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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PLAZA

물리 이야기

내 속의 또 다른 나 <3>*

작성자 : 김영균 ㅣ 등록일 : 2023-05-02 ㅣ 조회수 : 568

저자약력

김영균 교수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이학사)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ygkim@gnue.ac.kr)

1936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중력 렌즈(gravitational lens)’에 관한 짧은 논문 한 편을 게재했다. 논문의 제목은 ‘Lens-like Action of a Star by the Deviation of Light in the Gravitational Field’인데,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시작한다. “얼마 전에, R. W. Mandl이 나를 방문해서 약간의 계산 결과를 출판하도록 내게 요청했다. 계산은 그의 요청에 따라 내가 수행했다. 이 문서(note)는 그의 바람에 따라 작성되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에 언급된 Rudi W. Mandl은 체코 출신의 이민자로, 1936년 당시에 미국 워싱턴 D.C.의 한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으며 생계를 유지하던 ‘아마추어 과학자’였다. 과연 그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Mandl은 1894년, 현재 체코의 영토인 모라비아(Moravia)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에서 전기 공학을 공부하고,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돼 시베리아로 보내지기도 했던 그는 독일에서 자신이 발명한 전기 다리미를 판매하는 사업이 망하자 결국 미국으로 건너갔다.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고 있었지만, 그는 과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36년 봄의 어느 날, Mandl은 당시 미국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 건물에 있던 Science News Letter(지금은 Science News) 사무실을 방문했다. 자신의 ‘중력 렌즈’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완성한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별빛은 태양과 같은 거대한 천체 부근을 지날 때 휘어진다. 별빛이 정말로 태양의 중력장에 의해 휘어진다면, 별들은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1919년,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er Stanley Eddington, 1882‒1944)이 이끄는 영국의 관측실험팀은 태양의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아인슈타인의 예측을 확인하는 관측을 했고, 이를 계기로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유명 인물이 되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광학 렌즈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Mandl은 중력장에 의해 빛이 휘어지는 것에서 광학 렌즈와 유사성을 발견했다. 렌즈는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을 굴절시켜서 그 물체의 모습을 확대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별 A가 별 B의 뒤쪽에 시선(視線) 상에 충분히 가까이 놓여 있다면, 별 B는 별 A에서 나오는 빛에 대해 ‘중력 렌즈’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Mandl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Science News Letter에 게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Science News Letter는 신중하게 아인슈타인과 Mandl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인슈타인은 Mandl에게 호의적이었지만, ‘중력 렌즈’의 아이디어를 출판하는데 회의적이었다. 별들의 중력 렌즈 효과를 실제로 관측하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Mandl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논문을 출판하도록 아인슈타인을 설득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것은 당신에게 큰 기쁨을 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이론을 아인슈타인 법칙으로 바꾼 사람들이 또 빌어먹을 유태인들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히틀러가 느낄 기쁨보다는 조금 작겠지만요.” 마침내 아인슈타인은 중력 렌즈 논문을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하기로 결심한다. 논문이 게재된 후, 아인슈타인은 사이언스의 편집자에게 편지를 썼다. “Mandl 씨가 나에게서 짜낸(squeezed out of me) 논문의 출판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가치가 별로 없지만, 그 가여운 사람(the poor guy)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이언스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몇 가지 중력 렌즈 효과를 계산했다. 먼저 빛을 방출하는 별 A와 중력 렌즈의 역할을 하는 별 B, 그리고 지구의 관측자가 완전히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경우를 다룬다. 이때 관측자는 점(點) 같은 별 A 대신에 어떤 특정 각 반지름을 가진 빛나는 원(luminous circle)을 감지할 것이다. 이러한 원을 지금은 ‘아인슈타인 고리(Einstein ring)’라고 부른다. 관측자가 일직선 정렬을 약간 벗어난 경우도 고려했는데, 이때는 별 A가 두 개의 점 같은 광원(point-like light-sources)으로 관측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별 B의 중력 렌즈 효과에 의해 별 A의 겉보기 밝기가 몇 배나 증가할지 계산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별들의 중력 렌즈 효과들을 관측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Mandl이 중력 렌즈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위해 접촉한 사람은 아인슈타인만이 아니었다. 그중 한 명은 텔레비전의 발명가로 알려진 Vladimir K. Zworykin이었다. 그는 다시 Mandl의 아이디어를 암흑물질의 선구자인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 1898-1974)에게 전했다. “Nebulae as Gravitational Lenses”라는 제목으로 1937년에 학술지 Physical Review에 게재된 논문에서 츠비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여름 V. K. Zworykin 박사(Mandl 씨가 같은 아이디어를 그에게 제안했다)가 나에게 중력장의 작용을 통한 이미지 형성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 결과로 내가 약간의 계산을 했는데, 그것은 중력 렌즈 효과의 관측에 있어서 별들(stars)보다는 은하 밖의 성운들(extragalactic nebulae)이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별들이 아니라 은하들 사이의 중력 렌즈 효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별들보다 은하들의 중력 렌즈 효과가 더 관측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은하들의 질량이 더 커서 빛을 더 잘 휘어지게 할 수 있고, 은하들이 아주 먼 거리에서도 분해할 수 있는(resolvable) 겉보기 크기(apparent dimensions)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은하 주위에서 빛이 굴절되는 것을 관측하는 것이 은하의 질량을 가장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1933년, 츠비키는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암흑물질이 빛을 발하는 물질보다 훨씬 더 많이 있어야 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중력 렌즈의 관측은 은하의 질량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은하의 중력 렌즈 효과로 두 개의 쌍둥이 퀘이사가 처음으로 관측된 것은 츠비키가 죽고 5년이 흐른 1979년의 일이었다.

츠비키는 동료 천문학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에 따르면, “프리츠 츠비키의 과격한 아이디어와 호전적인 성격은 그의 칼텍(Caltech) 동료들과 잦은 분쟁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고, 그는 그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츠비키는 동료들을 ‘구(球) 모양의 후레자식(spherical bastards)’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방향으로 보나 ‘후레자식’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1898년생인 츠비키는 102살까지 살고 싶다고 농담하곤 했다. 3세기에 걸쳐 사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 테니까. 초신성, 중성자별, 암흑물질, 은하 중력 렌즈 등 그의 ‘과격한’ 아이디어는 결국 모두 사실로 드러났지만, 3세기에 걸쳐 살고자 했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76번째 생일의 6일 전인 1974년 2월 8일에 죽었다.

중력 렌즈를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은 ‘아마추어 과학자’ Rudi W. Mandl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1948년 5월 2일, Long Beach Indeendent라는 신문의 스포츠면에 한 발명가와 관련된 칼럼이 실렸다. 그 발명가는 야구 스타디움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야구 구단에 보낸 편지에 자신의 자격을 증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집어넣었다. “1936년 12월 19일 자 Science News Letter를 보면 제가 아인슈타인 교수와 공동연구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의 사망 날짜가 1948년 12월 31일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2021년 5월 30권 5호, “내 속의 또 다른 나 <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각주
1)A. Einstein, “Lens-like Action of a Star by the Deviation of Light in the Gravitational Field”, Science 84, 506 (1936).
2)Tom Siegfried, “The amateur who helped Einstein see the light”, Science News October 1 (2015).
3)Jürgen Renn and Tilman Sauer, “Eclipses of the Stars – Mandl, Einstein, and the Early History of Gravitational Lensing”.
4)F. Zwicky, “Nebulae as Gravitational Lenses”, Phys. Rev. 51, 290 (1937).
5)D. Walsh, R. F. Carswell and R. J. Weymann, “0957 + 561 A, B: twin quasistellar objects or gravitational lens?”, Nature 279, 381 (1979).
6)S. M. Maurer, “Idea Man”, Beamline 31(1) (2001).
7)K. Winkler, “Fritz Zwicky and the Search for Dark Matter”, Swiss American Historical Society Review 50(2),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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