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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과 미래를 바꾸는 빛 레이저
작성자 : 김지원 ㅣ 등록일 : 2024-10-31 ㅣ 조회수 : 78
김지원 교수는 2000년 KAIST 물리학과 이학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ERICA 나노광전자학과에 재직 중이며, 내년부터는 신설되는 국방지능정보융합학부 지능정보양자공학전공으로 소속을 옮길 예정이다.
화면 가득 우주선들이 날아다니며 빨간빛, 노란빛이 공간을 가로질러 적기를 파괴하는 것은 SF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그때 적기를 파괴시키던 여러 색깔 빛 줄기가 바로 레이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 속 레이저 무기는 단지 영화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꿈의 무기였을 뿐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고출력 레이저로 드론을 격추시키고,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한 대공 방어 체계를 구축한다는 뉴스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이는 영화 속 상상의 레이저 무기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은 이 글을 통하여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꿈의 빛인 레이저와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레이저 무기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 1. (a) 레이저 무기를 이용한 우주 전쟁, (b) 드론을 격추시키는 레이저 무기. 출처: https://www.hanwha.co.kr/newsroom/media_center/news/news_view.do?seq=6608
레이저는 한 마디로 ‘좋은 진행 특성을 가지는 단색 빛’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자기파의 일종인 빛은 “회절”이라는 파동의 속성에 의해 진행하면서 퍼져나간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더라도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는다는 건 소리 파동이 진행하며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빛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빛을 먼 거리까지 직진광으로 보내거나 매우 작은 크기로 집속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레이저는 빛이 퍼지는 회절 특성을 최소화한 인공적인 빛으로 아주 먼 거리까지 매우 작은 빔 크기를 유지하며 전파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시간적으로 빛의 세기 분포 조절이 가능하여 연속 발진 레이저에서부터 펨토(10‒15)초 이하의 짧은 시간 동안 순간적으로 아주 높은 세기를 갖는 펄스 레이저도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레이저는 아주 높은 빛 에너지를 먼 거리의 물체에 머리카락 두께보다 작은 면적으로 집속시킬 수 있으므로 목표물을 녹여 구멍을 내고, 심지어 파괴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레이저는 1917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이론적으로 처음 제안되었고, 1960년 테어도르 마인만이 세계 최초의 레이저인 루비 레이저를 발명하였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빛, 레이저의 존재가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이끌었고 곧이어 수많은 연구 개발이 이루어졌다. 1964년 찰스 타운즈 박사와 동료들이 레이저의 시초인 메이저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총 22회 이상의 노벨상이 레이저 및 이를 이용한 응용 연구에 수여된 것을 보면 레이저가 현대 과학 기술과 사회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 산업 현장에서 레이저 가공 장비는 금속 절단 및 드릴링,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판 가공 등에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고, 최근 들어 레이저를 이용한 미세 공정은 반도체 웨이퍼 및 소자, 휴대폰 제조 등의 첨단 산업 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 되었다. 국방 분야에서도 레이저는 일찍부터 화학물질/폭발물 탐지 및 제거, 거리 측정, 유도 기만, 자이로스코프 등 많은 분야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고출력 레이저 무기는 최근 전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소형 로켓이나 드론 공격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재조명되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에서 활발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림 2. (a) 자발 방출, (b) 유도 방출, (c) 레이저 공진기.
그럼 레이저는 왜 햇빛이나 조명 등의 일반 빛과는 다른 좋은 특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레이저 빛의 생성 과정에 있다. 일반적으로 물질의 원자 속 전자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면 높은 에너지 준위로 여기되었다가 수십 나노초 이하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원래의 낮은 에너지 준위로 자연적으로 떨어진다. 그 순간 두 에너지 준위의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가지는 빛 알갱이, 즉 광자를 배출하는데(그림 2(a)) 이 과정을 자발 방출(spontaneous emission)이라고 한다. 수많은 원자들로부터 자발 방출 과정으로 생성되는 광자들의 묶음이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일반적인 빛으로, 이렇게 생성된 빛은 공간적, 시간적으로 아무런 규칙성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특정 물질, 소위 “레이저 물질”은 원자 내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 머무는 시간이 수 마이크로초 이상으로 충분히 길다. 전자가 높은 준위에 머무는 동안 외부에서 두 준위의 에너지 차이와 같은 에너지를 가진 광자가 입사되면 높은 에너지 준위의 전자는 낮은 에너지 준위로 강제로 떨어지게 된다. 이때 생성되는 광자는 그림 2(b)처럼 입사된 광자와 동일한 에너지와 동일한 시간적, 공간적 특성을 갖고 같은 방향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 과정을 유도 방출(stimulated emission)이라 부른다. 즉 유도 방출 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생성된 광자는 입사된 광자와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되므로, 입사된 빛이 동일한 특성을 갖고 두 배로 증폭이 된 것이다. 레이저란 이름은 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이다. 유도 방출에 의한 레이저 빛의 생성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그림 2(c)와 같은 레이저 공진기를 구축함으로써 구현할 수 있다. 양 끝이 2개의 거울로 된 패브리-패롯 간섭계 안에 레이저 물질을 삽입한 구조인 레이저 공진기는 생성된 빛이 두 거울 사이를 무한히 왕복하면서 유도 방출을 계속해서 발생시킬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레이저 빛은 동일한 에너지, 즉 단색광을 가지며, 동일한 공간적, 시간적 특성을 가질 수 있게 되어 회절이 최소화된 직진광의 특성을 갖게 된다.
우수한 특성을 가진 레이저가 첨단 과학 기술의 집합체이자 선도적 사용처인 국방 과학 기술 분야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먼저 국방에 응용된 레이저 기술은 지향성 공간 통신이다. 1970년대부터 미공군은 레이저를 이용한 지향성 통신 시스템 개발을 시작하였고 1975년 처음으로 저궤도 위성과 지상 기지국 사이에 레이저를 활용한 통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최근 본격적인 우주 개발 시대를 맞아 지향성 레이저 통신은 선진국들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되어 관련 연구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통신 이외에도 레이저는 오래전부터 여러 국방 분야에서 필수품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레이저 거리 측정기, 레이저 조준기, 레이저 원거리 센싱 등은 국방 분야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레이저 무기는 1980년대 냉전 시대에 미국이 구소련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고자 계획한 전략방위구상의 일환으로 ‘스타워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레이저 무기에는 적 기체의 센서를 파괴하여 무력화시키는 것과 목표물을 직접 파괴하는 것,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적 기체가 사용하는 탐지 장비와 센서에 따라 레이저의 특성이 결정되므로 출력보다는 레이저의 파장이 중요한 반면, 파괴를 위한 레이저는 공격 대상에 따라 레이저의 출력이 달라진다. 즉 10 kW 미만의 레이저 출력을 가진 레이저로는 지뢰 및 사제 폭발물 제거가 가능하고, 10~100 kW 범위의 레이저 출력으로는 소형 드론과 무인기, 소형 비행기 등의 요격이 가능하며, 순항 미사일이나 탄도 미사일 등의 요격을 위해서는 100 kW 이상 메가와트 수준의 레이저 출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킬로와트 급의 높은 출력을 가지는 레이저 무기는 매우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므로, 고출력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를 자체 개발할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으며 관련 핵심 기술은 엄중한 보안 하에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레이저 무기는 주요 건물이나 시설에 배치하여 운용하는 고정형 무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차량, 함정, 비행기 등의 이동형 플랫폼에 탑재하여 전장에서 운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출력뿐 아니라 크기와 무게, 환경 영향성도 매우 중요한 사양이 된다. 따라서 레이저 무기 기술은 고출력 레이저 빛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광학 기술뿐 아니라, 필요한 전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력 기술,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냉각 기술, 다양한 플랫폼에 탑재 가능한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극한 전장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기구 설계 기술, 수 km 이상 먼 거리의 표적을 조준하고 추적하는 광학계 기술을 모두 포함하는 첨단 기술의 종합선물 세트와 같다. 특히 이 중에서 고출력 레이저 빛을 만드는 광학 기술은 가장 중요한 기술로서, 사용되는 레이저 광학 기술의 종류에 따라 레이저 무기의 출력과 사양의 한계가 결정된다.
그림 3. 광섬유 레이저 시스템 개략도.
1980년대 무기로서 처음 개발된 레이저는 불화수소 등의 화학 물질을 레이저 물질로 사용한 화학 레이저로 그 당시 수 kW급 이상의 출력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저효율, 고비용, 거대 크기, 유독 레이저 물질 등의 문제로 인해 실질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고출력 다이오드 레이저가 개발되면서 광섬유 레이저, 디스크 레이저, 슬랩 레이저 등 기존 레이저 출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혁신적인 고체 물질 기반 레이저 기술이 개발되었고, 그 중 광섬유 레이저가 국방 분야에서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광섬유 레이저는 매우 높은 전광(electro-optic) 효율과 탁월한 냉각 성능을 가지면서, 레이저 빛의 전파 특성이 다른 레이저와는 달리 출력에 의존하지 않는 도파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그림 3과 같이 독립적인 렌즈나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 머리카락 굵기보다 약간 더 두꺼운 광섬유로 모든 부품들이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매우 높은 물리적 환경적 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광섬유 레이저는 레이저 무기에 요구되는 까다로운 사항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레이저 구조에 가까워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대형 방산 업체들도 주로 광섬유를 기반으로 한 레이저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 북한 무인기의 남침을 계기로 도심 대공 방어용 레이저 무기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활발한 연구 개발을 시작하였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바탕으로 국방과학연구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이 활발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여 선진국 기술 수준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으며 최근 폭발물 제거, 드론 격추 등의 성공적인 시연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학계에서는 2022년 한양대학교 ERICA 김지원 교수 연구실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정훈 박사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단일 시스템으로는 가장 큰 출력인 3 kW 출력의 싱글 모드 고출력 광섬유 레이저 시작품을 제작 및 시연한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현재 군을 중심으로 관련 기관에서는 더 높은 출력을 확보하기 위한 레이저 신기술 개발과 함께, 차량, 함선, 비행기 등 이동형 플랫폼에 장착 가능한 레이저 무기에 대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폭발물 제거, 개인용 레이저총, 원거리 지향성 에너지 공급 등 고출력 레이저 무기를 활용한 다양한 응용 분야도 동시에 검토되고 있다.
그림 4. (a) 레이저 무기로 지뢰 제거, (b) 최근 드론 격추를 성공적으로 시연한 국방과학연구소 개발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I.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j2Z5vyHbCw,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802510643
과거 국방 분야에서 먼저 개발되었지만 민간에 이전되어 인류의 과학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던 첨단 기술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첨단 레이저 기술도 인류의 발전에 향후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극한 환경에서도 정상 동작할 수 있는 국방 레이저 장비와 기술들은 우주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의 초석이 된다. 따라서 첨단 레이저 무기 기술은 단순히 전쟁을 위한 무기 기술의 수준을 넘어, 가깝게는 첨단 산업 기술 개발, 더 나아가서는 우주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필수 핵심 기술로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레이저 무기를 이용한 전투가 현실화되면, 현재의 주력 무기 체계인 화약 무기는 과거의 활과 화살 무기처럼 영화에서나 보게 될지도 모른다.
미래지향적 과학과 기술은 항상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첨단 국방 분야뿐 아니라 첨단 과학과 기술의 핵심 기술로 활용되고 있는 꿈의 빛 레이저와 관련 기술은 젊은 인재들이 자신의 꿈과 포부를 펼치게 해줄 훌륭한 도구이자 무한한 장이 되어 인류 문명의 앞길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목표로 한 <크로스로드>는 과학 특집, 과학 에세이, 과학 유머, 과학 소설, 과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 글을 통해 미래의 과학적 비전을 보여주고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에서 창간한 과학 웹 저널입니다.
http://crossroads.apctp.org/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는 정부의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 지원으로 사회적 가치 제고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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