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故임현식 교수님을 추모하며
작성자 : 정규호·김용민·조용철·조상은 ㅣ 등록일 : 2024-09-05 ㅣ 조회수 : 523
나의 은사님을 보내며
SK하이닉스 NAND PI 정 규 호
임현식 교수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교수로 임용되신 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희는 전공 3학년이었고 처음 부임 후 제대로 된 연구실이 없었던 교수님은 만학도였던 저와도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았던 아주 젊은 교수님이었고, 교수실에서 처음 면담했던 당시가 기억납니다. 당시 모 기업의 논문경연대회 참가 제안을 받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제안이 있었던 이후 교수님은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지도해 주셨고, 그러한 가르침 속에서 학부 때 학점의 도구로만 생각되었던 교과서 속의 이론들이 좀 더 우리 피부 속으로 들어왔었습니다. 이후 논문을 써 가기 시작했을 때도 생전 처음으로 논문이라는 것을 작성하면서 우리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서로 도왔던 기억이 눈앞에 선합니다. 결과적으로 제출했었던 논문은 큰 상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연구실도 없는 교수님께 대학원생으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까지 살아생전 후배들 앞에서 우리 4명을 소개할 때 그때의 기억을 묘사하시며 흡족한 모습으로 소개하시곤 했었는데, 사실 되돌아보면 저도 그랬던 제 자신에게 놀라운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논문 이후로 저희와의 인연은 이렇게 서로의 끈으로 연결되었고 임현식 교수님은 그 이후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셨습니다. 당장 제자들이 생겼으니 연구실도 마련했어야 했고 연구주제도 하나씩 정해줘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 연구장비도 너무나 필요했었으니 연구비를 마련하느라 그렇게도 많은 연구계획서를 써대셨습니다. 저희가 4학년이었을 때 학교에서는 강의실 끝자락에 비교적 넓은 공간을 제공해 주었고 이때 매일 도서관을 전전하며 공부했던 저희들에게는 전용 공부방이 생겨 너무나 많이 신나 했었습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부터 저희 4명은 임현식 교수님 학생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누구나 교수님 제자들로 인식하며 우리도 그 부분에 한점의 의심도 없이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교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가르침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때는 그렇게들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본모습을 보게 된 것은 대학원 진학하게 되면서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연구비에서 마련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장학금이 아니더라도 대학원 공부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서슴치 않았던 모습이 저로 하여금 너무나도 큰 감동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박사까지 금전적인 어려움 없이 학위를 마칠 수 있었고 그 부분은 아직도 너무나도 감사한 부분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실도 생기고 실험실도 생기면서 연구장비가 하나하나씩 들어오면 우리는 밤을 새우며 setting했었고 하나하나 연구실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고 교수님을 포함해 우리 모두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측정장비를 들여와 setup을 마치고 얼마 안되어 타 연구기관에서 측정을 의뢰하는 일이 생기면서 너무나도 뿌듯했던 기억은 저희와 교수님이 이루고자 했던 연구들의 첫걸음이자 저희 4명을 포함한 학생들이 보다 정확한 data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사명감 같은 것이었으리라 추억해 봅니다. 그러나 연구실에서 먹고자고 했던 우리들의 추억은 이제 학생들이었던 저희들만 가지게 되어 너무 죄송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이토록 연구와 후학양성에 진심이셨던 교수님을 이제는 볼 수 없음에 마음이 미어지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지만 교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도록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어른이셨고 가장 가까웠던 분이셨기에 이 안타까운 현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습니다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임현식 교수님 항상 존경했었고 사랑했고 감사했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눈물로 떠나보내게 되어 또 죄송합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교수님!
삼성전자 DS부문 CCS사업팀 김 용 민
저는 얼마 전 갑자기 제 옆에 있던 큰 아름드리나무를 잃은 故임현식 교수님의 박사과정 졸업생입니다. 그 크고 아름다웠던 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없어진 지금의 현실에 저는 교수님을 그리며 글을 쓰는 것이 너무 무기력하고 큰 슬픔과 서글픔에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저의 부족함을 항상 기다려 주시며, 조금 늦더라도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부모님 같았으며, 큰 산, 호수 같은 존재였습니다. 항상 연구실에 찾아뵈면 웃으시며 환영해 주셔서 이렇게 빨리 저희 곁을 떠나실지 정말로 상상도 못한 못난 제자가 교수님을 그리며 교수님의 모습을 그려 보려고 이 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교수님 말씀을 다시 떠올려 보고 가르침을 주신대로 부끄럽지 않은 제자로 살아가겠습니다. 또한, 교수님 연구성과와 유지를 지킬 수 있도록 작은 노력이라도 후배들과 함께 보살피며 살겠습니다.
교수님이 첫 부임하시면서 교정 하나하나를 돌아보시던 모습은 권위적이기보다는 마치 학생같이 순수하시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또한, 작은 것이라도 가르쳐 주려고 하셨고, 이해하는 것이 느린 학생인 저에게 “허허 ㅇㅇ는 여기까지 이해했군. 이건 말이지, 추가로 이걸 보고 이해하는 데까지 다시 한번 언제든 보자.” 하시며 자신의 박사 논문과 다양한 자료를 직접 챙겨주셨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설명해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 주셨던 모습은 이 젊으신 교수님과 함께 새로운 랩에서의 연구에 대한 큰 기대감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할 수 있던 원동력으로 충분했었습니다. 교수님과 함께한 8년여 동안의 랩 생활에서 보여주셨던 연구에 대한 열정과 좋은 결과이든 나쁜 결과이든 항상 기다려 주시고 조언해 주시던 말씀은 저의 사회생활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모습의 교수님을 사부님으로 모실 수 있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매 학기 연구실에서 연구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방학 중에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연구원으로서 연구하시는 모습은 끊임없이 연구하는 연구자의 자세로 본받을 수 있었습니다. 초기 랩을 구성하면서 일본의 측정 수준을 랩에 이설하고 싶어 하셨으며, 랩의 특성 측정과 노이즈 레벨을 확인하시고는 즐거워하시던 모습이나, 연구원들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지도해 주시고 연구원의 성과로 칭찬하시고 꾸준히 연구를 이어 갈 수 있도록 조언해 주시던 모습이 벌써 그립습니다. 허허 웃으시면서 저희를 대하는 모습에서 연구리더의 역할과 선구자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교수님의 노력으로 최근 ‘Kondo cloud 특성’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연구성과는 교수님 부재를 다하진 못하겠지만 후배들과 꾸준히 노력하고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수님! 오늘은 날씨가 너무 무덥습니다. 계시는 곳은 어떠신지요? 교수님이 계시지 않은데 세상은 변함이 없네요. 저희는 교수님과 연구하고 생활했던 모든 순간이 정말로 영광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본받아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서 자랑스러운 제자로 다시 뵙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교수님….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치신 스승님
부산대학교 유전체물성연구소 연구교수 조 용 철
꿈이 있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이뤄내 가는 사람을 보면 그 모습이 매우 즐겁고 행복해 보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서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며 주변을 이끌어 가는 모습은 존경스럽습니다. 故임현식 선생님은 저에게 그런 분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해오시던 ‘Kondo cloud condensation’에 대한 연구는 10년 이상 걸려 이루어내신 쾌거입니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측정결과를 놓치지 않으시고 수많은 재현 실험과 기존에 알려진 이론들을 하나하나 새로 공부하고 검증하였습니다. 오랜 고생 끝에 이제서야 비로소 논문이 게재되었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더 깊은 연구를 진행하시던 차에 떠나시게 되어 아쉬움이 더합니다.
2013년 이전까지는 방학 때마다 일본의 NEC에 가셔서 실험에 필요한 샘플들을 직접 제작해 오기도 하셨는데, 2013‒2014년 겨울방학에는 감사하게도 선생님을 따라 일본에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에 45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었는데, 눈과 빙판으로 인해 자전거나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여 평소 자전거로 30분 걸리던 거리를 앞장서서 2시간 가까이 걸어가시며 끝내 도착하여 데이터를 얻어냈습니다. 저희 학생들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장비로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어려운 기회라는 것을 알기도 하였고, 어렵게 도착했는데 쉽게 돌아가는 것이 너무 억울하기도 해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던 날로 기억합니다.
비단 연구뿐만이 아니라 하시는 모든 일을 열정적으로 하셨는데 운동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른 아침 연구실에 들르셨다가 짐을 내려놓고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시는 모습을 자주 뵈었었고 실험을 위해 방문한 일본과 영국에서도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에 동료들이나 학생들과 같이 어울려 축구도 하셨는데, 30대 초반이었던 저보다도 훨씬 체력이 좋으셔서 민망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구실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선생님의 방을 지날 때, 그리고 학생들과 연구교수님들과 같이 쓰는 연구실의 선생님 자리를 볼 때마다 미소 지으시면서 “그래, 왔니?”라고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셨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해외 출장 이후 귀국한 당일조차도 항상 연구실에 들렀다 가시고, 실험실에 설치한 제습기들의 물통도 운동 삼아 하신다며 직접 비우시는 등 열정과 애정을 보여주셨던 모습, 연구년에 교수님을 따라서 영국에 갔을 때 혼자 있던 저를 집으로 자주 초대해 챙겨주시고, 학교 근처 이태원 맛집들을 같이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독려해 주시던 따뜻한 모습들이 벌써 그리워집니다.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스승의 빈자리, 별이 된 스승님께
동국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부 연구교수 조 상 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한 스승이자 제게 단순한 지식을 넘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신 존경하는 임현식 교수님께서 영면하셨다는 사실이 지금도 저에게는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습니다. 항상 연구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시고, 공휴일과 주말에도 매일 밤낮 가리지 않고 뵈었던 교수님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교수님의 연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늘 저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연구실에서 함께하며 나누었던 이야기, 격려와 조언 덕분에 저는 연구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국내는 물론 영국, 스위스, 일본을 오가며 함께 연구를 수행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밤새도록 실험하고 결과를 논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함께 즐거워했던 시간들은 제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교수님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연구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함께 나누며 저에게 연구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지금도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교수님 덕분에 연구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임현식 교수님께서는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해 주신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와 마음가짐까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특히 가장 자주 말씀하셨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제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부분에만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며 문제를 해결하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작은 것에도 예민하고 집착했던 제가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교수님 덕분입니다.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와 날카로운 조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과 연구실 사람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헌신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셨습니다. 한없이 학생들에게 온화하고 이해하시면서도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결정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며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프신 와중에도 끝까지 연구실 사람들과 연구 상황을 걱정하고 고민하셨던 교수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본인은 걱정하지 말고 다음 주에 보자는 교수님의 마지막 전화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조금 더 교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황을 일찍 알아차렸다면, 안심할 수 있는 말과 좋은 이야기만 전달해 드릴 수 있었을 터인데 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지금도 교수님께서 계획했던 연구를 진행하고 결과를 정리할 때마다 교수님의 노력과 헌신이 느껴져 울컥해집니다. 제가 교수님만큼 열정적이고 좋은 사람이자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수님과 계획하고 진행하던 일들을 차근차근 진행하여 연구를 이어나가는 것이 교수님께 드릴 수 있는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빈자리가 크지만, 교수님의 가르침을 나침반으로 삼아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열심히 연구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직도 교수님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너무나 슬프지만, 교수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모든 것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삼가 교수님의 명복을 빌며, 존경합니다.
2024년 8월
제자 정규호, 김용민, 조용철, 조상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