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SICS PLAZA
새 책
물질의 재발견
작성자 : 한정훈 ㅣ 등록일 : 2023-05-02 ㅣ 조회수 : 721
격리의 시절에는 평소와 다른 생각이 싹튼다. 뉴턴이 1665년 흑사병 대유행기에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떠나 2년 동안 고향에 내려가 사과의 일화를 만들어 낸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말 고등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과학 웹진 <과학의 지평>에서 편집자로 참여하던 중 물질 이야기를 ‘엮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힘과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란 직감에 필진을 꾸리기 시작했다. 금속, 반도체, 부도체, 양자액체, 양자기체, 탄소물질, 메타물질, 유리, 자석, 초전도체 등 다양한 물질을 다룰 최적의 필자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은 국내에 축적된 물리학자들의 역량 덕분이었다. 책의 마무리를 담당하기엔 암흑물질 만한 게 없었다. 서문까지 포함하니 열두 편의 글, 물질 12사도가 완성됐다. 한 달에 한 편의 글이 <과학의 지평>에 게재됐고, 이것을 다듬고 묶어 올 3월 김영사에서 단행본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옷과 음악에만 유행이 있으랴.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연구 물질에도 유행이 있다. 나팔바지가 와이드 팬츠로 돌아오듯 유행이 다시 찾아올 때 물질은 한층 멋진 모습으로 찾아온다. 이 책의 저자들은 단순히 그 유행의 소개자가 아니라 창조자다. 필자들에게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같은 물질과의 첫 만남이 있었고, ‘자기만의 사연’이 글에 담겼다. 가장 좋은 책은 자기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란 믿음과 이제 우리에게도 탐색과 창조의 고통, 환희를 공유할만한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을 쓴 과학자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미지의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성균관대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을 상대로 한 ‘자연과학 고전읽기’라는 교양강의 시간에 “물질의 재발견”을 한 단원씩 함께 읽어나갈 예정이다. 양자역학이 문화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양자 물질 이야기를 담은 토종 서적 하나가 있어 미래의 <양자물리학> 영화 감독, 미래의 <사건의 지평선> 작사자에게 영감이 될 수 있어 설렌다. 모든 학교에서 ‘물질의 재발견’을 통해 양자 중첩 같은 문, 이과 교류가 일어나면 좋겠다. 향후 어떤 물질 연구를 전공 삼을까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는 이 책이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한정훈(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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