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물리 이야기
거울나라 증후군
작성자 : 김영균 ㅣ 등록일 : 2024-12-20 ㅣ 조회수 : 568
김영균 교수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이학사)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ygkim@gnue.ac.kr)
1. 샘은 그의 어머니 엘렌이 화장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른쪽 위아래 입술에는 밝은 빨강의 립스틱을” 바르고 “오른쪽 눈에는 아이라이너나 마스카라의 흔적이 있었지만”, “왼쪽 얼굴은 마치 누군가가 젖은 수건으로 화장을 모두 지워버린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서 엘렌을 돌본 라마찬드란 박사는 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는 오른쪽 뇌, 특히 오른쪽 두정엽에 뇌졸증이 발생했을 때 흔히 겪게 되는 편측무시(hemi-neglect)라는 신경병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편측무시 환자는 자신의 왼쪽에 있는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왼쪽 신체도 무시합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거울을 이용해 엘렌을 치료해 보기로 했다. 그는 엘렌의 오른쪽 옆에서 거울을 들고 서 있었다. 그다음에 그녀가 머리를 약간 돌려 거울을 보도록 했다. 그녀의 왼편에 있는 펜(pen)이 거울에 비쳐 보였다. “그 위치에서 엘렌은 무시된 부분의 세계가 거울에 반사되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문제가 없는 오른쪽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이제 왼편 세계에 대한 정보가 무시하지 않는 오른편에서 오고 있다. 거울은 그녀의 무시 현상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인가? 그 결과 그녀는 정상인처럼 왼편의 대상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까?” 라마찬드란 박사는 엘렌에게 펜이 보이느냐고 묻고, 그렇다고 하자 펜을 잡아보라고 했다. 그때 엘렌은 “정말 희한한 행동을 했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전혀 망설이지 않고 거울로 가져갔으며, 반복적으로 손을 거울에 부딪혔다. 그녀는 말 그대로 대략 20초 동안 거울을 더듬고 나더니 실망한 듯 “내 손이 닿지 않아요” 하고 말했다.” 사물이 실제로 거울 속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엘렌은 거울 속으로 손을 집어넣을 수 없었지만,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 거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까? 우리 세상과 언뜻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세상일까? 아니면 우리 세상과 언뜻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세상일까? 앨리스를 따라 거울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거울 속으로 들어간 앨리스는 서재에 있는 책들이 우리 세상과는 달리 이상한 문자로 쓰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곧 그 문자들은 거울 쓰기(mirror writing)로 쓰여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글씨는 거울로 비쳐 보면 제대로 쓴 글씨로 보인다. 만약 앨리스가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거울 나라에는 왼손잡이인 사람이 유달리 많이 보였을 것이다. 우리 세상에는 왼손잡이의 비율이 대략 10% 정도이지만(2002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4%가 왼손잡이였다. 2013년 조사에서는 왼손잡이 비율이 5%로 나왔는데, 20대의 경우는 8%로 세계 평균에 근접한 수치가 나왔고 나이가 많을수록 왼손잡이 비율이 떨어졌다. 이 차이는 왼손잡이 비율에 대한 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거울 세상에서는 오른손잡이의 비율이 대략 10% 정도일 것이다. 만약 병원에서 심장 수술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어떨까? 앨리스는 거울 나라의 사람들은 심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세상에서 사람의 심장은 대부분 왼쪽에 있지만 말이다. (가수 비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는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몇 명 등장한다. 실제로 흉부와 복부 장기가 좌우 반전되어있는 ‘전반적 내장 좌우 반전(situs inversus totalis)’ 증상은 인구의 0.01% 수준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앨리스는 새끼 고양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키티, 거울 속의 집에 사는 건 어떨까? 거기서도 누가 네게 우유를 줄까? 거울 속의 우유는 마시기에 별로일 수도 있어.” 실제로, 예를 들어, “지구상의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당(糖) 분자는 대부분 오른손잡이 형태, 곧 덱스트로(dextro) 당이며, 그 거울 상(像)인 레보(levo) 당은 상업용이나 연구용으로 생산된다. 인간의 위장 속 소화 효소는 자연에 존재하는 덱스트로 당–마찬가지로 지구상에서 진화한 다른 유기체들에게서 나온 분자들-만을 소화하게끔 진화했다. 이들 덱스트로 효소는 덱스트로 당과 같은 방식으로 레보 당에 반응하지 않으므로, 레보 당은 소화되지 않는다.” 그러니 정말로 거울 속의 우유는 마시기에 별로일 것이다.
이런 사실들이 거울 속 세상이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 세상과는 다른 세상임을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재미 삼아 거울 쓰기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거울 쓰기에 몰두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얼마든지 거울 쓰기를 할 수 있으므로, 거울 쓰기로 쓰인 책의 존재가 거울 속 세상과 우리 세상이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임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주로 사용하는 손, 심장의 위치, 생명체의 당, 효소 분자 등의 (왼쪽이나 오른쪽을 더 선호하는) 편향성은 진화적 우연의 산물일 뿐 거울 속 세상과 우리 세상이 서로 다른 물리법칙을 따른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물리법칙으로 왼손잡이가 더 많고, 심장이 오른쪽에서 뛰며,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당 분자가 대부분 왼손잡이 당 분자인 세상을 만드는 것도 그 반대인 우리 세상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가능한 일이다.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우리 세상과 거울 속 세상이 같은 물리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즉 물리법칙은 우리 세상과 거울 세상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이 두 명의 젊은 중국 출신 물리학자에 의해 깨진 것은 1956년의 일이었다.
3. 1922년 10월 1일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태어난 양전닝(楊振寧, C. N. Yang)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1908‒2003)의 지도하에 1948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26년 11월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리정다오(李政道, T. D. Lee)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의 지도하에 1950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두 젊은 이론물리학자들은 1956년, 근본적인 네 가지 상호작용 중 하나인 약한 상호작용에서 이른바 반전성(parity)이 보존되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약한 상호작용이 우리 세상과 거울 속 세상을 구별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여러 실험을 제안했는데, 그중 하나가 방사성 동위원소인 60Co(코발트-60) 원자핵의 베타 붕괴 실험이다.
코발트-60 원자핵은 일종의 자전 운동인 스핀(spin) 운동을 한다. 자전하는 물체의 자전을 따라 오른손을 감싸 쥐었을 때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스핀의 방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제 코발트 원자핵이 베타 붕괴하여 전자(electron)를 원자핵의 스핀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방출했다고 해보자. 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어떻게 보일까? (시계방향으로 도는 시계를 거울에 비춰보면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으로 보이므로) 거울 속 원자핵의 스핀 방향은 우리 세상과 반대가 된다. 따라서 거울 속에서는 전자가 원자핵의 스핀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방출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코발트-60 원자핵의 붕괴에서 방출되는 전자가 원자핵의 스핀 방향과 그 반대 방향으로 같은 확률로 방출된다면 우리 세상과 거울 세상은 구별할 수 없다. 즉, 양쪽 세상이 같은 물리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만약 방출되는 전자가 원자핵의 스핀 방향이나 그 반대 방향 중 한쪽을 선호한다면 우리 세상과 거울 세상을 구별할 수 있다. 즉, 양쪽 세상이 다른 물리법칙을 따른다. 한쪽은 전자가 원자핵 스핀 방향으로 더 많이 방출되는 세상이고, 다른 한쪽은 전자가 원자핵 스핀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더 많이 방출되는 세상인 것이다.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뛰어난 실험물리학자였던 우젠슝(吳健雄, W. S. Wu)을 설득했고, 그녀는 코발트-60 원자핵의 베타 붕괴 실험에 도전했다. 그리고 전자는 한 방향을 다른 방향보다 선호해서 방출된다는 강력한 실험적 증거를 발견했다. 자연의 ‘편향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우리 세상과 거울 세상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인 것이다.
청나라가 멸망한 1912년에 중국에서 태어난 우젠슝은 핵폭탄을 개발하는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1997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리정다오는 올해 2024년 8월 4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82세에 28세의 여인과 재혼해 신기한 ‘거울 대칭성’을 보여주었던 양전닝은 올해 102세로, 생존해 있는 노벨상 수상자 중 최고령이다.
- 각주
- 1)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샌드라 블레이크스리 지음,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바다출판사).
- 2)루이스 캐럴 지음, 거울 나라의 앨리스.
- 3)M. Papadatou-Pastou, E. Ntolka, J. Schmitz, M. Martin, M. R. Munafò, S. Ocklenburg and S. Paracchini, Human handedness: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Bulletin 146(6), 481 (2020).
- 4)리언 레더먼, 크리스토퍼 힐 지음, 대칭과 아름다운 우주 (승산).
- 5)한겨레 신문, <“그래, 난 왼손잡이야” 차별 맞선 외침…우리 삶도 스펙트럼이니까> (2024년 8월 10일).
- 6)T. D. Lee and C. N. Yang, Question of Parity Conservation in Weak Interactions, Phys. Rev. 104, 254 (1956).
- 7)A. Zee, Fearful Symmetry (Prince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