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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PLAZA

물리 이야기

시간여행의 몇 가지 풍경

작성자 : 김영균 ㅣ 등록일 : 2022-02-21 ㅣ 조회수 : 1,076

저자약력

김영균 교수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이학사)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ygkim@gnue.ac.kr)


1950년 여름 어느 날, 미국의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와 그의 물리학자 동료들이 점심을 먹으러 모였다. 그들은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비행접시(flying saucers)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에밀 코노핀스키(Emil Konopinski)는 뉴요커(The New Yoker)라는 잡지에 실린 카툰을 떠올렸다. 당시 뉴욕시 거리에서 공용 쓰레기통이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그림이었는데, 비행접시에서 나온 외계인들이 쓰레기통을 옮기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듣고 있던 페르미는 쓰레기통이 사라지는 것과 비행접시 목격담을 모두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론이라고 농담을 했다. 대화의 주제는 비행접시가 어떻게든 광속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 등으로 이어졌다. 허버트 요크(Herbert York)의 기억에 따르면, 페르미는 지구 같은 행성의 존재 확률, 그런 행성에서 생명이 발생할 확률, 발생한 생명이 (인간 같은) 지적 생명체로 진화할 확률, 첨단 기술의 그럴듯한 발생과 지속, 등등 일련의 계산을 빠르게 해 나갔다. 그는 그런 계산에 기초해 (항성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외계인이 아주 오래 전에, 그것도 여러 번, 지구를 방문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의 기억에 따르면 다른 대화를 나누다 뜬금없이) 페르미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외계인들은) 다들 어디 있는 거지?(Where is everybody?)” 이른바 페르미 역설(The Fermi Paradox)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항성간 여행(interstella travel)이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여행이 가능할 만큼 고등한 문명(advanced civilization)이 충분히 오래 지속되지 못 하든지. 아니면...

그렇다면 시간여행(time travel)은 어떤가?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roge Wells, 1866‒1946)가 1895년에 SF소설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을 출판한 이후, 시간여행에 대한 수많은 가설과 세계관이 등장했다.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s)로 유명한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Friedrich Gödel, 1906‒1978)이 일반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의 해(解)로 이른바  ‘닫힌 시간꼴 곡선(closed timelike curves)’을 포함하는 해를 발견함으로써, 시간여행은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괴델은 1949년에 학술지 에 실린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닫힌 시간꼴 선들(closed time-like lines) 또한 존재한다. 특히 P, Q가 물질의 한 세계선 위의 어떤 두 점이고, 이 선 위에서 P가 Q에 선행한다면, 그 위에서 Q가 P에 선행하는, P와 Q를 연결하는 시간꼴 선(a time-like line)이 존재한다. 즉, 이런 세계들에서는 과거로 여행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 영향을 주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2017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위해 과학 자문을 했던,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 1940‒)은, 그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1988년에 학술지 에 출판된 논문에서 “만약 물리 법칙이 어떤 고등한 문명이 항성간 여행을 위해 공간에 웜홀(wormhole)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그 웜홀은 인과율을 깨뜨릴 수도 있는 타임머신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능성에 동의하지 않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은 1992년에 학술지 에 출판된 논문에서 “물리 법칙이 닫힌 시간꼴 곡선의 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연대순 보호 가설(Chronology protection conjecture)’을 제시했다. 호킹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실험적 증거 또한 있는데, 우리가 미래에서 온 관광객 무리에게 침략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호킹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인들은) 다들 어디 있는 거지?”

그래서인지 소설가 김보영은 2009년에 웹진 <크로스로드>에 게재되었던 단편소설 <0과 1 사이>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람들은 말하곤 하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골고다 언덕에, 부처가 명상에 잠겼던 보리수 앞에, 마호메트가 계시를 들었던 히라산 동굴 앞에, 사진기를 든 관광객들이 바글거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인류가 미래의 그 어느 시간에든 시간여행기(時間旅行機)를 만들지 못한다는 증명이 된 것과도 같다고.” 그리고 이 문장은 소설가 박성환이 시간여행에 관한 단편소설 <관광지에서>를 쓰게 된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 역시나 2009년에 웹진 <크로스로드>에 게재된 이 소설 속에서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성시(聖時) 순례에 나선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를 위해 붓다가 입적(入寂)했던 “기원전 480여 년경 쿠시나가라 마을”로 시간여행을 간다. 아들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신통한 영험과 가호를 강조하는 한국 불교의 독실한 불자인 그의 어머니가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부처님과 이곳에서 실제로 대면하게 될 붓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멀지” 걱정하지만, 붓다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보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 어머니는 웃으며 “난 이제 죽는 것이 두렵지 않구나.”라고 말한다. <관광지에서>의 세계에서 시간여행은 “공인된 시간선–그러니까 기존역사”를 변경시키지 않기 위해 “초국가적 특수 기관”인 “시간관광청”에 의해 철저히 관리된다. 시간관광청에서 파견된 관광 가이드는 성시 순례 중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들과 어머니의 행동을 적절히 통제한다.

아마도 ‘과거를 바꾸지 않기 위해 시간여행을 철저히 관리한다.’는 쪽보다 좀 더 친숙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시간여행 스토리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로부터의 영향을 포함하는) 이미 지나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는 쪽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 구조를 정교하게 구현해 낸 작가 중의 한 명은 미국의 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nson Heinlein, 1907‒1988)이다. 1941년에 처음 출판된 그의 단편소설 에서 주인공 밥 윌슨(Bob Wilson)은 자기 방에서 학위논문을 쓰다가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불청객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그는 그 와중에 타임 게이트(time gate)를 통해 3만년 후의 미래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딕터(Diktor)라는 미래 세계의 지배자와 만난다. 딕터는 밥 윌슨에게 타임 게이트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 한 남자를 설득해 미래로 데려오라고 요청한다. 과거로 돌아간 밥은 자기 방에서 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약간의 혼란 끝에 그는 바로 지금의 자신이 학위논문을 쓰던 날 방에 나타났던 불청객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또 다른 불청객은 자신보다 미래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보고 겪었던 미래의 자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딕터를 만난 때로부터 10년 전 미래로 숨어든 밥 윌슨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이 딕터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류의 스토리는,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정해진 숙명을 따라가고야 마는, 비극적인 분위기로 반복되기도 한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12 몽키즈>(1995)에서 어린 제임스 콜은 공항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져 인류의 대부분이 멸망한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며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서기 2035년의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무렵의 정보를 얻기 위해 제임스 콜(브루스 윌리스 분)을 1996년 과거로 보낸다. 과거로 돌아온 제임스 콜은 바이러스를 퍼트린 범인을 알게 되고 그를 제거하려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어린 제임스 콜은 (누군지 알지는 못하지만) 미래의 자신이 죽는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천체 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은 와 같은 시간여행 이야기는 독자들이 인과율과 시간의 화살의 본성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내게는 (기묘한 방식으로 꼬여있는) 라플라스의 악마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시간여행 이야기들은 시간여행 역설의 굴레를 벗어던진다. 과거는 제멋대로 바뀌며 시간은 분기하고 수많은 새로운 시간선들이 생겨난다. 그 시간선들은 또 다른 시간여행의 다리로 연결되면서 그물처럼 얽힌다. 소설가 듀나의 단편소설 <각자의 시간 속에서>(2017)는 그런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과거들은 미래들로부터 시간침략을 당하고 문명화된다. 과거의 사회는 미래에서 온 “시간인, 시간인이 교육한 문명인, 아직도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이들을 마법사들처럼 보고 있는 원주민”으로 구분된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의식대통합을 피해 시간인들은 계속 과거들로 도망친다. “기회가 또 오겠지. 시간도 많고, 세상도 많고, 너도 많고, 나도 많으니까.”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시간인들의 모토다.

김보영의 <0과 1에서>와 같은 이야기에서 시간여행은 일종의 메타포로서 기능한다. 김여사(수애 엄마)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답답한 수애는 말한다. “엄마는 완전히 과거에서 살고 있어요. 애들은  모두 160개국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번역기를 갖고 다니는데, 나보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으래요. 미국이 망하고 영어가 세계어의 지위를 잃은 게 언제인데 말이죠.” 사실 수애 엄마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에서 온 사람이다. 자신의 시대를 함께 갖고 와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그 시대에 뿌려놓는다. “공부하기 힘들어? 너 사회 나가면 공부할 때가 좋았는데 소리 나와! 너 때가 좋은 줄 알아. 네가 행복에 겨워 불평이지. 이런 것도 못 버티면 사회 나가서 버틸 수 있는 줄 알아? 그렇게 근성이 없어서 어떻게 살아! 그럴 거면 당장 죽어버려!” 수애가 자살한 후, 수애 엄마는 생각에 갇혀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 내가 정말 죽으라고 했을까. .. 내게 다른 기억을 남기고 갔어야 했다. 좀 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아니, 이미 주었을까. 자신을 붙잡아달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내게 보냈는데, 그것을 증오와 반항이라는 형태로 전했을 뿐이었는데, 내가 바보같이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그래서 내게 이런 벌을 내린 걸까.” 덜컹. 그녀는 타임루프에 갇혀 있다. 수애가 “택하지 않은 길에서 갈라져 나온 희미한 그림자로서 살고 있”는 뿔테여자는 과거로 돌아가 자살하기 전의 수애를 만나 속삭인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 때가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야”라는 “네가 했던 작은 맹세를 지키고 있다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생존기계인 우리 인간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 하는 (슬픈) 운명 속에 놓여있다. 우리는 늘 시간여행 중이다. 저술가 제임스 글릭은 <타임 트래블>에서 “단단한 우주는 감옥이다. 시간여행자만이 스스로를 자유인이라 부를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어쩌면 시간여행을 멈춘 자들만이 진정한 자유인이 아닐까.

*웹진 <크로스로드>(2021년 12월 통권 195호)의 ‘SF Review’ 코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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