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정욱 교수

1934 ‒ 2024

약력
1934	일본 히로시마 태생
1958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대통령상 수상
1960	노트르담 대학교 물리학과 진학
1963	인디애나 대학교 물리학 박사 펜실베니아 대학교 연구원
1966	존스홉킨스 대학교 교수
1997	고등과학원 초대 원장
1998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
2000	미국 정부 베트남교육재단 이사
2001	한림원 청암과학상 수상

고등과학원의 초대 및 제2대 원장을 역임하시며 한국 기초과학 연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김정욱 교수님께서 2024년 11월 29일 별세하셨습니다.

193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신 김정욱 교수님은 1945년,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원자폭탄 폭발을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하셨습니다. 과학의 힘에 경외감을 느끼고, 자연의 신비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품게 된 계기였습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온 교수님은 학창 시절 축구와 육상을 즐기며 과학자의 꿈을 키워 나갔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하셨습니다.

은사 조순탁 교수님의 권유로 유학길에 오른 교수님은 노트르담 대학교를 거처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베타붕괴 연구에 몰두하며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성장하셨습니다. 지도교수였던 에밀 코노핀스키가 소개해 준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헨리 프리마코프와의 수년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김-프리마코프 방법을 제시하며 핵의 약한 상호작용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66년 존스홉킨스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시며 본격적인 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다.

교수님은 특히 중성미자 물리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중성미자 진동 분석과 양자역학적 중성미자 진동의 이해를 통해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셨으며, 1993년 저서 “Neutrinos in Physics and Astrophysics”는 이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후 카를로 지운티 교수(토리노 대학교)와 함께 집필하여 2007년 완성한 “Fundamentals of Neutrino Physics and Astrophysics”는 중성미자 물리학의 집대성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1991년에는 초대칭 이론에서 세 가지 힘(강력, 약력, 전자기력)이 대통일될 수 있음을 최초로 밝혀내며 대통일 이론 연구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탁월한 연구자이자 열정적인 교육자로서도 많은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김정욱 교수님의 강연은 전문 지식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유머와 열정으로 청중을 매료시켰습니다. 한국을 방문하실 때마다 전하셨던 강의는 수많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중성미자 연구의 토대를 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교수님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송정현 교수는 고등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건국대학교에서 국내 학계의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7년 고등과학원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신 이후에는 숨겨졌던 행정가의 능력을 발휘하여, 연구자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셨습니다. 그 결과, 고등과학원은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연구소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내 최초의 중성미자 실험 프로젝트인 RENO와 기초과학연구원의 지하실험 연구단 CUP 설립에도 교수님의 비전과 리더십이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김정욱 교수님은 과학 외에도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한 르네상스적 인물이셨습니다. 스키와 골프, 예술과 미식을 즐기며 살아오셨고, 모험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70대에 스쿠버다이빙에 입문해 수백 회의 다이빙 기록을 남기셨습니다.

이러한 김정욱 교수님의 업적과 성품은 오늘날 수많은 제자와 후학들의 가슴 속에 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김정욱 교수님이 남기신 발자취를 기억하며, 그의 유산을 이어받아 한국 과학 발전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