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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
작성자 : 김달영 ㅣ 등록일 : 2023-08-23 ㅣ 조회수 : 1,859
모든 과학자가 SF를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과학자들에게 SF는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종종 휴식시간을 가질 때 함께 놀아주는 재미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광속을 넘을 수 없는 현실 과학에서 잠시 벗어나 함께 초광속 우주선을 상상하는 식으로. 그렇기 때문에 SF 소설을 쓰는 과학자가, 적어도 다른 소설 장르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결코 놀랍지는 않다. 최초의 SF라고 일컬어지는 < Somnium (꿈이라는 뜻의 라틴어)> (1608)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쓴 소설이었고, 20세기 초반에 SF 장르가 확립된 이후에도 프레드 호일(Fred Hoyle; 1915~2001), 그레고리 벤포드(Gregory Benford; 1941~),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 로버트 L 포워드(Robert L Forward; 1932~2002) 등 수많은 현역 과학자들이 SF를 쓰고 출간해왔다. 최근 한국에서도 SF 붐을 타고 현역 물리학자가 쓴 SF들이 여럿 출간되었다. <빛의 전쟁>(이종필, 2020)과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김달영, 2023)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는 다른 SF 단편소설집과는 다른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6편의 단편 또는 초단편 하나하나마다 저자 본인이 집필한 과학해설이 붙어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보기 드문 형식이다. SF 소설에 해설이 붙어있는 이런 형식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앞서 언급했던 로버트 L 포워드의 데뷔작 <용의 알(Dragon’s Egg)>(1980)이 같은 형식으로 저술되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찾아보기 어려웠던 스타일이다. 그 결과로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이 과학 이론을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하드 SF의 딜레마를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는 잘 회피하면서도 과학적 내용이 풍부한 SF 소설들을 여럿 담아내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읽기에 따라서 SF와 과학교양 양쪽으로 기능할 수 있는 책이다.
<스스로 블랙홀에 뛰어든 사나이>에는 블랙홀, 우주의 미래, 바이러스에 의한 집단 감염, 편광과 3D TV, 스핀트로닉스, 기억 조작 등 다양한 과학적 소재에 기반하고 있는 SF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3번째 단편인 ‘마호메트의 관’은 최근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상온(상압)초전도체를 주제로 하는 SF 소설이다. 보통 SF에서 소재로 자주 활용되는 물리학 분야는 상대성이론, 우주론, 입자물리학, 광학(레이저) 정도인데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고체물리학 분야의 신소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상온(상압)초전도체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맞물려 물리학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김달영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경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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