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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이야기

까마귀의 검은색

작성자 : 김영균 ㅣ 등록일 : 2022-07-07 ㅣ 조회수 : 42

저자약력

김영균 교수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이학사)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ygkim@gnue.ac.kr)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조선 후기 실학의 한 유파인 북학파(北學派)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780년(정조 4년), 정조는 청(淸)의 황제인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청나라에 사절단을 보냈다. 영조의 셋째 딸 화평옹주와 혼인한 박명원(朴明源, 1725‒1790)이 사절단을 이끌었다. 그의 친척 동생인 박지원은 (직무수행에서 자유로운 비공식 수행원인) 이른바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사절단에 합류했다. 청나라 수도인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을 거쳐, 건륭제가 당시 머물던 열하(熱河, 지금의 청더)까지 다녀온 박지원은 자신의 여행기를 남겼다. 이것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능양(菱洋) 박종선(朴宗善, 1759‒1819)은 박명원의 아들이다. 서자(庶子)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 등의 말직에 종사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지만 (박지원에 따르면) 그는 “시(詩)를 잘하였다. 한 가지 법에 얽매이지 않고 온갖 시체(詩體)를 두루 갖추어, 우뚝이 동방의 대가가 되었다.” 박지원은 조카의 시집(詩集)을 위해 서문을 썼다. 능약시집서(菱洋詩集序)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기니, 그 사물 자체는 본디 괴이할 것이 없는데 자기 혼자 화를 내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든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이 없건만, 홀연 유금(乳金) 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석록(石綠) 빛을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튀어 올라 눈이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고,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거늘, 내가 눈으로써 먼저 그 빛깔을 정한 것이다. 어찌 단지 눈으로만 정했으리오. 보지 않고서 먼저 그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의 색(色)은 두 가지 범주의 기제(機制)에 의해 만들어진다. 먼저, 색소에 기반한 색(pigment-based colors)은 카로티노이드(carotenoids), 멜라닌(melanins) 등의 색소 분자(molecules)에 의해서 다른 파장의 빛이 흡수, 반사되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백색광 중에 파란색, 초록색을 흡수하고 빨간색을 반사하면 그 물체는 빨간색으로 보인다.) 멜라닌은 검은색과 갈색을 생성한다. 카로티노이드는 노란색, 오렌지색과 빨간색을 생성하는데, 동물의 체내에서 합성이 안 되고 음식물 섭취를 통해서만 추출된다. 많은 종(species)에서, 밝은 (카로티노이드 기반의) 깃털 색이 새들(birds) 각 개체의 건강 상태를 시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음식물에 더 잘 접근하는 개체가 더 밝은 노란 깃털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구조색(structural colors)은 유기체(organism)의 구조(structure)와 빛의 물리적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된다. 구조색의 한 종류로 무지갯빛 색(iridescent colors)이 있는데, 비눗방울이나 물 위에 뜬 기름에서도 볼 수 있다. 비눗방울 박막의 안과 밖에서 반사되는 빛은 서로 다른 거리를 진행하며 간섭한다. “백색광을 쪼였을 때, 박막의 두께가 노란빛에서 소멸간섭이 일어나는 두께라면 백색광에서 노란빛을 뺀 보색, 즉 푸른빛으로 보인다.” 빛이 지나가는 두께가 빛의 입사각에 따라 달라지므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나타난다. 새의 깃털에서도 깃털의 미세 구조에 따라 무지갯빛 색(일반적으로는 구조색)이 나타날 수 있다.

박지원은 조카 박종선의 시를 까마귀의 색에 비유한다. “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 너무도 심하건만, 계지[繼之, 박종선의 자(字)]의 정원에 있는 까마귀는 홀연히 푸르렀다 홀연히 붉었다 한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상을 잘 관찰하는 것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나, 과학 탐구를 위해서나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각주
1)박지원,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번역은 ‘김영동 교수의 고전 & Life’ 참조. https://kydong77.tistory.com/18189.
2)Sang-im Lee, Misun Kim, Jae Chun Choe and Piotr G. Jablonski, Animal Cells and Systems 20(2), 95 (2016).
3)Paul G. Hewitt, 수학없는 물리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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