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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이야기

드원-베란-벨의 우주선 사고실험

작성자 : 김재영 ㅣ 등록일 : 2020-08-01 ㅣ 조회수 : 206

저자약력

김재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물리학 기초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거쳐 현재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물리철학 및 물리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 『정보혁명』, 『양자, 정보, 생명』,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이 있고, 공역으로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에너지, 힘, 물질』 등이 있다.(zyghim2@kaist.ac.kr)

벨 부등식과 ABJ 비정상(Adler–Bell–Jackiw anomaly)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존 벨(John Stewart Bell)은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그림 1)의 (a)처럼 세 우주선 A, B, C가 서로 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자. 우주선 A는 나머지 두 우주선 B, C와 같은 거리에 있다. (b)처럼 어느 순간 A가 동시에 B와 C에 신호를 보내면 두 우주선이 발진 장치를 켜서 순간적으로 일정한 속도를 얻게 만든다. 만일 (c)처럼 우주선 B와 C 사이에 끊어질 수 있는 실을 팽팽하게 연결해 두었다면,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 때문에 실의 길이가 짧아져서 결국 실이 끊어지게 된다. 

그림 1. 드원-베란-벨의 우주선 사고실험.
그림 1. 드원-베란-벨의 우주선 사고실험.

벨은 이 문제를 가지고 CERN의 구내식당에서 어느 저명한 실험물리학자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실험물리학자는 실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벨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이론 부서로 가서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대부분 실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쪽으로 기울었다가, 벨이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난 뒤에야 실이 끊어진다는 데에 동의했다고 벨은 말하고 있다. 

실상 이 우주선 사고실험을 처음 고안한 것은 드원(Edmond M Dewan)과 베란(Michael J Beran)이다. 정지 좌표계 S에서 똑같게 만들어진 우주선 B와 C를 같은 방향으로 놓은 뒤, 동시에(정지 좌표계 S를 기준으로) 발진 장치를 켜면 두 우주선의 운동이 똑같기 때문에 두 우주선 사이에는 상대운동이 없고 따라서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는 일정하다. 이제 두 우주선 사이엔 가느다란 실이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자. 실은 우주선의 운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두 우주선의 발진 장치가 켜지면 실은 정지 좌표계 S를 기준으로 운동하게 되고 일정한 속도를 얻게 되므로, 정지 좌표계 S에서 측정할 때 실의 길이는 로렌츠 수축만큼 줄어들게 된다.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는 일정한데, 실의 길이는 줄어들기 때문에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결국 실은 끊어지게 된다.

드원과 베란이 이 사고실험의 논변을 위해서 강조하는 것은 (a) 두 우주선을 연결하는 실의 양 끝 사이의 거리와 (b)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로 독립적으로 동시에 정지 좌표계에 대하여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두 물체 사이의 거리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설명하는 드원과 베란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만일 우주선들이 가속되어 일정한 속도를 얻은 뒤에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가 줄어든다면, 정지 좌표계 S를 기준으로 두 우주선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우주선은 똑같게 만들어졌다고 했고 동시에 가속을 시작했으므로, 두 우주선 사이의 상대속도가 0이 아니라는 것은 두 우주선의 속도의 변화율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모순이 된다.

이와 달리 두 우주선 사이에 실이 연결되어 있다면 실은 로렌츠 수축을 일으키게 된다. 드원과 베란에 따르면, “실이 수축되는 이유는 실의 양 끝 사이의 거리가 ‘고유 로렌츠 좌표계’에 대하여 정의되기 때문이다. 실이 상대론적 의미에서 ‘강체’라고 가정하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거리이다. 이는 실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좌표계에서 측정이 이루어진다면 수축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이 우주선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실의 정지 길이를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허용된다. 미리 규정된 방식으로 관성좌표계에 대하여 움직이는 두 물체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순간 정지좌표계에 대해 정의된 속박조건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논변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로렌츠 수축은 물체에서만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길이가 줄어드는 것이고, 관찰자가 있는 관성계와 관찰대상이 있는 관성계 사이에 상대속도가 있다면 언제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선들이 잠시 가속되긴 하지만 발진 장치의 가속이 끝난 뒤에는 다시 우주선의 속도가 일정하므로 관성계가 되고 가속이 일어나는 방식이 매 순간 순간적으로 관성계로 간주할 수 있도록 일어난다고 가정해도 좋다.) 정지 좌표계 S에서 볼 때 두 우주선을 연결하고 있는 실이 로렌츠 수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우주선이 놓여 있는 공간도 로렌츠 수축되므로 정지 좌표계 S에서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도 로렌츠 수축만큼 줄어들어서 실은 끊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실이 끊어지게 만드는 변형력은 상대성이론에서 잘 정의되는 개념으로서, 어느 한 관성계에서 변형력이 0이라면 다른 관성계에서도 그래야 하므로, 관성계의 차이만으로 변형력이 생긴다는 것은 있기 힘든 일이다.

드원-베란의 논문이 나온 직후에 에벳(Arthur A Evett)과 왕스니스(Roald K Wangsness)는 논변에서의 몇 가지 세세한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고, 노로키(Paul J Nawrocki)는 드원과 베란의 논변이 상대성이론에서 시작해서 상대성이론과 충돌하는 결론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림 2. 첫 번째 경우. (출처: 김성철 2013)

드원-베란-벨의 사고실험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 상황을 조금 바꾸어 보자. 가령 정지 좌표계 S에서 멈춰 있는 세 우주선 A, B, C를 생각하자. 우주선 B와 우주선 C 사이에는 가느다란 실이 연결되어 있다. 우주선 A는 정지 좌표계 S에서 여전히 멈춰 있으므로, (그림 2)와 같이 우주선이 아니라 우주정거장이라고 해도 좋다. 이 상황은 (그림 1)의 경우와 완전히 같다.

그림 3. 두 번째 경우. (출처: 김성철 2013)그림 3. 두 번째 경우. (출처: 김성철 2013)

이번에는 (그림 3)과 같이 우주선 B와 C가 멈춰 있는 상태에서 우주선 A의 발진 장치를 켜서 일정한 속도를 얻는다고 하자. (그림 2)의 경우처럼 B와 C를 우주정거장이라고 해도 좋다. 정지 좌표계 S에서 보면 우주선 B와 우주선 C는 정지해 있고 그 사이의 거리도 달라질 이유가 없으므로 연결된 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선 A에 타고 있는 관찰자에게는 우주선 B와 우주선 C를 연결한 실이 로렌츠 수축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일 드원-베란-벨의 설명처럼 우주선 B와 우주선 C 사이의 거리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 실이 끊어지게 된다. 우주선 B와 우주선 C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우주선 A의 발진 장치가 켜져서 일정한 속도를 얻는 것만으로 그 실이 끊어진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림 4. 세 번째 경우. (출처: 김성철 2013)그림 4. 세 번째 경우. (출처: 김성철 2013)

다음으로 (그림 4)와 같이 우주선 A 옆에 우주선 D가 있고 그 사이에 가느다란 실을 팽팽하게 연결해 두었다고 하자. 우주선 A와 우주선 D는 정지 좌표계 S를 기준으로 정지해 있고, 정지 좌표계에서 동시에 신호를 주어 우주선 B와 C가 동시에 추진하여 일정한 속도를 얻는 상황을 생각하자. 드원-베란-벨의 설명을 따른다면, 우주선 A와 우주선 D에서 보기에, 우주선 B와 우주선 C 사이의 거리는 일정한데, 이 둘을 연결한 실은 로렌츠 수축을 일으켜서 짧아지므로 실이 끊어진다. 정확히 같은 논리로 우주선 B와 우주선 C에서 볼 때에도 우주선 A와 우주선 D를 연결한 실은 끊어진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우주선 A와 우주선 D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귀류법의 추론에 따라 맨 처음의 논의가 틀린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는 유지되면서 그 사이의 실에서만 로렌츠 수축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결국 실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은 옳지 않다. 이를 더 분명하게 보기 위해 마츠다-키노시타의 논의를 원용하여 상세하게 상황을 살펴보자. 

물체의 길이만을 본다면 상대속도 \(V\)인 두 관성계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길이를 로렌츠 수축된 \(L^\prime = L\sqrt{1-(V/c)^2}\)로 볼 것이다. 관건은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도 로렌츠 수축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명료하게 보기 위해서는 민코프스키 시공간 도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두 개의 좌표계를 생각하자. 좌표계 S는 두 우주선 B와 C가 발진하기 전에 세 우주선이 모두 정지해 있는 관성계이며, 좌표계 S′은 좌표계 S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일정한 속도 \(V\)로 움직이는 관성계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두 우주선이 발진하여 일정한 속도 \(V\)를 얻는 과정이 매우 짧다고 가정하자. 

그림 5. 좌표계 S에서 본 우주선들의 세계선. (출처: Matsuda-Kinoshita 2004에서 수정)그림 5. 좌표계 S에서 본 우주선들의 세계선. (출처: Matsuda-Kinoshita 2004에서 수정)

(그림 5)의 파란색 선들(BB′B″B‴과 AA′A″A‴)은 좌표계 S에서 본 두 우주선의 세계선을 나타낸다. 좌표계 S에서 \(t = 0\)인 순간에 동시에 두 우주선이 발진하는 것은 두 시공간 점(즉 사건) A′과 B′에서이다. 발진하기 전에 좌표계 S에서 본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를 \(L\)이라 하면, 발진 이후 좌표계 S에서 본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는 A″B‴으로서 여전히 \(L\)이다. 그러나 좌표계 S′에서는 동시선(동시면)이 x′축과 평행하므로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가 A″B″=B′A″가 된다. 

불변쌍곡선 \(x^{2}-c^{2}t^{2} = x'^{2}-c^{2}t'^{2} =L^{2}\)를 이용하여 비교하면, 좌표계 S에서의 길이 \(L\)과 좌표계 S′에서의 같은 길이는 B′C″이다. 즉 두 우주선 B와 C를 연결한 실의 길이는 B′C″으로 로렌츠 수축된다. 두 우주선을 동시에 발진시킴으로써 좌표계 S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면, 좌표계 S′에서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가 B′A″이므로 실의 길이 B′C″보다 길다. 따라서 실은 끊어지게 된다.

이번에는 (그림 6)과 같이 좌표계 S′을 기준으로 상황을 다시 살펴보자. 두 우주선의 세계선은 앞에서처럼 파란색 선들 BB′B″B‴과 AA′A″A‴로 주어진다. 좌표계 S′에서는 두 우주선이 발진하기 전까지는 일정한 속도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다가 t = 0인 순간에 동시에 발진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발진 신호를 동시에 보낸 관성계가 좌표계 S′이 아니라 좌표계 S이므로, t = 0인 순간과 t′ = 0인 순간이 다르다. 따라서 세계선 AA′A″A‴을 따라가는 우주선 C는 사건 A′에서 발진을 시작하여 순간적으로 정지 상태가 되지만, 좌표계 S′에서 볼 때 세계선 BB′B″B‴을 따라가는 우주선 B는 아직 발진하지 않고 원래의 속도(즉 반대방향의 속도 -V)를 유지한다. 좌표계 S′에서는 사건 B′에 이르러야 비로소 우주선 B가 발진을 시작한다. 따라서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가 늘어난다는 점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는 불변쌍곡선 \(x^{2}-c^{2}t^{2} = x'^{2}-c^{2}t'^{2} =L^{2}\)를 이용하여 비교하면 더 명백하다. 발진 이전의 두 우주선 사이의 길이를 좌표계 S에서 잰 값은 AB=A′B′=C″B′이며, 이 값은 발진 이후의 두 우주선 사이의 길이를 좌표계 S′에서 잰 값 A″B″=A‴B‴보다 짧다. 두 우주선 사이를 연결하는 실의 길이가 발진 이전의 두 우주선 사이의 길이를 좌표계 S에서 잰 값과 같으므로, 여기에서도 실은 끊어진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림 6. 좌표계 S′에서 본 우주선들의 세계선. (출처: Matsuda-Kinoshita 2004에서 수정)그림 6. 좌표계 S′에서 본 우주선들의 세계선. (출처: Matsuda-Kinoshita 2004에서 수정)

이번에는 우주선 B에서 우주선 C를 바라보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우주선 B에 타고 있는 사람은 처음에는 좌표계 S에 있는 사람과 똑같은 관찰을 하지만, 우주선이 발진하고 난 뒤에는 좌표계 S′에 있는 사람과 똑같은 관찰을 한다. 따라서 우주선 B 자신이 발진을 시작하는 시공간 점(사건) B′과 동시인 우주선 C의 사건은 A′이지만, 발진 이후의 고유시간으로 따지면 사건 B′과 사건 A″이 동시가 된다. 즉 우주선 B가 보기에는 발진 신호를 받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우주선 C가 발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우주선 B는 발진해서 일정한 속도를 얻어 움직이고 있으므로, 두 우주선을 연결한 실이 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마츠다-키노시타의 논의는 동시 개념이 두 좌표계에서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여 드원-베란-벨 우주선 사고실험의 난점을 깔끔하게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갑작스러운 발진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레지치(D. V. Redžić)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사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레지치는 우주선들이 잠시 가속되어서 일정한 속도를 얻는 경우를 분석하여 “민코프스키 세계에서는 똑같은 사건에 해당하는 물리적 실재가 S 좌표계와 S′ 좌표계에서 우스꽝스러울 만큼 다를 수 있다. S는 실이 끊어지는 이유를 피츠제럴드-로렌츠 수축 때문이라고 하는 반면, S′는 동시성의 부족으로 인해 우주선 사이에 상대속도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해 보자. 드원-베란-벨의 우주선 사고실험에서는 공간의 로렌츠 수축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우주선을 연결한 실의 로렌츠 수축만을 가지고 실이 끊어진다는 결론을 얻었는데,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의 주장과 상충하며 개념적으로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에 귀류법 추론을 통해 실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코프스키 시공간 도표를 이용하여 세세하게 특수상대성이론에 부합하도록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우주선 사이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조건 때문에 두 우주선을 연결한 실이 끊어짐을 보였다. 

그렇다면 드원-베란과 벨의 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벨은 왜 그리고 어떻게 드원-베란의 사고실험을 재구성하고 다루었을까? 벨이 우주선 사이의 공간이 아니라 두 우주선을 연결하는 실에만 로렌츠 수축이 일어난다고 설명한 것은 상대성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었을까? 

실상 벨의 논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피츠제럴드(George F. FitzGerald)의 아이디어이다. 피츠제럴드에 따르면, “물체가 에테르를 관통하거나 지나가면서 움직임에 따라, 물체의 길이가 물체의 속도와 빛의 속도의 비의 제곱에 따라 달라지는 양만큼 변한다는 가설”만이 마이켈슨과 몰리 실험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의 표준적인 해석과는 다른 관점이다. 피츠제럴드 수축이 가설로서 제안된 것은 경험적인 근거에서였다. 벨에 따르면, “미시적인 전기력이 물질의 구조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의 전기장이 체계적으로 뒤틀리면 빠르게 움직이는 물질의 내적 평형을 변형시킬 것이다. 따라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모양도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이 피츠제럴드 수축이며, 실질적으로 두 우주선을 연결하는 실에 대한 벨의 논의는 아인슈타인의 접근이 아니라 피츠제럴드-라머-로렌츠-푸앵카레의 접근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벨의 논의에서는 공간은 수축을 하지 않고 실과 우주선만이 수축을 한다.

벨이 보기에, 로렌츠의 접근과 아인슈타인의 접근은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경험적으로 두 관성계 중 어느 쪽이 정지해 있는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운동만이 실재라고 선언한 반면, 로렌츠는 그래도 실제로 정지 상태에 있는 관성계가 있고 그것이 바로 에테르의 정지 좌표계라고 보았다. 아인슈타인과 로렌츠의 차이는 물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동시에 존재론적인 것이다. 로렌츠가 이미 알려져 있거나 추측되고 있는 물리학 법칙들에서 출발하여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의 경험을 추론하려고 했다면, 아인슈타인은 그냥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들에게는 법칙들이 똑같이 보일 거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것이다. 로렌츠가 증명하려고 했던 것을 아인슈타인은 그냥 가정했을 뿐이며, 이것은 스타일의 차이이지 물리학의 차이가 아니다. 벨은 피츠제럴드-라머-로렌츠-푸앵카레의 기나긴 도보여행이 상대성이론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 글은 철학사상(2013)1)에 실린 내용 중 일부를 편집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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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김재영, “벨의 우주선 사고실험과 시공간에 대한 동역학적 관점의 비판”, 철학사상 49, 141 (2013).
2)J. S. Bell, “How to teach special relativity”, Progress in Scientific Culture 1 (2), 1 (1976), reprinted in J. S. Bell, Speakable and Unspeakable in Quantum Mechan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pp 67–80.
3)J. Ceresuela and J. Llosa, Can. J. Phys. 97, 923 (2019).
4)E. Dewan and M. Beran Am. J. Phys. 27, 517 (1959).
5)G. F. FitzGerald, Science 13, 390 (1889).
6)T. Matsuda and A. Kinoshita, AAPPS Bulletin 14(1), 3–7 (2004).
7)V. Petkov, Relativity and the Nature of Spacetime (Spring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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