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 연구
자성반데르발스 연구의 기원
작성자 : 박제근 ㅣ 등록일 : 2026-01-12 ㅣ 조회수 : 31 ㅣ DOI : 10.3938/PhiT.35.001
박제근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자 연구재단과 삼성재단의 지원으로 양자물질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학사(1988)와 석사(1990)를 마친 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박사학위(1993)를 받고 프랑스와 영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쳤다. 이후 인하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대에 재직 중이다.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분야를 개척하였으며, 한국물리학회 학술상(2015), 한국과학상(2016), 포스코 청암상(2023) 등을 수상했다. (jgpark10@snu.ac.kr)
The Genesis of van der Waals Magnets
Je-Geun PARK
This article traces the 15-year journey (2010–2025) of pioneering research on van der Waals (vdW) magnets in Korea, starting from the original idea of “magnetic graphene”. I recount my early failures with oxide systems, and then the discovery of TMPS3 compounds as model 2D magnets in the early 2010s. Crucially, the first public talks were given in 2015–2016, including one at the 2015 Korean Physical Society Fall meeting, along with the publication of four papers in 2016. Notably, the FePS3 paper verified Onsager’s 2D Ising model experimentally, which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e field. Our work and research done by other groups triggered a global interest in the field, making vdW magnetism a major topic in condensed matter and materials science worldwide. Finally, I end with my personal reflections on the future direction of the field.
질문(~2010)
세상에 없는 새로운 연구 분야는 어떻게 시작될까? 본 글에서는 2010년부터 저자가 개척한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의 태동과 발전 과정 및 질문의 출발점, 초기의 시행착오, 돌파구, 국제적 확산, 그리고 향후의 전망이라는 일곱 개의 시기로 나누어 회고한다.
우리는 과학을 전공하면서 늘 질문이 중요하다고 배워왔고, 나 또한 30년 넘게 그렇게 가르쳐왔다. 정말 그럴까? 내가 연구 현장을 벗어나지 않은 채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35년 넘게 해 오면서, 연구에는 실로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연구가 깊은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나의 연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이 다시 다음 연구로 이어지는 일종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순환이다. 즉, 토마스 쿤의 역작인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말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 이런 경우이다.1)
하지만 내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문득 이런 나의 연구 방식에 작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처음에는 정말 사소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며칠, 몇 달, 그리고 2~3년에 걸쳐 이 질문을 곱씹다 보니, 내가 던진 고민의 답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작 내가 던지고 싶었던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하는 연구가 정말 나의 것인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씨름한 끝에, 나는 어느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내 분야에서 제법 좋은 일을 해서 한국에서 한 일로만 Nature를 비롯한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발표해도,2)3) 결국 내가 한 일은 “다른 사람이 처음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일 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이 처음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었고, 진짜 나만의 독창적인(?) 연구는 아니었다.
결국, 나만의 연구에 목말랐던 40대 초반에 나는 나만의 질문을 찾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몰라 망망대해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하루 중 조금씩, 그렇게 ‘나만의 질문’을 찾는 일을 시작한 것이 2000년대 중반, 마침 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에 방향이 보였다.
이 시기, 그래핀이 세상에 등장해 전 세계 물리학계와 재료 과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4)5) 내가 재직했던 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응집물리 분야의 거의 모든 교수들이 앞다투어 그래핀 연구에 뛰어드는 분위기였다. 그래핀 연구를 하지 않는 연구자가 나를 포함한 아주 일부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열풍이었다.
그래핀은 2차원 탄소로 이루어진 벌집구조를 가지지만 자성을 띠지 않는 물질이다. 평생 자성 연구만 해온 내게는 전혀 손댈 수 없는 분야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무관심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서 끊임없이 ‘그래핀, 그래핀’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래핀의 세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학교를 방문한 세계적인 그래핀 연구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만의 작은 질문이 생겼다.
“자성물질로 이루어진 2차원 벌집구조 물질은 없을까?” 이렇게 해서 탄생한 개념이 바로 그림 1에 보인 ‘자성 그래핀(Magnetic Graphene)’이다.6) 그리고 2010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이런 가상의 물질을 찾는 여정에 나섰다. 이런 꿈의 물질을 찾게 되면, 자성연구를 하고 있던 나에게 중요했던 세 가지 2차원 자성모델, 이징(Ising),7) XY,8)9) 하이젠베르크(Heisenberg)10) 모델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결과를 실험적으로 검증해 보겠다는 야심 찬 희망까지 가지게 되었다.
초기 실패와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발견(2010~2012)
마침 그 무렵, 우연히도 내 연구실에서는 벌집구조(honeycomb structure)를 가지는 자성 물질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Li2MnO3는 벌집구조를 가지면서 자기적 상전이를 보이는 물질로, 이론적으로는 내가 찾던 ‘자성 그래핀(Magnetic Graphene)’ 개념에 부합하는 후보로 보였다11)(그림 2). 옆에서 보면 층상구조를 하고 있어서, 그래핀처럼 쉽게 한 층씩 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 이 연구를 담당하던 박사과정 학생에게 시료를 얇게 박리해보자고 제안했다. 해당 학생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 시료를 얇게 만드는 실험에 몰두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연구실의 주력 연구는 ‘엄지 손가락만한 단결정 시료’를 가지고 비탄성 중성자 산란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즉, 얇은 시료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시도는 기존 연구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연구를 틀게 되는 파격이었다.
새로 시작한 시료를 얇게 만드는 연구는 조금씩 진전을 보이는 듯했으나, 결국 1~2년에 걸친 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끝났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산화물의 강한 공유결합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대학에서 20년 넘게 고체물리를 가르쳐왔지만, 완전히 체화되지 않은 지식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2년에 가까운 실패를 거듭하면서, 나는 소박하게 시작했던 ‘자성 그래핀’ 연구를 이쯤에서 접어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앞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1993~1994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을 때 읽었던 논문이 문득 떠올랐다. 20대 후반의 나는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 행복했기에 실험 수행을 위해 수많은 논문을 찾아 읽었는데, 그 가운데는 층상 자성물질에 대한 논문도 있었다. 나는 그 기억을 더듬어 프랑스 Nantes 대학교의 무기화학자 Raymond Brec 교수가 쓴 논문을 다시 찾아보았다.12) 바로 이 논문이 나의 자성 그래핀 연구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Brec 교수의 논문은 TMPS3 (TM=Fe, Ni, Mn) 계열 물질에 대한 상세한 리뷰였다. 이 물질군은 내가 찾고 있던 자성 벌집구조를 가지면서 층간이 반데르발스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이었다(그림 3). 더 놀라운 것은, TM 자리에 Fe, Ni, Mn을 치환하면 자기 이방성이 달라져, 각각 2차원 이징, XY, 하이젠베르크 자성 모델에 대응하는 성질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즉, 이 물질들은 2차원 자성의 근본적 질문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열쇠’였던 것이다.

Fig. 3. Lattice structure of TMPS3. Transition metals comprise of a 2-dimensional honeycomb lattice, with van der Waals bonding along the c-axis.
여담으로, 2012년 부산에서 열렸던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agnetism (ICM2012)은 자성 분야에서 3년마다 열리는 가장 큰 국제 학회였다. 이 학회에 프랑스 ILL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참석했는데,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바로 TMPS3의 비탄성 중성자 산란 연구였다. 나는 농담 삼아 “네가 하고 있는 연구에 관심이 많은데, 나중에 비탄성 중성자 산란을 하게 되면 꼭 같이 하자”고 말했다. 이 말은 15년이 지난 뒤 현실이 되었고, 실제로 공동 연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2012년 당시의 나는, 그보다 더 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도(2012~2014)
2012년 무렵, 내 연구실의 박사후연구원은 가능한 모든 TMPS3 단결정을 합성한 뒤, 스카치 테이프로 박리해보는 실험을 시작했다. 어느 날 이 연구원이 가지고 온 시료를 내 책상 위에 놓고, 바로 스카치 테이프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스카치 테이프로 시료의 위면을 조금씩 뜯어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시료가 얇아지며 바로 빛이 투과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4는 당시의 실험 사진을 보여주는데, 얇아진 시료 밑의 영문자가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내 연구실에서는 TM 자리에 3d와 4d 전이금속 원소를 폭넓게 치환하여 시료를 합성하고 자기물성을 측정했다. 이를 통해 Brec 교수가 보고했던 결과를 정밀하게 검증할 수 있었다.
![Fig. 4. Magnetic van der Waals samples with single crystal exfoliated using Scotch tape around 2012. As the FePS3 crystal becomes thinner, the text beneath becomes clearly visible, indicating optical transparency and the approach to the monolayer limit as shown in the lower image.[6]](https://webzine.kps.or.kr/_File/froala/4c04f35e9c8d130358f1e2d717627108f540b72f.png)
Fig. 4. Magnetic van der Waals samples with single crystal exfoliated using Scotch tape around 2012. As the FePS3 crystal becomes thinner, the text beneath becomes clearly visible, indicating optical transparency and the approach to the monolayer limit as shown in the lower image.6)
하지만 단원자층 수준의 자성 벌집구조 물질을 실제로 손에 넣고 나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측정 방법의 문제였다. 1993년 박사학위를 받고 20년 가까이 자성을 연구하며 거의 모든 자성 실험 기술을 다뤄왔지만, 이 얇은 층상 물질에는 그 어떤 실험방법도 적용할 수 없었다. 내게 익숙한 기존의 실험법들이 전혀 쓸모가 없어지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마치 슘페터(J. Schumpeter)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연구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순간이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했더니, 과거의 모든 도구가 쓸모없어진 것이다.
사실 이는 이미 어느 외국인 친구가 예견했던 일이었다. 내가 ‘자성 그래핀’이라는, 당시로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지고 다닐 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Even if you succeed in your dream, all the experimental techniques you know will be useless.” 그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해보니, 정말로 답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박사후연구원 세 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내 연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나와 함께 여러 방면으로 고민한 끝에 광학, 라만 분광법(Raman spectroscopy)이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당시 내 연구실에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상온 원자힘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 AFM)과 라만 분광기를 사용해서 우리는 시료의 두께에 따른 라만피크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연구를 다음 단계로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 연구실에는 본격적인 온도 측정을 하는 데 필요한 저온 라만 분광 장비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속한 기관은 엄청난 연구비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원했다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라만 장비를 구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세계 중성자 학계에서 20년 넘게 연구를 해 온 경험이 있기에, 잘 모르는 실험 장비를 새로 사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연구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레 해당 문제/질문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실험, 이론 전문가를 국내외에서 찾고 공동연구를 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일 내가 돈이 있다고 남의 전문 분야를 침범해서 장비를 차려놓고 연구를 하면 내가 그렇게 강조하는 과학생태계를 스스로 무너트리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길을 택했다. 이미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국내 연구자들을 찾고, 그들에게 협력을 요청하기로 한 것이다.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연락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미 자신의 연구로 바빴고, 내 요청은 그들에게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몇 연구자들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박제근 교수님이 부탁하신 실험을 도와드리겠지만 나는 자성을 모르니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박 교수님이 직접 하셔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필요한 핵심 실험들을 국내 연구자들과 공동 연구 형태로 추진할 수 있었다. 이들과의 협력은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데 있어 결정적 발판이 되었다.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공동연구 과정을 “지하철 2호선 오디세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13)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대학과 연구기관을 순환하며 실험을 부탁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연구의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나갔기 때문이다.
국내외 학회 발표(2015~2016)
국내 연구진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우리 연구는 빠르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분야의 연구에서 늘 그렇듯,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해당 실험 기법의 전문가였던 국내 연구자들의 헌신적인 협력 덕분에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결정적인 실험적 증거들이 하나, 둘씩 축적되면서, 연구는 점점 확고한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연구 성과를 세상에 알리는 일, 즉 논문과 학회 발표였다. 마침 2015년 가을, 나는 한국물리학회로부터 초청강연 제안을 받았다. 그 시점에 논문은 아직 심사 중이었지만,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척한 분야를 한국 학회에서 처음 발표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의 결과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2015년 가을 물리학회에서 발표하기로 결심했다. 이 발표는 학계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어 2016년 2월에는 도쿄대학교에서 개최된 한-일-대만 강상관계 학회에 초청받아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 있던 어떤 분이 ‘Crazy Idea’라고 내 발표를 혁신적으로 평해 주었다. 이 학회는 1999년부터 지속되어 동북아시아의 전통 있는 국제 워크숍으로, 아시아의 응집물리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때 발표는, 2015년 가을 한국물리학회 초청강연에 이어 세계 최초로 이루어진 국제 학회 발표였다. 그림 5는 당시 물리학회 발표 프로그램 일부이다.
![Fig. 5. World first conference presentation on magnetic van der Waals materials at the Korean Physical Society Fall Meeting, 2015.[14]](https://webzine.kps.or.kr/_File/froala/22f6abee0d8abf1776c48dbd06a9b7fc8498c9b7.png)
Fig. 5. World first conference presentation on magnetic van der Waals materials at the Korean Physical Society Fall Meeting, 2015.14)
이 두 번의 발표를 통해,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는 더 이상 한 연구실의 실험적 도전이 아니라 국제 학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연구 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2016년 ‘네 편의 논문’ 발표로 이어지는 흐름의 중요한 전주곡이었다.
네 편의 논문(2016)
이렇게 국내외 학회 발표를 하는 2015년을 맞으면서 나는 어느 저널에 논문을 투고할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2015년 초반 첫 번째로 투고한 논문은 NiPS3 연구 결과로 본격적으로 투고를 시작했지만, 결과는 혹독했다. 여러 저널에 논문을 제출했지만 계속 게재 거부가 반복되었고, 심지어 1년이 넘는 긴 심사 과정을 거친 저널에서도 결국 거절당했다.
수차례의 게재 거부 끝에, 나를 비롯한 내 연구실은 다시 한번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아, 이 연구 성과는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구나…” 그 당시 나는 연구 외적으로도 어려운 시기를 겪기 시작했기에, 이러한 연구적 좌절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긴 터널 속, 칠흑 같은 어둠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남은 선택지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겸허한 선택으로 마지막 남은 한 저널에 NiPS3 논문을 제출하기로 결심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이 결정으로 자성 반데르발스 분야 최초의 논문이라는 역사적 명예를 나에게 안겨준 결정적 순간이었다.16) 만약 이 논문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 분야를 개척했다는 사실은 훨씬 더 퇴색되었을 것이다.
NiPS3 논문이 출판된 직후, MnPS317)와 FePS318) 연구 결과도 잇달아 발표되었다. 동시에 나는 그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성 그래핀 개념과 연구의 흐름을 정리한 Viewpoint 논문을 영국 물리학회지 Journal of Physics: Condensed Matter에 발표했다.19) 이렇게 해서 2016년 한 해 동안, 총 4편의 논문이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 분야 최초의 논문으로 세상에 나왔다.
특히, FePS3 연구는 1943년 온사거(Onsager)가 제시한 2차원 이징 모델의 예측을 73년 만에 실험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에서 과학사적 의의가 크다. 온사거 이론은 오랫동안 이론적 정밀함으로만 존재했으나, FePS3의 층상 구조와 강한 이방성은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우리는 자기적 상전이와 임계 거동을 정밀하게 측정해 온사거 이론과 완벽히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으며, 이는 이론적 모델이 실제 물질에서 구현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내가 품었던 질문은 “2차원 자성 모델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였다. FePS3 결과는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한 답이자, 오랜 세월 나를 이끌어온 질문의 종착점 같은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커다란 위안과 성취감을 안겨준 결과였다.
그리고 이후(2017~)
2016년 네 편의 논문으로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의 문을 연 직후, 2017년에는 미국에서 두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하나는 Cr2Ge2Te6,20) 다른 하나는 CrI321)에 관한 연구였다. 내가 TMPS3 반강자성(antiferromagnetic) 물질에 연구의 초점을 맞춘 반면, 미국 연구진은 강자성(ferromagnetic) 물질인 Cr2Ge2Te6과 CrI3를 연구한 것이었다.
곧바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연구 그룹들이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들 그룹은 다양한 단결정과 고품질 박막 성장, 스핀광학 측정, 이론 모델링, 이종접합(heterostructure) 제작 등 각자의 강점을 살려 연구를 전개하면서,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의 폭과 깊이를 빠르게 확장시켰다.
돌이켜보면, 2010년에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를 처음 구상했을 때, 내가 강자성 물질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2014년 무렵, 강자성 물질 연구에 필수적인 커 자기 광학 효과(Magneto-Optic Kerr Effect, MOKE) 장비를 보유한 국내 연구진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지만, 아쉽게도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만약 그 제안이 성사되었다면, 강자성 반데르발스 연구에서도 우리가 세계 최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아쉽게 생각한다.
어쨌든 2017년에 들어서면서, 나는 전 세계 학계가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현장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는 재료과학 및 응집물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 영역 중 하나로 급속히 성장했다.
그림 6은 2016년 이후 자성 반데르발스 분야에서 발표된 논문 수의 증가 추이를 보여준다. 연구자 수와 논문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한때 나만의 ‘당시로서는 비주류적이고 파격적인 질문’이었던 이 주제가 세계적인 연구 흐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변화를 지켜보면서, 당시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2016년에 네 편의 논문을 서둘러 발표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결정이었는지 실감한다. 만약 그 시기를 놓쳤다면, 이 분야의 개척자로서의 나의 위치는 훨씬 더 희미해졌을 것이다.

Fig. 6. Trends of published papers on magnetic van der Waals research.
향후의 전망
그림 6에서 보듯이,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는 이제 재료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APS, MRS 등 세계 주요 학회에서도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는 핵심 세션으로 다뤄지고 있으며, 나는 2026년 APS March Meeting에서 자성 반데르발스 Symposium과 Focus Session을 주관한다. 불과 15여 년 전, ‘자성 그래핀’이라는 나만의 질문에서 출발했던 연구가 이제 세계 학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감회가 깊다.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어떤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살면서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 물리학계와 과학계도 그 의미를 차츰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나는 자성 반데르발스 분야에 대한 생각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 2018년에는 Nature에 이 분야 최초의 리뷰 논문을 발표하며,22) 내가 처음 가졌던 생각, 비전을 정리했었다(그림 7). 그리고 2025년에는 미국물리학회 발행 Review of Modern Physics의 요청으로 국내외 학자들과 함께 총 83 페이지의 긴 리뷰 논문을 투고하기도 했다.23)
![Fig. 7. A key figure from a paper published in Nature (2018), summarizing many of my ideas at the time.[22] The figure also shows my original vision for research on magnetic van der Waals materials.](https://webzine.kps.or.kr/_File/froala/2dbbb65b39d0d5bc3dcc5ad515e284baf078d1b4.png)
Fig. 7. A key figure from a paper published in Nature (2018), summarizing many of my ideas at the time.22) The figure also shows my original vision for research on magnetic van der Waals materials.
요즈음 나는 이 분야의 앞으로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물론 어떤 분야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자성 반데르발스 분야의 미래를 그려보면, 가장 중요한 연구의 축은 2차원 자성체를 이용한 새로운 물리 영역의 개척이 될 것이다. 특히, 다음 네 가지 주제가 내 연구실에서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연구 방향들이다.
• 2차원 스핀 모델을 실험적으로 직접 구현하고 그 스핀동역학(dynamics) 탐구
• 빛을 이용해 비평형(non-equilibrium) 상태를 조절하는 실험 연구
• 2차원 자성체를 다양한 형태(Moire를 비롯한)로 다른 물질과 적층(heterostructure)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물리 현상 연구
•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스핀 소자
네 가지 방향 가운데서, 장기적으로, 특히 응용 측면에서는 2차원 자성 물질을 이용한 새로운 개념의 스핀 소자(spin devices) 개발이 중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상온에서 작동하는 스핀 소자 개발은 산업적 응용과 직결되는 핵심 주제이다. 물론 내가 산업체가 요구하는 수준의 상온 소자를 직접 개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개념의 소자 물리 자체를 여는 연구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각자의 전문성을 살린 새로운 연구 주제들이 계속 발굴될 것이다. 이를 통해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는 한층 더 다채롭고 풍부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를 시작한 2010년부터 지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에는 몇 가지 큰 전환점이 있었다(그림 8). 이런 과정에 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끊임없이 부딪쳐왔다. 때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주변의 도움 덕분에 이를 극복하며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를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척할 수 있었다.
이 험난하면서도 가슴 뜨거운 여정에 함께해 준 연구실의 전·현직 학생과 연구원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또한, 공용 연구비 하나 없이 오직 학문적 호기심과 동료애만으로 연구에 동참해 준 많은 국내외 공동 연구자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 각주
- 1)T.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
- 2)S. Lee et al., Spin gap in Tl2Ru2O7 and the possible formation of Haldane chains in three-dimensional crystals, Nature Materials 5, 471 (2006).
- 3)S. Lee et al., Giant magneto-elastic coupling in multiferroic hexagonal manganites, Nature 451, 805 (2008).
- 4)K. S. Novoselov et al., Electric field effect in atomically thin carbon films, Science 306, 666 (2004).
- 5)Y. Zhang et al., Experimental observation of the quantum Hall effect and Berry’s phase in graphene, Nature 438, 201 (2005).
- 6)https://sites.google.com/view/vdw-magnetism-origin/.
- 7)L. Onsager, Crystal Statistics. I. A Two-Dimensional Model with an Order-Disorder Transition, Phys. Rev. 65, 117 (1944).
- 8)V. Berezinskii, Destruction of Long-range Order in One-Dimensional and Two-Dimensional Systems Having a Continuous Symmetry Group I, JETP 32, 493 (1971).
- 9)J. Kosterlitz and D. Thouless, Ordering, metastability and phase transitions in two-dimensional systems, J. Phys. C 6, 1181 (1973).
- 10)N. Mermin and H. Wagner, Absence of Ferromagnetism or Antiferromagnetism in One- or Two-Dimensional Isotropic Heisenberg Models, Phys. Rev. Lett. 17, 1133 (1966).
- 11)S. Lee et al., Antiferromagnetic ordering in two-dimensional honeycomb lattice Li2MnO3 single crystals, J. Phys. Condens. Matter 24, 456004 (2012).
- 12)R. Brec, Review on structural and chemical properties of transition metal phosphorus trisulfides MPS3, Solid State Ion 22, 3 (1986).
- 13)지하철 2호선의 오디세이 언론보도 자료 (2020), https://www.inews24.com/view/1283258?utm_source=chatgpt.com.
- 14)J-G. Park, Proceedings of the Korean Physical Society Fall Meeting (2015).
- 15)J-G. Park, Talk presented at the 16th Japan-Korea-Taiwan Symposium on Strongly Correlated Electron System, University of Tokyo, Japan (2016).
- 16)C-T. Kuo et al., Exfoliation and Raman spectroscopic fingerprint of few-layer NiPS3 van der Waals crystals, Scientific Reports 6, 20904 (2016).
- 17)S. Lee et al., Tunneling transport of mono- and few-layers magnetic van der Waals MnPS3, APL Materials 4, 086108 (2016).
- 18)J-U. Lee et al., Ising-Type Magnetic Ordering in Atomically Thin FePS3, Nano Lett. 16, 7433 (2016).
- 19)J-G. Park,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of 2D Magnetic van der Waals Materials: Magnetic Graphene?, J. Phys. Condens. Matter 28, 301001 (2016).
- 20)C. Gong et al., Discovery of intrinsic ferromagnetism in two-dimensional van der Waals crystals, Nature 546, 265 (2017).
- 21)B. Huang et al, Layer-dependent ferromagnetism in a van der Waals crystal down to the monolayer limit, Nature 546, 270 (2017).
- 22)K. Burch, D. Mandrus and J-G. Park, Magnetism in two-dimensional van der Waals materials, Nature 563, 47 (2018).
- 23)J-G. Park, K. Zhang, H. Cheong, J. H. Kim, C. A. Belvin, D. Hsieh, H. Ning and N. Gedik, 2D van der Waals magnets: from fundamental physics to applications, Rev. Mod. Phys. (submitted): arXiv:2505.02355.


![Fig. 1. A magnetic graphene model made around 2010.[6]](https://webzine.kps.or.kr/_File/froala/7d261a7e5257cc1dc406804ec00132292bac0143.png)
![Fig. 2. Honeycomb sturcutre of Li2MnO3 and a photo of the single crystals.[11]](https://webzine.kps.or.kr/_File/froala/a3646e868ae4b4a2d6d8c066f727ea5f2b4147f5.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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