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크로스로드
빛으로 양자컴퓨터 만들기
작성자 : 라영식 ㅣ 등록일 : 2023-10-31 ㅣ 조회수 : 1,601
라영식 교수는 2014년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광학기반 양자광학 실험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5년부터 4년간 프랑스의 Laboratoire Kastler Brossel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지내며 양자압축 광원 개발 및 연속변수 양자정보 연구를 진행하였다. 2018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 재직하며 양자광학 및 양자정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ysra@kaist.ac.kr)
“빛으로 양자컴퓨터 만들기”
마치 음식 레시피같이 간단히 따라 할 수 있는 것처럼 들린다. 또는 최첨단의 양자컴퓨터를 흔한 빛으로 만든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양자컴퓨터는 최근 Google, IBM과 같은 대기업들이 제품을 선보이며 대중들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고전정보(예: 0,1 비트)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양자정보(예: 0과 1의 양자중첩 또는 양자얽힘)를 사용하여 고전컴퓨터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려는 장치이다. 하지만 고전컴퓨터를 능가하는 유용한 양자컴퓨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양자정보를 다루는 것이 고전정보에 비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양자중첩을 오래 유지하거나 양자정보의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간단치 않다). 이러한 양자컴퓨터는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어려운 양자현상에 기반하므로 초저온 및 진공과 같은 극한 환경이 필요하고, 초전도체, 원자 등과 같은 양자시스템을 다루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럼 빛으로는 양자컴퓨터를 어떻게 만들까?
사실 빛은 양자컴퓨터를 만들기에 매우 좋은 장점들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어떤 측면으로는 다른 양자컴퓨팅 플랫폼들보다 더욱 앞선 성능을 나타낸다. 우선, 빛은 상온 환경에서도 양자상태를 잘 보존하고 제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양자현상이 극저온 환경에서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상온의 열에너지가 양자현상을 방해하기 때문인데, 광자의 경우 에너지가 eV 수준으로 매우 높아 상온에서도 열에너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17년 중국의 USTC 팀은 1천 km 이상의 상공에서 지상으로 양자얽힘을 전송하는 실험에 성공하였다. 빛은 규모 확장 측면에서도 매우 유리한데, 이는 빛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광학모드(optical mode)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의 시간, 공간, 주파수 모드의 규모는 끊임없이 확장될 수 있으며 이 특성을 활용하여 대규모의 양자얽힘 상태를 구현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또한, 효율적인 광검출기의 발달로 빛의 양자상태를 높은 신뢰도로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장점들을 바탕으로 빛으로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기술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본 글에서는 이러한 연구 진행 내용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현 단계의 양자컴퓨팅 기술은 NISQ (noisy intermediate-scale quantum)라 불리는데, 이는 양자컴퓨터의 완성도와 규모에 아직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컴퓨터와 비교하여 양자기술에 의한 성능우위(quantum advantage)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는 단계이다. NISQ 양자컴퓨터는 오류정정(error correction) 기능을 갖춘 양자컴퓨팅으로 나아가기 이전 단계로서 현재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양자컴퓨터를 다룬다. 이 단계에서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우위를 검증하기 위해 양자컴퓨터가 자연스럽게 계산할 수 있는 문제부터 접근한다. 이는 마치 문어의 지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수학 문제를 가르쳐서 풀게 하기보다는 이들의 자연스런 행동부터 관찰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NISQ 양자컴퓨터의 성능우위는 Google의 초전도체 양자컴퓨터인 Sycamore를 사용한 연구에서 최초로 주장하였고, 이후 빛을 이용한 양자컴퓨터에서 더욱 발전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NISQ 양자컴퓨터의 불완전성 때문에 완벽한 성능우위 검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엄밀한 검증을 위해 양자컴퓨터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가는 연구가 필요하다.
빛 양자컴퓨터의 성능검증은 많은 광자들이 서로 간섭하는 현상을 관측하여 이루어진다. 빛의 간섭은 빔분할기(beam splitter)라는 장치로 구현하는데, 이 장치는 여러 가지 입구로 들어온 빛을 여러 개의 출구로 갈라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광자 하나가 두 개의 출입구로 구성된 빔분할기의 입구로 들어갈 경우, 양자간섭 현상에 의해 광자는 두 가지 출구로 양자중첩되어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하면 광자는 특정 출구 하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출구에 있을 확률이 모두 존재하며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출구에 있을지 예측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만일 두 개의 광자가 각각 입구로 들어간다면 양자간섭 현상에 의해 더욱 독특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 경우 두 광자는 서로 합쳐진 상태로 양자중첩되어 두 출구로 나오게 된다. 이를 확장하여 더 많은 광자와 많은 출입구를 가진 빔분할기를 사용하는 상황을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이때 나타나는 현상을 고전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P hard complexity)로 알려져 있다. 이를 빛 양자컴퓨터로 구현하는 초기의 연구에서는 많은 수의 광자를 제작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워 20개 이하의 광자를 관측하는 수준에 머물렀으나, 최근 “양자압축광”이라 하는 특수한 빛을 활용하는 기술을 도입하여 200개 이상의 광자를 관측하는 수준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양자압축광(squeezed light)은 고전적인 빛(예: 레이저, 태양)이 가진 근본적인 잡음 한계를 초월하여 매우 낮은 잡음을 나타내는 빛의 양자상태이다. 낮은 잡음을 가진 양자압축광은 양자센싱 분야에서 계측장치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현재 중력파 검출기에 적용되어 더 많은 중력파 신호를 감지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양자압축광은 빛의 비선형변환(nonlinear conversion) 과정을 통해 제작할 수 있으며, 수많은 광학모드에 여러 양자압축광을 동시에 생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은 확장성 있는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설명한 빔분할기에 양자압축광을 넣게 되면 양자얽힘 상태를 바로 획득할 수 있으며, 이를 확장하여 많은 양자압축광을 많은 출입구를 가진 빔분할기에 넣어 대규모의 양자얽힘상태를 발생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국내외 연구실에서 이러한 원리로 양자얽힘상태를 실제 구현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구현된 양자얽힘상태는 빛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빛 양자컴퓨터는 성능검증뿐만 아니라 범용 양자컴퓨팅(universal quantum computing) 기술을 개발하는 측면으로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범용 양자컴퓨팅은 양자상태에 양자게이트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되는데, 이때 양자얽힘 게이트의 구현이 매우 큰 난관으로 작용한다. 이와는 달리 “측정기반 양자컴퓨팅(measurement based quantum computing)”은 특수한 양자상태를 준비하고 이에 국소 측정(local measurement)만을 가함으로써 범용 양자컴퓨팅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측정기반 양자컴퓨팅에서는 양자얽힘 게이트를 직접 구현하지 않고도 범용 양자컴퓨팅을 수행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이에 필요한 특수한 양자상태를 “클러스터 양자얽힘(cluster entanglement)” 상태라고 하며 양자얽힘으로 연결된 노드(node)들 간의 양자적인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양자컴퓨팅을 구현할 수 있다. 범용 양자컴퓨팅을 위해 2차원 격자 형태의 클러스터 양자얽힘 상태가 필요한데, 앞서 설명한 양자압축광과 빔분할기를 이용하여 2차원 클러스터 양자얽힘 상태를 구현하는 기술이 최근 개발되었다. 더 나아가 NISQ 양자컴퓨터가 다음 단계로 발전하려면 오류정정 기능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클러스터 양자얽힘 상태의 구조가 3차원 격자 형태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장 최신 연구에서는 빛으로 3차원 클러스터 양자얽힘 상태를 구현한 연구 결과도 보고되었다.
양자컴퓨터는 이미 연구개발이 완료되어 실용화 단계로 넘어간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많은 기초연구와 기술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NISQ 양자컴퓨터의 성능우위는 아직 완벽하게 검증되진 않았고 실용성 있는 문제해결을 위하여 현 양자컴퓨터의 성능 및 규모가 더욱 발전되어야 한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완성된다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매우 클 것이다. 양자컴퓨팅 분야의 여러 기술적인 난관들을 해결하여 충실히 발전하려면 장기적인 노력과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다. 국내의 경우 양자기술의 세계적 선도를 위해 전문가 양성과 원천기술 확보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러 양자컴퓨팅 플랫폼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그중 빛이 가진 고유한 장점들(상온작동, 확장성, 안정성 등)을 활용한 빛 양자컴퓨터 기술 또한 매우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빛을 다루는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다면 음식 레시피처럼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빛으로 양자컴퓨터 만들기”가 가능한 미래가 정말 올 수도 있겠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목표로 한 <크로스로드>는 과학 특집, 과학 에세이, 과학 유머, 과학 소설, 과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 글을 통해 미래의 과학적 비전을 보여주고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에서 창간한 과학 웹 저널입니다.
http://crossroads.apctp.org/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는 정부의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 지원으로 사회적 가치 제고에 힘쓰고 있습니다.
- 이전글물리학회 소식
- 다음글새로운 연구결과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