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크로스로드
별보기 좋은 곳, 백두산
작성자 : 양홍진 ㅣ 등록일 : 2021-06-02 ㅣ 조회수 : 938
양홍진 박사는 경북대학교에서 ‘고대 천문기록 분석’으로 천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2004),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한국천문연구원에 입사하여(2006) 고천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2006년 한국과총 우수논문상(천문학)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한국천문학회 이사(2019-현재)와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운영위원(2020-현재)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어두운 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높은 아파트 단지의 불빛, 밤새 어둠을 밝히는 상점의 간판과 가로등 그리고 밤하늘에 떠다니는 많은 인공위성이 우주에서 오는 별빛을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인조 불빛을 천문학자들은 ‘빛 공해’라고 부른다. 이들은 별과 우주를 보는 사람들에게 매우 불편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별을 보겠다고 도시의 자연스런 발전을 불평할 수 없기에 세계의 천문대가 빛 공해가 적은 어둡고 높은 산에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한반도의 야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대한민국은 아시아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섬나라처럼 보인다. 북한의 경제상황과 전력난이 매우 심각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남북 협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한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의 어두운 밤하늘은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보인다. 천문 관측에 있어서 어두운 밤하늘은 필수 요소이다. 높은 고산지대의 어두운 곳이면 이상적인 관측 장소가 된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이러한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장소로 보인다. 더구나 한반도의 고위도 지역에 있어서 태양과 우주환경 연구에도 좋은 조건이며 전파망원경 관측망 확대에도 적합하다.
천문학은 가장 오래 이어져 온 동시에 우주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최첨단의 학문이다. 그리고 순수 학문이기도 하다. 남북 분단 이전까지 서운관과 관상감에서 이루어졌던 우리의 전통 천문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풍부한 천문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 침탈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학문적 전승이 끊어졌고 남북 분단 이후에는 상호 교류마저 어렵게 되었다.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두산은 환웅이 풍백과 우사, 운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와 터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백두산은 우리 역사에서 하늘과 관련된 첫 번째 장소로 뜻깊고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이렇듯 백두산은 천문학의 역사적 정통성과 남북 협력의 상징성 그리고 현대적 천문관측의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림 1. 한반도 상공에서 내려다 본 밤하늘 모습.
백두산천문대 구축 프로젝트의 첫걸음...
백두산천문대 기획은 2018년 과기정통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백두산 화산활동 연구로 시작된 백두산과학기지 구축 계획에 천문과 광물자원, 생명자원 분야가 포함되며 ‘백두산을 한반도의 하늘과 땅, 생명 연구 거점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백두산 과학기지’ 구축 기획을 준비하게 되었다. 남북한 학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연구센터를 구상하고 인력과 예산을 함께 논의하며 ‘백두산 과학기지’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과기정통부와 NST, 통일부, 국회 그리고 통일과학기술연구회가 함께 백두산과학기지 설립의 취지와 각 분야별 계획을 소개하는 포럼을 개최하였다.
천문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관측환경 조사와 함께 전력과 도로 등 시설 인프라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두산천문대 설립을 위해서는 백두산의 기상과 지리적 여건 그리고 북한 천문학 연구 현황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남북한 천문 교류가 없었기에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지질자원연구원 DMR 사업단의 고상모 단장님께서 백두산의 지질 자료를 전해주셨고 군에도 협력을 얻어 백두산의 도로 상황을 조사하였다. 밤하늘 청정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백두산의 관측 여건이 해외의 관측소만큼 좋음을 확인하였고 도로와 주변 시설물, 시야각 등을 고려하여 망원경 설치 예정 장소 몇 곳을 선정할 수 있었다. 마침 2018년 11월에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백두산을 방문하는 일정이 방송에 중계되면서 백두산의 현재 도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있었다. 12월에는 천문학계를 대상으로 백두산천문대 준비 현황을 소개하고 관측 장비와 분야별 연구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2019년 2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AAAS(미국과학진흥협회) 연차대회에 남북협력에 대한 주제 발표가 있었다. 천문학과 백두산 화산활동 그리고 한의학에 대한 주제 발표가 있었는데 천문 분야는 백두산천문대 기획안과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천문연맹총회(IAUGA)에 북한 천문학자들을 초청해 학술대회를 개최하려는 계획이 주요 내용이었다. 많은 참가자와 언론이 백두산천문대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후 독일과 캐나다 과학 저널에 백두산천문대 기획안에 대한 발표 내용이 특집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두 번의 북미 회담 이후 북한의 대외 교류 활동이 많이 침체되었고 Covid-19 확산으로 인해 백두산 과학기지를 포함해 남북 과학기술 교류의 시계가 멈춰진 듯하다. 북한과 교류하고 있는 여러 나라를 통해 정치·경제적 교류가 어려울 때 오히려 학술적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을 보아왔다. 백두산 과학기지와 천문대가 정치나 경제 문제를 떠나 한 걸음씩 준비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림 2. 백두산 천문대 구축 포럼.
백두산천문대 연구 계획
백두산에 천문대를 세우는 것이 요원할 것 같지만, 인류가 처음 달에 다녀온 놀라운 일을 돌이켜 본다면 백두산에 망원경을 설치해서 무엇을 연구할지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위해 지금 당연히 준비해야 할 일이다. 백두산에 직접 가서 청정일수나 바람, 습도 등을 직접 조사할 수는 없지만 여러 자료를 기초로 남북한의 협력 사업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백두산에 천문대가 설립되면 광학-광시야, 전파, 태양/우주환경, 전통천문 등의 협력 연구를 기대하고 있다. 유엔 제재 때문에 당장 관측 장비 설치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고천문이나 이론 연구 등을 시작으로 망원경 설치를 점차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각 분야별 연구 주제와 기대 효과를 간단히 살펴보자.
광학: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광학 관측은 천문관측에 유리한 백두산의 지리적 장점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이다. 북한이 많이 연구하고 있는 측성(Astrometry) 기술과 우리의 자동운영 망원경 시스템을 활용한 근지구 소행성 공동 연구는 광학 분야의 첫 단계 남북 협력 사업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두산에서 남북한의 연구팀이 새로운 천체 및 소행성을 찾아 국제 천문연맹에 새로운 이름을 신청하고 광학 분야의 연구를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파: 국내에는 이미 제주와 울산, 서울에 직경 21-m 전파망원경이 설치되어 한반도 남쪽에 하나의 큰 망원경이 있는 것처럼 동시에 천체를 관측하고 있다. 만약 한반도 가장 북쪽인 백두산에 또 하나의 큰 망원경을 설치한다면 제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 크기만 한 큰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게 되어 지금보다 2배 이상 좋은 관측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태양-우주환경: 한반도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우며 지자기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백두산은 태양과 우주 환경을 연구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다. 태양 분야는 남북한 모두 지역 천문대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활발한 연구 분야이다. 북한 학자들의 논문을 살펴보면 국내의 연구 주제와 비슷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 실질적인 공동 연구가 가장 기대되는 분야이다.
전통천문: 역사시대 이전부터 이어진 우리의 전통천문 자산은 한반도 전역에 풍부하게 남겨져 있다. 고인돌 무덤 별그림을 비롯해 고구려의 석각천문도와 무덤 별그림 그리고 고려와 신라의 첨성대와 여러 관측의기 등 다양하고 소중한 천문 유산이 우리의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남북한이 공동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남북한의 학자들이 함께 천문 유산을 조사 연구하여 민족 동질성과 전통 과학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국제적 연구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AUGA Busan 2022 & 남북천문협력
남북한의 천문학 공동연구와 백두산천문대 계획은 어느 한쪽의 준비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남북이 함께 모여 백두산 천문대의 활용과 미래를 위해 마음을 모으고 국제적 협력을 다져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제안한 계획을 북측의 천문학자들과 함께 더 멋진 백두산천문대 건설을 위해 논의하고 가능한 빨리 공동 연구의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현재 남한과 북한에는 한국천문연구원(KASI)과 평양천문대(PAO)가 천문우주를 연구하는 국가 대표기관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 더 나아가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한민족의 상징인 백두산에 천문대를 세워 남북한의 천문학자가 함께 연구한다면 우리 천문학의 역사적 정통성을 새롭게 세우고 더 나아가 백두산에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될 것이다.
2022년 8월 제31회 국제천문연맹총회(IAUGA)가 부산에서 열린다.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모여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천문학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국제천문연맹과 한국천문학회, 한국조직위원회는 북한 학자들이 참석하기를 희망하며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의 천문학자들과 함께 남북한의 천문학 협력과 백두산천문대 계획을 함께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목표로 한 <크로스로드>는 과학 특집, 과학 에세이, 과학 유머, 과학 소설, 과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 글을 통해 미래의 과학적 비전을 보여주고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에서 창간한 과학 웹 저널입니다.
http://crossroads.apctp.org/
- 이전글물리학회 소식
- 다음글새로운 연구결과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