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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체물리이론 분야 선구자들

작성자 : 민병일 ㅣ 등록일 : 2022-07-07 ㅣ 조회수 : 135

저자약력

민병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학사 및 석사학위 후 미국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하였다. 1987년부터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포항공과대학교 명예교수이다. (bimin@postech.ac.kr)

들어가는 말

조선인들에게는 낯설었던 서구 과학인 물리학은 구한말 격물학(格物學), 격치학(格致學) 등으로 불리며 선교사들을 통해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1)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여 지식을 확고하게 세운다’는 의미인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중국 사서 중 하나인 대학(大學)의 팔조목 중의 처음 두 조목으로 성리학의 학문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공부법이었으며, 이로부터 유래된 격물학, 격치학은 사물의 이치 구명, 바로 물리학 연구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격물학에서 시작된 한국 물리학의 초창기 선구자들을 본고에서는 당시 박사학위자들을 대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한국에서의 물리학의 배움과 탐구의 시작을 1915년 개교한 연희전문대학 수물과(數物科)의 창설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물리학의 역사도 이제 100여 년이 넘었다고 할 수 있겠으며, 2022년은 한국물리학회가 창립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1)2) 연희전문대학 수물과 1회 졸업생인 이원철(1896‒1963)이 1926년 미국 Michigan 대학교에서 천문학 전공으로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조응천(1895‒1979)이 1928년 미국 Indiana 대학교에서 그리고 최규남(1898‒1992)이 1932년 미국 Michigan 대학교에서 각각 한국인 첫 번째, 두 번째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리학 연구는 실험 연구와 이론 연구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조응천은 진공관에 대한 실험연구, 최규남은 물질계에 대한 적외선 흡수 실험연구를 수행한 실험물리 학자들로서 이들의 연구 분야는 물리 분야 중 고체물리실험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인 세 번째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철재도 1940년 일본 교토제국대학에서 X선 회절법 실험연구를 한 고체물리실험 학자이다. 이렇게 해방 즈음 박사학위를 가진 물리학자는 조응천, 최규남, 박철재 세 명뿐이었는데 모두 고체물리실험 전공학자들로서 우리나라 물리학계는 1930년대부터 이미 다른 분야에 비하여 고체물리분야의 선구자들을 보유했음을 알 수 있다.1)2) 이들은 박사학위 후 귀국하여 국내 물리학 분야 후진 양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고체물리학은 위에서 언급한 사물, 즉 자연계 중 고체(固體)에 해당하는 물질계와 그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자성체와 자성 현상은 고체물리의 한 주제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연구 역사는 거의 2,000여 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칭하는 고체물리는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만들어진 이후 양자개념을 고체 물질계에 적용하면서 발전한 학문 분야라 하겠으며 따라서 양자역학의 완성에 기여한 기라성 같은 학자들, 예를 들어 Einstein, Sommerfeld, Debye, Fermi, Dirac, Heisenberg, Pauli, Wigner 등의 저명한 양자물리 학자들이 고체물리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조응천이 고체물리 전공으로 1928년 한국인 최초의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2022년 현재 국내 고체물리 분야도 다른 물리 분야들과 같이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많은 한국인 학자들의 연구 성과 덕분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나라 고체물리이론 분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고체물리이론 분야 선구자들을 살피기에 앞서 한국 이론물리의 시작을 알아보기로 하자. 한국인 최초의 이론물리 박사학위는 실험물리 박사학위에 비하여 약 20여 년 정도 늦게 나오게 되는데, 첫 번째 이론물리 박사학위자는 1955년 미국 Florida 주립대학교에서 핵물리이론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이기억(1922‒2014)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론물리라 하면 핵물리 또는 입자물리 분야가 유행이어서 이기억 이후 연속적으로 많은 핵/입자물리이론 박사학위자들이 등장하게 되며, 이 분야 선구자들은 대부분 국내보다 국외에서 활약한 편이었다. 핵/입자물리이론 이외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이론물리 박사학위자로서는 1958년 미국 Michigan 대학교에서 통계물리이론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조순탁(1925‒1996)을 들 수 있다. 조순탁은 경성대학에서 개명한 서울대학교의 물리학과 1회로 졸업한 학생 4명(1947년 졸업: 김영록, 윤세원, 이기억, 조순탁) 중 한 명으로서,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중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후 국내 통계물리학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고체물리이론(Slaterina vs. Van Vleckian)

최근 고체물리와 통계물리는 넓은 의미에서 응집물질물리분야로 같이 분류되기도 하는데, 본고에서는 앞서 언급한 좁은 의미에서의 고체물리로 한정하여 이론 분야의 선구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고체물리이론은 크게 전자구조이론과 모델 및 다체이론으로 나누어진다. 이와 연관하여 고체물리 학계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Slaterian과 Van Vleckian(Schwingerian이라고도 칭함)이라 불리는 두 학파 간의 경쟁과 반목으로 세간의 주목을 끈 1970‒80년대의 에피소드이다. Slaterian은 MIT 대학교에서 양자물리/화학 그룹을 이끈 J. C. Slater (1900‒1976)의 대표적인 전자구조이론 학파를 의미하고, Van Vleckian은 Harvard 대학교에서 다체이론 그룹을 이끈 J. H. Van Vleck(1899‒1980)의 대표적인 다체론 학파를 의미한다. 사실 Slater와 Van Vleck은 Harvard 대학교 물리학과 동기로서 같은 지도교수 그룹에서 동문수학한 미국 최초의 이론물리 박사학위자들에 해당하며 둘은 서로 존중하는 꽤 좋은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들 그룹의 제자와 후계자들이 이후의 고체물리 여러 난제들의 해석에서 의견을 달리하며 논쟁을 일으켜 위와 같은 에피소드가 나오게 된 것이다.3)4)5) 하지만 지금은 복잡한 고체물리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이 아닌 두 이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에 학계의 동의가 이루어졌다 하겠다.

본고에서도 고체물리이론을 전통적인 전자구조이론과 모델/다체이론으로 나누어 한국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선구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에 기술하였듯이 한국인 최초의 고체물리이론 박사학위는 고체물리실험에 비하여 35년 정도 늦은 1963년에 나오게 된다(김덕주, 1963 PhD). 그래서 본고에서는 우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고체물리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1세대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연구 활동을 소개하기로 한다. 여기서 국내 1세대와 2세대 학자들의 분류는 시기적 분류로 2세대의 경우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내에 부임한 1세대 선배 학자들의 가르침이나 영향을 받은 학자들로 정의하였다. 이에 따라 그러한 선배 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1세대 학자들은 시기상 대략적으로 1980년 이전의 박사학위 취득자들에 해당한다.6) 그리고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박사학위자는 아니지만 학위 취득 후에 고체물리이론 연구를 수행하여 이 분야 발전에 공헌한 학자들 4명(최상일, 조상진, 문희훈, 석성호)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고체물리이론 분야 선구자들

1960‒70년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모델/다체론 전공 학자 10명[표 1], 전자구조이론 전공 학자 4명[표 2] 등 총 14명의 한국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1세대 선구자들을 각각 1, 2로 나누어 소개한다.

[표 1] 모델/다체이론 선구자들.

이름학사(BS)박사(PhD)비고
김덕주동경대(1958)
동경대(1963)
1호 다체론 PhD
남상부서울대(1958)
UIUC(1966)

이금휘서울대(1962)
Iowa 주립대(1966)

조균행서울대(1959)
UIUC(1967)
여성 1호 물리 PhD
이만희Pennsylvania대(1959)
Pennsylvania대(1967)
화학 BS/물리 PhD
여성권서울대(1964)
UCLA(1972)

문희훈서울대(1958)
New York 공대(1974)

김철구서울대(1968)
Purdue대(1975)

최상일서울대(1953)
Brown대(1961)
화학 BS/화학 PhD, 1호 PRL
석성호Midwestern대(1966)
Texas대(1972)
핵물리이론 PhD

[표 2] 전자구조이론 선구자들.

이름학사(BS)박사(PhD)비고
장회익서울대(1961)
Louisiana 대(1969)
1호 전자구조이론 PhD
모혜정이화여대(1962)
Louisiana 대(1969)
여성 1호 전자구조이론 PhD
손기수경북대(1963)
Texas 대(1976)

조상진서울대(1955)
Kentucky 대(1965)
천체플라즈마물리 PhD


1. 모델/다체이론 선구자들

그림 1. 김덕주, “금속전자계의 다체이론”.그림 1. 김덕주, “금속전자계의 다체이론”.

김덕주(1934‒1997)
한국인 첫 번째 고체물리 다체론 분야 박사학위자는 1963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김덕주이다. 김덕주는 동경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저명한 응집물질 및 통계물리 이론 학자인 R. Kubo(1920‒1995) 연구실에서 다체론을 이용한 금속전자계의 물성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7) 김덕주의 학위논문은 “Band Theoretical Interpretation of Neutron Diffraction Phenomena in Ferromagnetic Metals”라는 제목으로 Journal of Physical Society of Japan (1963)에 실려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흥미롭게도 김덕주의 첫 번째 발표 논문은 “강자성체”라는 제목의 새물리(1961) 논문이다.8) 새물리 창간호인 이 논문집에는 당시 물리 분야의 선구자들이 자신 분야의 연구 동향에 대하여 소개한 논문들이 실렸는데, 김 교수는 박사학위 과정 학생으로서 고체물리이론 분야를 대표한 집필자로 초청 받은 것이다. 김덕주는 학위 후 동경대와 미국 MIT 연구원 경력을 거쳐 1971년부터 동경에 있는 Aoyama-Gakuin 대학교에 재직하였으며 평생 자신의 한국 국적을 유지하였다. 생전에 7편의 Physical Review Letters 논문을 포함 100여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다체론에 대한 첫 번째 국문 연구총서인 “금속전자계의 다체이론”9)을 출간하여 국내 인력 양성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그림 1]. 당시 한국인 고체물리 학자로 이 정도의 업적을 이룬 학자는 매우 드문 상황이었고 이런 면에서 김덕주는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대표적인 선구자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김덕주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는 물리학과 첨단기술 2000년 5월호와 2018년 1/2월호를 참고하기 바란다.10)11)

남상부
한국인 두 번째의 고체물리 다체론 분야 박사학위자는 1966년 미국 Illinois 대학교(UIUC)에서 학위를 받은 남상부이다. 남상부는 1958년 서울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유학하여 Illinois 대에서 노벨상 수상자인 J. Bardeen(1908‒1991) 연구실에서 다체론을 이용한 초전도 물성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2) Physical Review(1967)에 논문 2편으로 실린 남상부의 학위논문 “Theory of electromagnetic properties of superconducting and normal systems I”과 “Theory of electromagnetic properties of strong-coupling and impure superconductors II”는 학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남상부는 학위 후 Rutgers 대학교 박사후연구원, Virginia 대학교 조교수, Dayton 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1980년 이후 Wright State 대학교에 재직하며 초전도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포스텍 등 국내 대학의 초빙교수 및 방문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초전도 교육 및 연구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금휘
이금휘는 1962년 서울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남상부와 같은 해인 1966년 미국 Iowa 주립대학교에서 고체물리 다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지도교수: S. H. Liu). 이금휘의 학위논문은 “Green’s-Function Method for Antiferromagnetism”이라는 제목으로 Physical Review(1967)에 실렸다. 이금휘는 학위 후 Missouri 대학교(UM Columbia) 교수로 재직하며 일차원 물질계에서의 자성과 진동 현상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1990년 전북대학교에 부임하여 국내 고체물리 분야 교육 및 연구의 선진화, 그리고 대학 물리교육 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균행
조균행은 1967년 미국 Illinois 대학교(UIUC)에서 고체물리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지도교수: J. Koehler)를 취득하였는데 이는 한국인 최초의 여성 물리학 박사학위에 해당한다. 조균행은 1959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유학하여 Illinois 대에서 “Cu, Al 등의 금속에서 점결함에 의한 탄성 응력장”에 대한 논문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학위논문은 “The Elastic Stress Field Produced by a Point Force in a Cubic Crystal”이라는 제목으로 Advances In Physics(1968)에 실렸다. 조균행은 학위 취득 후 미국에 계속 체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의 연구 활동은 조사되지 않고 있다.

이만희(1937-2016)
학계에서 Howard Lee로 알려진 이만희는 1959년 미국 Pennsylvania 대학교에서 화학 학사학위를 받고 1967년 같은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He 액체의 바닥상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지도교수: M. Luban). Howard Lee의 학위논문은 “Cluster Expansion in a Bose System”, “The pair distribution function of a quantum fluid”의 제목으로 각각 Journal of Mathematical Physics(1969)와 Physica(1969) 등에 실렸다. Howard Lee는 학위 후 캐나다 Alberta 대와 미국 MIT 대에서 박사후연구원 경력을 쌓고 1973년부터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저차원 물질계에서의 정확한 풀이를 구하는 되풀이관계 방법론(Recurrence relation method)의 개발과 카오스계의 동역학해를 구하는 방법론 등을 개발하였다. Howard Lee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도 홍종배(서울대 교수) 등 한국인 제자들을 많이 양성하였으며, 종종 한국을 방문하여 특강 등을 통하여 국내 고체 및 통계물리이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여성권
여성권은 1964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미국 California 대학교(UCLA)에서 고체물리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3) 여성권의 학위논문은 “Side-Jump Mechanism for Ferromagnetic Hall Effect”이라는 제목으로 Physical Review Letters(1972)에 실렸다. 여성권은 Chicago 대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Sandia 국립연구소에 상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자성체, 반도체, 저차원계, 강상관계 등에서의 다양한 물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며 여러 편의 Physical Review Letters와 Physical Review B 논문들을 발표하는 등 고체물리이론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였다.

문희훈(1934‒1986)
문희훈은 1958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미국 New York 공과대학교(Polytechnic Institute of New York, Brooklyn)에서 초음파 싸이클로트론 공명 현상에 대한 이론적 분석으로 박사학위(지도교수: T. Kjeldaas, Jr.)를 취득하였다. 문희훈의 학위논문은 “Effects of anisotropy on ultrasonic cyclotron resonance”라는 제목으로 Physical Review B(1979)에 실렸다. 흥미롭게도 문희훈은 이미 1960년에 Microwave Spectrum 실험으로 Emory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14) 실험물리와 이론물리 전공으로 두 개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문희훈은 학위 후 Yale 대학교 박사후연구원으로 실험 논문들을 발표하였고, 이후 잠시 귀국하여 영남대학교(1976‒1979)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다시 도미하여 New York 공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이후의 연구 활동은 조사되지 않고 있다.

김철구
김철구는 1968년 서울대학교 응용물리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75년 미국 Purdue 대학교에서 반도체의 탄성계수와 에너지틈에 대한 이론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5) 김철구의 학위논문은 “Effect of free carriers on the elastic constants of p-type silicon and Germanium”이라는 제목으로 Physical Review B(1976)에 실렸다. 김철구는 학위 후 Illinois 대(UIUC)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귀국하여 한국표준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다 1981년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김철구는 반도체 외에 자성체, 강상관전자계 등에서의 다양한 물성 연구를 통해 여러 박사급 인력을 양성하였으며, 왕성한 학회 활동을 함으로써 국내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최상일(1931–2021)
최상일은 1953년 서울대학교 화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1961년 Brown 대학교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 연구 주제는 분자충돌 및 통계역학에 관한 양자화학 분야였는데,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유기화합물 고체의 전자구조에 관한 이론 연구를 수행하여 Physical Review Letters에 2편의 논문을 연속적으로 발표하면서 1963년 미국 North-Carolina 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즉 최상일은 화학 박사학위자이지만 연구주제가 고체물리이론 분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62년 발표한 유기화합물에서의 엑시톤에 관한 Physical Review Letters 논문은 한국인 학자가 발표한 최초의 고체물리이론 분야 Physical Review Letters 논문으로 알려져 있다.16) 최상일은 North-Carolina대에서 28년간 교수로 재직한 후 1989년 포스텍 교수로 부임하여 초창기 포스텍 물리학과 설립에 공헌하였으며, 기타 교육에 대한 논문과 많은 과학칼럼을 통해 대학 교육 및 과학 대중화에 힘쓰는 등 여러 방면에서 한국 물리학계 및 과학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석성호
석성호는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 중 유학하여 1966년 미국 Midwestern 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1972년 Texas 대학교(UT Austin)에서 핵물리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7) 석성호는 학위 취득 후 Texas 대 박사후연구원을 거치고 Missouri 대학교(UM Rolla) 교수로 11년간 재직한 후 1988년 포스텍 교수로 부임하였다. 석성호의 경우는 박사학위는 핵물리이론 연구로 받았으나 포스텍 재임 중 고체물리 분야인 다체이론을 이용한 고온초전도체 물성 연구에 매진하여 다수의 논문과 김기석(포항공대 교수) 등 여러 명의 박사급 인력을 양성하여 국내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2. 전자구조이론 선구자들

장회익
전자구조이론 분야에서 한국인 첫 번째 박사학위자는 1969년 Louisiana 주립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장회익이다. 장회익은 1961년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학위를 받고 Louisiana 주립대 J. Callaway(1931‒1994) 연구실에서 슈도퍼텐셜 방법론을 이용한 GaSb의 에너지띠 구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8) 장회익의 학위논문은 “Energy-band structure and optical properties of GaSb”이라는 제목으로 Physical Review(1969)에 실렸다. 장회익은 학위 취득 후 Texas 대(UM Austin)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1971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고체물리이론 박사학위자로서 맨 먼저 대학교수로 부임한 장회익은 국내 고체물리이론 전공의 후진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국내 대학에서 고체물리이론 분야 첫 번째 박사학위자인 이재일(인하대 교수)도 장회익 연구실에서 배출되었다. 또한 JKPS (1972)에 시리즈로 실린 2편의 “Rutile 구조의 대칭성”과 “VO2의 에너지 밴드”에 관한 논문은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전자구조이론 분야 첫 번째 논문들로 알려져 있다.19)20) 장회익은 고체물리뿐만 아니라 생물물리, 과학철학, 동양 과학사상 등의 개척에도 선구자적 역할을 하여 국내 과학계 및 사상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림 2. 모혜정, “에너지띠이론”.
그림 2. 모혜정, “에너지띠이론”.

모혜정
여성으로서 한국인 최초의 고체물리 전자구조이론 분야 박사학위자는 1969년 미국 Louisiana 주립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모혜정이다. 모혜정은 1962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학위를 받고 Louisiana 주립대 J. Callaway(1931‒1994) 연구실에서 Ni 에너지띠 구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21) 모혜정의 학위논문은 “Band Structure, Spin Splitting, and Spin-Wave Effective Mass in Nickel”이라는 제목으로 Physical Review B(1970)에 실렸다. 모혜정은 학위 취득 후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고체물리이론 분야에서 심규리(경기대 교수) 등 여러 명의 박사급 인력을 양성하였고, 전자구조이론에 대한 첫 번째 국문 연구총서인 “에너지띠이론”22)을 출간하며 학계의 발전에 기여하였다[그림 2].

손기수
1963년 경북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교수 재직 중 유학하여 1976년 미국 Texas 대학교(UT Austin)에서 구리 박막의 전자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23) 손기수의 학위논문은 “Energy bands of (100), (111), (110) copper thin films”이라는 제목으로 3편의 Physical Review B.(1976)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손기수는 귀국하여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의 표면물리 분야 개척에 힘썼으며, 여러 명의 박사급 인력을 양성하며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조상진
1955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후 1965년 미국 Kentucky 대학교에서 천체플라즈마물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24) 조상진은 학위 후 Florida 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 경력을 쌓으며 위에서 언급한 Slater 그룹이 개발한 APW 에너지띠 방법론을 배워 고체물리 전자구조이론 연구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나온 논문이 Physical Review(1967)에 실린 “Spin-polarized electronic energy-band structure in EuS”이다. 이후 조상진은 캐나다 National Research Council에 재직하며 희토류 및 전이금속 화합물들의 전자구조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1980년대 이후의 연구 활동은 조사되지 않고 있다.

맺는 말

이상과 같이 모델/다체론 전공학자 10명, 전자구조이론 전공학자 4명 등 총 14명의 한국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1세대 선구자들을 소개하였다. 1세대 선구자들의 분포를 보면 모델/다체론 전공자가 더 많은데 이는 현재 국내 대학의 고체물리이론 교수분포에서 전자구조이론 전공자가 훨씬 많은 사실을 감안하면 특기할만한 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이유는 1980년대 이후 컴퓨터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컴퓨터 사용이 필수적인 전자구조이론 연구가 활발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1971년 서울대학교에 부임한 장회익과 같이 전자구조이론을 전공한 1세대 선구자들이 국내 대학에 먼저 정착하며 차세대 후진 양성을 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모델/다체론 전공의 경우는 김철구가 1981년 연세대학교에 부임하며 국내에서의 후진 양성이 시작되었다 하겠다. 사실 김철구는 위에서 소개한 1세대 선구자들 중에는 연배가 가장 낮아 이들 1세대 선배들과 1980년대 이후 박사학위를 받은 2세대 후배들 간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위에서 1세대 선구자들의 학위 논문을 소개하며 그들의 지도교수도 함께 언급하였는데, 이들의 면면을 보면 Kubo(김덕주), Bardeen(남상부), Callaway(장회익, 모혜정), Holstein(여성권) 등 노벨상 수상자나 노벨상급의 저명 물리학자를 포함하여 대부분 당시 연구를 선도하는 활동적인 학자들임을 알 수 있다. 즉 훌륭한 스승들의 지도하에 좋은 훈련을 받은 1세대 선구자들의 영향으로 한국의 고체물리이론 분야가 지금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국내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현재 상황을 보면 1980년 이후 박사학위자들인 2세대 학자들도 이미 정년퇴임하였거나(예를 들어 이민호,25) 조화석,26) 최상돈, 임헌화, 조육,27) 홍종배, 이기영, 임지순, 이경수, 이용인, 이재일, 장기주, 민병준, 황용규, 민병일, 임국형, 길원평, 이주열, 이희복 등) 또는 정년의 연령에 가까와 지금은 이들의 제자뻘인 3세대 또는 4세대 학자들이 일선에서 활약하며 세계적 성과들을 내고 있다. 이러한 국내 고체물리이론 분야의 발전과 성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취적인 도전 정신으로 연구에 임한 1세대 선구자들의 헌신적인 공헌이 뿌리가 되었음은 자명하다 하겠다.

끝으로 본고가 1세대 학자들을 직접 접해보지 못한 3세대 및 4세대 학자들 그리고 현재 고체물리이론 전공 대학원생들에게 선배 학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작은 기록으로 남기를 바라며, 혹시 고체물리이론 분야 1세대 선구자들의 소개에서 오류나 누락된 학자들이 있으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과문함과 부족한 문헌조사 탓이니 독자들의 가르침과 강호제현(江湖諸賢)의 질정(叱正)을 바라는 바이다.

감사의 글

본고를 읽고 도움말을 주신 인하대 이재일 교수, 가톨릭대 강정수 교수에게 감사드립니다.

각주
1)“한국물리학회 50년사”, 한국물리학회 (2002).
2)“한국의 학술연구: 물리학”, 대한민국학술원 (2005).
3)P. W. Anderson, “Basic notions of condensed matter physics”, The Banjamin/Cummings (1984).
4)M. Peter, Physica B 172, viii (1991).
5)M. R. Norman, J. Magn. Magn. Mater. 452, 507 (2018).
6)고체물리이론 분야 박사학위 후 국내 대학교수로 복귀한 첫 번째 학자인 장회익의 부임 해가 1971년임을 감안하였음.
7)Kim, Duk Joo, PhD dissertation: “Localized state in dilute alloy” (advisor: Prof. R. Kubo) (1963).
8)김덕주, 새물리 1, 44 (1961).
9)김덕주, “금속전자계의 다체이론”, 대우학술총서 자연과학 33 (민음사, 1986).
10)민병일, 이금휘, 이재일, 정윤희, 물리학과 첨단기술 9(5), 39 (2000).
11)민병일, 물리학과 첨단기술 27(1/2), 44 (2018).
12)Nam, Sang Boo, PhD dissertation: “Theory of electromagnetic properties of strong coupling and impure superconductors” (advisor: Prof. J. Bardeen) (1966).
13)Lyo, Sung-Kwun, PhD dissertation: “Energy Transfer, Spin-Lattice Relaxation, Magnon Localization in Insulators and Ferromagnetic Hall Effect in Metals” (advisor: Prof. T. Holstein) (1972).
14)Moon, Hihun, PhD dissertation: “Micro-wave Spectrum: Nuclear Quadrupole Effect, and Structure of Chloroallene” (advisor: Prof. J. H. Goldstein) (1960).
15)Kim, Chul Koo, PhD dissertation: “Electronic contributions to the elastic constants of p-type diamond and zinc-blende-type semiconductors and dependence of the energy gaps of diamond and zinc-blende-type semiconductors on hydrostatic pressure” (advisor: Prof. S. Rodriguez) (1975).
16)Sang-il Choi and Stuart A. Rice, Phys. Rev. Lett. 8, 410 (1962).
17)Suck, Sung Ho, PhD dissertation: “a Finite-Range DWBA Calculation for Three-Nucleon Transfer-Reactions” (advisor: Prof. W. R. Coker) (1972).
18)Zhang, Hwe Ik, PhD dissertation: “Energy band structure of gallium antimonide” (advisor: Prof. J. Callaway) (1969).
19)Hwe Ik Zhang, J. Korean Phys. Soc. 5, 51 (1972).
20)Hwe Ik Zhang and Heh-jeong M. Zhang, J. Korean Phys. Soc. 5, 57 (1972).
21)Zhang, Heh-Jeong Mo, PhD dissertation: “Energy band structure of ferromagnetic nickel” (advisor: Prof. J. Callaway) (1969).
22)모혜정, “에너지띠이론 ”, 대우학술총서 자연과학 62 (민음사, 1990).
23)Sohn, K. S., PhD dissertation: “Energy bands and electronic structure of copper thin films” (advisor: Prof. L. Kleinman) (1976).
24)Cho, Sang Jean, PhD dissertation: “Eigenvalues and eigenfunctions of the hydrogen molecular ion H2+ in excited states and the Inglis-Teller limits of the hydrogen series in plasmas” (advisor: Prof. W. C. DeMarcus) (1965).
25)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중 박사학위 취득.
26)울산대학교 교수 재직 중 박사학위 취득.
27)한남대학교 교수 재직 중 박사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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