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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봄 물리학회에서 만난 어느 젊은 박사님께 드리는 편지

작성자 : 황동욱 ㅣ 등록일 : 2026-06-16 ㅣ 조회수 : 18

캡션황 동 욱
출연연특별위원회 위원장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박사님께,

안녕하세요. 물리학회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길은 편하셨는지요. “출연연의 물리학, 물리학자에게 출연연” 세션에서 만났던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황동욱입니다.

이번 학회가 박사님께 배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자리였기를 바랍니다. 흥미로운 세션이 많았을 텐데, 출연연 특별세션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 기관의 연구성과와 비전을 접하시며 대한민국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휴식 시간에 출연연으로의 진로를 고민하시는 박사님께서 던지신 질문들에 대해 짧게 답을 드리긴 했지만,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 싶어,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고민하시는 박사님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주변 분들이 계신다면 함께 나누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첫 번째 질문은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취직할 때 도움이 되는 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취업 준비 자체는 어느 조직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류를 꼼꼼히 준비하고, 발표와 면접 역시 충분히 연습해야 하지요. 다만 연구소에는 연구소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원 기관을 충분히 이해하는 일입니다. 지원자의 시각과 기관의 시각은 생각보다 많이 다릅니다. 왜 특정 분야의 연구자를 채용하는지, 기관이 어떤 장기 방향 속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의외로 공개된 정보가 많습니다. 기관의 미션, 장기 연구계획, 주요 연구사업, 최근 논문과 보고서 등을 살펴보면 기관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물리학회 같은 자리에서 출연연 연구자들과 직접 이야기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관심 있는 분야와 기관에 대해 많이 알수록 준비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기업이나 연구기관은 대학보다 목표 지향성이 강하고, 기관마다 성격도 상당히 다릅니다. 따라서 기관의 방향과 자신의 연구 방향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연구자의 경력 역시 단순히 “어디를 거쳤는가”보다, 연구 흐름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원하는 기관의 연구 주제와 잘 맞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장기적인 연구 방향과 기관의 비전이 조화를 이루는지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PBS (Project-Based System)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신문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데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하셨지요. 이와 함께 전략연구사업이나 R&R(Role & Responsibility) 같은 개념도 함께 설명드리면 출연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매년 인건비, 연구비, 운영비 예산을 정부와 국회로부터 승인받습니다. 특히 인건비는 승인된 예산 이상으로 집행할 수 없습니다. PBS는 이 인건비 예산 중 일부만 정부 출연금으로 지원하고, 부족한 부분은 연구과제를 수주해 충당하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쉽게 말하면 연구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확보해야 기관 운영과 연구활동이 유지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물론 실제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수탁과제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PBS제도 자체는 연구활동의 동기를 높이려는 취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운영되면서 여러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기관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적으로 수탁사업 확보에 매달리게 되었고, 장기적이고 고유한 연구보다 단기 성과 중심의 과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연구기관 간 차별성도 점차 약해졌고요. 결국 기관 고유 연구의 중요도가 줄어들고, 단기 기술개발성 과제가 중심이 되는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PBS 폐지를 결정하고, 관련 후속 조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제도를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려워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전략연구사업입니다. 각 연구기관이 국가와 사회의 수요에 기반한 연구사업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 중 인건비 부분을 몇 년 후에 출연금의 인건비로 전환하는 방식입니다.

4~5년 정도가 지나면 지금보다 안정적인 연구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출연연 연구는 크게 두 축으로 운영될 것 같습니다. 하나는 기관의 장기 방향에 맞춘 고유 연구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적 수요에 대응하는 전략 연구 사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본 과목과 응용 과목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앞서 계속 등장했던 “임무”, “장기 계획”, “R&R” 같은 단어들은 연구자에게 다소 낯설거나 거리감 있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연구기관인 만큼, 사회적 역할과 국가적 필요를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 기관의 기본 임무는 법률로 정의되어 있으며,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 R&R입니다. 기관들은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다시 그 계획에 따라 연구사업을 기획합니다. 연구자 개인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거나 연구 방향을 설득할 때는 이런 제도적 틀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또 현재하고 있는 연구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를 예측하는 것에도 한몫하게 되겠지요.

이런, 박사님, 제 이야기가 점점 재미없고 지루해지네요. 출연연은 본질적으로 변화 속도가 느린 조직입니다. 새로운 연구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확보해 실제 연구가 시작되기까지 몇 년씩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도 변화 역시 매우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빠른 변화를 기대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장점도 분명합니다.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의 협력, 비교적 안정적인 연구환경과 정년, 기업보다 개방적인 연구문화, 안정적인 연구비 등은 출연연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출연연은 꽤 큰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시각이 계속 유입되어야 합니다. 결국 제도도 중요하지만,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려는 구성원들의 고민과 논의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사님처럼 출연연에서 미래를 꿈꾸고 도전하려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지금의 변화 역시 좋은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너무 긴 이야기를 드렸네요. 다소 딱딱한 편지가 되었지만, 앞으로도 출연연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아는 범위 안에서 성심껏 답드리겠습니다.

박사님의 연구와 앞날에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출연연은 충분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점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물리학회에서도 다시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황동욱 드림

코리아스펙트랄프로덕츠㈜코리아스펙트랄프로덕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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