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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PL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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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디오 생활의 발자취

작성자 : 이장로 ㅣ 등록일 : 2020-12-02 ㅣ 조회수 : 2,176

저자약력

이장로(李章魯)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 이학사(1966)와 동대학원 이학박사(1973) 학위를 취득한 후 전북대 조교수(1975-1978), 숙명여대 부교수, 교수, 명예교수(1978-2007), 이과대학장(1987-1990, 1997-2001) 등을 역임하였다. 한국물리학회 평의원(1973-), 이사(2005-2006), 한국자기학회 회장(2000-2002)과 IEEE 회원(1997-)으로 활동하며, 자기메모리(MRAM)와 관련된 자성체 물리학을 연구하였다. 한국물리학회 학술장려상(1975), 한국자기학회 학술논문상(1993), 과학기술부 장관상(2003), 대한민국 대통령상(2004), 강일구 상(2007) 등을 수상하였으며 녹조근정훈장(2007)을 받았다. ‘해석역학’, ‘과학과 함께 걸어오다’ 등 저역서 9권, SCI 논문 122편 포함 184편의 국내외 학술논문 및 225회의 국내외 학술발표논문, 6건의 국내외 특허(한국, 미국, 유럽, 일본)를 보유하고 있다. (jrrhee@sm.ac.kr)


나는 요즈음 오피스텔에 도착하면 오디오 시스템을 켜기 시작해 음악을 들으며 일을 시작하고 오피스를 다시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음악을 듣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분위기에서 책도 보고 글도 쓰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가운데 오피스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음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즐거움이 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러시아가 낳은 20세기 위대한 첼리스트 샤프란(Daniil Shafran)의 ‘바흐 무반주 첼로연주’가 실내에 울려 퍼지고 있다.

내 오디오 생활의 시작은 약 75년 전인 초등학교 입학(1948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진공관으로 구성된 사과상자 크기만한 라디오로 뉴스를 즐겨 청취하시던 아버지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음악을 듣게 되면서 부터다. 라디오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고 믿었던 어린 나이(4~5살)에 라디오 듣기체험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 백수를 맞이하신 어머니께서는 그 당시에, 축음기(유성기)로 ‘춘향가’와 ‘흥부가’를 즐겨 들으셨다. 그 축음기는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동력으로 태엽을 감아서 동작시켰다. 다른 SP 음반을 바꿔 끼울 때마다 새로운 바늘로 교환해가면서 사용하였다. 심지어 새 바늘이 무뎌지면 숫돌에 바늘을 뽀쪽하게 갈아서 다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사운드박스에 달린 바늘로 음반의 소리골(groove)을 읽어주면 신호가 전달되고 진동판을 진동시켜 소리가 구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 턴테이블의 카트리지(cartridge)에 달린 바늘에 해당한다. 이 축음기는 감긴 태엽이 풀려서 음반의 회전속도가 줄어들게 되면 축 늘어진 소리가 난다. 그래서 축음기의 태엽이 풀리기 전에 빨리 태엽을 감아 재생속도를 정상화시켜 줘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곤 하였다. 축음기 동작 내내 감내해야만 하는 불편한 점들이었지만, 그 당시 축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은 여전히 내귓전에 맴돌고, 그때 분위기 또한 내 머릿속 한켠에 아직도 자리잡고 있다.

저녁 때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우리 집에 오셔서 축음기 소리에 맞춰 ‘쑥대머리’창을 열창하고, 민요 ‘남원산성’을 부를 때에는 춤까지 덩실덩실 추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즉, 동네 어르신들의 축음기 오디오 동호회가 탄생한 것이다. 나는 축음기 태엽을 감고 음반도 바꾸어주면서 바늘도 갈아 끼우는 조수이자 DJ로서 음악 동호회의 보조원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였다.

그 무렵,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의 이모님 댁에서 새로 구입한 전축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이것은 턴테이블이 전력으로 구동되며 카트리지에 달린 바늘로 신호를 읽고 증폭회로를 거쳐 음량조절이 가능하고 스피커로 구동되는 일체형 오디오 앰프 시스템이었다. 축음기와 비교하여 태엽을 감는 일, 바늘을 바꿔주는 일 등이 생략되고 자동화되어 대단한 편의성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성능까지도 월등히 개선된 것이었다. 그 후 틈나면 친구까지 대동하고 이모님 댁을 방문하여 청음의 기회를 가지곤 하였다.

오랫동안 주로 뉴스 청취용으로 사용하였던 덩치 큰 진공관식 라디오가 어느날 갑자기 고장이 났다. 동네에서 수리를 잘 한다고 소문난 분에게 수리를 맡겼는데 그분은 무심하게도 우리집의 소중한 라디오를 되돌려주지 않았다. 양심 없는 그분을 원망도 해보았고 간절히 기도도 해보았지만, 이 라디오는 영영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라디오에서 나오던 정겨운 음악소리의 그리움보다 훨씬 더 큰 서운한 마음이 어린 나를 한동안 힘들게 하였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미네이쳐 진공관(miniature tube)으로 만들어지고 배터리로 동작하며 리시바로 듣는 외삼촌의 포터블 소형 라디오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전기공급을 위해 콘센트에 연결하지 않고도 음악이 나오는 모습에 첫눈에 반했었지만 배터리 소모가 커 구동시간이 한두 시간에 불과하여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론 흥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1948년 미국 벨연구소의 ‘존 바딘, 월터 브래튼, 윌리엄 쇼클리’에 의해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다. 큰 부피와 엄청난 전력 소모, 짧은 수명 등 단점이 컸던 진공관을 마법의 돌, 반도체 트랜지스터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 세기의 발명품으로 전자통신업계의 커다란 혁명이 일어났다. 이것을 사용하여 조립한 라디오는 크기가 대폭 줄어들었고 배터리 동작 시간이 많이 연장되어 성능면에서도 훨씬 발전한 획기적인 제품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어느날, 옆집 초등학교 친구의 서울 친척이 크기가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음악을 청취하는 것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부러움을 한동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라디오의 대혁명을 목전에서 확인한 것이다.

손가락보다 더 가느다란 배터리 두 개의 전원으로 장시간 작동 가능할 뿐만 아니라 스피커를 통해서 크게 울려 퍼지는 음악회 프로그램을 이동하면서까지도 청취할 수 있는 그 라디오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오디오 장치를 만들어낸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경외(敬畏)로움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 전자제품 수입상을 하는 초등학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당시에는 귀하던 TV를 구매하였다. TV 구매를 원하셨던 부모님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가끔씩 TV로 방송되는 음악회 프로그램을 통하여 관현악단의 연주를 시청하면서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라서 그 당시 인기있었던 매일 연속극 ‘여로’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우리집은 시골 동네 어르신들의 TV 시청을 위한 사랑방이 되기도 하였다.

잠시 몸 담았던 초등학교 교사 시절, 음악 시간의 에피소드도 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으로 시작하는 동요 ‘섬집 아기’ 음악수업시간, 풍금소리에 아이들의 노래가 시작되었지만 나의 반주는 노래소리에 제대로 따라 가지 못했다. 나는 식은 땀흘리며 중단하지 않고 끝마친 긴장 속의 음악수업에 대한 기억이 있다.

수업 전 연습을 많이 한다고 했지만 막상 수업시간에선 실수가 드러난 것이다. 노래에 열중한 아이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로선 자책과 부끄러움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음악은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른다거나 악기를 다루는 기능이 떨어짐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후 풍금이나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해 봤지만 악기연주 능력은 크게 향상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오디오 음악감상을 통한 나의 음악사랑과 음악생활은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1년 6개월 동안의 초등학교 교사를 마치고, 드디어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1960년, 춥지만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이른 봄으로 기억된다. 서울 청계천 상가에 들려 꿈에 그리던 손바닥 크기의 중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인 나의 오디오 생활은 시작되었다. 깊은 밤중에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관현악 모음곡인 ‘G 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클래식 음악감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 이 작은 라디오를 통해서 실현되었다고나 할까.

얼마 안되어 트랜지스터 라디오 공급이 확산되어 가격도 많이 하락했다. 방학 때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이것을 하나씩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재학 중에는 배터리로 구동되는 포터블 간이전축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보급되었다. 동기 몇 사람이 이것을 이용해 회화용 음반을 보조 교재로 하는 영어회화 동아리를 만들었다. 안암동 캠퍼스 석탑과 인촌 묘소 아래 잔디에서 회화 공부와 함께 음악 감상을 하면서 젊음을 구가하고 정서 감정을 키우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또한 하숙집 동료학생들과 함께 당시에는 국산화가 되지못했던 성능 좋은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즐겨들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그날의 새로운 뉴스와 시사 정보를 청취하고 때로는 멋있는 멜로디를 함께 감상하면서 뜻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통신 장교로 군복무할 때는 부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라디오로 FM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군 복무 시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오디오 청음은 지루한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68년, 조교를 겸한 대학원 재학 시절은 세운상가에서 튜너가 달린 앰프, 스피커, 턴테이블 등 부속품을 낱개로 구매하여 전축을 독자적으로 조립하는 것이 유행하던 때였다. 방학때는 시골 구경을 위해 함께 동행한 학부생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여 시골집에 들을만한 전축을 손수 조립 설치하여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도 하였다. 이 전축의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저음과 고음이 어우러진 멋드러진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흥겨움과 즐거움 또한 저절로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회화공부를 한다는 명분으로 소형 마이크로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 릴테이프 녹음기를 구매하여 좋아하는 음악 소스를 녹음, 저장해 놓고 듣고 싶은 곡을 자유자재로 들을 수 있었다.

정밀과학에 대한 연구실험을 하다보니 필요한 간단한 장치는 직접 제작하기도 하고 웬만한 전자기계 장치의 간단한 고장처치는 몸소 하게 된다. 이런 전자기계 장치들에 대한 메카니즘을 파악하면 이것들을 사랑하게 되고 수리하는 취미도 생기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대부분의 오디오 제품이 전자기계 장치이다 보니, 이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대한 오묘함을 느끼게 되고 오디오에 대한 관심도 배가(倍加)된다. 따라서 음악을 더욱더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 오디오 제품을 살 수 없는 부족한 경제력이 늘 아쉬웠지만, 아직은 쓸만한 성능좋은 중고제품을 구매해서 얻는 즐거움은 그 무엇에 비교할 바가 못된다.

원하는 중고 오디오 제품을 구매하려면 도시락으로 생활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줄이며 용돈을 아껴야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다음 세대의 신제품이 나오면 악성재고를 떠안아 달라는 오디오샵의 얄팍한 상술도 오디오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한 몫 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비디오와 함께 즐기면 금상첨화겠지만 연구실험을 하는 동안에는 오디오만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음악 청음을 더욱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연구실험하는 데 상대적으로 지장도 없고 때로는 능률을 향샹시켜 주기 때문이다.

오랜 연구실험을 하는 동안에 듣게 되는 기계음 소리와 팬 회전 소리 등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고 평안과 안정을 유지하게 해주었던 것은 웬일일까. 소음을 평안한 음악으로 대체하고 승화시킴으로써 그런 것이 아닐까. 소위 음악의 생활화를 내자신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 후에는 아내도 음악을 좋아해서 보다 성능이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구매하는 데 걸림돌이 줄어들었다. 한쪽 채널이 85와트 출력을 가진 마란츠 리시버, 카세트 테이프 데크와 중고품이지만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듀얼 턴테이블, 스피커 시스템 등 당시 인기가 높았던 제품들을 나로선 처음으로 큰 비용을 들여 구매하게 되었다. 흥분한 나머지 한동안 밤을 새워가면서 밤낮으로 음악을 즐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아내는 남편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성격이다. 아내는 나의 소망을 실현시켜주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피리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 오디오 시스템 구매 역시 적금을 깨면서까지 협조해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악감상을 즐기고 있다.

재직하는 동안에는 교수 연구실과 학장실에도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줄곧 음악을 즐겨 들었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음악을 좋아하면서 평소 전자제품 및 오디오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구매 자문역까지 도맡아 왔던, 큰아들 역시 자기 교수실에 중고 일색이지만 내 버금가는 오디오 시스템을 마련하고 오디오를 즐기고 있다.

또한,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작은 아들에게도 국제회의 참석차 미국 출장 때 구매해 온 일체형 미니 오디오 컴포넌트를 설치해주고 음악이 있는 병원 분위기를 만들기를 권장하고 있다.

학생시절에는 음악회 참석이 쉽지 않았으나, 결혼하면서부터 ‘휘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회의 국내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나이다. 학회 출장 때에는 현지에서 공연일정이 맞는 연주회를 즐겨 찾았다. 특히 로마학회 때 야외 공연장에서의 푸치니의 토스카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평소 좋아하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은 너무나도 좋았다. 이와 함께 자주 즐기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 나오는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오페라를 볼 기회를 갖지못해 늘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음악대학이 주관하는 정기연주회에 초청을 받아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미국유학 후 첼로전공 음대교수로 재직 중인 아내 친구 딸의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하여 첼로연주를 즐길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덩치 큰 첼로악기에서 나오는 애잔한 저음에 매료되었다. 특히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와 요요마(Yo-Yo Ma) 그리고 샤프란(Shafran)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에 큰아들로부터 이들 연주자의 첼로음악이 수록된 LP 전집을 생일선물로 받아서 그 즐거움을 더해가고 있다.

약 12년 전 반포동으로 이사온 후에는 아파트 음악 오디오 동호회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오디오샵을 방문하여 오디오 정보를 교환하고, 동호회 회원 소장 오디오 시스템을 번갈아가며 소개하고 새로운 음반을 청음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왜 CD나 MP3 음악보다는 LP 음악을 더 환호하는가? 나역시 LP 음반 음악을 더 선호하고 즐기고 있는 편이다.

그러면 여러 가지 다른 형식을 가진 음악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19세기 말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고 약 70년만인 20세기 중반에 LP 음반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날로그(analogue) 시대는 거의 100년 이상 인류와 함께 해온 것이다.

그러나 LP가 나온지 36년 만인 1894년 디지탈(digital) 소스인 CD가 필립스사의 기술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LP는 톤암에 부착된 카트리지 바늘로 소리골의 아날로그 신호를 읽어 음악을 재생하는데 대하여, CD는 레이저 빔이 나오는 픽업으로 그 표면의 디지털 신호를 읽어 재생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CD는 무한복제가 가능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다. CD가 음악의 메인 형식으로 자리 잡는 동안 LP와 턴테이블은 과거의 유물로 냉대를 받았고 쓸데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MP3라는 새로운 음악형식이 등장하여 CD 시장을 잠식해 버렸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주로 음원파일로 음악을 들으며 CD를 더 이상 구입하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바꾸어 갔다. 즉, CD는 LP보다 훨씬 더 빨리 그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LP를 찾고 즐기는 매니아들이 점점 늘어나서 LP 음반과 턴테이블은 여전히 판매 수량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왜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음반 클리닝, 관리 등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LP 소리를 마냥 즐기는지 궁금해진다. LP의 매력은 정감어린 음질뿐 아니라 커다란 자켓을 손에 쥐고 아트워크를 감상하고 가사를 음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LP 소리 그 자체가 힘이 있고 살아있으며 조금 차가우면서 깊이감과 따스함이 공존한다. CD에서 느끼기 어려운 원음에 가까운 고역 재생이 깔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청 주파수는 20~20 kHz이지만 인간이 가청 주파수 밖의 주파수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해보자. 음악애호가들 중에는 가청주파수보다 더 높은 주파수는 귀대신 몸으로 그 느낌을 체험한다고 한다.

CD가 재생 가능한 최대 주파수가 22 kHz에 불과하지만 LP의 카트리지 경우에는 무려 45 kHz까지 가능하며, 최근에는 100 kHz까지 재생 가능한 카트리지도 나와 있다. 이런 것이 그런 매력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즉 그런 매력 때문에 디지탈 음악이 발전해도 LP가 음악 애호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심성이 곱고 정서 감정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서 감정이 풍부한 사람치고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악 청음은 정서 감정을 살찌우는 데 좋은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 음악으로 병을 치유하는 음악치료학과가 인기가 있는 것이 이것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영국의 근대 철학자인 ‘토머스 칼라일’은 천사의 언어인 음악이 흐르는 곳에 건강과 평화가 있고 행복이 깃든다고 말했다.

CD 음반을 모으려고 점심을 초콜렛바로 대신하면서 음반 모으기에만 용돈을 썼던 큰 아들의 음악 사랑 덕분에 3천여 장이 비치된 나의 CD 장식장들은 CD 가게를 방불케 한다. 대부분은 클래식 음악이고 재즈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현재는 큰아들 덕분에 소장이 가능하게된 CD와 젊었을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LP 음반 3백여 장, 그리고 소장하고 있는 음반을 디지털화하여 대용량 저장장치(HDD)에 저장한 음원 약 3십만 곡을 2세트의 NAS(Network Attached Storage)를 통하여 루민(Music Network Player)장치에 연결하고 룬(Roon)음악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아이패드로 편하게 선곡하고 비교감상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나의 소장 앰프 시스템을 소개한다. 턴테이블로는 중고품 일색으로 100주년 기념작인 토렌스(126 MK3), 벨트구동식인 린(손덱 LP12), 초창기 모터직접구동식인 테크닉스, MC 카트리지(데논 DL-103R)와 슈어 V15 type III를 사용하고, 전원장치로 국내 물리학도가 제작한 2 킬로와트 용량의 내추어와 이소텍 전원조정기를 사용한다. 그리고 CD 플레이어는 D/A 컨버터와 트랜스포트가 분리된 티악(D1, T1), 에소테릭(X-5 CDP), LD와 CD 겸용인 파이어니아(CLD-3390)를, 튜너는 소니(550ES)와 출고시기가 오래된 중고로 몸소 여러 차례 수리를 해서 정감이 가는 마그넘(101T)과 브라운 등을 가지고 있다.

프리 앰프는 진공관 형식인 오디오 리서치 레퍼런스(5SE), 학교부근 CD 가게에서 중고로 헐값에 구입하고 회로소자가 훤히 보이게 개조된 나체형 클라인 등이고, 파워앰프는 정통 진공관 형식의 매킨토시(275), 고슴도치를 연상시키며 중고로 구입한 패스알레프 0 모노불럭과 맨리 300B 진공관 모노불럭 등이다.

스피커는 회사 150주년 기념작으로 출고하여 91 db의 감도를 가진 덩치가 큰 패시브형인 ATC SCM 150 ASL 타워 15, 트위터가 혼형 나팔형으로 제작되고 액티브형인 아방가르드 우노 G2, 그리고 B & W(802 D), 역시 CD 가게에서 싼값으로 구매한 JM랩 유토피아와 셀레스천(12SL) 등이다.

인티 앰프로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주는 것으로 알려진 진공관 300B를 사용하여 수제작한 마스타 사운드(300B PSE), 그리고 출력은 작지만 A클래스로 감도가 낮은 스피커도 잘 울려주고 입출력 단자가 많을 뿐 아니라 스테레오 시그널 디스플레이창 등 편의성이 높아진 럭스만(590 AX)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음악의 장르 및 상황에 따라 프리앰프 및 파워앰프 그리고 스피커를 독립적으로 선별 조합하여 각각 특성이 다른 오디오 시스템 운용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 ATC SCM 150 ASL 타워 15형과 아방가르드 우노 G2 등 스피커 시스템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인티앰프 럭스만에 마그넘 튜너를 연결하여 FM 방송을 즐긴다. 그리고 LP 음반 음악을 들을 때에는 턴테이블 린 손덱을 주로 연결하여 청음한다.

퇴임 후에는 집필활동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조심스럽게 가지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작은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오피스텔 한 켠에는 나의 봉직생활 중 큰 힘을 주었던 사랑하는 오디오 친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반포동 아파트에는 서초동 오피스와는 별도로, 중고들로 구성되었지만 청음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했다. 안방에도 미니 일체형 JVC 마이크로 오디오 시스템을 마련하고 디지털스트리밍으로 언제, 어디서나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이긴 하지만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중요한 생활공간이다. 클래식 FM 방송채널을 주로 청취하지만, 내장 CDP용 CD 음반 비치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선호음악을 미리 저장해 둔 USB 메모리 청음도 병행하면서 이동 중에도 오디오생활을 즐기고 있다.

비록 소박한 시스템을 갖추긴 했지만 생활공간 곳곳에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게 된 셈이다. 나는 이들 시스템으로 음악 감상을 하는 것이 근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요즈음 난청이나 실명 위기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나 친지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든다. 아직은 볼 수 있고 듣는 것에 큰 불편이 없는 나로선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오래 오래 즐거운 음악을 청음하면서 오디오 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것이 최대의 바람이다.

한편, 비슷한 취미로 아직까지도 새로운 음반과 오디오 장비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큰 아들, 또한 뉴트로(복고를 즐김)에 깊게 빠져 용돈을 탈탈 털어 동네의 창고세일에서 테이프 플레이어와 테이프 음반을 즐기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손자와의 교감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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