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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PLAZA

새 책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작성자 : 박권 ㅣ 등록일 : 2022-01-17 ㅣ 조회수 : 708

감성물리 (김광석 지음|부산대학교 출판문화원).▲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박권 지음 | 동아시아 출판사).

양자역학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 질문은 필자가 책을 쓰는 동안 내내, 그리고 심지어 탈고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필자를 괴롭혔다. 필자가 괴로웠던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책의 제목을 정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 한다고 했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책의 제목은 출판사에서 제안한 여러 제목들 중의 하나로 필자에게 다가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처음 보자마자 필자는 이 제목에 마음을 빼앗겼다.

자, 너무 감성적이 되기 전에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머리에 떠오른다. 우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차이는 바로 이 원리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기술적으로, 이 원리는 위치 연산자와 운동량 연산자가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위치 연산자와 운동량 연산자가 만족하는 교환 관계(commutation relation)의 결과이다.

그런데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위치 연산자와 운동량 연산자 사이의 교환 관계는 애초에 파동 함수의 존재를 전제한다. 다시 말해서, 운동량 연산자는 공간에 대한 미분 연산자에 허수와 플랑크 상수를 곱한 양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운동량 연산자는 무엇에 작용하는 미분 연산자일까? 답은 바로 파동 함수이다.

물론 연산자들 사이의 교환 관계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matrix mechanics)이다. 다만, 이 관점에서도 최종적으로 측정을 할 때는 파동 함수가 필요하다.

어쨌든, 파동 함수는 입자가 마치 파동처럼 공간의 여러 위치에 동시에 퍼진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리고 시간에 따른 파동 함수의 변화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서 기술된다. 거칠게 말해서, 양자역학은 이제 슈뢰딩거 방정식을 푸는 문제, 즉 파동 역학(wave mechanics)으로 귀착된다. 어찌 보면 양자역학에 대해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은 없다.

하지만 여기 매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숨어있다. 파동 함수가 고전역학의 관점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 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파동 함수의 시간에 따른 변화는 이른바 시간 진화 연산자(time evolution operator)에 의해서 기술된다. 즉, 일정 시간이 흐른 후의 파동 함수는 초기 상태의 파동 함수에 시간 진화 연산자를 작용하면 얻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 진화 연산자에 따라서 변화하는 파동 함수는 발생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출렁거리게 된다. 다시 말해서, 만약 파동 함수가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이동하는 입자를 기술한다면, 입자는 그때 발생 가능한 모든 경로를 따라서 이동하게 된다. 이것은 양자역학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인 경로 적분(path integral)이다.

결국, 경로 적분에 따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모두 일어난다. 이 문장을 줄이면 앞서 말한 책의 제목이 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Whatever can happen, will happen)

그런데, 잠깐, 묘하게도 이 문장은 열역학 제2 법칙도 묘사한다.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서 절대로 감소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발생 가능한 모든 미시 상태는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에 모두 동등한 확률로 발생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럼 양자역학과 열역학 제2 법칙은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열역학 제2 법칙이 실제로 양자역학에서 유도된다는 가설이 있다. 그것의 이름은 고유상태 열화 가설(eigenstate thermalization hypothesis)이다. 이렇게 만약 열역학 제2 법칙이 정말 양자역학에서 유도된다면, 양자역학은 단순히 원자나 분자와 같은 물질의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이 경우, 양자역학은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한 물질의 형성뿐만 아니라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한 물질의 소멸마저 기술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양자역학은 일종의 메타 이론(metatheory)이다. 거칠게 말해서, 메타 이론이란 올바른 이론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이론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양자역학은 올바른 물리 이론이 어떻게 주어져야 하는지 말해주는 메타 이론이다.

사실, 양자역학이 메타 이론인 것은 게이지 이론에서도 드러난다. 중력의 경우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세 가지 근본적인 힘인 전자기력, 강력, 약력은 모두 게이지 이론에 의해서 기술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게이지 이론은 파동 함수의 위상이 물리적으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리, 즉 게이지 대칭성에 기반한다. 결국, 파동 함수의 존재와 그것의 확률론적 해석에 기반한 양자역학이 근본적인 힘의 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반면, 모든 물질의 질량은 소위 힉스 메커니즘이라는 원리에 의해서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짐으로써 발생한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질량 또한 파동 함수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물질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 요소인 힘과 질량은 모두 파동 함수에 기인한다. 묘하게도 파동 함수는 그것이 만족해야 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궁극적으로 자기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양자역학은 단순히 주어진 슈뢰딩거 방정식을 푸는 문제가 아니라 슈뢰딩거 방정식을 포함한 올바른 물리 이론이 어떻게 주어져야 하는지 말해주는 메타 이론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마음을 빼앗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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