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창
양자 기술의 시대
작성자 : 안재욱 ㅣ 등록일 : 2024-04-15 ㅣ 조회수 : 1,055
한국물리학회 대전·충남·세종지부 지부장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교수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학계, 연구계, 산업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구원 인건비를 걱정하고, 출장을 취소하고, 연구계획을 축소하는 등, 연구비 조달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많은 연구자분들께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한다. 한 대학에서는 “R&D 예산을 복원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정부 당국자는 “내년 R&D 예산을 퀀텀 점프 시키겠다”는 다짐을 했다. 여기에서 “퀀텀 점프”는 양자 단위의 물리적으로 가장 작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는 12대 국가 전략 기술을 선정하고(그 중에 하나가 아래에 이야기할 양자 기술), 기초·원천연구와 차세대 기술에 장기 투자하겠다고 하니, 많은 기대를 해 본다.
최근 양자 기술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독자들도 지인이나 친척에게서 심심치 않게 양자 물리, 양자 기술, 양자 컴퓨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을 것이다. 양자 물리를 일반인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최대한 일반인 버전으로 설명해보면, “고전 물리학에서는 물체를 입자와 파동으로 구분하여 잘 설명할 수 있었는데, 원자 단위의 양자 세계에서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란 것이 밝혀져서, 대신 파동함수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불과 수백 개 원자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파동함수는 슈퍼컴퓨터로도 계산하기 어렵다더라. 그래서, 양자컴퓨터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관련 기술의 발전이 매우 빠르다더라.”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어머니가 미장원에서 들으셨다는 세상을 바꿀 첨단기술, 양자컴퓨터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양자컴퓨터는 원래 물리학 연구를 위해 고안된 실험장치인데, 이 장치가 은행 암호, 비트코인 등 현재의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가 어려워하는 계산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전 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물리학 전문지식이 필요한 기술이어서, 미국 등에서는 물리학과가 인기라고 하네요.”
물리학 관점에서 양자컴퓨터는 다체계 파동함수 공작기계로 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 프랑크 윌첵은 양자컴퓨터를 현실 가상(real virtuality)으로 규정한다.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이 컴퓨터로 구현한 가상의 현실, 즉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정보 세계라고 한다면, 양자 컴퓨터로 만든 가상의 다체 파동함수(즉, 양자정보)는 실재하는 물리계, 즉 현실 가상인 것이다. 세상을 보는 대로 기술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으며, 양자 물리학이 세상을 바꿀 첨단기술을 잉태하고 있다고 하겠다.
양자 기술은 새로운 응용물리 또는 물리학 기반의 새로운 첨단기술이다.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본인의 실험실은 고진공, 극저온 등의 극한 물성 유지 장치와 초정밀, 초고속 등의 극한 계측 장비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산 장비는 전무하다시피 하고, 연구용 고사양 장비를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에서 수입해야 한다. 이는 양자컴퓨팅과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한 국내 기업의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관련 산업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자컴퓨팅에 관심있는 국내 대기업과 여러 차례 미팅을 진행했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설명해주면 담당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인다. 그러나 며칠 후 고위층이 당사 기술(반도체, 광통신, AI 등)과의 접점에서 양자 기술을 다시 찾아오라고 한다고 전한다. 이런 반응은 양자 물리의 난해성과 양자 전문인력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국내외에서 양자 기술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부각되는 현 시점에서, 물리학 연구와 전문인력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