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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PLAZA

물리 이야기

내 속의 또 다른 나 <2>*

작성자 : 김영균 ㅣ 등록일 : 2021-06-02 ㅣ 조회수 : 1,042

저자약력

김영균 교수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이학사)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으로 물리학회 물리학과 첨단기술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ygkim@gnue.ac.kr)


1933년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는, 에드윈 허블 등이 관측한, 여러 은하단(銀河團, Galaxy clusters)에 대한 관측 자료에 관심을 가졌다.(은하단은 수백, 수천 개의 은하들이 중력으로 묶여있는 은하들의 집단이다.) 그는 특히 ‘머리털자리 은하단(Coma cluster)’에 주의를 기울였는데, 이 은하단은 (천구(天球)를 88개 조각으로 나누는) 88개의 별자리 중 머리털자리(Coma Berenices) 영역에서 발견된다.(별자리 이름 Coma Berenices는 ‘베레니케의 머리털’을 의미하는데 이와 관련된 일화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이집트 왕비 베레니케 2세는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긴 머리털을 잘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바쳤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머리털이 사라져 버렸고, 화가 난 왕과 왕비를 달래기 위해 궁중의 한 천문학자는 여신이 제물을 기쁘게 여겨 그 머리털을 하늘에 두었다고 둘러댔다.)

머리털자리 은하단은 우리 은하로부터 3억 광년 정도 떨어져 있으며, 대략 7000 km/s 정도의 속도로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은하단이다. 츠비키는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속해 있는 개별 은하들의 속도가 은하단 평균 속도와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개별 은하들의 속도 차이가 2000 km/s가 넘기도 했다. 그는 은하들로 이루어진 계(system)가 역학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가정 하에, 계의 평균 운동에너지와 평균 퍼텐셜 에너지가 비례한다는 이른바 비리얼 정리(virial theorem)를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적용해 보았다. 이 방법으로 츠비키는 관측된 은하들의 속도 분포로부터 머리털자리 은하단의 질량을 추정해 볼 수 있었다. 당시 관측된 대로 은하들의 속도의 분산(dispersion)이 1000 km/s 정도로 크다면, (은하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중력으로 붙들어두는데 필요한) 은하단의 질량은 ‘빛을 발하는 물질’(luminous matter)을 기반으로 추정된 질량보다 훨씬 (당시의 추정으로는 400배) 큰 값이어야 했다. 츠비키는 독일어로 쓰여진 1933년의 한 논문에서 “이것이 확증된다면, 암흑물질(dunkle materie(dark matter))이 빛을 발하는 물질보다 훨씬 더 많이 있어야 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라고 적었다. 우리 우주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은하단에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츠비키의 ‘놀라운 결과’는 다른 사람들에게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은하단에는 그저 ‘보이는 물질’만 있을 뿐이고, 은하들은 은하단에 속박되어 안정된 상태를 이루지 않고 그냥 흩어지는 중일 수도 있었다. 상황은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암흑물질의 존재에 대한 좀 더 확실한 관측 증거는 개별 은하들을 이루는 별들과 가스들의 운동으로부터 나왔다.

사실 츠비키가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대한 논문을 쓰기 이전에, 몇몇 천문학자들은 개별 은하에 많은 ‘암흑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들은 스펙트럼 분석으로부터 안드로메다 같은 나선 은하들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은하의 회전 속도로부터 은하의 질량을 계산해 보았다. 별들이 은하 중심 주위로 원형 운동을 하고 있을 때, 별들의 공전 속도는 은하 중심으로부터 별까지의 거리와 은하의 질량분포에 의존한다. 주어진 거리에서, 공전 궤도 안쪽에 더 많은 질량이 있을수록 중력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더 빠르게 공전해야 한다. 1930년에 출판된 논문에서, 스웨덴의 천문학자 크누트 룬트마르크(Knut Luntmark, 1889~1958)는 5개의 은하들에 대해 이 방법을 적용해 보았는데, 이렇게 추정된 은하의 질량은 은하의 절대광도(absolute luminosity)로부터 추정된 질량보다 훨씬 컸다. (당시의 추정으로는 은하에 따라 6배에서 100배 더 컸다.) 그러나 이 결과 역시 사람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2차 대전 중에 발달한 군사용 레이더 기술이 전파천문학(radio astronomy) 관측에 사용되는 등 관측 기술이 향상되고, 은하 중심에서 더 멀리까지, 가시광선의 영역을 넘어, 관측 범위를 넓히면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부터 이른바 ‘평평한 회전 곡선’(flat rotation curve)이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은하 중심으로부터 별(혹은 가스)까지의 거리에 따른 별(혹은 가스)의 공전 속도 그래프를 은하 회전 곡선(galactic rotation curve)이라고 부르는데, 은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이나 가스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예상과는 달리) 공전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거의 일정한 값을 유지하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태양계의 경우, 대부분의 질량이 태양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의 공전 속도는 행성의 공전 반지름이 커질수록 줄어든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수성의 평균 공전 속도는 약 47.4 km/s 이고, 금성, 지구, 화성.. 순으로 줄어들어, 가장 멀리 떨어진 해왕성의 평균 공전 속도는 약 5.4 km/s가 된다.) 나선 은하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보이는 물질’(visible matter)이 은하 중심 및 원반에 있기 때문에, 태양계의 경우와 비슷하게, 은하 중심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회전 속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관측에서는 은하 원반을 벗어난 (관측 가능한 최대로) 먼 거리에서도 회전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거의 일정한 값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증가하기도 한다.) 뉴턴의 중력이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 관측 사실은 빠른 속도로 은하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 별과 가스들을 중력으로 붙들고 있는데 필요한, 많은 양의 암흑물질이 은하 영역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 과학자들은 관측된 ‘평평한 회전 곡선’을 암흑물질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츠비키가 오래전 은하단에서 발견한 암흑물질에 대한 증거도 공통의 맥락에서 고려하게 되었다.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물질의 ‘이상 증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암흑물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 그저 다 타버린 별들일 뿐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물질일까? 바야흐로 인류가 풀어야 할 최대의 난제 중 하나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우주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질이라는 것이 곧 판명될 터였다.

(다음에 계속)

*2020년 6월 29권 6호, <내 속의 또 다른 나>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각주
1)Fritz Zwicky, Helv. Phys. Acta 6, 110 (1933).
2)G. Bertone and D. Hooper, Rev. Mod. Phys. 90, 0450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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