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난호





|

특집

오비탈 전류, 오비트로닉스-스핀트로닉스의 확장

오비트로닉스: 오비탈 전류의 생성 메커니즘과 동역학

작성자 : 고동욱·이현우 ㅣ 등록일 : 2020-12-01 ㅣ 조회수 : 4,655 ㅣ DOI : 10.3938/PhiT.29.034

저자약력

고동욱 박사는 포스텍 물리학과에서 2019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20년까지 포스텍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현재는 독일 율리히 연구센터(Forschungszentrum Jülich)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 대학교(Johannes Gutenberg Universität Mainz)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자성체 물질에서의 오비탈과 스핀의 수송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d.go@fz-juelich.de)

이현우 교수는 1996년에 미국 MI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학교와 고등과학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2002년부터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자성 나노구조에서의 스핀 수송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hwl@postech.ac.kr)

Orbitronics: Mechanism of Orbital Current Generation and Dynamics

Dongwook GO and Hyun-Woo LEE

The orbital degree of freedom is often considered to be quenched in solids due to the potential of the crystal field. In contrast to such expectation, we showed recently that the orbital current can be electrically generated despite orbital quenching in equilibrium, leading to a phenomenon called the orbital Hall effect. In this article, we provide a pedagogical introduction to the concept of an orbital current in solids and the mechanism underlying the orbital Hall effect. We also discuss the relation between the orbital Hall effect and the spin Hall effect, as well as a way to utilize the orbital current in spin-orbitronic devices.

들어가며

21세기에 접어들어 응집물리물리학 연구에서는 전하 전류뿐만 아니라 스핀(spin) 전류, 밸리(valley) 전류 등 다양한 종류의 전류들이 발견되었다. 새롭게 발견된 여러 전류에 대해 물리학계뿐 아니라 공학 및 산업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전하 전류 대신 다른 종류의 전류를 활용하면 전하 전류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존의 메모리 및 연산 소자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전망 덕분에 전하 전류에 기반한 소자(device) 기술을 의미하는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를 닮은 새로운 용어들이 만들어졌는데,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와 밸리트로닉스(valleytronics)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 용어들을 잘 살펴보면 스핀, 밸리 등 해당하는 전류의 이름과 함께 기술을 의미하는 접미사 “-트로닉스(-tronics)”가 합쳐진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글에서 소개할 오비탈(orbital) 전류에 대해서도 오비탈 자유도를 기반으로 하는 소자 기술을 의미하는 오비트로닉스(orbitronics)라는 용어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다.

기술적인 응용도 물론 현대 물리학 연구에서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러한 다양한 전류들을 연구하는 것이 근본 물리학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나름대로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많은 경우 여러 가지 전류들은 응집물질 시스템의 창발적(emergent)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밸리 자유도는 진공상태의 전자는 갖고 있지 않은 자유도이지만 벌집격자(honeycomb lattice) 구조를 갖는 고체에서는 직접 밴드갭(direct bandgap) 근방의 전자들이 부분격자(sublattice)를 느끼면서 밸리 자유도가 블로흐 전자(Bloch electron)의 자유도가 된다. 이 글에서 소개할 오비탈 자유도 역시 마찬가지로 독립된 원자에서는 하나의 양자상태에 불과하지만 고체 내 블로흐 전자 입장에서는 스핀과 비슷하게 내부 자유도(internal degree of freedom)처럼 행동한다. 이처럼 개별 입자에게는 없는 자유도가 응집물질에서는 생겨날 수 있는데 이를 창발적 자유도(emergent degree of freedom)라고 하고, 이는 유명한 1972년 P. W. Anderson이 Science지에 발표한 기사 “More Is Different”와 일맥상통한다.1)

둘째, 여러 가지 자유도의 전류는 그 자체만 흐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보통 다른 자유도와 맞물려 있다. 고체에 전하 전류를 흘렸을 때 전류에 수직한 방향으로 스핀 전류가 생겨나는 스핀 홀 효과(spin Hall effect)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류에 대한 연구는 응집물질물리학 연구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전하, 스핀, 오비탈, 밸리 등 여러 자유도의 상호 결합(cross coupling)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물리학 발전의 역사적인 이유로 측정 장비의 원리는 어떤 물리량을 측정하는지와 상관없이 특정 물리량을 전하 전류 및 전압으로 변환하는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따라서 오비탈 전류와 같이 새롭게 제안된 종류의 전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류들이 전하 전류와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종종 만약 전하 전류 대신 스핀 전류와 같은 다른 종류의 전류가 먼저 발견되었으면 물리학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이러한 세계에서 물리학은 어떤 식으로 발전하였을까?

본 글에서는 새롭게 화두가 되고 있는 고체 시스템의 오비탈 자유도의 개념을 소개하고 오비탈 전류의 생성 메커니즘, 그리고 오비탈 전류로 인해 나타나는 동역학 효과들을 살펴본다. 본 글에서는 주로 이론적인 측면을 다루며, 오비탈 전류의 실험적인 검증과 소자 기술 응용에 대해서는 물리학과 첨단기술 본편의 다른 글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오비탈 전류 연구의 짤막한 역사

오비탈 전류에 대한 연구는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활발히 시작되었기 때문에 거창하게 역사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연구의 흐름과 주요 이정표적 결과들을 순차적으로 간단히 살펴보자. 오비탈 전류의 개념은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B. Andrei Bernevig, Taylor L. Hughes, Shou-Cheng Zhang이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small p\)-도핑 실리콘에서 오비탈 홀 효과(orbital Hall effect)를 이론적으로 예측한다.2) 그 후 2008년 일본 나고야 대학교의 H. Kontani, T. Tanaka 및 동료들은 전이금속에서 나타나는 스핀 홀 효과 이면에 매우 거대한 오비탈 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발견했다.3)

비록 이 논문들은 이론적으로 매우 선구적인 연구결과를 제안하였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새롭게 제안된 오비탈 홀 효과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많은 연구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스핀과 달리 오비탈 각운동량(orbital angular momentum)은 고체 내 양자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비탈 각운동량이 양자수가 되려면 독립된 원자처럼 시스템에 회전 대칭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체에서는 격자 구조 때문에 회전 대칭성이 깨져 있고, 이 때문에 전자의 파동함수는 격자 구조의 대칭성을 만족하기 위해 – 단순입방격자(simple cubic lattice)를 예로 들면 – \(\small d_{xy}, d_{yz}, d_{zx}\) 오비탈과 같이 각운동량의 기대값이 0인 상태가 된다. 오비탈 급랭(orbital quenching)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많은 고체물리학 및 자성물리학 교과서에서 오비탈 자성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로 소개된다. 이 때문에 스핀 홀 효과와 달리 오비탈 홀 효과로 인해 샘플의 가장자리에 쌓이는 각운동량은 미미할 것으로 간주되었고, 현재까지 오비탈 전류를 직접 관측한 실험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적인 입장과는 반대로 2018년에 필자가 발표한 논문에서는 오비탈 급랭이 있더라도 오비탈 홀 효과가 안정하게 나타날 수 있고, 이로 인해 샘플 가장자리에 오비탈 각운동량이 쌓인다는 것을 보였다.4) 이 논문을 발표한 이후 오비탈 홀 효과가 실재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실험 그룹에서는 오비탈 홀 효과를 실험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오비탈 홀 효과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필자는 오비탈 전류를 자성체에 주입하면 오비탈 각운동량이 자성체의 자기 모멘트에 전달되며 자화(magnetization) 동역학이 유도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예측하였다.5) 효율적으로 자화 동역학을 유도하고 자화를 조작하는 것은 스핀트로닉스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기에 많은 스핀트로닉스 실험 그룹에서 필자의 연구 결과에 주목하였다. 오비탈 토크(orbital torque)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오비탈 전류를 검증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이 되기 때문에 기술적 응용 이상의 위상을 갖는다.

블로흐 전자의 오비탈 자유도와 오비탈 전류

앞서 언급한 대로 원자 오비탈 상태의 흐름인 오비탈 전류는 하나의 원자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지만,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있는 고체에서는 원자 오비탈의 상태를 블로흐 전자의 내부 자유도로 간주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전류를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자가(valence) 전자가 \(\small p\) 오비탈로 이루어져 있는 고체에서는 \(\small p_x, p_y, p_z\) 오비탈 특성을 갖는 블로흐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고체 내 오비탈 상태를 기술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원자 중심으로 국소화된 바니어 상태(Wannier state)를 이용하는 것인데, 브라배 격자(Bravais) \(\small \pmb{R}\)을 중심으로 \(\small p_\alpha (\alpha=x,y,z)\) 특성을 갖는 바니어 상태 \(\small \phi_{p_\alpha \pmb{R}} (\pmb{r})\)에 대응되는 블로흐 상태 \(\small \psi_{p_\alpha \pmb{k}} (\pmb{r})\)는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다.

\[\psi_{p_\alpha \pmb{k}} (\pmb{r})=\sum_{\pmb{R}} e^{i\pmb{k}\cdot\pmb{R}} \phi_{p_\alpha \pmb{R}} (\pmb{r}).\tag{1}\]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small p_x, p_y, p_z\)뿐만 아니라 z 방향 각운동량을 \(\small \pm\hbar\)만큼 갖고 있는 \(\small p_x \pm ip_y\) 등의 바니어 상태에 대해서도 블로흐 상태를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small p\) 오비탈 상태의 어느 중첩 상태도 일반적으로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가 전자가 \(\small p\) 오비탈로 이루어진 고체의 블로흐 상태는 아래와 같이 3개의 성분을 갖는 벡터로 기술할 수 있다.

\[ \psi_{\pmb{k}} (\pmb{r}) ≔ \begin{pmatrix} \psi_{p_x {\pmb{k}}} (\pmb{r}) \\ \psi_{p_y {\pmb{k}}} (\pmb{r}) \\ \psi_{p_z {\pmb{k}}} (\pmb{r})\end{pmatrix}\tag{2}\]

따라서 이러한 \(\small p\) 오비탈의 중첩상태로 이루어진 블로흐 상태의 흐름은 오비탈 정보를 수송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비탈 전류이다. 따라서 블로흐 상태의 오비탈 자유도 및 오비탈 전류의 개념은 여러 오비탈 특성으로 이루어진 블로흐 상태를 중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지금까지 논의에서는 \(\small p\) 오비탈만을 고려하였지만, \(\small d\) 오비탈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5개의 성분(\(\small d_{xy}, d_{yz}, d_{zx}, d_{z^2}, d_{x^2 -y^2}\))을 갖는 상태로 기술할 수 있다. 반면, \(\small s\) 오비탈은 성분이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오비탈 자유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지금까지 논의에서는 스핀 자유도를 무시하였는데, 스핀 자유도를 고려하면 각각의 오비탈 성분에 대해 스핀 업과 다운 상태를 생각할 수 있으므로 벡터 성분의 개수가 두 배가 된다.

그렇다면 오비탈 전류는 어떤 형태일까? 우리는 전하 전류를 전자가 자신의 고유 물리량인 전하를 갖고 흐르는 것으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스핀 전류도 이와 비슷하게 전자가 자기 자신의 스핀을 갖고 흐르는 것으로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오비탈 전류에 대해서는 이런 그림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오비탈 전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전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파동 함수 \(\small \psi(\pmb{r})\)에 대한 전하 전류는 아래와 같이 전자의 전하량 \(\small q=-e\)와 속도 연산자 \(\small \pmb{v}=-i\hbar \pmb{\nabla} /\pmb{m}\)에 대한 기대값의 곱으로 정의된다.

\[J_{\text{charge}}=\frac{ie\hbar}{m} \int d^3 r \psi^* (\pmb{r}) \pmb{\nabla}\psi(\pmb{r}).\tag{3}\]

전하 전류가 전하량과 속도의 곱으로 정의되듯이, 오비탈 전류도 이와 마찬가지로 오비탈 각운동량과 속도의 곱으로 정의된다. 다시 \(\small p\) 오비탈 시스템을 예로 들면, z 방향 각운동량에 대한 오비탈 전류는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다.

\[J_{\text{orbital}}=-\frac{i\hbar}{m}\int d^3 r [(+\hbar) \psi_{+1\pmb{k}}^* (\pmb{r}) \pmb{\nabla}\psi_{+1\pmb{k}} (\pmb{r})+ 0 \cdot \psi_{0\pmb{k}}^*(\pmb{r}) \pmb{\nabla} \psi_{0\pmb{k}}(\pmb{r})+(-\hbar)\psi_{-1\pmb{k}}^*(\pmb{r}) \pmb{\nabla} \psi_{-1\pmb{k}}(\pmb{r})].\tag{4}\]

여기서 \(\small \psi_{+1\pmb{k}} (\pmb{r})=-(1/\sqrt{2}) [\psi_{p_x \pmb{k}} (\pmb{r})+i\psi_{p_y \pmb{k}} (\pmb{r})]\)와 \(\small \psi_{-1\pmb{k}} (\pmb{r})=(1/\sqrt{2})[\psi_{p_x \pmb{k}} (\pmb{r})-i\psi_{p_y \pmb{k}} (\pmb{r})]\)는 각각 z 성분 오비탈 각운동량을 \(\small +\hbar\)와 \(\small -\hbar\)만큼 갖고 있는 상태이고 \(\small \psi_{0\pmb{k}} (\pmb{r})=\psi_{p_z \pmb{k}} (\pmb{r})\)는 z 성분 각운동량이 0인 상태이다. 식 (4)를 \(\small p_x, p_y, p_z\) 상태를 이용해 표현하면 오비탈 전류는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

\[ J_{\text{orbital}}=-\frac{i\hbar}{m} \int d^3 r \begin{bmatrix} \psi_{p_x \pmb{k}}^* (\pmb{r}) & \psi_{p_y \pmb{k}}^* (\pmb{r}) & \psi_{p_z \pmb{k}}^* (\pmb{r}) \end{bmatrix} \begin{bmatrix} 0 & -i\hbar & 0 \\ i\hbar & 0 & 0 \\ 0 & 0 & 0\end{bmatrix}\begin{bmatrix} \pmb{\nabla}\psi_{p_x \pmb{k}} (\pmb{r}) \\ \pmb{\nabla}\psi_{p_y \pmb{k}} (\pmb{r})\\\pmb{\nabla}\psi_{p_z \pmb{k}} (\pmb{r}) \end{bmatrix}.\tag{5}\]

여기서 \(\small p_x, p_y, p_z\) 오비탈을 기저(basis)로 표현할 때 오비탈 각운동량의 z 성분이 

\[L_z=\begin{bmatrix}0 & -i\hbar & 0 \\ i\hbar & 0 & 0 \\ 0 & 0 & 0\end{bmatrix}\tag{6}\]

가 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비탈 전류는

\[J_{\text{orbital}}= \int d^3 r \begin{bmatrix} \psi_{p_x \pmb{k}}^* (\pmb{r})&\psi_{p_y \pmb{k}}^* (\pmb{r})&\psi_{p_z \pmb{k}}^* (\pmb{r})\end{bmatrix} (L_z \otimes \pmb{v})\begin{bmatrix} \psi_{p_x \pmb{k}} (\pmb{r}) \\ \psi_{p_y \pmb{k}} (\pmb{r}) \\ \psi_{p_z \pmb{k}} (\pmb{r}) \end{bmatrix}.\tag{7}\]

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오비탈 각운동량 연산자와 속도 연산자가 맞바꿈 관계(commutation relation)를 만족하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오비탈 전류의 연산자를

\[\hat{J}_{\text{orbital}}=\frac{1}{2}(L_z \pmb{v}+\pmb{v}L_z)\tag{8}\]

와 같이 정의한다.

문제의 시작: 스핀 홀 효과

필자가 오비탈 전류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스핀 홀 효과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전이금속에서 나타나는 스핀 홀 효과의 진성(intrinsic) 메커니즘이었다. 스핀 홀 효과의 메커니즘은 크게 진성 메커니즘과 외인성(extrinsic) 메커니즘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전자는 불순물의 산란에 의존하지 않고 밴드구조의 고유 특성에 기인하는 메커니즘을 의미하고 후자는 불순물 산란에 의한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스핀 홀 효과의 진성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쉬운 방법은 결정 운동량(crystal momentum) \(\small \pmb{k}\)와 스핀 \(\small \pmb{S}\)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라쉬바 상호작용(Rashba interaction) \(\small H_R \sim S_x k_y ‒ S_y k_x\)이 대표적인 \(\small \pmb{S}‒\pmb{k}\) 결합의 한 형태이다. 라쉬바 상호작용이 존재할 경우 외부 전기장이 가해지면 \(\small \pmb{k}\)가 변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스핀과 스핀 전류의 동역학이 발생할 것임을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핀 홀 효과의 진성 메커니즘에 대한 많은 초기 연구는 라쉬바 상호작용에 주목하였다.6)

그러나 이 메커니즘의 한계점은, 라쉬바 상호작용과 같이 \(\small \pmb{S}‒\pmb{k}\) 결합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간 반전 대칭(spatial inversion symmetry)이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벌크 결정구조에 전기 분극이 없는 경우(단순 입방 구조, 면심 입방 구조, 체심 입방 구조 등 대부분 결정 구조가 이에 해당한다) 라쉬바 상호작용은 고체의 표면과 계면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Pt, W, Ta 등 많은 전이금속에서는 결정구조가 공간반전대칭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이나 계면이 아닌 벌크에서도 아주 강한 스핀 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또한, 이러한 물질에서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시간 반전 대칭(time-reversal symmetry)을 만족한다. 따라서 자성이 없는 대부분의 전이금속 물질에서는 스핀과 결정 운동량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존재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임의의 \(\small \pmb{k}\)에 대해 모든 에너지 밴드가 최소한 두 가지 상태만큼 축퇴(degeneracy)를 갖는다. 이를 크래이머 축퇴(Kramer’s degeneracy)라고 한다. 즉, 공간 반전 대칭과 시간 반전 대칭이 있는 물질에서는 \(\small \pmb{S}‒\pmb{k}\)의 결합이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전기장이 가해지면 전자의 \(\small \pmb{k}\)가 변화하지만 \(\small \pmb{S}‒\pmb{k}\)의 결합이 없는 물질에서 어떻게 전자는 스핀의 방향에 따라 운동 방향이 달라지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2014년 무렵 필자를 당혹스럽게 했던 물음이었다. 우리는 스핀 자유도만 가지고는 어떻게 하더라도 스핀 홀 효과가 나타나는 이론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곧 고체 시스템의 또 다른 자유도인 오비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했다.

오비탈과 격자의 상호작용: 오비탈 텍스쳐

공간 반전 대칭과 시간 반전 대칭이 있으면 스핀은 \(\small \pmb{k}\)와 상호작용할 수 없지만, 오비탈 자유도는 \(\small \pmb{k}\)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비탈 자유도는 \(\small \pmb{k}\) 공간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정렬되는 경향성이 있는데, 이를 오비탈 텍스쳐(orbital texture)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오비탈 모멘트(moment)는 모든 고유 상태(eigenstate)에 대해 그 값이 0이지만 \(\small p_x, p_y, p_z\) 등 오비탈 “특성(character)”은 공간 반전 대칭, 시간 반전 대칭을 포함해 다양한 대칭성이 있더라도 \(\small \pmb{k}\)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small p\) 오비탈 시스템을 다시 예로 들면, \(\small \pmb{k}=0\) 근방의 전자 상태들은 \(\small \pmb{k}\)의 방향에 대해 방사형(radial) 혹은 접선형(tangential)으로 정렬이 되는 경향성이 있다[그림 1]. 그리고 방사형 오비탈 밴드와 접선형 오비탈 밴드의 에너지는 일반적으로 갈라져 있다. 여기서 \(\small p\) 오비탈의 경우 방사형 오비탈 텍스쳐는 하나의 상태만 가능하지만 접선형 오비탈 텍스쳐는 두 가지 상태가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자. 오비탈 텍스쳐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는 \(\small \pmb{k}\)에 따라 오비탈 특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지칭하는 것으로써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전자 구조의 화학적인 특성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오비탈 텍스쳐가 존재한다는 것은 전자의 운동방향(\(\small \pmb{k}\))에 따라 오비탈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x 방향으로 운동하는 방사형 밴드의 전자는 \(\small p_x\) 특성을 갖고, 접선형 밴드의 전자는 \(\small p_y\) 혹은 \(\small p_z\) 특성을 갖는다. 얼핏 봤을 때는 오비탈 텍스쳐는 단순 입방 격자를 생각했을 때 x 방향으로 운동하는 전자는 \(\small p_x\) 오비탈로 이루어진 \(\small \sigma\) 결합을 통해 이동하거나 \(\small p_y\) 혹은 \(\small p_z\) 오비탈로 이루어진 \(\small \pi\) 결합을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러한 논의는 화학 결합의 방향(x,y,z)이 아닌 임의의 \(\small \pmb{k}\) 방향에 대해서도 오비탈이 정렬되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비탈 텍스쳐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오비탈의 정렬 그 자체보다는 \(\small \pmb{k}\)에 따라 오비탈의 특성이 “변화”한다는 데 있다. 이처럼 \(\small \pmb{k}\) 공간에서 오비탈 특성의 연속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오비탈의 특성이 서로 상호작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물질에서는 다양한 오비탈이 격자에 배열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다른 오비탈 특성이 섞이게 되므로 오비탈 텍스쳐는 매우 흔하게 관측된다. 따라서 오비탈 텍스쳐는 대부분 고체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

Fig. 1. (a) Radial and (b) tangential orbital textures in a p orbital system. Figure taken from Ref. [4].
Fig. 1. (a) Radial and (b) tangential orbital textures in a p orbital system. Figure taken from Ref. [4].

오비탈 홀 효과: 오비탈 텍스쳐 혼성 메커니즘

오비탈 특성과 \(\small \pmb{k}\)의 결합에 의해 나타나는 오비탈 텍스쳐는 오비탈의 동역학을 전기적으로 유도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외부 전기장이 가해지면 \(\small \pmb{k}\)가 변화하고 이는 오비탈 텍스쳐에 의해 오비탈 자유도의 동역학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의해 오비탈 홀 효과가 나타나는데, 오비탈 홀 효과란 외부 전기장이 x 방향으로 작용할 때 y 방향으로 이동하는 전자가 z 성분 오비탈 각운동량을 갖고 흐르는 현상을 말한다. [그림 1]에서 살펴본 \(\small p\) 오비탈 시스템의 방사형 및 접선형 오비탈 텍스쳐를 갖는 블로흐 상태는 \(\small k_x, k_y\) 평면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

\begin{eqnarray} \psi_{p_r \pmb{k}} (\pmb{r})&=&\cos\theta_{\pmb{k}} \psi_{p_x \pmb{k}} (\pmb{r})+\sin\theta_{\pmb{k}} \psi_{p_y \pmb{k}} (\pmb{r}),\\ \psi_{p_t \pmb{k}} (\pmb{r})&=&-\sin\theta_{\pmb{k}} \psi_{p_x \pmb{k}} (\pmb{r})+\cos\theta_{\pmb{k}} \psi_{p_y \pmb{k}} (\pmb{r}). \tag{9}\end{eqnarray}

여기서 \(\small \theta_{\pmb{k}}\)는 \(\small \pmb{k}\)가 x축과 이루는 각도이다. 접선형 오비탈 텍스쳐를 갖는 블로흐 상태는 \(\small \psi_{p_{z} \pmb{k}}(\pmb{r})\)도 있지만, 우리가 관심있는 z 성분 오비탈 각운동량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다[식 (6)].

그렇다면 이와 같이 오비탈 텍스쳐를 갖고 있는 전자 상태에 외부 전기장이 가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외부 전기장이 x 방향으로 가해지면 페르미 바다(Fermi sea)의 전자 상태가 전체적으로 \(\small ‒\)x 방향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림 2]에 표현된 바와 같이 특정 오비탈 텍스쳐를 갖는 전자 상태가 \(\small \pmb{k}\)에서 \(\small \pmb{k}+\delta \pmb{k}\)로 이동하게 되면 \(\small \pmb{k} + \delta \pmb{k}\)에서는 더 이상 고유 상태가 아니게 된다. 이를 수식으로 기술하기 위해서는 \(\small \pmb{k}\)에서의 고유 상태를 \(\small \pmb{k} + \delta \pmb{k}\)에서의 고유 상태로 표현하면 된다. 약간의 계산을 해보면 \(\small \delta \pmb{k}\)가 충분히 작다는 가정하에 식 (9)로부터 아래와 같은 관계식을 유도할 수 있다.

\begin{eqnarray} \psi_{r\pmb{k}} (\pmb{r})&=&\psi_{r\pmb{k}+\delta \pmb{k}} (\pmb{r})-\delta \pmb{k}\cdot\frac{\delta \theta_{\pmb{k}}}{\delta \pmb{k}} \psi_{t\pmb{k}+\delta \pmb{k}} (\pmb{r}),\\ \psi_{t\pmb{k}} (\pmb{r})&=&\psi_{t\pmb{k}+\delta \pmb{k}} (\pmb{r})+\delta \pmb{k}\cdot\frac{\delta \theta_{\pmb{k}}}{\delta \pmb{k}} \psi_{r\pmb{k}+\delta \pmb{k}} (\pmb{r}). \tag{10}\end{eqnarray}

따라서 \(\small \pmb{k}\)에 있었던 고유 상태가 \(\small \pmb{k} + \delta \pmb{k}\)로 이동하게 되면 \(\small \pmb{k} + \delta \pmb{k}\)에서의 방사형 상태와 접선형 상태의 중첩 상태가 되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중첩 상태는 아래와 같이 변하게 된다.

Fig. 2. (a) Tangential p orbital texture in equilibrium. (b) When an external electric field is applied, the Fermi sea shifts to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 electric field. As electronic states shift from k to k+δk, they no longer become eigenstates at k+δk, which leads to orbital dynamics. In (b), transparent orbitals represent the orbital texture of the eigenstates at k+δk.Fig. 2. (a) Tangential p orbital texture in equilibrium. (b) When an external electric field is applied, the Fermi sea shifts to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 electric field. As electronic states shift from k to k+δk, they no longer become eigenstates at k+δk, which leads to orbital dynamics. In (b), transparent orbitals represent the orbital texture of the eigenstates at k+δk.
Fig. 3. (a) Schematic illustration of orbital Hall effect . (b) In three-dimensional systems, an external electric field E induces orbital angular momentum along the direction of E×k. Here, the arrow represents the direction of the angular momentum, and color is simply for visual aid. Figures taken from Refs. [4] and [7].Fig. 3. (a) Schematic illustration of orbital Hall effect . (b) In three-dimensional systems, an external electric field E induces orbital angular momentum along the direction of E×k. Here, the arrow represents the direction of the angular momentum, and color is simply for visual aid. Figures taken from Refs. [4] and [7].
\begin{eqnarray} \Psi_{r\pmb{k}} (\pmb{r},t)&=&\psi_{r\pmb{k}+\delta\pmb{k}} (r) e^{-iE_{r\pmb{k}+\delta\pmb{k}} t/\hbar}-\delta\pmb{k}\cdot \frac{\delta\theta_{\pmb{k}}}{\delta\pmb{k}} \psi_{t\pmb{k}+\delta\pmb{k}} (\pmb{r}) e^{-iE_{t\pmb{k}+\delta\pmb{k}} t/\hbar},\\ \Psi_{t\pmb{k}} (\pmb{r},t)&=&\psi_{t\pmb{k}+\delta\pmb{k}} (r) e^{-iE_{t\pmb{k}+\delta\pmb{k}} t/\hbar}+\delta\pmb{k}\cdot \frac{\delta\theta_{\pmb{k}}}{\delta\pmb{k}} \psi_{r\pmb{k}+\delta\pmb{k}} (\pmb{r}) e^{-iE_{r\pmb{k}+\delta\pmb{k}} t/\hbar}. \tag{11}\end{eqnarray}

여기서 \(\small E_{r\pmb{k}}\)와 \(\small E_{t\pmb{k}}\)는 \(\small\pmb{k}\)에서 방사형 상태와 접선형 상태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 두 에너지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자. 따라서 평형 상태에서는 방사형 상태와 접선형 상태가 고유 상태를 이루지만, 외부에서 전기장이 가해지면서 \(\small \pmb{k}\)가 변하게 되면 방사형 상태와 접선형 상태의 중첩이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게 되면 방사형 상태 앞의 계수와 접선형 상태 앞의 계수가 달라지게 된다. 중요한 점은 계수의 비율이 실수가 아닌 복소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오비탈 각운동량을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small \psi_{r\pmb{k}} (\pmb{r}) \pm i\psi_{t\pmb{k}} (\pmb{r})\)와 같이 방사형 상태와 접선형 상태의 비율이 허수가 되면 z 성분 오비탈 각운동량을 \(\small \pm\hbar\)만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의는 오비탈 급랭 때문에 평형 상태에서 오비탈 각운동량이 모든 \(\small \pmb{k}\)에 대해 0이라도(방사형 상태와 접선형 상태가 이에 해당한다) 외부 전기장이 가해지면 오비탈 각운동량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식 (10)에 따르면 외부 전기장이 유도하는 오비탈 텍스쳐 혼성은 \(\small \partial\theta_{\pmb{k}}/\partial\pmb{k}\)에 의존한다. 또한, \(\small k_y > 0\)일 때와 \(\small k_y < 0\)일 때 \(\small \partial\theta_{\pmb{k}}/\partial\pmb{k}\)의 부호가 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외부 전기장이 x 방향으로 걸리면 \(\small k_y > 0\)인 상태와 \(\small k_y < 0\) 상태가 서로 반대 부호의 오비탈 각운동량을 생성한다. 한편, 그림 2(b)에 표시된 것처럼 \(\small k_y = 0\)에서는 외부 전기장이 가해져도 오비탈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유도되는 전체 각운동량은 \(\small\pmb{k}\) 공간을 적분하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small k_y > 0\)인 상태와 \(\small k_y < 0\) 상태는 각각 +y와 -y 방향으로 운동한다는 사실 때문에 오비탈 각운동량의 부호에 따라 전기장에 수직한 방향으로 전자의 전도 현상이 생겨난다. 즉, 외부 전기장이 가해졌을 때 오비탈 전류를 \(\small\pmb{k}\) 공간에서 적분하면 유한한 값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비탈 홀 효과이다 [그림 3(a)]. 이 논의를 3차원 시스템으로 확장하면 외부 전기장 \(\small\pmb{E}\)에 의해 오비탈 각운동량이 \(\small\pmb{k}\) 공간에서 \(\small\pmb{E}\times\pmb{k}\) 방향으로 생겨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3(b)].

오비탈 홀 효과와 스핀 홀 효과의 관계

필자가 2014년 무렵 가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공간 반전 대칭과 시간 반전 대칭이 있으면 \(\small \pmb{k}\)와 스핀이 상호작용할 수 없다는 것이 스핀 홀 효과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운 점이었다. 그러나 오비탈 자유도가 있을 때 오비탈 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고려하면 스핀 홀 효과는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지금까지 다룬 오비탈 텍스쳐 혼성에 의한 메커니즘에 따르면 오비탈 홀 효과는 스핀-궤도 결합(spin-orbit coupling)과 무관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스핀-궤도 결합이 추가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스핀-궤도 결합의 역할은 스핀 각운동량과 오비탈 각운동량을 평행(\(\small\left<\pmb{L}\cdot\pmb{S}\right> > 0\))하거나 반평행(\(\small\left<\pmb{L}\cdot\pmb{S}\right> <0\))하게 정렬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핀-궤도 결합이 있으면 오비탈 홀 효과가 나타날 때 스핀 홀 효과가 함께 나타나게 된다. 즉, 스핀 홀 효과의 기원은 오비탈 홀 효과인 것이다. 이때 스핀 홀 효과와 오비탈 홀 효과의 방향은 스핀과 오비탈의 상관관계 \(\small\left<\pmb{L}\cdot\pmb{S}\right>\)의 부호에 의해 결정되는데, \(\small\left<\pmb{L}\cdot\pmb{S}\right><0\)이면 오비탈 홀 효과와 스핀 홀 효과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타나고[그림 4(a)], \(\small\left<\pmb{L}\cdot\pmb{S}\right> >0\)이면 오비탈 홀 효과와 스핀 홀 효과가 같은 방향으로 나타난다[그림 4(b)]. 예를 들어, 전이금속 중 \(\small d\) 오비탈이 절반보다 적게 차 있는 주기율표의 왼쪽 편에 위치한 Ta, W 등의 원소가 \(\small\left<\pmb{L}\cdot\pmb{S}\right><0\)인 경우에 해당하고, \(\small d\) 오비탈이 절반 이상 차있는 Pt, Au 등의 원소가 \(\small\left<\pmb{L}\cdot\pmb{S}\right>>0\)에 해당한다.

Fig. 4. Relation between spin Hall effect and orbital Hall effect. (a) When  〈L⋅S〉<0, spin Hall effect and orbital Hall effect occur in the opposite directions. (b) When 〈L⋅S〉>0, spin Hall effect and orbital Hall effect occur in the same direction. Figure taken from Ref. [4].Fig. 4. Relation between spin Hall effect and orbital Hall effect. (a) When  〈L⋅S〉< 0, spin Hall effect and orbital Hall effect occur in the opposite directions. (b) When 〈L⋅S〉> 0, spin Hall effect and orbital Hall effect occur in the same direction. Figure taken from Ref. [4].

베리 곡률과 진성 오비탈 홀 효과

20세기 고체물리학 연구에서 주로 에너지 밴드와 이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물성들을 연구하였다면 21세기 고체물리학 연구에서는 에너지 밴드뿐만 아니라 파동 함수가 갖고 있는 정보에도 주목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물리량은 베리 곡률일 것이다. 베리 곡률의 개념은 20세기 말 Michael V. Berry에 의해 제안되었는데,8) 이는 1881년 Edwin H. Hall에 의해 발견된 이후 100년 넘게 물리학의 난제였던 비정상 홀 효과(anomalous Hall effect)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9) 21세기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베리 곡률에 대한 연구는 비정상 홀 효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홀 효과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베리 곡률이 스핀에 의존하면 스핀 홀 효과가 나타나고, 베리 곡률이 밸리에 따라 달라지면 밸리 홀 효과가 나타난다.

위에서 다룬 오비탈 홀 효과의 존재는 베리 곡률과 오비탈 자유도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필자는 2018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비-아벨성(non-Abelian) 베리 곡률과 오비탈 각운동량은 서로 비례하는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보였다.4) 일반적으로 베리 곡률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매개변수가 변하면 이에 따라 파동 함수의 성질이 연속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림 2에서 보았듯 오비탈 홀 효과 메커니즘은 \(\small \pmb{k}\)에 따라 오비탈 텍스쳐가 연속적으로 변하는 성질에 의존한다. 또한 식 (11)을 보아도 \(\small \partial\theta_{\pmb{k}}/\partial\pmb{k}\)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면의 한계로 본 글에서 자세한 논의를 소개하기는 어렵겠지만, 바로 이러한 관찰을 통해 필자는 오비탈 홀 효과와 베리 곡률의 관계를 규명하였다. 한편, 오비탈 홀 효과의 메커니즘에서는 외부 전기장에 의해 유도되는 오비탈 텍스쳐의 혼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오비탈 홀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혼성이 전자 준입자의 완화시간 \(\small \tau\)보다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다룬 경우와 같이 방사형 밴드와 접선형 밴드만 있는 모델의 경우는 \(\small \tau \gg \hbar/|E_{r}‒E_{t}|\)를 만족해야 오비탈 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샘플의 저항이 커지면서 \(\small \tau\)가 짧아지면 오비탈 홀 효과의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이 결맞음 혼성(coherent hybridization)에 의해 진성 메커니즘이 생겨난다. 불순물의 산란에 의존하는 외인성 메커니즘과 달리 진성 메커니즘에서는 베리 곡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오비탈 홀 효과의 발견은 비정상 홀 효과, 스핀 홀 효과, 밸리 홀 효과 등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홀 효과의 목록에 하나 더 추가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나, 오비탈 홀 효과의 위상은 다른 홀 효과와 차별된다. 왜냐하면 스핀 홀 효과와 벨리 홀 효과 등은 특수한 상호작용이나 밴드 구조를 필요로 하는 반면, 오비탈 홀 효과는 대부분 물질에 존재하는 오비탈 텍스쳐만 있으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스핀 홀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스핀-궤도 결합이 필요하고, 밸리 홀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벌집 격자 구조의 물질이 필요하다. 오비탈 홀 효과의 일반성은 오비탈 각운동량의 베리 위상 이론(Berry phase theory)을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베리 위상 이론에 따르면 블로흐 상태 \(\small \psi_{n\pmb{k}} (\pmb{r})=e^{i\pmb{k}⋅\pmb{r}} u_{n\pmb{k}} (\pmb{r})\)로 이루어진 파속(wave packet)이 갖는 오비탈 모멘트는 

\[ \pmb{m}_{n\pmb{k}} = \frac{e}{2\hbar} \operatorname{Im}[\bra{\pmb{\nabla}_{\pmb{k}} u_{n\pmb{k}}}\times (H_{\pmb{k}} - E_{n\pmb{k}})\ket{\pmb{\nabla}_{\pmb{k}} u_{n\pmb{k}}}]\tag{12}\]

와 같이 표현된다.10) 여기서 \(\small H_{\pmb{k}}\)는 해밀토니안(Hamiltonian)이고 \(\small E_{n\pmb{k}}\)는 블로흐 상태의 에너지 고유값이다. 이 식은 비례상수와 에너지 항을 제외하면 이미 잘 알려진 베리 곡률

\[\pmb{\Omega}_{n\pmb{k}}=\operatorname{Im}[\bra{\pmb{\nabla}_{\pmb{k}} u_{n\pmb{k}}}\times\ket{\pmb{\nabla}_{\pmb{k}} u_{n\pmb{k}}}]\tag{13}\]

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비탈 각운동량과 베리 곡률의 관계는 일부 모델에서만 관찰되는 효과를 넘어선 보편적인(universal) 결과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유로 오비탈 홀 효과는 특별한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물질 군에서 관측될 것으로 기대된다.

맺음말

이 글에서는 고체물리학에서 새롭게 화두가 되고 있는 오비탈 전류의 개념을 소개하고, 오비탈 전류를 생성하는 방법으로 오비탈 홀 효과의 메커니즘을 소개하였다. 오비탈 홀 효과가 이론 논문에 처음 등장한 지는 이미 15년이 넘어가지만 그 동안 학계의 관심을 사실상 거의 받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실험적인 관측 방법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막연하게 오비탈 홀 효과는 스핀 홀 효과와 비슷하게 측정될 것이라 간주되어 왔지만, 오비탈 급랭 효과 때문에 측정에 대해 대부분 연구자들은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오비탈 급랭이 있더라도 오비탈 홀 효과는 여전히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교과서에 등장하는 단순해 보이는 개념이라도 그것이 어느 가정하에 적용되는지, 이 개념이 현재 연구하는 문제에 적용이 가능한지를 철저히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많은 고체물리 교과서에 소개되는 오비탈 급랭이라는 개념이 평형상태에 있는 자성체의 오비탈 자성을 설명할 때에만 적용이 되고, 오비탈 홀 효과와 같이 비평형(nonequilibrium) 혹은 정상 상태(steady state)를 기술할 때는 적용되지 않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오비탈 급랭에 대한 일종의 편견 때문인지 필자의 연구 결과를 논문과 학회를 통해 발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오비탈 전류가 실재하는 물리현상임을 알게 되었고 오비탈 전류를 전기적으로 생성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 우리가 선택한 연구 주제는 오비탈 전류와 자성체의 자기 모멘트의 상호작용이었다. 우리는 스핀이 자성체에 주입되었을 때 나타나는 스핀-전달 토크(spin-transfer torque)와 마찬가지로 오비탈 각운동량이 자성체에 주입되었을 때도 오비탈 각운동량이 자화에 전달되며 토크가 나타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오비탈 전류에 의해 자성체에 가해지는 토크의 크기는 기존에 많은 연구가 되었던 스핀-전달 토크의 크기와 비슷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이를 “오비탈 토크(orbital torque)”라고 새롭게 명명하였다.5) 흥미로운 점은 스핀 전류를 전기적으로 생성하기 위해서는 샘플을 자성체와 함께 헤테로 구조로 만들거나 스핀-궤도 결합이 큰 중금속 물질을 사용해야 하지만, 오비탈 전류는 자성체 층이나 스핀-궤도 결합이 없더라도 오비탈 홀 효과에 의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7) 이러한 스핀 전류와 차별되는 오비탈 전류의 특성을 잘 이용하면 오비탈 토크를 실험적으로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오비탈 토크를 이용하면 오비탈 전류 효과를 “전기적”으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오비탈 전류 연구에 이정표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자(device) 기술 연구자들은 전기적 측정이 물리학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알 것이다. 아직 오비탈 전류는 실험적으로 확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연구를 통해 오비탈 전류가 실험적으로 확증되고 오비탈 토크에 의한 자화 동역학과 같이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정립하게 된다면 오비트로닉스라고 부를만한 새로운 정보소자 기술이 현재 일렉트로닉스를 대체할 후보로 거론되는 시점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각주
1)P. W. Anderson, Science 117, 4047 (1972).
2)B. Andrei Bernevig, Taylor L. Huges and Shou-Cheng Zhang, Phys. Rev. Lett. 95, 066601 (2005).
3)H. Kontani et al., Phys. Rev. Lett. 102, 016601 (2009).
4)Dongwook Go, Daegeun Jo, Changyoung Kim and Hyun-Woo Lee, Phys. Rev. Lett. 121, 086602 (2018).
5)Dongwook Go and Hyun-Woo Lee, Phys. Rev. Res. 2, 013177 (2020).
6)Jairo Sinova et al., Phys. Rev. Lett. 92, 126603 (2004).
7)Daegeun Jo, Dongwook Go and Hyun-Woo Lee, Phys. Rev. B 98, 214405 (2018).
8)M. V. Berry, Proc. R. Soc. Lond. A 392, 45 (1984).
9)Nagaosa et al., Rev. Mod. Phys. 82, 1539 (2010).
10)Di Xiao, Ming-Che Chang and Qian Niu, Rev. Mod. Phys. 82, 1959 (2010).
물리대회물리대회
사이언스타임즈사이언스타임즈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