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물리학 전공자의 다양한 진로
과학으로 영상만들기
작성자 : 이미솔 ㅣ 등록일 : 2023-05-02 ㅣ 조회수 : 3,302 ㅣ DOI : 10.3938/PhiT.32.012
이미솔 PD는 현 EBS 프로듀서로 과학의 영역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는 크리에이터이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영상대학원에서 석사를 했다. 다큐프라임 <시험>, <4차 인간>, <뇌로 보는 인간> 등을 연출했고, 다큐프라임 <시험>으로 삼성언론상 어젠다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고, 다큐프라임 <4차 인간>으로 재팬프라이즈 최우수 작품상, 휴스턴 국제 영화제 은상 등을 수상했으며, 2020년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으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올해의 생명과학 보도상, 휴스턴 국제영화제 금상 등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VR 콘텐츠 < POISON >으로 SXSW 2021, 부천 국제 영화제 등에 초청되었다. 2022년에는 SF 토크쇼 <공상가들>을 XR 기법으로 제작했다. (loseem@ebs.co.kr)
희귀한 물리학과 출신 피디
▲ 이미솔 PD.
방송국에 들어온 지 13년차다. 아직까지 물리학과 출신 PD를 만난 적이 없다. 방송국에는 기술직을 제외하고 이공계 출신이 아주 극소수이다. 주로 커뮤니케이션학과, 사회학과, 인문학과가 많다. 기자들은 과학 전문 기자도 많으나 PD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과학을 전면으로 기획되는 방송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방송을 기획하고 편성하는 업무를 PD들이 하는데, 대부분 자신 있는 분야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과학이 방송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은 굉장히 허다하다. 하지만 공영방송국의 경우, 방송 보도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이공계 출신의 PD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의식적으로 고품질의 과학 방송을 만들어내야 국민 전체의 과학 소양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 전공이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되나?
물리학 전공은 PD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서적, 논문 등을 다 읽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 과정에서 과학 기초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 물리학은 과학 중에서도 기초 학문이기 때문에 어떤 과학적 지식을 흡수하건 기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물리학과 출신 PD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더욱 믿어 주시고 많은 정보를 주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PD라면 물리학 전공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PD의 업무?
PD는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뉘는데, 교양, 예능, 드라마 PD이다. 요즘은 교양과 예능의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의 목표가 정보인지, 재미인지에 따라 구분이 된다. 대부분의 PD들은 입사할 때 영역을 정해서 입사하지만 중간에 영역을 바꾸기도 한다. 나는 교양 PD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PD의 업무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기획은 대중의 요구를 파악해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이다. 기획안이 완성되면 그것을 제작을 할지, 말지 회사 내에서 피칭하고 심사받게 된다. 기획안이 통과되면 실제 제작에 들어가고, 제작진을 꾸리고 출연자를 섭외해 촬영, 편집 과정을 거쳐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매번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왜 갑자기 PD가 되고 싶었는지?
물리학이 좋았다. 부모님 두 분이 다 물리학과를 나온 영향도 있었다. 그렇게 물리학과에서 전공생활을 이어 나갈 거라 생각했다. 대학교 전공 수업 중 어느 날, 교수님이 초끈 이론을 설명하시는데 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틀어주셨다. 아마도 PBS에서 만든 Elegant Universe였던 것 같다. 그때 약간 충격이 있었다. 첫 번째, 교수님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저렇게 잘 만들었지? 두 번째, 전공생에게도 어려운 내용이 전 국민이 보는 방송으로 송출된다고? 한국 TV에서는 볼 수 없는 종류의 다큐멘터리였고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전편을 다 찾아서 보게 되었고, 비슷한 BBC, PBS 다큐멘터리들을 찾아보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방송을 내가 만든다면 남들보다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리서치를 해보니 BBC, PBS는 과학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전담 부서가 따로 있었고 지속적으로 전 국민 대상의 높은 수준의 콘텐츠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서의 물리학과 출신 부장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자신을 ‘과학의 영역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는 다큐멘터리스트’라고 소개를 하였다. 왠지 이 말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고, 요즘 나를 소개할 때 종종 써먹고는 한다.
어떻게 PD가 되었는지?
어렴풋하게 과학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한 것이 대학교 3학년 때였고, 그때까지도 확신은 아니었다. 우연히 교양 수업으로 ‘미디어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곳에서 PD의 업무를 자세히 알게 되면서 이 업무가 나의 특성에 잘 맞을 수 있겠다고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음악, 미술, 문학, 사진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으나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을 늘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 PD라는 업무는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지는 않아도 다방면을 두루두루 좋아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프로그램을 완성하려면 다양한 전문가들과 밀접한 소통을 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다양한 작은 재능들이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PD라는 직업을 업으로 삼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상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사실 PD가 되려면 대학 졸업 후 바로 방송국 공채 시험을 보거나 프리랜서 PD가 되기 위해 조연출로 방송국에 입사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작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PD라는 직업에 확신을 갖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나를 시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대학원을 택했다.
석사에서는 어떠한 공부를 한 것인지?
영상업에 종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영상대학원에 진학했다. 영상대학원에서도 물리학과 출신이라 연출 전공보다는 미디어 공학 쪽의 전공을 권유 받았다. 미디어 공학 전공을 하며 새로운 가상 공간에 맞는 물리 공식을 짜거나 프로그래밍하는 것들을 배웠다. 물리학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라 생각했고 그 과정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미디어 공학이 대학원을 다닐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뜨거운 분야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메타버스의 발전과 함께 엄청나게 각광을 받는 분야이다. 그렇게 개발된 물리학 공식이나 알고리즘들은 Unity나 Unreal 등의 게임 엔진 등에 쓰인다. 대학원에서 프로그래밍 등의 기술을 익히는 동시에 연출, 연기, 작법 등의 제작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역할로 제작에 참여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광고, 영화, 뮤직비디오 등 다양하게 제작을 해보았는데, 역시 방송프로그램이 적성에 맞다고 느꼈고, 후반 작업자 역할보다는 연출을 하는 게 나에게 더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 방식으로 제작을 해본 것이 방송국 PD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확신을 주었다.
방송국 입사 과정
방송국 PD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방송국 공채를 보는 것, 조연출로 입사해 입봉해서 프리랜서 PD가 되는 것이다. 일단 방송국 공채를 보려면 흔히 언론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봐야 한다. 보통 4~5차 정도까지의 전형이 있으며, 1차 자기소개서, 2차 작문, 논술, 시사상식 시험, 3차 기획안 평가, 4차, 5차 면접 등의 과정을 거친다. 보통 이공계생의 난관은 2차인 작문, 논술, 시사상식 시험이다. 글쓰기 실력으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나 역시 문과생들과 경쟁하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불만이기도 했다. PD는 영상으로 말하는 직업인데, 차라리 포트폴리오로 경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지 수차례 생각했다. 지금도 개인적인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방송국 공채 과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2차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글쟁이가 아니라면 집중적인 노력과 전략이 필요하다. 2차 관문을 잘 통과한다면 그다음부터는 이과생이 불리한 부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공채를 준비하는데 보통 짧으면 6개월, 길면 수년이 걸린다. 애초에 이 길을 가지 않고, 방송국에 바로 특정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입사해서 프리랜서 PD가 되는 방법도 있다. 능력이 좋다면 공채 PD보다 수익도 좋고 빨리 입봉할 수 있고 일정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과학 크리에이터로 방송사 PD를 추천하는지?
과학 콘텐츠 같은 경우는 주로 공영방송사에서 만든다. 상업 방송사 입장에서는 과학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적고 해야 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사 같은 경우에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과학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면 공영 방송사에 들어오는 것이 안정적인 제작을 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유튜브를 하는 방법도 있다. 꾸준히 좋은 콘텐츠를 내는 과학 유튜브 채널로 Kurzgesagt-In a Nutshell, 1분 과학, 안될 과학, 과학 쿠키 등이 있다.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과학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내용의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안 되는 반면, 유튜브 같은 경우는 내용이 아주 깊어져도 특정층에게는 유용할 수 있다. 요즘 PD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보라는 조언도 한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면 시청 대상과 송출 채널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까지는 주로 과학, 기술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XR 기술을 이용한 토크쇼를 만들었다. 여전히 과학의 영역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을 찾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언젠가는 양자역학을 전면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