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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고에너지물리학, 다시 프레임을 세우다—한국고에너지물리학회장에 취임하며

작성자 : 오정근 ㅣ 등록일 : 2026-05-21 ㅣ 조회수 : 23

캡션오 정 근
한국고에너지물리학회 회장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오늘날 고에너지물리학은 단순히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는 문제를 넘어선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제는 ‘자연의 근본 법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검증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론과 실험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나누어 보는 방식은 점차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측정하고 관측할 것인가는 결국 무엇을 물을 것인가의 문제이며, 이 둘은 하나의 질문의 틀 안에서 함께 정해져야 합니다.

힉스 보손(Higgs boson)의 발견 이후 표준모형은 매우 높은 정밀도로 검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의 물리—암흑물질/에너지(Dark matter/Energy), 자연성문제(Naturalness problem), 양자중력(Quantum gravity) 등—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기존의 접근만으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최근 중력파(Gravitational waves) 검출을 계기로 다중신호(Multi-messenger) 천체물리학이 중요한 연구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관측 수단이 늘어났다는 의미를 넘어 고에너지물리학의 영역 자체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속기 기반 실험과 더불어 우주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고에너지의 극한 현상을 직접 관측하고 해석하는 접근이 본격적으로 포함되고 연구의 프레임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 축은 지상에서 고에너지 환경을 재현하여 물리현상을 정밀하게 검증하는 실험물리학이고, 다른 한 축은 천체에서 오는 신호를 통해 고에너지 환경의 사건으로부터 발생하는 자연의 법칙을 직접 확인하는 천체관측입니다. 이 두 축은 서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우주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지상에서 재현하여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그 입증된 사실이 실제 우주에서 일어나는지를 관측을 통해 확인하는 상보적인 관계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고에너지물리학의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고에너지물리학은 과거에 인식되어왔던, 더 이상 가속기 기반 입자물리학 실험에 국한된 분야가 아닙니다. 이제는 핵·입자·천체물리학을 아우르며, 이론, 실험, 관측을 통합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재정의 되어야 합니다. 중력파, 중성미자, 감마선 등 다양한 신호를 함께 분석하는 접근은 입자물리와 천체물리 사이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분야 간 결합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의 변화입니다. 고에너지물리학은 특정 장치나 방법에 한정된 학문이 아니라 자연의 극한 에너지 현상을 다루는 보다 넓은 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 이휘소 박사는 페르미연구소 이론연구부장 시절, 단순히 이론의 정합성을 따지는 데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에너지 영역에서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험의 방향을 제시하며, 연구 프로그램 자체를 설계하고 구현하려는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론이 실험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험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이러한 이휘소 박사의 철학과 비전을 계승하여, 유사한 연구 체계가 국내에도 정착되기를 바라는 염원 속에서 2005년 한국고에너지물리협의회가 발족되었고, 가칭 ‘벤자민 리 연구소’ 설립을 위한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 이 정신과 노력을 계승, 발전하고자 2022년 한국고에너지물리학회가 사단법인으로 출범하였습니다. 한국고에너지물리학회는 확장된 고에너지물리학의 정의 아래에서 핵·입자·천체물리학 분야의 융합과 시너지를 강조하며 자연을 한층 더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학회는 처음부터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한국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 설립을 목표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는 한 과학자의 정신과 철학을 기리는 차원을 넘어, 이론과 실험을 통합하는 연구 틀을 구축하고 국제 연구 흐름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 연구 역량을 하나로 묶고, 국제 공동연구 속에서 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확보해야 합니다. 연구자들의 노력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국내 고에너지물리학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국가적 성과를 넘어,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인류의 지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고에너지물리학회는 그 가교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국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 설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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