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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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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중력의 새로운 이해

홀로그래피: 중력 = 양자 물리?

작성자 : 김근영·안용준·정현식 ㅣ 등록일 : 2020-12-17 ㅣ 조회수 : 3,952 ㅣ DOI : 10.3938/PhiT.29.042

저자약력

김근영 교수는 SUNY Stony Book 이학박사(2009)로서 영국 Southampton 대학교, 네덜란드 Amsterdam 대학교 연구원을 거쳐 현재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학과 교수 및 입학처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7-2020 물리학회 JKPS 실무이사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Association of Asia Pacific Physical Societies(AAPPS)의 재무이사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홀로그래피 원리로 장론, 끈이론, 중력 이론을 바탕으로 한 강한 상호작용(핵물리, 응집물질물리 등) 및 양자 정보의 이해이다. (fortoe@gist.ac.kr)

안용준 석사는 2018년에 광주과학기술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같은 기관 물리·광과학과 박사과정으로 재학 중이다. 2021년 가을부터 Wilczek Quantum Center, Shanghai Jiao Tong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할 예정이다. (yongjunahn619@gmail.com)

정현식 박사는 2020년 광주과학기술원 물리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광주과학기술원, 서강대학교 양자시공간 연구센터 연구원을 거쳐, 2021년 현재 Kavli ITS, UCAS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hyunsik@gm.gist.ac.kr)

Holography: Gravity = Quantum Physics?

Keun-Young KIM, Yongjun AHN and Hyun-Sik JEONG

Holography in high-energy theory means a duality between gravity and quantum physics. A popular catchphrase is “gravity = quantum physics”. In this duality, the spacetime dimension of gravity theory is higher than the dimension of quantum theory, so the duality is dubbed “holography”. In this article, we explain, in chronological order, the basic concepts of holography and its various applications to quantum chromodynamics, condensed matter physics, and quantum information.

홀로그램 세상

홀로그램은 2차원 평면 물질로, 여기에 레이저 빛을 쏘면 3차원 영상을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홀로그램에 관련된 원리를 홀로그래피라고 한다. 스타워즈와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 개념을 1994년 고에너지 이론 물리학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1)

Fig. 1. Symbolic image of holography.Fig. 1. Symbolic image of holography.

고에너지 이론 물리학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달라 보이는 두 현상인 ‘양자 물리’와 ‘중력’이 사실은 하나의 실체를 보는 다른 관점(duality)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양자 물리가 정의되는 시공간의 차원과 중력 이론이 정의되는 시공간의 차원이 달라서 이것을 ‘홀로그래픽 원리’ 혹은 짧게 ‘홀로그래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시간+공간 3차원) 세상의 양자 물리는 5차원 중력 현상의 홀로그램일 수 있다.2) [그림 1]은 이러한 ‘홀로그램 세상’의 상징적인 그림이다. 바깥쪽 구 껍질이 양자물리가 정의되는 4차원 시공간을 의미하고, 그 내부가 중력이 정의되는 5차원 시공간을 의미한다. 안쪽의 빨간 구는 블랙홀을 뜻하며, 5차원 시공간에 표현된 녹색과 흰색은 중력 물리의 현상을 표현하는데, 이들이 바깥쪽 구 껍질에 ‘투영’되어 4차원 양자물리의 현상과 연결된다. 구 껍질 왼쪽 아래의 격자 구조는 cuprate 고온 초전도체와 같은 강상호 작용 물질을 상징한다.

홀로그래피에 따르면, 양자 물리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중력 이론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의 양자 이론 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비섭동적) 양자 현상을, 고전 중력 이론을 이용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홀로그래피는 물리 연구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역으로 보면, 아직 미완성인 양자 중력을 이해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섭동적 양자 물리 이론을 사용할 수도 있다. 홀로그래피는, 이러한 실용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물리의 근본 이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패러다임 전환도 이끌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공간이 양자물리, 양자 얽힘(entanglement)으로부터 창발하는(emergent)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홀로그래피는 다양한 물리 현상에 응용되었고,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이 세 분야로 나뉜다.

1) AdS/QCD(Quantum ChromoDynamics): 양자색역학 혹은 핵물리에의 응용
2) AdS/CMT(Condensed Matter Theory): 응집물질물리에의 응용
3) AdS/QI(Quantum Information): 양자 정보에의 응용

이 글에서는 홀로그래피의 주요 개념과 대표적인 응용 사례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개하고자 한다. 홀로그래피는 20년 이상 활발하게 연구된 방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짧은 글을 통해 그 역사와 성과를 완전하게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는 홀로그래피의 ‘현상에의 응용’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많은 순간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홀로그래피 비긴즈(Holography begins): 1972-1997

1. 1972년-1975년(전조: Sign)

베켄슈타인(Jacob Bekenstein)은 블랙홀에 엔트로피가 있으며, 그것은 블랙홀 내부의 3차원 부피가 아닌 블랙홀 지평면(horizon)의 2차원 면적에 비례한다는 것을 보였다.(서로 다른 차원이 연관되는 이 현상을 홀로그래피의 ‘전조(sign)’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호킹(Stephen Hawking)은 블랙홀이 온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해당하는 열복사를 방출한다고 제안하고, 베켄슈타인-호킹 엔트로피 공식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블랙홀 열역학의 시작이며, 이후 양자 중력과 홀로그래피 연구의 등대가 되었다.

2. 1993년-1997년(Holography: The Beginning)

홀로그래피의 초기 아이디어는 엇호프트(Gerard 't Hooft)가 제안하였다.3) 이것을 서스킨드(Leonard Susskind)가 1994년 손(Charles Thorn)의 아이디어4)와 함께 결합하여, 초끈 이론적인 해석을 하고 ‘홀로그램’이라 명명하였다.1) 홀로그래피의 가장 대표적이고 구체적인 예는 말다세나(Juan Maldacena)가 1997년 제안한 Anti-de Sitter/Conformal Field Theory correspondence(AdS/CFT 대응성)이다.5) ‘Anti-de Sitter’는 음의 곡률을 가진 반 더 시터르(Anti-de Sitter) 공간6)을 포함한 10차원에서의 특별한 끈 이론(Type II string theory on \(\small AdS^5 \times S^5\))을 지칭하며, ‘Conformal Field Theory’는 4차원에서 초대칭과 등각대칭성이 있는 특별한 양-밀스 장론(\(\small N=4\) supersymmetric Yang-Mills theory)을 지칭한다. 말다세나의 이 논문은 2020년까지 총 16320회가 인용되었으며, inspire-hep7) 통계 기준, 고에너지 물리 분야에서 현재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다.(홀로그래픽 아이디어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말다세나의 논문보다 먼저 발표된 논문들이 있다.8))

홀로그래피 101 및 AdS/QCD: 1998-2005

1. 1998년-2001년(기본 개념의 발전, AdS/QCD의 시작)

말다세나의 선구적인 논문 이후, 홀로그래피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말다세나가 제안한 AdS/CFT 대응성의 구조를 보다 구체화하고, 더 엄밀하게 확인하려는 연구들이 진행되었다.(이런 연구들 중에 특히 홀로그래피의 응용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홀로그래픽 재규격화 이론이다.9)) 그와 동시에, 말다세나의 제안과는 다른, 새로운 홀로그래피의 예를 찾고, 보다 일반화하려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요즘은 홀로그래피의 일반성을 보다 강조하는 측면에서 AdS/CFT 대응성보다는 게이지/중력 쌍대성(gauge/gravity duality)이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말다세나의 AdS/CFT 대응성에 등장하는 CFT는 양자색역학(QCD)과 다르지만 이와 유사한 점이 많은 SU(\(\small N_c\)) Yang-Mills 이론이었기 때문에, QCD의 연구를 위해 QCD 대용으로 자연스럽게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AdS/CFT는 AdS/QCD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다.10)

2. 2001년-2005년(AdS/QCD의 성취)

Fig. 2. QCD phase diagram.
Fig. 2. QCD phase diagram.14)

핵물리학자 손(Dam T. Son)과 두 끈이론 학자 폴리카스트로(G. Policastro), 스타리네츠(A. O. Starinets)는 이전의 이론적/형식적 홀로그래피 연구의 흐름에 큰 변화를 주는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그것은 중이온 가속기 충돌 실험에서 발생하는 쿼크-글루온 플라즈마11)의 전단 점성도(shear viscosity)를 홀로그래피를 이용하여 계산한 것이다.12) 블랙홀의 특성을 이용한 중력 계산을 통하여, 가속기의 실험 결과와 매우 가까운 값을 예측하는데 성공하였다.13) 이 논문에 대해서 손(Son)의 한 핵물리학자 친구는 다음과 같은 농담을 했다고 한다. “이 논문은 초끈 이론에서 나온 최초의 유용한 논문이다.”

이 연구는 이후 홀로그래피 연구에 세 가지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 많은 핵물리학자와 끈이론 학자들이 홀로그래피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둘째, 핵물리학자와 끈이론 학자들의 협업이 활발하게 되었고, 이러한 학문 간의 융합은, 이후 응집물질물리와 양자 정보에 이르는 홀로그래피 발전의 특징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셋째, 수송계수를 계산하는 것이 홀로그래피를 현상에 적용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보여주었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방법론 개발의 동기가 되었다.16)

2002년에는 “글루온”과 그에 관련된 자유도만 있던 AdS/CFT의 CFT(Yang-Mills) 이론에 probe D-brane으로 쿼크를 도입하는 방법이 제안되어, 쿼크와 관련된 물리, 키랄(chiral) 대칭성, 저에너지 강입자(hadron) 물리도 홀로그래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17) 특히, D3/D7 모델이나, 2004년에 제안된 사카이-수기모토(Sakai-Sugimoto)모델이 끈이론에 바탕을 둔 top-down 모델로서 가장 성공적이며, QCD 격자 계산, 키랄 섭동 이론(chiral perturbation theory), 실험 결과 등과도 부합하는 결과를 준다.18) 또한, 끈이론에 기반하지 않은 bottom- up 방식의 유효 장 이론(effective field theory) 연구도 시작되었다.

AdS/QI, AdS/CMT의 태동: 2006년-2009년

1. AdS/QI: The beginning (2006-2009)

Fig. 3. Entanglement entropy = Area of the Ryu-Takayanagi surface.

2006년에 응집물질 물리학자 류(Shinsei Ryu)와 끈이론 학자 타카야나기(Tadashi Takayanagi)는 양자 얽힘19) 엔트로피(quantum entanglement entropy)를 류-타카야나기 표면이라는 기하학적인 양의 면적으로 계산할 것을 제안하였다.20) 예를 들면, [그림 3]의 전자계(파란 점들)와 그 주변과의 얽힘 엔트로피는 그 전자계를 감싸는 곡면의 최소 면적이 된다. 이런 최소 면적의 곡면을 류-타카야나기 표면이라고 한다. 반 더 시터르 공간에서 류-타카야나기 표면의 면적은, 등각장론에서 얽힘 엔트로피의 정의를 이용하여 계산한 얽힘 엔트로피와 일치한다.

홀로그래피를 통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얽힘 엔트로피의 성질들이 류-타카야나기 표면의 기하학적인 성질들로 치환되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계산하기 쉬운 양들로 바뀌게 되었다. 홀로그래픽 얽힘 엔트로피는 AdS/QI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얽힘 엔트로피 외에 다양한 양자 정보의 물리량과 그에 대응하는 중력/시공간의 기하학적인 양과의 관계가 연구되고 있다.

류-타카야나기 공식은 홀로그래피가 끈이론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아도 성립할 수 있음을 보이는 하나의 예이다. 또한, 시공간의 구조가 양자 얽힘으로부터 창발할 수 있다는 점을 내포하여, 중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2009년 스윙글(Brian Swingle)이 양자 다체계의 상태를 기술하는 텐서 그물망(tensor network)을 도입하여, 양자 얽힘으로부터 AdS 시공간이 창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21)

2. AdS/CMT: The beginning (2007-2009)

Fig. 4. Cuprate Phase diagram.
Fig. 4. Cuprate Phase diagram.

2007년-2009년은 AdS/CMT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전도도(conductivity)와 Angle-Resolved Photo- Emission Spectroscopy(ARPES) spectral 함수 등 응집물질물리의 중요한 실험 측정량을 홀로그래피로 계산하는 방법들이 제안되어, 실험 결과와 홀로그래피 계산을 서로 비교하고 현상을 예측하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중력 방정식과 나비에-스토크스(Navier-Stokes) 방정식과 같은 유체역학 방정식 사이의 홀로그래픽 대응성이 연구되었다.22) 이것을 유체/중력(fluid/gravity) 대응성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으로도 수송계수를 계산할 수 있으며, 이것은 2점 그린 함수와 쿠보(Kubo) 공식을 이용한 손(Son)의 방법과 상호 보완적이다. 또한, 이때부터 사치데브(Subir Sachdev), 자넨(Jan Zaanen)과 같은 응집물질물리 이론의 대가들이 홀로그래피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응집물질물리 현상론의 관점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cuprate과 같은 고온 초전도체의 상도표[그림 4]를 홀로그래피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온 초전도체 자체의 홀로그래픽 원리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온 초전도체가 되기 전 상전이보다 높은 온도에서 비페르미 액체의 물리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낮은 온도의 절연체/초전도체 전이, 유사틈(pseudo-gap)의 물리도 포함된다.23)

이와 관련한 AdS/CMT 초기의 중요한 연구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2007년에 양자 임계점(quantum critical point) 주변의 물리를 등각장론과 홀로그래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25) 2008년에 고온 초전도체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홀로그래픽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26) 2009년에는 홀로그래피로 계산한 spectral 함수를 바탕으로 비페르미 유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27)

홀로그래피의 발전: 2010년-2020년

2009년까지 기초적인 연구 방법과 방향이 제시된 홀로그래피 응용 분야(AdS/QCD, AdS/CMT, AdS/QI)들이 최근 10년 동안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방대한 연구 결과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여기에서는 주제어 중심으로 몇 가지만 소개하고 참고문헌도 생략한다.

AdS/QCD 분야에서는, 좀 더 QCD에 가까운 홀로그래픽 모델의 구축, 홀로그래피를 기반으로 한 QCD 상도표(그림 2) 구축 및 각 상들의 성질 연구, 쿼크-글루온 플라즈마의 다양한 성질에 대한 연구, 자기장 하에서 QCD 및 핵물질의 성질, 홀로그래픽 중입자(baryon) 및 핵물질 연구 등이 수행되었고, 특히 최근에는 중력파 검출 신호를 반영한 홀로그래픽 중성자별 연구도 진행되었다.

AdS/CMT 분야에서는 비페르미 유체와 고온 초전도체의 보편적 성질(universal property), 강상호 작용계 수송계수의 보편적 한계(universal bound), 운동량 소산(momentum relaxation) 효과를 추가한 보다 현실적인 CMT 모델 구축, IR scaling 물리를 반영한 홀로그래픽 모델 구축, 비균질 바닥 상태(charge density wave)의 구축과 이를 바탕으로 한 물성, 자발적 대칭 깨짐 등 대칭성을 이용한 물성 연구, 강상호 작용에 기인한 도체-부도체 전이, 자기장 하에서 응집물질 성질, 비페르미 유체와 초전도체를 포함한 cuprate 모델 구축, Dirac 물질, Weyl semi-metal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홀로그래피는 비평형 상태의 물리를 연구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복잡한 비평형 상태 방정식을 상대적으로 풀기 용이한 고전적 중력 방정식으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쿼크-글루온 플라즈마 및 다양한 응집물질계의 시간 변화를 연구하는데 적용되었다.

AdS/QI는 2010년대에 가장 큰 관심을 받고 발전한 홀로그래피 분야이다. 2006년에 류와 타카야나기가 제안한 홀로그래픽 얽힘 엔트로피의 아이디어가 보다 엄밀하게 정당화되었으며, 얽힘 엔트로피의 다양한 성질들이 연구되었다. 양자 얽힘에서 창발하는 시공간은 Multi-scale Entanglement Renor- malization Ansatz(MERA)나 양자 에러 보정 코드를 바탕으로 한 완벽한 텐서 그물망(perfect tensor network)으로 구현되었다. 양자 얽힘과 시공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는 2013년 Einstein–Rosen bridge = Einstein-Podolsky-Rosen pair(ER= EPR) 제안으로 이어져서 블랙홀의 이해에도 기여하였다.

얽힘 엔트로피뿐 아니라, 양자 정보에 관한 새로운 양들(Renyi entropy, entanglement of purification, logarithmic negativity, reflected entropy, quantum complexity 등등)과 이에 대응하는 홀로그래픽 물리량들이 제안되고 그 성질들이 깊게 연구되었다. 특히, 이 중에서 양자 복잡도(quantum complexity)는 양자 연산이 얼마나 빨리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양으로서, 기하학적으로는 블랙홀 사건의 지평면 내부 구조와 관계될 수 있는 양자 정보의 성질로서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최근에 양자 혼돈(quantum chaos)28)이 블랙홀과 홀로그래피의 연구에 의하여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블랙홀은 가장 혼돈한(maximally chaotic) 물리계이며, 블랙홀에서 구한 리아푸노프 계수(Lyapunov exponent)가 모든 혼돈계의 보편적 상한이 된다는 결과가 보고되어 혼돈계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블랙홀의 리아푸노프 계수는 양자 다체계 모델들 중 하나인 Sachdev-Ye-Kitaev(SYK)29) 모델의 결과와도 일치했다.

홀로그래피의 미래: 새로운 패러다임, 오래된 난제 도전

홀로그래피는 핵물리, 응집물질물리, 유체역학, 양자 혼돈, 양자 정보, 양자 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탐구하고 완성해 나가야 할 중요한 연구 주제들이 많이 있다. 또한 홀로그래피 내부의 이론적 구조도, surface state correspondence, AdS/BCFT, codimension two holography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AdS 시공간과는 다른, de Sitter(dS) 시공간, 평평한 시공간에서의 홀로그래피, 천체물리학적 블랙홀과 장론을 연관 짓는 Kerr/CFT 대응성, 한 차원 낮은 경계 장론(boundary field theory)을 이용한 우주론의 이해도 중요한 주제이다. Higher spin 게이지 이론과 가적분성(integrability)도 홀로그래피의 외연을 넓히고, 홀로그래피의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중요한 분야이다.

1970년대 초반, 베켄슈타인과 호킹이, 블랙홀이 엔트로피와 온도를 가진 열역학적 계임을 보인 것은 양자 중력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후 많은 학자들이 양자 중력 연구를 위해 초끈 이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90년 중후반에 다시 블랙홀의 성질을 음미하다 시작된 ‘홀로그래피’ 아이디어는 초끈 이론의 틀 안에서 AdS/CFT 대응성으로 구체화된다. 2006년 류-타카야나기의 홀로그래픽 얽힘 엔트로피의 발견으로 홀로그래피는 초끈 이론의 도움 없이도 정당화될 수 있는 독자적인 근거를 갖게 된다. 마침내, 2010년대에 일반화된 류-타카야나기 공식을 바탕으로 페이지 곡선(Page curve)이 계산되어, 홀로그래피는 블랙홀 정보 손실 역설(information loss paradox)의 유력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데 기여하게 된다.30) 블랙홀의 양자 효과로 모습을 드러낸 홀로그래피는 이제 양자 중력을 연구하기 위한 강력하고 실용적인 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양자 중력은, 홀로그래피를 통하여, 앞으로 table-top 실험으로도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양자다체계인 SYK 모델을 저온의 원자 기체(cold-atomic-gases)나 양자 흉내내기 (quantum simulation)로 구현한다면, SYK 모델에 대응하는 홀로그래픽 양자 중력계를 연구하는 실험이 될 수 있다. 양자 혼돈계에서 양자 얽힘으로 인해 일어나는 재생(regenesis)이라는 현상은 웜홀(wormhole)을 통과하는 양자 전송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웜홀 통과 현상’을 실험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홀로그래피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중력=양자 물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근본 물리(fundamental physics)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양자 중력, 양자 정보, 강상호 작용 등 남아있는 현대 물리의 난제들을 두루 아우르고 있는 핵심 개념이다. 이러한 홀로그래피의 특수성과 중요성이 (약 10년의 기초 작업과 약 10년의 발전을 거친) 홀로그래피 연구의 앞으로 10년이 무척 기대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기술한 홀로그래피의 발전 과정에 한국의 연구자들도 많은 기여를 해왔다. 지면의 한계로, 이 글은 홀로그래피의 역사와 연구 주제를 소개하는데 그쳤다. 다른 기회에 한국 연구자들의 기여와 연구 활동이 소개되기를 바란다.

각주
1)Susskind, Leonard, "The World as a Hologram", Journal of Mathematical Physics 36(11), 6377 (1995). arXiv:hep-th/ 9409089.
2)직관적으로 얘기하자면, 새로 추가되는 ‘홀로그래픽’ 차원은 4차원 세상의 에너지 스케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에너지 스케일에 따라 4차원 세상을 겹겹이 쌓아놓은 것을 5차원 시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3)G ’t Hooft, "Dimensional Reduction in Quantum Gravity", gr-qc/9310026.
4)Charles B. Thorn, “Reformulating string theory with the 1/N expansion“, International A. D. Sakharov Conference on Physics, Moscow, pp. 447–54 (1991). arXiv:hep-th/9405069.
5)Juan Martin Maldacena, "The Large N Limit of Superconformal Field Theories and Supergravity", Adv. Theor. Math. Phys. 2(2), 231 (1998). arXiv:hep-th/9711200.
6)AdS 시공간: 대칭성이 큰 공간은 평평하거나(flat space) 일정한 양의 곡률(sphere)을 갖거나 일정한 음의 곡률(쌍곡선 공간: hyperbolic space)을 가질 수 있다. 쌍곡선 공간을 시각화하는 방법으로 유용하고 재미있는 것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작품이다. 에셔는 스페인의 알람브라(Alhambra)의 쪽매맞춤(tessellation)에서 영감을 받아 대칭성을 고려한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예를 들어 에셔의 Circle Limit IV(Heaven and Hell)는 쌍곡선 공간을 표현한 목판화인데 동그란 디스크에 천사와 악마가 반복되어 쪽매맞춤으로 그려져 있다. 천사와 악마들은 각각 같은 크기이지만, 디스크의 끝으로 갈수록 작아 보인다. 이것은 굽은 공간을 평평한 곳에 표현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구형의 지구본을 평면 지도로 표현하면 극지방의 척도가 길어 보이는 것과 반대의 효과이다. AdS 시공간은 쌍곡선 공간을 시간 방향으로 쌓아 놓은 실린더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AdS 시공간에서는 어디에서나 그 중심방향으로 향하는 인력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팽창하는 우주를 기술하는 dS(de Sitter) 시공간과 대비되는 효과이다. (참고로, 이후에 설명되는 양자 물리의 텐서 그물망(tensor network)도 에셔의 그림과 비슷한 쌍곡선 공간을 구현한다. 즉, 초끈 이론의 도움이 없어도 양자 물리와 텐서 그물망을 통해 AdS 시공간 창발을 발견할 수도 있다.)
7)https://inspirehep.net/.
8)1986년에 Brown과 Henneaux이 3차원 중력과 2차원 장론의 관계를 밝혔으며(Communications in Mathematical Physics 104(2), 207–226.) 1995년에 Banks, Fischler, Shenker, Susskind의 BFSS 행렬 모델이 M-이론과 홀로그래픽 관계라고 할 수 있다(Tom Banks, Willy Fischler, Stephen Shenker and Leonard Susskind, Phys. Rev. D 55 (1997). (arXiv:hep-th/9610043)).)
9)K. Skenderis, Class. Quant. Grav. 19, 5849 (2002), arXiv: hep-th/0209067.
10)강/약 대응성: AdS/CFT 대응성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 사이의 대응성이라는 점이다. 즉, 하나의 이론이 강한 상호작용을 기술한다면 그에 대응되는 이론은 약한 상호작용을 기술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양자장론의 상호작용이 강해져서 섭동적 방법이 적용되지 못할 때, 홀로그래피에 의하면, 이를 고전 중력 이론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이런 원리로, QCD의 문제를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1)쿼크-글루온 플라즈마: 낮은 온도에서 쿼크와 글루온은 중간자나 중입자 등 강입자 상태에 속박되어 있는데(confinement) 충분히 높은 온도가 되면 쿼크와 글루온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deconfinement) 이 상태를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라고 한다 [그림 2].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는 가속기에서 금이나 납의 핵과 같은 무거운 이온이 높은 에너지로 충돌할 때, 혹은 빅뱅 이후 약 10-10~10-6초에 존재한다.
12)점성도/엔트로피 비율의 보편성: 전단 점성도와 관련하여 홀로그래피 계산이 예측하는 중요한 점은 점성도/엔트로피 비율이 1/4π로 아주 작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계의 ‘미시적 구조와 무관하게’ 점성도/엔트로피가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하한(universal lower bound)으로 제안되었으며,15) 1/4π는 지금까지 측정된 어떤 물질의 점성도/엔트로피 값보다도 작은 값이다. 예를 들어, 쿼크-글루온 플라즈마와 비교하여 온도와 압력이 아주 다르지만, ‘상호작용이 아주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극저온의 페르미 기체 (ultracold Fermi gas)에서도 점성도/엔트로피 비율이 1/4π에 가깝게 관측되어 1/4π가 보편적 하한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이와 같이 물질의 미세 구조와 무관한 보편적 성질(universal property)의 발견 및 이해는 홀로그래피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표들 중 하나이다.
13)G. Policastro, D. T. Son and A. O. Starinets, Phys. Rev. Lett. 87, 081601 (2001), hep-th/0104066.
14)Rajeev S. Bhalerao,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 PhasDiagQGP.png.
15)P. K. Kovtun, Dam T. Son and A. O. Starinets, Phys. Rev. Lett. 94, 111601 (2005), arXiv:hep-th/0405231.
16)D. T. Son and A. O. Starinets, JHEP 0209, 042 (2002), arXiv: hep-th/0205051.
17)A. Karch and E. Katz, JHEP 06, 043 (2002), hep-th/0205236.
18)T. Sakai and S. Sugimoto, Prog. Theor. Phys. 113, 843 (2005), arXiv:hep-th/0412141.
19)양자 얽힘(entanglement): 양자 얽힘은 부분계들 사이의 양자역학적 상관관계이다. 예를 들어, 스핀 단일항(singlet) 양자 상태의 두 입자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자. 각각 입자의 스핀은 측정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한 쪽 입자의 스핀을 측정하는 순간 다른 입자의 스핀이 바로 결정된다. 이러한 비국소적(non-local)인 두 입자(부분계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양자 얽힘’이라고 한다. 양자 얽힘은 Einstein–Podolsky–Rosen(EPR) 역설을 통하여 설명되고, 아인슈타인이 불만을 제기한 "spooky action at a distance"를 주는 양자 물리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이러한 양자 얽힘의 정도를 측정하는 양들 중 하나가 얽힘 엔트로피(entanglement entropy)이다. 얽힘 엔트로피는 축소된 밀도 행렬(reduced density matrix)의 폰 노이만 엔트로피(Von Neumann entropy)로 정의되며, 일반적으로 계산이 어렵다. 하지만, 홀로그래피를 이용하면 얽힘 엔트로피를 기하학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그림 3].
20)Shinsei Ryu and Tadashi Takayanagi, Journal of High Energy Physics 8, 045 (2006), arXiv:hep-th/0605073.
21)B. Swingle, Phys. Rev. D 86, 065007 (2012), arXiv:0905. 1317.
22)S. Bhattacharyya, V. E. Hubeny, S. Minwalla and M. Rangamani, JHEP 0802, 045 (2008), arXiv:0712.2456 [hep-th].
23)비페르미 액체와 고온 초전도체: 란다우의 페르미 액체 이론(Fermi liquid theory)은 거의 모든 금속, 초전도체, 그리고 초유체 등을 기술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이론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페르미 액체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을 보여서 “비페르미 액체(Non-Fermi liquid)”라 불리는 특이한 물질들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페르미 액체 이론에 의하면 저항이 온도의 제곱에 비례하는데 반해, 비페르미 액체에서는 저항이 온도에 비례한다(Linear-T-resistivity24)). 이런 새로운 성질은 전자 간의 강한 상호작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표준적인 비섭동 이론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응집물질물리 이론체계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이 경우 강한 상호작용에 특화된 홀로그래피가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Cuprate 상도표(그림 4)에서 보듯이 고온 초전도체는 비페르미 액체의 불안정성(instability)에서 생긴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비페르미 액체의 이해는 고온 초전도체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4)Linear-T-resistivity: 비페르미 액체에서 관찰되는 이 성질이 중요한 이유는, “Linear-T-resistivity”가 cuprates, pnictides, heavy fermion 등 다양한 물질들의 미시적 구조와 무관한, 강상호 작용 전자계의 보편적 성질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보편적 성질(universal property)’의 이해는 홀로그래피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며, AdS/QCD의 점성도/엔트로피 비율이 그 모범적인 예이다. Linear-T-resistivity의 경우 그 보편성이 블랙홀 사건 지평면 근처의 기하학적 대칭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외에도 강상호 작용 전자계의 보편적 성질로는 자기장 하에서 전도도에 관한 Hall angle의 온도 제곱 의존성, 초전도체의 보편적 성질인 Homes’ law가 있다. 홀로그래피 방법을 통하여 이런 보편적 성질들을 기하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25)C. P. Herzog, P. Kovtun. S. Sachdev and D. T. Son, Phys. Rev. D 75, 085020 (2007), hep-th/0701036; S. A. Hartnoll, P. K. Kovtun, M. Muller and S. Sachdev, Phys. Rev. B 76, 144502 (2007) [0706.3215].
26)S. A. Hartnoll, C. P. Herzog and G. T. Horowitz, Phys. Rev. Lett. 101, 031601 (2008), [arXiv:0803.3295].
27)S.-S. Lee, Phys. Rev. D 79, 086006 (2009), [0809.3402]; H. Liu, J. McGreevy and D. Vegh, Phys. Rev. D 83, 065029 (2011), [0903.2477]; M. Cubrovic, J. Zaanen and K. Schalm, Science 325, 439–444 (2009), [0904.1993].
28)양자 혼돈(quantum chaos): 양자 혼돈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무작위 행렬(random matrix)의 에너지 준위 분포를 이용하는 방법, Eigenstate Thermalization Hypothesis(ETH), Out of Time Ordered Correlator (OTOC)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중 OTOC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도를 표현하는 고전적인 혼돈 현상의 양자역학 버전에 해당한다. OTOC를 표현하는 변수 중, 리아푸노프 계수(Lyapunov exponent)는 시간적으로 혼돈이 커지는 정도를, 나비 속도(butterfly velocity)는 공간적으로 혼돈이 퍼지는 정도를 나타낸다.
29)Sachdev-Ye-Kitaev(SYK) 모델: 이 모델은 특정 파라미터 영역에서 강상호 작용하는 혼돈계이자 정확히 풀 수 있는 다체계 양자 모델이다. 이 모델은 2차원 dilaton 중력 모델의 예측과 비슷한 결과를 보여 주기 때문에, 홀로그래피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0)A. Almheiri, T. Hartman, J. Maldacena, E. Shaghoulian and A. Tajdini, “The entropy of Hawking radiation,” arXiv:2006. 06872 [hep-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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