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물리 이야기
색에 대한 뉴턴과 괴테의 논쟁
작성자 : 김재영 ㅣ 등록일 : 2025-12-02 ㅣ 조회수 : 13
김재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물리학 기초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거쳐 현재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물리철학 및 물리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상대성이론의 결정적 순간들』, 『정보혁명』(공저), 『양자, 정보, 생명』(공저), 『뉴턴과 아인슈타인』(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사이버네틱스』, 『슈뢰딩거의 자연철학』, 『맥스웰의 전기자기론』,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에너지, 힘, 물질』 등이 있다. (zyghim@ksa.kaist.ac.kr)

그림 1. 요한 볼프강 괴테의 초상화(요제프 칼 슈틸러, 1828년).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1832)는 널리 알려진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화가이다. 그는 무대연출과 경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대학과 박물관의 운영에서도 탁월했다. 또 공원, 숲, 광산, 도로 등과 관련된 책임자를 맡았고, 외교관이자 정치가였으며,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괴테는 또한 훌륭한 자연 연구자이기도 했다. 『화강암론』(1784), 『인간과 동물의 중간아래턱뼈』(1786), 『식물의 변태를 설명하려는 시론』(1790)과 같은 실증적 연구뿐 아니라 『형태학』(1817)과 같은 이론적 저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손색없는 과학자였다. 자연과학에 속하는 그의 저작은 13권에 이른다. 이 저술들은 크게 (1) 지질학 (2) 형태학 (3) 색채론으로 구분된다. 괴테는 뉴턴의 수학적 자연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뉴턴과 달리 형태학적인 과학(morphologische Wissenschaft)을 지향했다. 여기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그의 광학/색채론 3부작이다. 『광학 관련 기고들(Beiträge zur Optik)』(1791/92)이 그의 빛에 대한 초기 관심을 정리한 것이라면, 『색채론(Zur Farbenlehre)』(1810)과 『색채론 속편(Nachtrage zur Farbenlehre)』(1822/23)은 명실공히 괴테의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색 이론을 잘 정리한 역작이다. 괴테는 자신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기여가 『색채론』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림 2. <색채론> 1판(1820년) 표지.
1672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영국 왕립협회 회보에 발표한 “빛과 색의 새로운 이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의 ‘빛의 변형이론’을 반박하는 자신의 이론을 내놓고, 이를 증명하는 소위 ‘결정적 실험(experimentum crucis)’을 제시했다. 뉴턴의 새로운 이론은 “(1) 모든 단색광은 균질하고 근원적이며, (2) 푸른빛이 붉은빛보다 더 많이 굴절되는 등 순수한 빛은 색깔에 따라 굴절되는 정도가 다르며, (3) 자연광은 종류가 다른 균질한 단색광들의 혼합이다.”라는 것이다. 뉴턴은 기존의 ‘빛의 변형이론’이 틀렸고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1666년의 ‘결정적 실험’을 제시한다. 먼저, 동그란 구멍을 거쳐 프리즘을 통과한 광선은 빛의 변형이론과 달리 둥근 빛 대신 길쭉한 타원 모양이 나오고 여기에 프리즘에서의 굴절률에 따라 여러 색이 갈라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뉴턴은 이 색이 Red, Yellow, Green, Blue, Violet의 다섯 색에 Orange와 Indigo를 덧붙인 7색임을 주장하고, 이 색들이 기본광선(primitive rays)임을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 프리즘에서 갈라져 나온 단색광 중 하나에 둘째 프리즘을 놓아서 이 빛은 더 이상 다른 색으로 갈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 실험이 바로 결정적 실험이다.

그림 3. 뉴턴의 결정적 실험.
괴테는 『색채론』에서 뉴턴이 정립한 빛과 색의 이론을 반박했다. 14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중 1부 ‘교육적인 부분(didaktischer Teil)’은 생리학적 색, 물리적 색, 화학적 색, 색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 인접 분야들과의 관계, 색의 감각적 및 도덕적 작용 등을 차례로 다루며, 2부 논쟁적인 부분(polemischer Teil)은 뉴턴 광학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하고 있다. 3부 역사적인 부분(historischer Teil)에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18세기까지 색깔에 대한 여러 논의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다.
괴테는 자신의 새로운 색 이론을 통해 밝음과 어둠이 함께 만나 이루는 광학적 현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눈과 신경세포를 통한 감각과 인지가 중요함을 지적했다. 뉴턴은 자연광 즉 백색광이 이차적이며 색이 있는 일곱 개의 빛의 알갱이가 혼합된 것이 백색광이라는 이론을 정립했다. 뉴턴에게 어둠은 ‘빛이 없음’이었다. 뉴턴의 이론에서 프리즘은 빛의 색과 무관하며 단지 빛의 여러 색을 부채처럼 펼쳐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뉴턴의 이론에서 색은 프리즘에서의 다양한 굴절률(diverse refrangibility)과 동등하다. 이와 달리 괴테는 백색광이 균질하며, 어둠은 빛과 양극성(Polarität)을 이루며, 빛과 어둠이 상호작용하여 색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괴테의 자연철학 전반에서 이와 같은 양극성이 매우 중요한 원리를 이룬다. 프리즘과 같은 불투명한 매질(das trübe Mittel)은 색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래 존재하던 색이 프리즘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빛과 불투명한 매질의 상호작용을 통해 색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괴테의 이론에서는 근원현상(Urphänomen)으로서 파란색과 노란색이 있으며, 이로부터 증강된 것(Steigerung)이 각각 보라색과 빨간색이다. 양극성을 나타내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합한 것이 초록색이다. 괴테의 색환은 세 쌍의 상보적인 색, 자홍색(Purpur)과 초록색, 파란색과 주황색(Gelbrot), 노란색과 자주색(Blaurot)으로 이루어져 있다. 뉴턴과 괴테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색이 물질세계에 속한 것인지 아니면 객체적 요소와 주체적 요소의 결합과 만남으로 보는 것인지에 있다.

그림 4. 괴테의 색상환.
괴테의 『색채론』이 출간된 이후 논쟁이 이어졌다. 독일의 물리학자 만프레트 리히터는 1936년에 통과된 학위논문에서 괴테의 『색채론』을 다룬 468편의 문헌을 검토하여 절반 이상이 괴테의 이론에 반대하거나 비판을 표시했음을 밝혔다. 특히 물리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괴테의 『색채론』에 물리학상의 오류가 많다고 비판했다. 다만 1부에서 다루어진 새로운 이론적 내용보다는 2부 논쟁적인 부분에서 괴테가 뉴턴을 강하게 비판한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다.
독일의 생리학자이자 물리학자 헤르만 헬름홀츠는 1853년에는 괴테의 색채론을 강하게 비판했다가, 1892년에는 이를 수정하여 괴테를 패러데이와 키르히호프의 반열에 오른 중요한 물리학자로 추켜세웠으며, 자신의 생리학 연구에 괴테가 제안한 새로운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원용했다. 이는 곧 이미 실재로서 존재하는 대상이 관찰자 또는 인식주체에 그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소박한 관점을 넘어, 색이 대상과 주체의 만남에서 생겨남을 강조하는 것이다. 1941년 5월 5일, 하이젠베르크는 부다페스트에서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본 괴테의 색채론과 뉴턴의 색채론”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은 『실재의 질서(Ordnung der Wirklichkeit)』라는 제목의 저서로 확장되었다. 여기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식, 상징과 형태, 창의적 힘 등의 질서가 중첩되면서도 상호독립적임을 강조하면서 괴테의 『색채론』을 기반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경험에서 관찰하는 모든 작용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가장 일정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처음에서 마지막까지 물결처럼 서로 합쳐진다. 서로 분리되고, 서로 대립되고, 서로 뒤섞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바로 과학에서 무한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경직된 분열주의와 당혹스러운 신비주의는 모두 똑같이 재앙을 가져온다. 그러나 가장 비천한 것부터 가장 높은 것까지, 지붕에서 떨어지는 기와부터 우리에게 떠오르는 빛나는 영적 통찰이나 우리가 소통하는 것까지, 그러한 활동은 서로를 따른다.”
지금도 예술가의 논의에서나 미학에서는 괴테의 색채 이론이 자주 거론되지만,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대체로 이를 폄훼한다. 헬름홀츠와 하이젠베르크가 강조한 것처럼 색의 감각에 대한 생리학적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색깔 특히 빛의 본성에 대해서는 물리학자가 최종 판결자라는 것이 지배적 관점이다. 하지만 빛이 정말 물리학자만이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일까? 색이라는 현상의 본질이 빛의 물리적 성질일 뿐이며, 이를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것은 물리학자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까?
뉴턴의 빛 이론은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작은 알갱이(미립자)가 방출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으며, 이 일곱 가지 유색광은 연금술적인 개념이었다. ROY G BIV의 일곱 색은 뉴턴이 심취하여 연구하던 연금술의 일곱 행성, 일곱 금속, 일곱 음계에 직접 상응하는 것이었다. 뉴턴 자신이 『광학』에서 일곱 가지 색이 연속적임을 암시하는 서술을 하기도 했지만, 여러 면에서 뉴턴은 7이라는 숫자의 신성함을 맹신했다. 하필 일곱인 이유는 기독교의 신이 세상을 7일 동안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뉴턴 자신의 서술에서는 실험에서 직접 귀납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색 이론이 도출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뉴턴은 자신의 형이상학적 가정과 전제로부터 색의 이론을 얻었으며 이를 논증하기 위해 마치 결정적 실험이 두 대립하는 이론의 심판자가 되는 것처럼 서술하여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요컨대, 뉴턴이 자신의 자연철학이 가설을 배제하고 순전히 실험을 통해서만 확립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옳지 않다.
문학가 괴테가 ‘물리학자’ 뉴턴보다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열등했을까? 괴테의 『색채론』에 대한 세간의 중평은 물리학 문제에만 주목했던 뉴턴과 달리 색에 대한 심리적 및 철학적 문제까지 다룬 것이기 때문에 더 풍성하기는 하지만, 물리학적/수학적 측면에서는 괴테의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중평은 괴테의 학문을 오해한 것이다. 『색채론』을 비롯하여 괴테의 자연철학적 논의는 실상 매우 수학적이다. 괴테 자신은 「수학과 수학의 남용」에서 달랑베르를 인용하여 공리계의 논리를 설명하면서 ‘첫 번째 명제’로부터 ‘더 높은 종류의 명제’로 나아가는 방법을 논의한다.
“일련의 기하학의 명제들을 검토할 때 각 명제는 이웃하는 교의 사이에 틈이 없도록 이전의 명제로부터 유도되므로, 명제들 모두가 첫 번째 명제보다 더 많은 것으로 구성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결과로부터 다른 결과로 연속적인 전이가 이어져 점차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런 상을 통해 다양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식을 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학에서는 이 첫 번째 명제를 대개 ‘공리’라고 부른다. 괴테는 이를 연관된 현상들로 분지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현상으로 보고 여기에 ‘근원현상(Urphänomen)’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것은 괴테의 자연철학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단일성 속의 다중성’과 ‘다중성 속의 단일성’으로 이어진다. 괴테는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일어나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수리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마이클 패러데이의 자연철학에 대해 평가한 것과 유사하다. 패러데이는 수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실험가였다. 수학에 능통했던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전통적인 수학적 기호의 형태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개념이 매우 수학적임을 알아챘다. 패러데이의 방법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뒤 분석을 통해 부분에 도달하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기하학의 접근과 동등하다. 괴테의 접근도 수학적 서술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기하학의 접근과 동등하다는 점에서 더 깊은 차원에서는 수학적이며 물리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괴테는 수학에서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는 뉴턴의 광학 관련 저서들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괴테는 색채 연구를 통해 자연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탐구하면서, 기존의 이론 즉 뉴턴의 이론이 곧 자연 그 자체라고 받아들이는 대신,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자연의 ‘근원현상’을 탐구하고자 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경탄이라네. 우리가 근원현상을 보고 경탄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네. 더 높은 것은 허락되지도 않고, 더 이상의 것도 그 뒤에서 찾을 수 없으니 말이지. 이것이 한계라네. 하지만 근원현상을 목도한 사람들은 보통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네.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난 후 즉시 뒤집어서 그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려는 어린아이같이 말일세.”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829년 2월 18일)
괴테는 뉴턴 물리학의 좁은 맥락이 아니라 자연 자체의 총체성과 역동성을 어떻게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깊이 성찰하고 있었다. 그가 “자연은 총체성을 통해서 자유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색채론』 §813)라고 말하거나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결합가능한 근원적 분리를 암시하고 있거나, 아니면 분리가능한 근원적 통일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결합된 것을 분리시키고 분리된 것을 결합시키는 것이 자연의 생명이다. 이것은 영원한 수축과 팽창, 영원한 결합과 분리이며,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활동하며 존재하는 세계의 들숨과 날숨이다.” (『색채론』 §739)
라고 말할 때, 단순히 색과 관련된 자연철학의 지엽적인 새 이론 하나를 말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이는 결국 자연에 대한 탐구로서 자연철학이 정확히 무엇인가, 자연에 대한 탐구를 어떤 전제와 바탕 위에서 전개할 것인가, 빛과 색이라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뉴턴-괴테의 논쟁은 경쟁하는 두 과학이론 사이의 논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학과 메타과학 사이의 관계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현대물리학과 생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괴테가 『색채론』에서 상세하게 보여준 색에 대한 상보적 접근이 더 적절한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괴테는 빛과 색에 대한 자연철학적 탐구에서 새로운 교조가 아니라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험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다원주의적 접근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는 색을 총체적으로 탐구하는 새로운 자연철학을 모색하고 나아가 색의 활용과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