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화제의 물리학자
정명화 교수
등록일 : 2025-12-02 ㅣ 조회수 : 10
2025년 8월 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서강대 물리학과 정명화 교수가 선정되었다. 정명화 교수는 극저온과 고자기장 등의 극한 환경에서의 스핀 양자 물성을 비롯한 스핀을 활용하는 스핀트로닉스 기술 개발을 포함하는 폭넓은 연구 활동을 하며, 자성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술자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정명화 교수는 1995년 성균관대학에서 이학사, 2000년 일본 히로시마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번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 연구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전자기기의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자의 스핀을 활용하는 ‘스핀 전류’와 스핀 전류를 생성하는 ‘스핀 펌핑’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스핀 펌핑은 자성체 내부 스핀이 세차 운동을 하면서 방향만 시간에 따라 변하고 크기는 일정한 고전역학적 메커니즘에 기인합니다. 저희는 상온 근처에서 자기 상전이를 보이는 철–로듐(FeRh)을 활용해, 스핀의 방향은 고정된 상태에서 크기만 시간에 따라 급격히 변하는 조건을 구현했고, 그 결과 기존과 성격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스핀 펌핑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습니다. 이 방식은 상온에서 동작하면서 기존 대비 최소 10배 이상 높은 효율을 보였고, 효율 향상의 근본 원인이 스핀의 양자역학적 성질에 있음을 확인했고, 그 결과를 Nature지에 발표했습니다.
◀ 물성물리학은 어떤 학문이며, 교수님이 집중해 오신 연구 주제와 그 과정에서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물성물리학은 말 그대로 물질이 지닌 물리적 성질의 근원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왜 어떤 물질은 전기를 잘 통하고 어떤 물질은 그렇지 않은지, 그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겁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물질 속 전자가 가진 두 자유도인 ‘전하’와 ‘스핀’이 어떻게 움직이고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전하는 비교적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스핀은 전자가 지닌 아주 작은 자석 상태라 다양한 실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연구한 스핀 펌핑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핀 전류를 직접 재긴 어렵지만, 스핀 전류가 남기는 전하 신호를 통해서 스핀 전류의 크기와 특성을 추정했습니다. 특히 저는 특이한 스핀 구조, 예를 들어 위상학적으로 보호되는 스핀 구조를 가진 자성 물질에 관심이 많고, 그런 물질을 직접 합성해 그 물리적 성질을 밝히는 연구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러한 축적이 결국 새로운 물질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미래 기술로 연결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초연구의 길은 늘 정답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려움은 박사과정 초기에 아무도 만들어 보지 못한 고순도 단결정을 합성해야 했던 때입니다. 말 그대로 레시피 없는 요리의 조리법을 만들어 가는 일이었고, 몇 달을 공들여 만든 시료가 공기 중 산화로 한순간에 망가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밀폐된 글로브 박스 안에서 수행해야 했고, 실패가 이어지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파고들며 어디까지 재현되고 어디서 잘못되는지 작은 단서들을 찾으며 끊임없이 재도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교수님과 동료, 그리고 가족의 신뢰를 떠올리며 끈기를 놓지 않았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너무 뻔해 보이던 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임을 실감했습니다. 이 경험이 제 연구 태도를 결정지었습니다. 새로운 물질을 합성해 보이지 않는 스핀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물성을 발견해 그 원리를 규명하고, 그 지식을 미래 기술과 연관 짖는 일은 레시피가 없는 요리를 완성해 가는 탐험에 가깝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호기심을 실험과 기록이라는 행동으로 이어 가고, 실패를 다음 설계를 위한 데이터로 바꾸며,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배우는 태도로 더 멀리 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스핀 기반 기술로 이어질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 그게 제가 물리학자로서 추구하는 길입니다.
◀ 연구자로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 경험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연구 목표와 어떻게 맞닿아 있나요?
제게 가장 큰 기쁨은 학생들이 오랜 시행착오 끝에 예상치 못한 신호를 포착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 짜릿함은 연구자로서 결코 잊을 수 없죠. 또 학생들이 어려움을 스스로 돌파하며 한 단계 성장하고, 자신만의 연구 언어를 갖춰 가는 모습을 볼 때 깊은 보람을 느낍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한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삶을 이어 가는 모습을 볼 때는, 제가 했던 일이 누군가의 성장에 작게나마 힘이 되었구나 하는 감사함이 듭니다. 이런 순간들이 바로 제가 연구를 계속하는 원동력입니다.
그 원동력은 제 궁극적 목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기초연구가 진정한 혁신의 밑거름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탐구하는 자성 현상과 스핀의 양자적 특성에 대한 이해는 당장 제품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러한 근원 지식의 축적이 언젠가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기술의 씨앗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동시에 연구가 학문적 성취에만 머물지 않도록, 언젠가 이 지식들이 저전력 반도체, 혁신적 메모리, 혹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정보소자와 같은 형태로 발전되어 사회를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랍니다. 사람의 성장에서 얻는 보람이 기초에서 출발해 응용으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그 연구가 다시 사람과 사회에 선순환으로 돌아오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연구자의 길입니다.
◀ 미래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으며, AI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호기심을 생활화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야든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멈추지 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 있는 지식 외의 주변 현상에도 의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습관이 쌓이면 사고의 폭이 넓어집니다. 연구는 대개 한 번에 성공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데이터입니다. 실패하더라고 계속 도전하는 마음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동료들과 서로 도우며 배우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함께 고민한다면 결국은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AI 시대와 관련해서는 ‘빠름’보다 ‘깊음’을 추구하길 권합니다. AI는 검색·요약·반복 작업을 놀랍도록 빠르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잡음 속에서 진짜 신호를 가려내는 직관, 예상과 다른 데이터 앞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중, 실패를 분석해 다음 실험을 설계하는 과정적 지성은 사람이 스스로 길러야 합니다. 실험을 하다 보면 결과가 의도와 다르게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때 “이건 단순한 노이즈일까, 새로운 물리의 흔적일까?”를 가늠하는 판단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연구자의 감각에서 나옵니다. AI는 속도를 올려주는 동료일 뿐, 우리에게 필요한 깊이의 경험까지 대신해 주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실천적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에 한 번은 끝까지 파고드는 경험을 만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연구 프로젝트일 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을 완전히 소화하는 경험일 수도 있고, 한 개념을 끝까지 추적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내가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한 가지’는 앞으로 빠른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만의 기준점이 됩니다. 그 기준점을 바탕으로 속도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경험을 쌓아, 그것을 자신만의 무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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