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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노벨 물리학상 해설

작성자 : 이순칠 ㅣ 등록일 : 2022-11-30 ㅣ 조회수 : 992

저자약력

이순칠 교수는 Northwestern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연구재단 양자기술단장을 맡고 있다.


양자물리는 1900년에 시작되어 약 30년 동안 그 형태가 갖추어졌으며, 형태가 갖추어지고 나자 인류 문명에 퀀텀 점프를 일으켰다. 양자물리 덕분에 발명된 트랜지스터와 레이저에 의해서 전자공학이 시작되었으며, 현재 우리는 온갖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양자물리가 없었으면 화학실험실은 우리가 어릴 때 그림책에서 보아왔던 모습, 즉 하얀 가운을 입은 곱슬머리 과학자가 빨간 액체와 파란 액체를 비커에 부으면 하얀 증기가 발생하는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DNA, RNA를 다루는 생명공학도 양자물리 덕분에 시작된 것이며 대량살상 무기인 핵폭탄도 양자물리 때문에 발명되었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모든 물건 중에서 백 년 전에도 사용되고 있던 것을 제외하면 모두 양자물리 덕분에 태어났거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양자물리에서 응용되지 못한 속성이 딱 하나 있었는데, 약 30년 전부터 이를 이용한 새로운 기술이 발전되어 왔다.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 양자 원격 이동 등 공상과학 기술같이 들리는 기술들을 포함하는 양자 정보기술이 그것이다. 이 기술이 지난 30년간 모습을 갖추어 오면서 우리는 문명의 두 번째 퀀텀 점프를 목격할 시점에 와있다. 양자물리가 나오고 약 100년 가까이 지나서야 비로소 기술에 응용된 이 속성은 ‘얽힘’이라 불리는데, 2022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된 업적의 주제이다.

양자물리의 기본 가설은 ‘이 세상 삼라만상이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 둘 다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주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독자들이 물리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여기서 입자란 전자나 양성자 같은 아주 작은 덩어리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조그만 당구공을 상상하면 된다. 파동이란 우리가 아는 소리, 빛, 파도 등과 같이 출렁임이 전파되어 가는 현상이다. 입자나 파동 각각은 우리 모두 잘 이해하고 있으니, 양자물리의 기본 가설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이 두 성질이 다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입자라는 현상과 파동이라는 현상이 명확히 구분되므로 따로따로 개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미시세상에서는 그렇지가 않으며 이런 개념들은 그 세상을 기술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 세상을 기술하는 수밖에는 없으므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이며 훌륭한 물리학자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없다. 양자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보다 환상적으로 빠를 것이라고 처음 예언한 리처드 파인만은 “아무도 양자물리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양자물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도 “양자물리 이야기를 듣고도 제정신이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말하는 토끼나 말하는 고양이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나머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양자물리의 기본 주장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이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다.

그림 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말하는 토끼, 고양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그림 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말하는 토끼, 고양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파동의 가장 기본 속성은 중첩이 된다는 것이다. 중첩이란 별것이 아니고 파동이 여러 개 합쳐진 현상을 말한다. 빨강, 노랑, 파랑, 세 개의 빛 파동이 중첩되면 흰빛이 되고, 도, 미, 솔, 세 개의 소리 파동이 중첩되면 으뜸화음이 들린다. 이 중첩으로 파동의 기본 성질들인 굴절, 간섭, 에돌이 등을 다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면 입자들도 중첩된 상태에 있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미시세계의 입자들도 중첩될 수 있으며 입자의 중첩이란 입자가 있을 수 있는 상태의 중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가 바닥 상태와 첫 번째 들뜬 상태의 중첩에 있다든지, 빛알갱이, 즉 광자가 수직편광과 수평편광의 중첩상태에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중첩성은 고전 세계와 양자 세계의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림 2. 파동의 모든 성질을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다.그림 2. 파동의 모든 성질을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물체의 상태가 중첩될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중첩된 상태를 보는 일이 없을까? 양자물리의 가설에 따르면 중첩상태는 관측되기 직전까지 존재하다가 관측되는 순간 사라지고 중첩을 구성하고 있던 개개 상태 중의 하나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측정 후 하나의 상태만 남는 과정을 붕괴라고 부른다. 중첩된 수소 원자를 관측하면 바닥 상태이거나 들뜬 상태로 관측되고, 수직, 수평 편광이 중첩된 광자를 관측하면 수직이나 수평이 관측될 뿐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고 있을 때는 내 뒤의 돌멩이가 이쪽에 있는 상태와 저쪽에 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삭 돌아보는 순간에 이쪽 혹은 저쪽을 골라 무작위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런 주장에 동조하기 어렵다. 그러나 양자물리는 이런 황당한 해석방식에도 불구하고 예측이 틀린 적이 없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입자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 있을 때도 중첩상태에 있을 수 있다. 만일 광자가 두 개 있다면 이 두 개의 광자 1과 2가 있을 수 있는 상태는 (가) 1, 2번 광자 모두 수직편광인 경우, (나) 1수직-2수평, (다) 1수평-2수직, (라) 1, 2 모두 수평, 이렇게 네 가지가 가능하며 이 네 가지 상태가 중첩된 상태도 가능하다. (가), (나), (다), (라) 네 상태가 중첩된 경우 1번 광자의 상태를 관측해서 수직이 관측되었다면 1번 광자가 수평이었던 (다)와 (라) 상태는 사라지고 (가)와 (나)의 중첩상태로 붕괴한다. 이 상태에서 2번째 광자의 상태를 측정한다면 역시 수직 내지 수평 모두 가능하다. 반대로 첫 번째 광자의 측정 결과가 수평이었다면 측정 후 상태는 (다)와 (라)의 중첩상태로 붕괴하며, 이 상태에서 2번째 광자의 상태를 측정해도 역시 수직, 수평 모두 가능하다. 즉 첫 번째 광자의 측정 결과는 두 번째 광자의 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광자 두 개는 서로 아무 관련이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그림 3. 한 쌍의 광자가 얽혀 태어나는 네 가지 경우그림 3. 한 쌍의 광자가 얽혀 태어나는 네 가지 경우.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나)와 (다) 두 상태의 중첩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이 상태에서 1번 광자의 상태를 측정하면 수직이나 수평이 나올 수 있고 2번 광자를 측정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만일 1번 광자를 측정해서 수직이 나왔다면 1번 광자가 수평인 (다) 상태는 사라지고 (나) 상태만 남는다. (나) 상태의 2번 광자는 수평이다. 반대로 1번 광자를 측정해서 수평이 나왔다면 (다) 상태만이 남아 2번 광자의 상태는 수직이 된다. 즉 (나)와 (다) 중첩상태에서 한 광자에 측정을 하면 다른 광자의 상태는 측정하지 않고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중첩상태가 바로 두 광자가 ‘얽힌’ 상태이다.

빅뱅 초기에 두 개의 광자가 얽힌 상태로 생성되고 서로 우주의 반대쪽으로 날아갔다고 하자. 우주의 한쪽 끝에서 한 광자의 상태를 측정하면 그 즉시 적어도 135억 년은 떨어져 있을 다른 광자의 상태를 알게 된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물체의 상태를 순간적으로 알게 될 때 ‘자연은 국소적이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보조차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는 없다는 상대성이론이 생각나며 실제로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런 자연의 비국소성을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이라고 부르며 싫어했다. 그러나 얽힌 상태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정보를 빛보다 빨리 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장 전운이 일 것 같았던 양자물리와 상대론은 타협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1번 광자를 측정하면 즉시 멀리 떨어진 2번 광자의 상태를 알 수 있게 되지만, 1번 광자를 측정했을 때 나올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으므로 임의로 정보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은 정체가 뭘까? 매우 궁금하지만 양자물리의 아버지 보어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닥치고 계산이나 해!” 그러는 바람에 보통 물리학자들은 열심히 계산만 해서 전쟁도 이기고 찬란한 인류문명도 이루어냈다. 양자물리가 완성된 1930년경부터 양자 정보과학기술이 나온 1990년경까지 양자물리가 이루어낸 업적은 화려했으나 가장 궁금한 근본 철학에는 손을 대지 못하는 암흑기였던 셈이다. 

그림 4. 2022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그림 4. 2022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 Nobel Prize Outreach. Illustration: Niklas Elmehed)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 말썽꾸러기가 꼭 있게 마련이다. 이 암흑기에도 그런 말썽꾸러기들이 있었으며 그 대부는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얽힘 상태를 이용해서 양자물리의 자체 모순을 지적하려 한 시도가 소위 ‘EPR 패러독스’이다. 이 논문으로 인해 얽힘의 문제는 실재성이나 국소성의 논란으로 옮겨졌다. 이렇게 얽힘이 철학의 수준에서 논박을 벌이고 있던 중, 존 스튜어트 벨은 이 문제를 실험실에서 검증할 수 있는 부등식의 형태로 만들었다. 소위 ‘벨 부등식’이라는 것인데, 실험을 해봐서 이 부등식이 깨진다면 얽힘에 의한 순간적인 원거리 작용이 맞다는 증명이 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그의 명성 덕분에 물리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에 실렸지만, 벨의 논문은 단 4회만 발간되고 폐간된 학술지에 간신히 실렸다.

이 실험을 최초로 실험실에서 구현한 사람이 20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인 존 클라우저(John F. Clauser)이다. 벨의 부등식은 실험실에서 증명하기 힘든 형태였기 때문에 클라우저는 상황을 약간 바꾸고 이에 맞게 부등식을 유도한 후 이를 실제 실험하여 벨 부등식이 깨짐을 증명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 실험은 허점이 있음이 발견되었고 2022년의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알랭 아스뻬(Alain Aspect)가 보완한 실험을 수행하여 드디어 양자물리의 주장대로 자연계는 국소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되었다. 아스뻬가 벨을 찾아가서 ‘당신의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겠소.’라고 했더니 벨이 ‘당신 영년직이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신임 교수들은 모두 계약직이다. 계약직을 벗어나서 영년직이 되려면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벨 부등식은 허점 없이 증명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성공한다고 해도 곧 폐간될지도 모르는 학술지에 실어 가지고는 영년직 되기 어렵다고 걱정해준 것이다.

그림 5. 양자원격이동이란 물체의 정보만을 멀리 떨어진 곳에 보내고 거기서 물체를 재구성한다.그림 5. 양자원격이동이란 물체의 정보만을 멀리 떨어진 곳에 보내고 거기서 물체를 재구성한다.

암흑기의 이런 선구자들 덕분에 연구의 명맥은 이어지고 이런 얽힘의 괴상한 속성을 이용한 공상과학 같은 양자 정보기술이 1990년대에 등장한다. 고전 컴퓨터는 만년 걸리는 문제를 몇 분 만에 푼다든지, 도청이 전혀 불가능한 통신이라든지, 혹은 원격 이동 같은 기술들 말이다. 원격 이동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져야 신기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므로 이 기술은 순간이동이라고도 불린다. 순간이동이라고 하면 도사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순간적으로 이동하거나, 스타트렉에서 빔다운 빔업하면서 우주선과 혹성 사이를 이동하는 기술을 말한다. 물론 이렇게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기술들은 모두 빛보다 물체가 빨리 갈 수 없다는 상대성이론을 위배하고 있다. 양자 원격 이동은 그런 기술은 아니고 얽힘을 이용해서 정보만을 순간적으로 보내는 기술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도 몇 광년씩 떨어져 있다 하므로 생전에 가보려면 이런 기술을 쓰는 수밖에는 없는데, 그 별에도 수소, 산소, 질소, 탄소 등 유기 원자들은 다 있을 것이므로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양자상태 정보를 그 별에 보내고 거기 있는 원자들로 내 몸과 같은 물체를 조립해 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도사처럼 알아서 순간이동을 할 수 없다면 스타트렉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기계는 적어도 자기가 뭘 보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므로 우리의 신체를 스캔, 즉 측정할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중첩상태는 측정하면 붕괴하여 변화하므로 원본과 달라진다. 양자 원격 이동 기술은 보내려는 물체의 상태를 측정하지 않고 모르는 채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이다. 

우리 신체를 보내기는 아직 요원하나 광자로는 원격 이동이 증명되었다. 이 실험을 성공한 사람이 바로 2022년에 노벨상을 받은 세 번째 사람 안톤 자일링거이다. 이 기술은 가장 흥미롭지만 가장 쓸모가 없어서 실험실에서 증명이 성공한 이후로는 더 이상 개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양자물리의 암흑기에 남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이런 연구들을 해온 2022년의 노벨상 수상자들 덕분에 우리는 문명의 두 번째 퀀텀 점프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태이론물리센터의 <크로스로드>지와의 상호 협약에 따라 크로스로드에 게재되는 원고를 본 칼럼에 게재합니다. 본 원고의 저작권은 아태이론물리센터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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