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새 책
감성물리
작성자 : 김광석 ㅣ 등록일 : 2021-09-08 ㅣ 조회수 : 1,177
처음 대학에 임용되어 10여 년간은 물리학과와 물리교육과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소속을 옮긴 신설 융합학과의 첫 강의에서 마주한 학생들의 표정은 생각 이상으로 당혹스러웠다. 물리학 전공 학생들은 그나마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었지만 물리학을 단지 다양한 이학 과목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공학계열 학생들은 첨단공학기술의 근간이 되며 우주와 자연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내 말이 그저 고리타분하고 딴 세상 이야기 정도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구조적으로 학생들 잘못만은 아니었다. 많은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리를 제대로 배워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고, 화학, 생물, 지구과학에 비해 좋은 수능점수를 보장해 주지도 않고, 게다가 정답 시비까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물리 과목은 사실상 철없는 호기심을 회유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펜마우스를 구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처음엔 간단한 메모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강의에 사용될 자료에 손수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수록 다양한 색과 명암을 넣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러자 내 그림들은 조금씩 감성적으로 변해갔다. 물리적 상호작용을 묘사하는 내용이지만 감성을 담은 그림 한 장과 자작시를 강의 시간에 슬쩍 보여주자, 학생들은 짧은 순간이지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물리 내용을 설명하기 전 혹은 후에 그림과 함께 은유적 스토리를 들려주며 해당 물리지식에 대한 친숙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유도했다. 좀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동화책을 듣는 아이들처럼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적어도 강의 중에 조는 학생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초보자들에게는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물리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전에 마음의 준비 운동 같은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 심오하고 어려운 철학이나 교리를 지극히 단순한 일상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동화나 신화의 방식처럼 물리학의 입문 과정에도 이런 공감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머리가 아닌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글들은 이런 교육적 동기에서 시작된 일종의 다양한 실험적 습작들이다. 크게 수학, 고전물리, 현대물리로 구분되어 있어서 이공계열 학부생이나 눈높이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물리교사들에게도 적합할 것 같다. 우선 시를 읽고 그림을 본 후 떠오르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텍스트의 구체적인 설명을 통해 살을 붙여 나갈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목차에는 각 제목별로 감성지수의 색과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어 선택적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제공하는 다양한 이미지와 은유적 감성을 통해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물리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 (김광석 / 부산대학교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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