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난호





|

과학의 창

기초연구사업 체계 개편과 물리학

작성자 : 고도경 ㅣ 등록일 : 2020-10-23 ㅣ 조회수 : 1,692

고 도 경

한국연구재단 자연과학단장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 교수

지난 30여 년간의 우리나라 연구환경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소외받았던 기초연구도 지속적인 투자 확대가 이루어져 왔고 이제는 세계와 견줄 만한 많은 연구결과들이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 비해서 세계최고 수준의 유망 연구자 풀이 여전히 부족하고 연구자의 연구 단절이 발생하는 등 일정부분 한계도 나타났다. 그 원인 중의 하나가 정부주도의 R&D 프로세스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R&D 지원체계 혁신 방안을 모색하여 R&D 전 단계를 연구자 중심으로 혁신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구체적 실행파일인 제4차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2018~2022)을 보면 창의·자율성을 바탕으로 연구자 중심의 도전적 연구를 촉진하는 것을 새로운 R&D 프로세스 혁신 방안의 목표로 삼았다. 추진 전략 중 연구자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 지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으로 연구자 맞춤형 지원과 한국형 Grant 제도를 적용하고 연구비 투자규모를 2배로 확대(2017년 1.12조→2022년 2.5조)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나라살림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기초연구사업예산도 올해대비 2,200억 원 정도가 증액된 2.25조 규모로 예산 심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연구자 수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개인기초연구 사업 지원체계를 개편하여 그동안 사업별 지원체계에서 분야별 지원체계로의 단계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사업별 지원체계에서는 Top-down 방식의 경직된 방식으로 운영되어 학문분야별 특성과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여 일선 현장 연구자들의 상당한 불만이 있어 왔다. 이에 따라 수학분야는 올해 이미 분야별 지원체계를 적용하여 과제 공고를 하였고 내년부터 자연과학분야는 모두 분야별 지원체계로 전환되게 된다.

물리학계에서도 지난 1년간 한국물리학회의 주도로 많은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기획과제를 수행하여 물리학 분야별 지원체계 포트폴리오 및 사이언스 로드맵이 구축되었다. 여기에는 기획에 참여하신 여러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설문조사, 공청회 및 간담회 등을 통하여 물리학 분야의 연구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의 특성 및 요구에 맞게 연구사업의 예산 배분 및 지원과제 수를 설정하였고 나아가 향후 10년간 수행해야 할 과학기술의 연구방향이 제시되었다. 올해 11월에는 자연과학 연구자들이 분야별 지원체계 기획연구 결과가 반영된 변화된 기초연구사업 시행계획 공고를 접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기초연구사업의 체계가 사업별 지원체계의 옷을 입고 있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분야별 지원체계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실정이어서 연구사업의 내용들이 연구자 전체의 요구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22년에 생명, 의약학, 공학, ICT·융합 등 기초연구 전체가 분야별 지원체계로 전환되면 새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편되는 분야별 지원체계에서는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기초연구사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나 연구재단 등에 제안을 하는 창구의 역할을 위한 연구비전 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바뀌는 사업체계 개편 내용을 잘 살피고 이러한 창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여 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기획 보고서에 제시된 핵심과제 및 융합과제를 살펴보면 현재의 기초연구사업에서 담기 어려운 주제를 포함하기도 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한 별도의 대형 연구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수도 있다. 고무적인 것은 현재 국책사업에서도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smart mover)로의 전환을 위한 체제 개편과 기초연구와의 연계성강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학문분야별 기획 및 통합 관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므로 본 기획을 통해 도출된 로드맵이 향후 국책 사업과 연계되어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과학기술계의 연구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는 좀 더 나은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 때문일 수도 있고 코로나-19와 같은 강력한 외부의 충격 때문일 수도 있고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제도가 바뀌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개인 연구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 사업의 예측가능성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였지만 개편되는 올해에는 특히 연구자들께서도 변화되는 사업 내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리학은 소립자부터 우주까지, 태초부터 머나먼 미래까지, 시간과 공간의 양 극한까지 넘나드는 그야말로 광범위한 연구주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약 20년 전에 캠브리지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물리학과장께서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것이 물리학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납득이 될 정도로 최근에는 물리학의 경계를 설정하기가 점점 어렵게 되었다. 한국연구재단의 자연과학단장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연구사업의 선정평가, 중간평가, 최종평가 등에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초연구사업 분야별 지원체계가 내년에 무사히 출범하여 물리학자들이 수많은 물리학 연구주제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dkko@nrf.re.kr)

취리히 인스트루먼트취리히 인스트루먼트
물리대회물리대회
사이언스타임즈사이언스타임즈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