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창
어느 여성 물리학자의 인생 다이어리
작성자 : 서은경 ㅣ 등록일 : 2025-08-01 ㅣ 조회수 : 28

전북대학교 반도체과학기술학과 명예교수
7080 대학 학번을 갖는 세대에서, 여성으로서 물리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그 시대 사회적 통념과는 조금 어긋나는 일이었다. “여자애가 물리를? 특이하네.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시선은 대학 시절 심심찮게 몇 명 안 되는 우리들을 따라다녔다. 그 질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관찰하는 자연현상을 느낌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꿰뚫는 논리와 수학적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물리학의 간결한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은 남녀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밤을 새워 어떤 문제를 푸느라 낑낑대며 계산하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문득 내가 지금 커피를 과도하게 마셔가며 풀고 있는 이 문제가 세상과 유리되어 있고 세상 사람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No body cares!”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외로워졌다. 나는 세상 사람들과 좀 더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물리 현상에 대해 진실을 더 알아내고 그것을 조정(manipulate)하여 인간의 삶에 유용하게 활용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나는 결국 고체물리학 분야의 연구를 더 해보기로 결정하고 미국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여정은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 선배 물리학자와 결혼하였고, 우리는 부부이자 동료로 함께 미국 땅을 밟았다. 서로의 논문을 같이 검토하고, 실험 아이디어를 나누며 나란히 학문의 길을 걸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외롭지 않게 열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곁에서 같이 문제를 고민해주고 지원해 주었던 동료, 남편 덕분이었다. 아마 초창기 여성 물리학자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박사 과정을 밟은 Purdue 대학은 물리학과와 전기전자공학과의 반도체 분야 공동 연구에 꽤 활발한 연구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 당시 연구팀이 선도하고 있었던 diluted magnetic semiconductor (DMS) 물질의 결정 성장과 MBE, MOCVD를 이용한 양자구조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국내 대학과 마찬가지로 물리학과에는 여학생이 거의 없었다. 내가 연구팀에 합류했을 때, 나의 지도교수와 공동 연구팀 교수님들은 “네가 이 실험실의 최초의 여학생이자 최초의 한국인이다” 하면서 웃으셨다. 그러나 그 사실은 나에게는 여성으로서도, 또한 한국인으로서도, 뭔가 우수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몰려왔다. 다행히 열심히 공부한 결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고, 그 후 그 연구팀에는 한국인 여학생들로서 2명이 뒤를 이어 더 들어올 수 있었으며 훨씬 더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면서 아주 좋은 전통을 만들었다.
우리 연구팀에서는 특히 II-VI족 화합물 DMS 재료의 스핀 상호작용 특성들, 그리고 청색발광소재로 관심을 끌었던 ZnSe 기반의 넓은띠간격 양자구조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덕분에 비교적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졸업하였고, 반도체물리학 전공 교수를 찾고 있었던 전북대학교 물리학과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전국 국립대학교 물리학과에는 여성 교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또다시 여성 교수로서의 책임감을 짊어지고 연구 활동에 치열하게 뛰어들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배 여성 교수들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으므로 나를 몰아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전북대학교에 부임한 1989년도에는 그다음 해에 시행 예정이었던 우수연구센터 사업에 반도체 분야로 지원하기 위한 연구소 사업계획서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임 교수님들과 역할 분담을 하며 실내 냉방장치도 없는 혹독한 무더위 속에서 차가운 물수건을 뒤집어쓰고 연구 계획서 작성에 많은 밤을 지새웠음을 기억한다. 다행히 전북대학교 반도체물성연구센터가 1990년 제1기 우수연구센터 중의 하나로 선정되어 전국의 반도체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반도체 분야의 최신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국내 반도체 분야 연구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반도체 분야에서 여성 교수는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누군가의 롤모델로 존재해야 했다. 나를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눈빛은 내가 그들에게 도전의식과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준다는 것을 늘 잊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지방 국립대의 물리학과 학생들에게 당면한 중요한 문제는 어려운 물리문제에 도전하면서 그 속의 진리를 알아내는 지적 희열보다는, 응용 가능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자신의 문제해결 능력과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우리는 물리학과에서 분리하여 반도체과학기술학과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실험과 응용 분야의 교육 과정을 제공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조금은 더 쉽게 교과과정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실험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춤으로써 졸업 후 진로 또한 보다 더 유리한 여건을 갖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담을 온 한 여학생은 3학년에 이르러 반도체공정실험 수업을 들으면서 실험과정이 마치 요리하는 것과 비슷하여 처음으로 재미를 느끼고 계속 공부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여 나를 당혹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현장 적용 가능한 실험실습을 하면서 반도체물리학 분야에 대한 이해도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더 우수한 순수 물리적인 연구 결과를 얻는 것보다 더 의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반도체조명 개발을 위해 GaN 등의 질화물반도체를 이용한 청색 LED 연구와 고온 고전압 절전 소자 응용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따라서 실험도 가능한 한 상온이나 소자 적용에 가능한 정도의 저온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실험들로부터 크고 작은 새로운 현상이나 응용성이 발견되었고 학생들은 스스로 재미있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했다. 그들이 지금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연구자의 길을 걷기도 하고 창업을 하거나 산업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길들을 열어가고 있어 내 삶을 의미있게 채워주는 열매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같은 전공, 같은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동료들의 삶과 비교할 때, 나에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무겁게 얹어진 과제가 있었다. 연구자로서의 삶에 ‘엄마’라는 정체성이 더해졌을 때 나는 나의 능력이 아닌, 주변의 시선을 경계해야 했다. 유학 시절 나는 임신과 육아가 학문적 성취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절이었고 나의 어깨에는 ‘한국인, 여성’의 책임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무리하던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출산 계획을 세웠다. 논문 정리도 거의 끝나고 발표 준비만 남아 있었고, 출산은 박사학위 논문발표심사일 한 달 뒤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실험과 발표준비, 정리 등으로 밤낮없이 연구실에서 동동거리다 보니, 갑자기 박사학위 논문 발표일 3일 전에 조산하게 되었다. 덕분에 논문 발표일을 일주일 늦춰서 불편한 몸으로 발표 심사를 받고 통과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도교수님이 아주 잘했다고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 주었는데 그 말은 단지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하는 격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지난 수년간의 분투와 희생, 여성으로서의 모든 균형잡기와 침묵의 무게를 인정해주는, 기억에 오래 남을 위로였다.
지방국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이어가며, 과학 정책 관련 또는 대학교육 관련 대외 활동을 하며, 내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는 한 번도 가지 못하는 부모가 되며, 나는 쉼 없이 달려왔다. 내 아이들이 자라나는 동안 나는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밤 늦게 퇴근하여 돌아와서도 하던 일로 머릿속이 가득 찼으며, 주말에는 과로로 인한 두통에 시달리곤 했다. 아이들과의 교감은 사치였고 나는 그들의 마음보다는 건강과 생활에만 관심을 두고 챙겼다. 어느새 내 아이들은 장성하여 독립했고, 나는 그들의 내면을 모른 채 성장하도록 두었다는 미안함을 늘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후배 여성 물리학자들은 힘들더라도 이러한 실수는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는 정년퇴임을 하여, 누군가에게 가능성으로 기억되는 삶, 여성 과학자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연구실로 가서 늘 바쁘게 역할을 맡았던 생활 대신, 오랫동안 미루어 둔 읽고 싶었던 책들을 동네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읽고, 그동안 놓쳤던 계절의 풍경을 음미하고, 물리학을 거의 모르는 오래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인들과 함께 운동을 한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가르치는 능력을 활용하여 학습 기회가 불균등하고 소외되어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주면서 나의 사소한 재능기부가 그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나의 다른 재능들을 찾아 즐기려고 한다. 더 이상 ‘증명’이 아닌 ‘느낌’의 삶을 살면서 또 다른 진실을 찾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