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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 회로 양자컴퓨터를 위한 초석: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작성자 : 최재혁 ㅣ 등록일 : 2026-01-12 ㅣ 조회수 : 21
최재혁 박사는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이학박사(2001)로서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박사후 연구원(2001‒2004)으로 근무하였고, 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거시계인 초전도 회로에서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 현상을 발견한 공로로 존 클락(John Clarke), 미쉘 드보레(Michel H. Devoret), 존 마티니스(John M. Martinis)에게 수여되었다. 이 두 가지 발견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존 클락 교수 지도하에 당시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드보레와 대학원생이었던 마티니스에 의해 1985년에 수행되었던 혁신적인 실험들에서 이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물리학과 양자과학기술의 진보에서 갖는 의미와 함께 이들의 업적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 1.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존 클락, 미쉘 드보레, 존 마티니스.
어린 시절 벽에 공을 던지는 재미에 빠져 몇십 분이고 계속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은 어김없이 벽에 튀겨 돌아온다. 한 번도 벽 너머로 쓱 사라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원자와 같이 작은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때때로 벽 반대편에서 발견되는데, 이 유명한 양자 터널링 현상은 약 100년 전에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이 나온 직후 이론적으로 예견되었다. 당시 핵물리학자들은 방사성 원소의 원자핵에서 알파 붕괴(\(\small\alpha\)-decay)가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고전적으로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에너지 장벽에 막혀 원자핵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 가모프 등은 양자 터널링 확률을 계산하여 방사능 붕괴가 양자역학적 효과 때문에 일어남을 보일 수 있었다.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이 설명하는 양자 세계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은 원자의 방출 스펙트럼이다. 원자를 가열할 때 나오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고유한 주파수의 스펙트럼 선들만 나타나는데, 이는 원자 속 전자의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특정 값들만 갖도록 양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 준위 사이를 전자가 오가면서 그 차이에 해당하는 주파수의 빛만 흡수되거나 방출된다.
고체 소자에서 양자 터널링 현상이 최초로 예견되거나 발견된 것은 조셉슨 효과(브라이언 조셉슨, 1962)와 터널 다이오드(레오 에사키, 1957)이다. 이후 초전도와 반도체 소자의 과학기술 및 산업 응용 시대가 열리게 되고, 두 업적에 대해 1973년에 노벨 물리학상이 수여되었다. 조셉슨 효과를 좀 더 소개하자면, 영국 캠브리지 대학 학부생이었던 조셉슨이 수업 중에 초전도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두 초전도체 사이에 산화막과 같은 접합부가 있을 때에도 양자 터널링에 의해 초전류가 흐를 수 있다는 획기적인 예측을 하게 된다(그림 2). 초전도체에서 전류를 이루는 전자 쌍, 즉 쿠퍼쌍(Cooper pair)들이 접합부의 에너지 장벽을 양자 터널링 현상에 의해 통과하는 것이다. 이 예측은 이후 벨 연구소의 연구자들에 의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그림 2. 조셉슨 소자. 두 초전도체(파란색) 사이에 접합부(노란색)가 끼어있는 구조이다. \(\small I\)와 \(\small V\)는 각각 소자를 통과하는 초전류와 양단에 걸리는 전압을 의미한다.
이러한 양자 터널링 현상은 어느 크기의 입자까지 적용될 수 있을까? 매번 벽에서 튕겨 나오는 공과 양자 터널링이 수시로 일어나는 전자나 핵 사이에서 양자 효과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 공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다시 전자와 핵으로 나눠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질문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물리학자들도 오랫동안 그리고 현재까지도 풀고 싶어 하는 궁금증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업적이 바로 이 중요한 질문에 힌트를 제공한다.
특정 물질의 온도를 어느 임계점 아래로 낮추면 전류가 조금의 저항도 없이 흐르는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개별 전자쌍들의 특성이 아니다. 초전도체 안의 수많은 전자들이 쌍을 이룬 뒤 하나의 에너지 바닥 상태에 응축되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이들이 만드는 집단 행동은 초전도 질서 변수로 잘 기술되는데, 초전도체의 전체 공간에 걸쳐 마치 입자 하나의 파동함수처럼 결맞음 성질을 갖는다. ‘질서 변수’라는 이름은 초전도 현상이 상전이 현상임에 연유한 것으로, 물 속의 분자가 질서를 갖추며 얼음으로 바뀌는 것 또한 상전이의 일종이다. 초전도 질서 변수의 분포와 움직임은 긴즈버그-란다우 방정식(Ginzburg-Landau equation)을 잘 따르는데, 이 유용한 이론이 현상학적이긴 하지만, 미시적이고 엄밀한 저온 초전도 이론인 바딘-쿠퍼-슈리퍼(Bardeen-Cooper-Schrieffer) 이론의 예측과도 - 특히 임계온도 부근에서 - 잘 일치한다.
조셉슨 소자를 구성하는 좌우의 초전도체는 각각의 파동함수(엄밀히는 질서 변수)로 기술되고, 그 중에서도 복소수인 두 파동함수의 위상차가 조셉슨 소자의 행동을 결정한다. 위상차가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이라고 상상해 보자(그림 2). 조셉슨이 긴즈버그-란다우 방정식으로 풀어낸 해에 따르면 초침이 오른쪽을 향할 경우 초전류는 오른쪽으로 흐르고, 초침이 왼쪽을 향하는 경우 반대로 흐른다. 그리고, 초침이 0초나 30초가 아닌 곳에서 멈춘 경우 초전류는 영원히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또한 위상차가 시간에 따라 변하면, 즉 초침이 돌아가게 되면 조셉슨 소자의 두 끝에 전압이 발생한다. 실제 위상차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전압의 유무로 초침이 멈춰있는 정적 상태와 돌아가는 동적 상태를 구별할 수 있다.
시계의 비유를 이어가 보자. 초침이 멈춘 낡은 아날로그 시계가 있다. 태엽을 감아보아도 어디에 걸린 듯 초침이 움직이지 않는다. 툭툭 치고 흔들었더니 그제야 초침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경험이다. 그런데, 시계를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는데도 멈춰있던 초침이 별안간 움직인다면? 뭔가 초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이 현상이 수상자들이 발견한 사실이다. 거시 양자 터널링 현상에 의해 초침이 정적 상태에서 동적 상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물리학적으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초침(위상차)이 갖는 퍼텐셜 에너지를 각도에 대해 그려보면 그림 3과 같은 모양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퍼텐셜에 놓인 가상의 ‘위상 입자(Phase particle)’로 그 거동을 기술할 수 있다. 퍼텐셜은 낮은 산과 골짜기가 반복되는 주기적인 굴곡 구조를 갖고 있어 빨래판 퍼텐셜이라고 불린다. 외부에서 조셉슨 소자에 dc 전류를 걸어주지 않는 경우, 전체적인 기울기는 평평하고 위상 입자가 그 국소 우물에 갇혀 벗어날 수가 없다(그림 3a). dc 전류를 약하게 가하면 빨래판 퍼텐셜이 전체적으로 기울어지는데, 아직은 위상 입자가 탈출하기에 부족하다(그림 3b). 전압이 없이 초전류만 흐르는 상태가 계속된다. 여기서 dc 전류를 더 증가시키다 보면 빨래판 퍼텐셜이 심하게 가팔라져 끝내 위상 입자를 더 이상 붙들지 못하고 놓아주는 순간이 온다(그림 3c). 이때부터 위상 입자는 빨래판 퍼텐셜을 따라 굴러 내려가게 되어(초침이 돌아가는 상태), 전압이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이때의 dc 초전류 값을 조셉슨 접합의 임계 전류라 한다. 여기서는 열적 요동 등 위상 입자를 흔드는 외부 교란을 아직 고려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림 3. 위상차(\(\small\theta\))에 따른 위상 입자(빨간색)의 퍼텐셜 에너지. a, b, c는 dc 전류가 0에서부터 점점 커지는 세 경우를 나타낸다. d는 위상 입자가 갇힌 퍼텐셜 우물과 양자화된 우물 속 에너지 준위이다.
온도가 높을 때는 열적 요동에 의해 - 시계를 흔드는 효과와 같이 - 위상 입자가 쉽게 퍼텐셜 우물을 탈출하게 되어 동적 상태로 전환된다. 온도가 높은 만큼 상대적으로 낮은 dc 전류에서도 전압이 발생하기 시작하여 본래의 임계 전류까지 넓은 구간에 걸쳐 전이가 이루어진다. 온도를 낮추면 열적 요동이 줄어 전이전류 분포 폭이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온도를 더욱 낮추어 절대 영도가 되면 열적 요동이 사라지고, 전이전류 분포도 함께 사라지며 정확히 하나의 조셉슨 임계 전류 값에서 전이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클락-드보레-마티니스 팀은 이러한 예상을 깨고 전이전류 분포 폭이 처음엔 줄어들다가 절대 영도 근처의 어느 온도 - 수십 mK - 아래에서는 온도를 내리더라도 그 폭이 전혀 변하지 않음을 발견한다. 즉, 열적 요동에 의해 탈출하던 위상 입자가 소자 온도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일정한 빈도로 탈출한다는 뜻이다. 이는 양자 터널링의 존재를 의미한다.
위상 입자가 갇혀 있는 퍼텐셜 우물의 깊이와 곡률은 조셉슨 접합의 임계전류와 전기 용량(Capacitance)에 의해 정해지는데, 이에 따라 위상 입자가 특정 빈도로 진동하며 퍼텐셜 벽을 두드리게 된다. 이 시도 끝에 어느 순간 퍼텐셜 벽을 터널링하는 양자 현상이 발생하면 동적 상태로 전환이 이루어지며 전압이 나타나게 된다. 실제 실험에서는 폭이 머리카락 두께 십분의 일 크기인 초전도 회로 선 두 개를 십자 모양으로 겹쳐 접합을 만들었다. 이것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크기를 가진 소자의 상태가 양자 터널링을 겪은 것으로 거시적인 양자 터널링의 첫 발견이 되었다.
클락-드보레-마티니스 팀은 이어 조셉슨 소자의 거시 양자 상태(위상 입자)가 퍼텐셜 우물 안에서 마치 원자 속 전자처럼 불연속적인 에너지 스펙트럼을 갖고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였다(그림 3d). 이들은 소자의 온도를 수십 mK까지 낮춘 후, 특정 주파수(3.5 GHz 등)의 마이크로파를 쪼이고 dc 전류를 서서히 증가시키며 위상 입자의 탈출을 관측했다. dc 전류가 커지면 빨래판 퍼텐셜이 기울어지며 위상 입자가 갇힌 퍼텐셜 우물이 얕아지고 곡률이 완만해진다. 이에 따라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 사이의 간격이 줄어드는데, 그 값이 마이크로파의 주파수와 맞아떨어지면 위상 입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로 들뜨게 된다. 이때 위상 입자에게는 실효 에너지 장벽이 낮고 얇아지게 되므로 탈출 빈도가 급격히 늘게 된다. 수상자들은 특정 dc 전류값에서만 탈출 빈도의 증가가 봉우리처럼 나타남을 발견하였고, 이는 에너지 양자화의 증거가 되었다.
이러한 발견에는 미시 세계의 특성처럼 여겨졌던 다양한 양자 현상들이 거시적 크기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도 크지만, 사람이 그러한 양자 시스템을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 또한 중요하다. 자연의 원자가 빛을 통해 그 양자 상태에 접근할 수 있다면, 이 인공의 원자는 전기적 회로를 이용해 그 상태를 제어하고 읽을 수 있어 편리하다. 또한, 원리적으로 반도체처럼 대규모 집적이 가능하다. 바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초전도 회로 기반 양자컴퓨터의 초석이 마련된 것이다.
이들의 발견 이후 초전도 큐비트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1999년 일본 NEC 주식회사의 연구원이었던 야스노부 나카무라(Yasunobu Nakamura)가 초전도 회로에서 처음으로 두 개 상태의 중첩을 구현하고 제어할 수 있음을 학계에 보고한 이후, 전하 큐비트(Charge Qubit), 위상 큐비트(Phase Qubit), 자기선속 큐비트(Flux Qubit) 등 다양한 종류의 초전도 큐비트가 개발되었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트랜스몬 큐비트(Transmon Qubit)는 2007년 예일 대학교의 스티븐 거빈(Steven Girvin), 미셸 드보레, 로버트 쉘코프(Robert Schoelkopf)가 개발한 초전도 큐비트로, 조셉슨 소자와 평면 축전기 회로를 붙인, 흡사 나비 모양의 구조이며 약 0.5 mm 크기이다. 간단한 구조와 잡음에 강한 특성 때문에 IBM, 구글, IQM 등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많은 글로벌 회사에서 채택되었다.
존 클락 교수는 브라이언 조셉슨과 같은 시기에 캠브리지 대학을 다닌 동문이며 조셉슨의 업적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초전도 양자간섭 소자(약칭 SQUID)를 비롯한 초전도 전자공학 분야를 이끌어 왔으며, 스티븐 거빈은 그를 두고 초전도 전자공학의 대부라고 칭한 바 있다. 기초 연구뿐만 아니라 의료 목적의 초저자기장 MRI 등 초전도 소자의 응용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의 영감은 드보레와 마티니스에게 이어져 이제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로 꽃피우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의 마티니스 교수와 예일 대학교의 드보레 교수는 각각 서부와 동부를 대표하는 초전도 큐비트 연구의 양대 산맥으로 꼽혔다. 마티니스는 2014년부터 구글 양자컴퓨팅 팀(Google Quantum AI Lab) 하드웨어 수석과학자로 활동하였으며, 2022년경 양자컴퓨터 스타트업인 큐오랩(Qolab)을 공동 창업하여 확장가능한 초전도 양자 하드웨어 개발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드보레 역시 2023년부터 구글 양자컴퓨팅 팀의 하드웨어 수석과학자로서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양자컴퓨터 개발 전선의 전현직 수장들이 물리학 전공이라는 사실은 - 굳이 트랜지스터의 세 발명자까지 거슬러 오르지 않더라도 - 기초과학과 첨단기술 혁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여정이 양자컴퓨터 산업의 시대를 열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리라 믿고 응원한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목표로 한 <크로스로드>는 과학 특집, 과학 에세이, 과학 유머, 과학 소설, 과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 글을 통해 미래의 과학적 비전을 보여주고자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에서 창간한 과학 웹 저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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