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창
젊은 여성과학자들의 도약을 응원하며
작성자 : 임혜인 ㅣ 등록일 : 2025-03-18 ㅣ 조회수 : 39

한국자기학회 회장
숙명여자대학교 신소재물리학과 교수
한국물리학회 ‘물리학과 첨단기술, 과학의 창’ 2025년 첫 번째 글을 기고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025년은 한국물리학회 역사상 첫 여성 회장이 취임한 해이며 저 역시 한국자기학회의 첫 여성 회장으로서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뜻깊은 해입니다.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고 동시에 큰 기대를 하고 계신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순간을 맞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제게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젊은 여성 과학자들과 여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고민들을 통해 여러 활동을 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2005년 조교수로 부임한 직후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APCTP International Workshop on Asian Women in Physics’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포항공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만난 선배 교수님들과 박사님들의 따뜻한 환대는 14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제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당시 연구비 수주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연구재단 단장으로 계시던 교수님의 강연과 질의응답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러 여성 교수님들을 알게 되었고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 부간사로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여러 해 동안 여성위원회 간사로 학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격려와 애정 덕분에 연구, 교육, 행정의 다양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고, 받은 응원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여성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했던 멘토링 프로그램입니다. 춘계와 추계학술대회 기간 동안 찾아오는 여학생들의 고민을 들으며 멘토링에 참여하신 교수님들과 함께 우리의 경험을 알려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이 발전하여 ‘찾아가는 여성 물리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201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여교수가 부족한 대학을 직접 방문하여 여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으며, 특히 여성 교원이 부족했던 대학들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여성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에 여교수 숫자가 20명이 채 안되었는데 이제는 배도 넘는 숫자의 여교수가 물리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KPS 여고생 물리 캠프’입니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KPS 여고생 물리 캠프’는 물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여고생들이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연구실에서 과학적 연구수행 과정을 경험하고, 캠프 기간에 본인의 경험과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이 캠프는 학생들 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전문가 특강, 연구실 투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으며, 2002년 첫 시작 이후 2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며 여성위원회의 대표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동적인 순간은, 과거 캠프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이제 교수로 성장하여 여성위원회의 주축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일입니다. 캠프의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교수님들은 그들의 성장을 보며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활동으로 학술대회마다 열렸던 여성 세션을 언급하고 싶은데 특히 제가 여성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던 지난 2년간의 여성 세션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새봄, 모퉁이를 돌아 길을 나서다: 새내기 여성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물리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 모델 부재를 부분적으로나마 해결하고자 최근에 임용된 여성 연구자들과 만나,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새내기 연구자로서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어떠한 경로로 연구원, 교수가 될 수 있었는지, 성공하려면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등의 노하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회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 2탄까지 진행하였던 “그녀의 호기심, 그의 궁금증”은 다양한 분야의 네 분의 물리학자들을 모시고 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호기심과 궁금증의 시작은 무엇이고 그 해답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성 세션을 기획하고 운영해 주신 여성위원회 송정현 부위원장님과 조연정 간사, 공수현 부간사님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글의 제목에 ‘응원’이라는 단어를 담은 이유는, 여성 과학자의 길을 직접 걸어보니 그 길이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으며, 젊은 여성 과학자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부에서는 여성 학생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데 전문직으로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이 낮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육아 문제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저 또한 학회에서 만나는 여성 교수님들과 종종 나누는 이야기가 자녀에 대한 고민입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육아의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입시 과정이 더 힘들었습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엄마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 길을 계속 걸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여성 과학자로서의 길을 걸으며 섬세한 관찰력과 협업 능력이 연구와 교육에서 큰 장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연구과정에서는 실험 결과의 작은 차이를 포착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며,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반응과 이해도를 세심하게 살펴 효과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단순한 기술적 역량을 넘어, 과학적 사고와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물리학회 전체 회원의 여성 비율은 24.36% 내외로 적지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실적을 보이는 여성물리학자들이 많아졌고 앞으로 더 많은 여성과학자들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그러나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경력 단절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개선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최근 한국자기학회 회장이 된 후, 정부 부처 회의나 간담회에 참석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공계 인재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강력히 요청했고, 다른 학회장님들도 같은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문제이며, 앞으로 한국물리학회 회장님을 비롯하며 여러 유관 학회 회장님들과 힘을 합쳐 한국의 교육, 이공계 인재 양성, 그리고 여성 과학자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여성과학자들이 더욱 빛나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도록, 저 또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