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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여성위원회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며..

작성자 : 윤진희 ㅣ 등록일 : 2022-07-07 ㅣ 조회수 : 2,549

캡션윤 진 희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장

올해는 한국물리학회 내의 여성위원회가 창립된 지 꼬박 20년이 되는 해이다. 2002년 3월 IUPAP (International Union of Pure and Applied Physics)은 파리에서 제1회 세계여성물리인대회(ICWIP, International Conference on Women in Physics)를 개최하였다. 한국물리학회에서는 정광화 박사를 단장으로 하여 김영순(명지대), 우정원(이화여대) 교수 3인을 한국 대표로 파견하였는데, 이 대회의 주요 결정사항 중 하나가 물리학 분야에서 수적으로 열세인 여성의 역할 증대를 촉진하기 위하여 각국 물리학회에 여성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독려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물리학회에서는 국제교류위원회의 간사인 박영아(명지대) 교수를 중심으로 여성위원회를 준비하여, 2002년 4월 부산에서 열린 한국물리학회 총회에서 특별위원회로 설치하였다(당시 회장 송희성). 1대 여성위원장은 정광화, 실무이사는 박영아 회원이 맡았다. 때마침 정부에서 지원하는 WISE (Women into Science and Engineering) 센터와 공동으로 여고생물리캠프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이 캠프가 오늘날까지 여고생 물리캠프로 이어져 여성위원회 대표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성위원회는 2004년 새로운 위원장을 맞으며 한차례 업그레이드되었다. 2005년 제2회 ICWIP가 브라질에서 열렸고, 당시 박영아 위원장을 대표로 윤진희, 유재준 회원이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2008년 3차 대회를 유치하는 성과를 이루었으며, 이 3차 대회를 거치면서 수적으로 열악했던 한국물리학회 내의 여성위원들이 결집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의 여고생물리캠프는 1박 2일 일정으로 캠프에 참여한 팀들의 연구발표 외에도 recreation을 통해 친목도모와 네트워킹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으며, 2004년과 2005년에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의 지원을 받아, 대상 수상팀이 네덜란드 본사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현재에는 1일 일정으로 3~4명으로 구성된 팀이 2~4주 동안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방문하여 과학적 연구 수행 과정을 경험하고, 본선에서의 구두발표를 통해 본인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COVID-19으로 인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으나, 올해 새로운 모습으로 재가동되어, 총 23팀이 서울, 전북, 수원, 충청, 제주, 충북 등 모두 6개 지역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전심사를 거쳐 최종 10팀 정도가 8월에 KAIST에서 열리는 본선캠프에서 경쟁하게 된다.

또한 SK재단이 운영하던 한국고등교육재단으로부터 천만 원의 기금을 기탁받아 2006년 여성대학원생상(석사 1인, 박사 1인)을 제정하였다. 제2회 수상자인 조지영 박사는 현재 광주과학기술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까지 22명을 배출하였다.

2005년 봄에는 정기총회에 여성위원회 특별세션이 열렸다. ‘여자가 하면 더 잘한다’라는 기치 아래, 총회 직전 넓은 대강당에 단독으로 열렸는데, 집행부를 비롯한 원로 회원 등 200명이 넘는 회원들이 참가하여 열띤 응원을 보내주었다. 이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매 총회에 특별 세션이나 조찬 포럼 등으로 이어져 여성 회원들의 네트워킹에 막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한때 총회 기간 중에 여성 회원 휴게실이나, 어린이집을 운영한 적도 있었으나, 인력과 수요의 부족으로 지속적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다. 어린이집의 경우 최근 그 수요가 대두되고 있어, 수요 조사를 통해 재고하고자 한다.

2010년부터는 새로운 사업으로 ‘찾아가는 여성물리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물리학과에 여학생들은 조금씩 늘고 있었으나, 그 롤모델이 될 여교수는 없는 학교가 태반이었기에, 여학생들은 성차별이나 여성으로서 겪어야 되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여교수를 뽑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이는 시일이 걸리는 일이었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교수들이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시범 사업으로 서울대학교를 방문하였고, 현재까지 매 학기 한두 곳 정도를 방문하고 있다. 초기에는 여학생, 특히 여성대학원생들의 그간에 쌓인 서러움과 한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웬만한 교회의 부흥회를 연상시킬 정도였으나, 요즘에는 그보다는 진학이나 취업 등의 경력 개발에 관련된 고민이 더 많이 거론된다. COVID-19로 인해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직접적인 대면이 불가능해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공간적 제한을 초월할 수 있어 더 많은 여성물리인들이 찾아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올해 들면서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되어 이화여대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을 시작으로 오프라인 방문을 재가동하였으며, 이제까지 36개교를 방문하였다. 앞으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여 인력과 시간의 부족 문제를 보완해가며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하나의 굵직한 사업으로 설문조사를 들 수 있다. 당시 여성 회원들의 현황조차 파악이 안되어 있어, 여성위원회 주도로 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하였다. 2005년 첫 조사에는 봄 학술총회 기간 중에 학회 참가자 전원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1195명이 참여하였고, 이 중 여성 회원은 13%에 해당하는 158명이었다. 이후로 2010년, 2015년, 2018년, 네 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행하였고, 변화의 추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물리학회 내의 정회원 중 여성비율이 2002년 9.3%에서 2010년 11.9%, 2014년 13.9%, 2018년 14.3%로 점진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20대 여성 회원 비율이 40%에 육박하나, 30대에서 급감하는데, 주 요인이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로 분석된다. 박사학위자의 비율 역시 2005년 5%에서 2014년 23%대로 증가하였는데, 이는 여성 학부생의 증가에 따라 상위과정으로 진입하는 비율 역시 증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비의 경우에도, 전체적으로는 2010년보다는 2014년에 여성 연구자의 수주비율이 증가하기는 하였으나, 소규모 연구비에 치중되어 연구비 규모가 증가할수록 여성 연구자 수주율은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통하여 정부의 R&D 정책이나 교육 정책에 유효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이러한 조사는 여성위원회 주관으로 행하여 왔으나, 실제 학회의 보다 폭넓은 제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학회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정부에 제안하는 중요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향후 학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외에도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 주관으로 2005년 11월 포항에서 APCTP International Workshop on Asian Women in Physics가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여성 물리인들의 지위 향상과 연구환경 개선을 위하여 AAPPS(Association of Asia Pacific Physics Society) 내에 Women in Physics 실행그룹의 설치가 제안되었다. 그 이듬해인 2006년 4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16회 AAPPS Council Meeting에서 결의안이 승인되어, 초대 위원장으로 박영아 교수가 선임되어 현재까지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우수여성대학원생상 외에도, 2015년부터는 여성과학인지원센터(WISET)나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KOFWST)의 지원으로 젊은 연구자상을 제정하여, 젊고 발전성이 있는 여성물리학자를 매년 3명씩 발굴하여 격려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여성위원회는 물리학계의 여성인력을 육성하고 이들을 통한 물리학계의 다양성 확보 및 건전성 유지에 앞장서 왔다. 2002년 물리학회 전체 회원의 9.3%에 불과하던 여성물리학자들의 비율이 2020년 15.5%로 증가하였으며, 2002년 스무명 남짓하던 여교수 숫자가 현재 물리학회 회원 기준 49명이나 되었다. 또한, 이제는 각계각층에서 뛰어난 실적을 보이는 여성물리학자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어느 정도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마지노선 30%에는 크게 못 미친다. 또한, 경력 중간 단계에 여러 사회적 이유로 손실되는 젊은 여성물리인의 비율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어느덧 역차별이 이슈가 되는 지경에 이르긴 하였으나, 과학계, 특히 물리학계에서의 여성들은 아직도 소수이며, 단지 소수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의도되지 않은 편견과 차별을 순간순간 맞닥뜨리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여성들만의 힘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체가 공감해주고, 노력해주어야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우리 물리학계 전체 회원들의 따듯한 시선과 공감의 노력을 기대한다. 더이상 여성위원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될 때까지 우리 여성위원회는 꾸준히 뚜벅뚜벅 소임을 다해갈 것이다.

(jinyoon@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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