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창
21세기의 물리학과 물리학자
작성자 : 노도영 ㅣ 등록일 : 2026-03-17 ㅣ 조회수 : 10
노 도 영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 교수
전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지난 6년간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으로 재임하며 대한민국의 기초과학 시스템 구축과 발전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해 왔다. 그간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수학에 이르기까지 각각 기초과학 분야의 세계적 동향을 지켜보는 기회도 가졌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필자의 전공 분야인 물리학이 21세기에 마주한 도전과 기회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주의 시공간과 물질의 근원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20세기 현대 과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이를 통해 우주와 물질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 물리학은 고에너지물리, 천체물리, 핵물리, 응집물리, 통계물리 등 세부 분야로 체계화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진보는 전자공학, 초고속통신, 에너지산업, 레이저기술 등 다양한 공학 및 첨단 산업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견인해 왔다. 한국물리학회 홍보잡지명이 ‘물리학과 첨단기술’인 이유이기도 하다.
21세기 접어들며 힉스입자(Higgs Boson), 중력파 등 20세기에 이루어진 근본적인 물리현상의 이론적 예측들이 전 지구적 협력을 통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이러한 검증은 물리학이 인류 지성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미래 물리학 발전에 있어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물리학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시각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톡홀름 왕립 공과대학의 스티그 스텐홀름(Stig Stenholm) 교수는 “물리학이 투입한 노력에 비해 얻는 성과가 줄어드는 지점에 도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결과는 계속 나오지만, 과거에 비해 그 발견을 위해 치러야 할 자본과 시간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그 결과가 갖는 근본적인 물리학적 중요성은 과거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학계 내부에서는 이제 물리학보다는 분자 생물학이나 전자공학 연구처럼 역동적이고 기회가 풍부한 분야가 젊은 연구자들에게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리학에 뿌리를 둔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의 급부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공지능과 양자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물리학이 사회에 제공한 가장 영향력이 큰 도구이며 인간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불러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인류가 직면한 기후, 에너지, 감염병, 정보보안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자기술, 인공지능을 비롯한 다양한 새로운 도구들을 제시하고, 이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케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인류 사회를 담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리학은 물리학자가 하는 것(Physics is what physicists do—Brian Pippard)”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21세기의 물리학자는 인류 사회와 타 학문 분야를 위한 새로운 도구(tool)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며, 이것이 21세기의 물리학의 핵심적인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 및 물질의 근원과 관련한 물리학의 거대한 난제에 도전하는 것과 물리학 분야 자체에서 과학적 기회를 확장하는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물리학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인류 공통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이러한 연구에는 거대시설과 막대한 재원이 소요될 수 있는 만큼, 여러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글로벌 협력체계가 공고히 유지되어야 한다. 동시에 21세기의 물리학은 타 학문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인류를 위한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이오물리, 양자정보기술 등 인류 사회의 지속성과 미래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물리학 기반 다학제간 융합 연구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국가 차원에서도 견고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물리학에 기초를 둔 새로운 미래 기술개발에 대한 전략적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리학이 21세기에서도 꽃을 피우려면 미국 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에서 발표한 ‘Physics in New Era’에서 적시한 것처럼 물리학계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발맞추어야 한다. 21세기 물리학자는 과거 물리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유연한 사고와 확장된 방향성을 가질 필요가 있고 이것이 21세기 물리학을 새롭게 정의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