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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달 남극 착륙과 러시아 우주 탐사의 쇠퇴
작성자 : 강성주 ㅣ 등록일 : 2023-10-09 ㅣ 조회수 : 1,277
강성주 박사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물리학, 천문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천체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국립과천과학관 연구사로 재직하고 있다.
1902년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아스는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각색해서 만든 ‘달 세계 여행(Le Voyages dans la lune)’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최초의 SF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영화는 당시만 하더라도 꿈처럼 여겨졌지만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로 동력을 이용해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하면서 인류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고작 12초 동안 36 m를 비행한 것이 전부였던 어찌 보면 사소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인류가 동력을 이용해 하늘을 날게 된 최초의 비행으로부터 54년 후, 인류는 이제 지구의 하늘이 아닌 우주를 향하게 된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인류가 동력을 이용해 하늘을 날기 시작한 지 고작 50여 년 만에, 지구 중력을 벗어나 우주 상공에 물체를 올려놓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냉전의 시대, 전 세계의 두 진영을 이끌었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 속에 마지막으로 인류가 달에 방문했던 1972년에서 같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다시 한번 달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달은 50년 전에도, 지금도, 하염없이 지구만을 바라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지난 50년간 도대체 무엇이 변하였길래, 전 세계가 달 탐사에 매진하려 하는지 그 속에서 우주 강국으로 군림하던 러시아의 우주 탐사 프로그램은 어떻게 쇠퇴해 갔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인류 최초의 달 남극 착륙
한국시간 8월 23일 오후 9시 23분 인도의 찬드라얀 3호의 달 착륙선인 비크람 착륙선은 인류 최초로 달의 남극 지역 착륙에 성공하였다. 이것으로 인도는 미국, 구소련, 중국에 이어 달 착륙에 성공하는 일명 엘리트 국가 클럽에 가입하였고, 달 탐사 임무 역사상 달의 남극 지역에 처음으로 착륙하면서 역사를 만들었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인도는 이제 달에 있다.”라고 말하는 등 인도 전국적으로 축하 행사가 벌어졌으며, 전 세계도 인도의 달 남극 착륙을 축하했다. 인도보다 앞서 달의 남극 착륙에 성공하기 위해 직접 전이 궤도를 선택했던 러시아의 루나 25호 우주선이 달 남극 착륙에 실패한 지 딱 하루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동안 유인 달 탐사를 포함한 달의 방문은 주로 적도 근처 평평한 지역인 흔히 “달의 바다”로 불리는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2019년 중국의 창어 4호가 달의 뒷면 착륙에 성공하기도 하였지만, 달의 남극 지역은 상대적으로 관측 자료가 적어 지표의 상태를 알기 어렵고 크레이터가 많아 지표가 고르지 못한 지형과 더불어 탐사선의 궤도를 수정해야 하는 난관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매우 난이도가 높은 임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달의 남극 착륙에 성공함으로써, 우주 탐사에서 그 잠재력을 한껏 보여주었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달의 남극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탐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인류 달 탐사의 역사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인류 최초로 달에 탐사선을 보낸 것은 미국이 아닌 러시아의 루나 2호 무인 탐사선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미국이 매우 어렵게 첫 인공위성을 쏘아 보낸 1958년에서 1년밖에 지나지 않은 1959년, 이미 구소련은 루나 2호를 달에 보내 착륙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듯 모든 사람은 이전의 성과를 덮을 만큼의 위대한 성과와 승리자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도착하면서 세계를 주목시켰다. 그리고 1972년 12월 11일, 아폴로 17호를 마지막으로 3년여 기간 동안 총 7번의 시도에서 6번이나 성공하여 12명의 우주인을 달 표면에 착륙시킨다. 이로써 냉전 시대 미국과 구소련의 초강대국 경쟁은 미국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후 무려 5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달에 사람을 보내지 못하였고, 마지막 무인 달 탐사 또한 1976년 구소련의 루나 24호를 마지막으로 멈추게 된다. 루나 24호 이후 처음으로 성공한 달 착륙선은 2013년 중국의 창어 3호이니 무려 37년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1976년 이후 달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과 구소련의 달 탐사 경쟁에서 미국이 압승한 후, 두 국가는 더 이상 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세계의 어느 나라도 당시에는 달에 탐사선을 보낼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달 탐사가 이루어진 것은 1990년 일본 최초의 달 궤도선 Hiten이었다. 이로써 일본도 달에 탐사선을 보낸 3번째 국가가 되었다. 한동안 조용했던 달 탐사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의 우주 굴기의 시작으로 2007년 창어 1호가 달 궤도에 진입하면서, 미국, 구소련, 일본, 유럽우주국에 이어 5번째로 달을 탐사한 국가가 되었고, 이어 2008년 인도의 찬드라얀 1호가 발사되면서 본격적으로 달 탐사를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바로 인도의 찬드라얀 1호가 메마른 달 표면에서 물 분자를 발견한 것이다. 달에서의 물의 발견은 달 탐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이 달의 극지방에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헬륨-3, 희토류, 알루미늄, 티타늄 등과 같은 희귀 금속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달 탐사의 명분이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냉전 시대 이후 두 번째, 달 탐사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놀랍고 자랑스럽게도, 대한민국이 다누리호의 발사와 궤도진입 성공으로 이 쟁쟁한 우주 강국들 속 7번째 달 탐사를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
우주 강국 러시아의 날개 없는 추락
지난 3월, 매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인류 우주탐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소련의 세계 최초, 최대의 우주기지인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의 모든 자산을 카자흐스탄이 압류했다는 소식이었다. 카자흐스탄에 위치한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러시아의 우주 탐사뿐 아니라 인류의 우주 탐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가 2050년까지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이 우주기지를 임차하는 형식으로 운영해 오면서 마치 대사관처럼 카자흐스탄 내의 러시아 자치구와 같은 역할을 해오던 곳이었다. 그동안 러시아의 우주탐사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던 카자흐스탄은 사실상의 무한한 사용 허가를 보장해 오던 장소였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대금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는 핑계로 자산 압류를 시행한 것이다. 러시아의 현재 국제 정세와 더불어 우주 탐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일화이다.
구소련은 우주 탐사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위성을 쏘아 올렸고,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최초의 달 착륙, 최초의 우주 유영, 최초의 여성 우주인 등 우주 탐사의 역사에 있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있는 나라이다. 우리나라 우주 개발과 탐사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큰 역할을 했던 러시아는 우주 발사체 시장에서 최근까지도 큰손 역할을 해왔다. 20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이소연 박사가 타고 간 우주선도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빛의 속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발사체 시장에서 급격하게 배제당하기 시작하였다. 당장 이번 누리호 3차 발사 때 탑재되었던 도요샛 위성도 원래는 러시아의 발사체로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전쟁 이후 누리호를 이용한 발사로 바뀐 것만 보아도, 세계 시장에서 급격하게 배제되고 있다. 아폴로-소유즈 미션과 우주 정거장 미르를 통해 국제 우주 선진국들과의 협력으로 발전해 왔던 러시아의 우주 개발 시스템 또한 원천 차단당하면서, 러시아의 우주 탐사 시장은 정말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달 착륙을 시도했던 루나 25호의 실패 원인도 유럽 우주국과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유럽 우주국의 손절로 인한 영향도 무시 못 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최근 미국에 이어 러시아를 뛰어넘는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한 중국 또한 러시아와 2021년 달 공동개발을 선언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러시아의 흔적을 지워나가고 있는 단계이다. 현재 지구 궤도에는 8,500여 개에 가까운 위성이 있는데, 그중 러시아의 위성은 약 160여 개에 그치고 있다. 미국이 3,000여 개, 중국이 600여 개의 위성을 운영하는 것만 보아도 러시아의 우주 탐사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번 인도 찬드라얀 3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는 나라는 단 한 나라 러시아일 것이다. 우주 탐사 역사에 있어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최다로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는 영광의 역사 페이지에 최초의 달 남극 착륙이라는 한 페이지를 더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겠다는 그 욕심이 오히려 루나 25호의 실패와 더불어 찬드라얀 3호의 성공이 더욱 도드라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달 남극 탐사의 필요성과 대한민국의 도전
달 남극 탐사는 이제 우주 탐사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국가에게는 이제는 빠질 수 없는 트렌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실질적인 자원 채굴과 관련되면서 새로운 우주 개발과 관련된 국제 규범의 질서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명 아르테미스 연합과 더불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레드팀의 경쟁으로 서로의 입맛에 맞는 우주 탐사 규범과 질서를 세우려 달 탐사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달의 남극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인류의 궁극적 목표인 화성 유인 탐사와도 맞닿아 있다. 그 목표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달의 상공과 표면에 상주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달은 대기가 없어 일반적으로 일교차가 3~400도에 이른다. 하지만 달의 남극에 기지를 건설한다면 그 일교차를 10도 내외 정도로 줄일 수 있다. 또한 풍부한 물의 확보를 통해 음용수와 더불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산소, 그리고 화성까지 왕복에 필요한 연료인 수소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를 벗어나 다른 천체에 상주기지를 건설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다누리호와 더불어 2032년까지 대한민국이 개발한 차세대 발사체를 이용해 달 착륙선을 보낸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꾸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영광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계속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노력은 인류가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한 인도의 그동안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그들의 용기와 노고에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목표로 한 <크로스로드>는 과학 특집, 과학 에세이, 과학 유머, 과학 소설, 과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 글을 통해 미래의 과학적 비전을 보여주고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에서 창간한 과학 웹 저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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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는 정부의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 지원으로 사회적 가치 제고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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