짐을 통해 게이지 입자에 질량이 부여되는 과정을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이라고 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스핀 0인 중성 입자를 “힉스 입자(Higgs particle)”라 하였는데 2012년 이 힉스입자가 실험적으로 발견되어 힉스 메커니즘이 증명되었다.

군론(group theory)은 물리적 특성이 변화하거나 보존되는 과정들을 대칭성 관점에서 연구하는 이론이다. 대칭성이 정확히 유지되거나(exact), 근사하거나(approximate), 깨어지는(broken) 등의 과정으로부터 물리의 법칙은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다. 특정 조건에서 대칭성이 붕괴되었을 때 원형상(prototypic phase)에 비해 더 낮은 대칭성을 가지게 됨에 따라 물성의 특정 성분이 나타날 수도 있음을 예측하게 한다. 최근 물리학에서 중요한 분야를 차지하는 위상 절열체의 경우에는 시간 역전 대칭(time-reversal symmetry)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다. 시간을 거꾸로 변환하였을 때 물리적 법칙이 대칭적이냐를 논하는 것이다. 자연 법칙 중 기본 상호작용인 중력과 전자기력, 강력은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시간역전 대칭성을 보존한다. 이렇듯 대칭성은 결정학과 물리학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양자역학 시대에 살면서 대칭성을 모르고 새로운 물성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결정 성장을 하는 과학자들이 대칭성을 잘 다루면 새로운 물성을 찾아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서 글에 적었던 것처럼 물리 교과서에서 보던 케플러나 후크, 보일, 깁스, 큐리 등의 유명 물리학자들이 결정성장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물리학자들은 과학에 대한 범위를 매우 넓게 생각한 듯하며 결정학/결정성장을 물리학의 일부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1901년 노벨상 창설 이래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에서 결정학/결정성장 관련 수상자가 100명이 넘었던 것만 보아도 서구사회에서는 결정학/결정성장이 과학의 중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2000년대 이후 그래핀과 GaN를 이용한 청색 LED 개발, 위상절연체 등 3건 정도가 결정과 관련성을 갖는 노벨물리학상인 것을 생각하면, 학계에서 결정학/결정성장이 차지하는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가 결정학/결정성장 연구가 꽃을 피우던 20세기 초의 역사를 더듬다 보면 그때의 영광이 다시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 글은 앞서 참고문헌에 사사한 바와 같이 J. Bohm의 결정성장의 역사(The history of crystal growth)를 일부 참고하고 필자의 결정성장 관련 일천한 지식을 첨가하여 서술하였기 때문에 중요한 업적들 중에도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 이 글이 고체물리학이나 재료물리학을 시작하는 대학원생이나, 고체물리 비전공자이지만 결정학/결정성장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에게 단숨에 읽어 볼 수 있는 결정성장의 현대사이었기를 기원한다.

각주
1)J. Bohm, Acta Physica Hungarica 57, 161 (1985).
2)https://www.youtube.com/watch?v=6USpOS0XnxQ.
3)E. Darmstaedter, Die AIchemie des Gebcr, Springer Berlin, 1922 (Repr. Sändig, Wiesbaden, 1969).
4)V. Birringuccio, De la Pirotechnia. Venedig 1540 (Transl. into Engl.: The Pirotechnia of Vanuccio Birringuccio. Amer. Inst. Mining and Metallurg. Eng. New York, 1942.).
5)G. Agricola, De re metallica libri XII. Froben Basel 1556 (New German translation by Schiffner, VDIVerlag, Berlin, 1928, Düsseldorf 1953, dted after Georgius Agricola - Ausgew/ihlte Werke, Bd. l, Dtsch. Verl. Wiss. Berlin 1956).
6)R. Hooke, Micrographia (London, 1665).
7)N. Steno, De solido intra solidum naturaliter contento dissertationis prodromus. Florenz 1669 (Repr. W. Junk, Berlin, 1904; Transl. K. Mieleitner: Vorläufer einer Dissertation über feste Körper, die innerhalb anderer fester Körper von Natur aus eingeschlossen sind" in: Ostwald’s Klassiker der exakten Naturwissenschaften, Leipzig, 1923).
8)M. A. Cappeller, Prodromus crystallographiae, Luzern, 1723 (Transl. Karl Mieleitner, München, 1922).
9)C. Linnaeus, Systema naturae lll, Holmiae (Stockholm, 1768).
10)R.-J. Haüy, Essai d'une théorie sur la structure des cristaux (Paris, 1784).
11)M. H. Löwel, Observations sur la sursaturation des dissolutions salines, Ann. Chim. et Phys. (Paris) (3) 39, 32-58 (1857).
12)글라우버의 소금은 황산나트륨 형태이다. 미라 빌라이트(milabilite)로도 알려져 있음. 화학공식은 Na2SO4·10H2O로 표시된다.
13)J. W. Gibbs, On the equilibrium of heterogeneous substances, Trans. Connecticut Acad. 3, 108-248 and 353-524 (1875-1878). (Abstr. Amer. J. Sci. (3) 16, 441458 (1878); also: The Collected Works of J. Willard Gibbs, Longmans, Green and Co New Haven 1928; Repr. 1948)
14)M. P. Curie, Sur la formation des cristaux et sur les constantes capillaires de leurs différentes faces, Bull. Soc. Franc. Mineral. (Paris) 8, 145-150 (1885).
15)G. Wulff, Zur Frage der Geschwindigkeit des Wachstums und der Auflösung der Krystallflächen, Z. Krystallogr. u. Mineral., Leipzig 34, 449-530 (1901).
16)S. Kyropoulos, Ein Verfahren zur Herstellung grosser Kristalle, Z. anorg, u. allg. Chem. 154, 308-313 (1926).
17)J. Czochralski, Ein neues Verfahren zur Messung der Kristallisationsgeschwindigkeit der Metalle, Z. Phys. Chem. 92, 219-221 (1918).
18)J. Obreimov and L. W. Schubnikov, Eine Methode zur Herstellung von Metall-Einkristallen, Z. Physik 25, 31-36 (1924).
19)P. W. Bridgman, The compressibility of thirty metals as a function of pressure and temperature, Proc. Amer. Acad. Arts Sci. (Boston) 58, 165-242 (1923).
20)P. W. Bridgman, Certain physieal properties of single crystals of tungsten, antimony, bismuth, tellurium, cadmium, zinc, and tin, Proc. Amer. Acad. Arts Sci. (Boston) 60, 303-383 (1925).
21)D. C. Stockbarger, The production of large single crystals of lithium fluoride, Rey. Sci. Instruments 7, 133 (1936).
22)P. Kapitza, The study of the specific resistance of bismuth crystals and its change in strong magnetic fields and some allied problems, Proc. Roy. Soc. London, AIIg, 358-442 (1928).
23)Sauveur, Note on the crystalline growth of ferrite below its thermal c¡ range, Proc. Internat. Assoc. Test. Mat, 2(11), 1912, Paper No. II. 6. (cited after Carpr 1926).
24)M. Volmer, Zum Problem des Kristallwachstums, Z. phys. Chem. 102, 267-275 (1922).
25)W. Kossel, Zur Theorie des Kristallwachstums, Nachr. Ges. Wiss. Göttingen, Math.-phys. Klasse, 135-143 (1927).
26)I. N. Stranski, Zur Theorie des Kristallwachstums, Z. Phys. Chem. 136, 259-278 (1928).
27)Teal, G.K.L., J. B., Growth of germanium single crystals, Phys. Rev. 25, 16 (1950) and Bull. Amer. Phys. Soc. 78, 647 (1950).
28)W. G. Pfann, Principles of zone-meiting, J. Metals, J. Metals, Trans. AIME 194, 747 (1952).
29)P. H. Keck and M. J. E. Golay, Crystallization of silicon from a floating liquid zone, Phys. Rev. 89, 1297 (1953).
30)F. P. Bundy, H. T. Hall, H. M. Strong and R. H. Wentorf, Man-made diamonds, Nature (London) 176, 51 (1955).
취리히 인스트루먼트취리히 인스트루먼트
물리대회물리대회
사이언스타임즈사이언스타임즈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