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인슈타인의 한계를 넘어서
젊은 천체물리학자 대담
작성자 : 김영민·박미옥·배영복·홍성욱·박찬 ㅣ 등록일 : 2021-07-12 ㅣ 조회수 : 4,133 ㅣ DOI : 10.3938/PhiT.30.019
김영민 연구조교수는 2016년 LIGO 중력파 데이터분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 부산대학교를 거쳐, 현재 울산과학기술원에서 중력파와 중성자별을 연구하고 있다. LIGO 및 KAGRA 공동연구의 회원이다. (ymkim715@unist.ac.kr)
박미옥 연구원은 2013년 블랙홀과 홀로그래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고등과학원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고에너지 순수 이론 물리학(중력 이론)이다. (miokpark76@gmail.com)
배영복 연구원은 2016년 블랙홀 포획에 관한 수치상대론적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천문연구원을 거쳐, 현재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분야는 수치상대론과 중력파 천문학이다. (astrobyb@gmail.com)
홍성욱 선임연구원은 2011년 우주상수와 우주재이온화 신호 분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충남대학교, 고등과학원, 서울시립대학교를 거쳐,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우주론 및 관측기기 개발이다. (swhong@kasi.re.kr)
박찬 연구원은 2016년 우주론적 수치상대론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센터, 서울대학교 이론물리학연구소를 거쳐, 현재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중력파와 수치상대론이며, 천체분과 산하 젊은 천체물리학자 모임(Junior Astrophysicists’ Meeting)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iamparkchan@gmail.com)
A Conversation among Young Astrophysicists
Young-Min KIM, Miok PARK, Yeong-Bok BAE, Sungwook E HONG and Chan PARK
Recently, many Nobel Prizes in Physics have been awarded in the field of astrophysics. Gravitational wave observations and contributions to LIGO in 2017, cosmology and exoplanets in 2019, and black hole formation theory and discovery of a supermassive black hole in 2020. Surprisingly, that these topics, which are somewhat distant from our daily life, have great physical significance and are being actively studied worldwide. We invited young astrophysicists at the forefront of astrophysic research to share their thoughts on astrophysics. That conversation took place online on June 2, 2021.
젊은 천체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천체물리학
최근 노벨 물리학상은 천체물리 분야에 많은 수여가 이루어졌다. 2017년에는 중력파 관측 및 LIGO에 대한 기여, 2019년에는 우주론 및 외계행성, 2020년에는 블랙홀 형성 이론 및 초대질량 블랙홀의 발견이었다. 우리 일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러한 주제들이 물리학적으로 의미가 크고,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천체물리학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젊은 천체물리학자들을 직접 초청하여 천체물리학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본다. 대담은 2021년 6월 2일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는?
박찬: 안녕하세요. 젊은 천체물리학자 대담의 사회를 맡았습니다. 제목은 ‘대담’으로 거창하게 달았는데 ‘대’가 크다는 뜻이 아니고 그냥 마주보고 이야기한다는 뜻이더라고요. 천체물리학을 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직접 자신의 연구 분야를 설명하고 함께 생각을 이야기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같은 천체물리를 하면서도 서로 하는 분야들이 워낙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분야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천체물리 분야의 독자들께도 흥미 있는 대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참가자 소개를 드리면, 블랙홀 열역학 및 양자 중력을 연구하시는 박미옥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현재 고등과학원(KIAS)에 계시고 곧 기초과학연구원(IBS)으로 소속을 옮기실 예정이십니다. 우주론을 연구하시는 홍성욱 박사님은 한국천문연구원(KASI) 이론천문센터에서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중력파 및 중성자별을 연구하시는 김영민 박사님은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에서 연구교수를 하고 계십니다. 수치상대론 및 천문학을 연구하시는 배영복 박사님은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에 계시고 물리학과 천문학을 함께 전공하셨습니다.
이제 본 대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가 현재 연구하고 계신 분야를 소개해주시고 속해 계신 국내외 커뮤니티의 최신 연구 동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영민 박사님께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중력파와 중성자별
Fig. 1. The snowy landscape around the main building of LIGO Hanford detector on January 4th, 2017 at which GW170104 was observed. The horizontal pipe in the middle of the picture is a part of 4-km Y-arm of the laser interferometer. (The picture was taken by Young-Min Kim when he arrived at the parking lot in the morning)
김영민: 저는 중력파와 중성자별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생 때부터 이 연구를 해왔고 현재는 LIGO, KAGRA 및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 회원으로서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중력파 연구로는 데이터 분석과 관련한 연구를 많이 해왔고 기계학습을 이용한 중력파 검출기의 잡음저감 방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중성자별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는데, 중력파 데이터 분석을 통한 중성자별 내부 상태 방정식의 해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의 핵물리학자들과 함께 BUD라는 이름의 연구그룹으로 중성자별 상태방정식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박찬: 일반 독자들은 중력파와 중성자별 내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할 것 같은데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영민: 별이 내부의 핵에너지를 모두 소진시켜 수명을 다하고 나면 중력 수축을 통해 중성자별 혹은 블랙홀이 됩니다. 이중 중성자별은 내부를 구성하는 입자들의 양자역학적 압력이 중력 수축을 버티게 만듭니다. 만약 중성자별 내부 입자들의 상호작용이 달라진다면 이에 따른 압력이 달라지게 되고 중력 수축을 버티는 정도도 달라집니다. 이에 따라 중성자별이 가질 수 있는 질량과 크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한편, 중성자별 2개가 쌍성을 이루어 회전을 하게 되면 중력파를 발생시키는데, 중성자별의 질량과 크기에 따라 중력파형이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중성자별 쌍성의 중력파를 잘 관측하게 되면 중성자별의 질량과 크기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이를 통해 중성자별 내부의 상태방정식에 대한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박찬: 핵물리와 중력파는 전혀 다른 분야로 생각했었는데 이런 광활한 우주 스케일로 연결이 된다니 참으로 놀랍네요. 다음으로, LIGO와 KAGRA는 어떤 실험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영민: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거대한 레이저 간섭계입니다. 간섭계의 간섭무늬로부터 위상차를 측정하여 중력파 신호를 찾고 이것이 어떤 천체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알기 위해 데이터 분석을 진행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LIGO, 이탈리아의 VIRGO, 일본의 KAGRA가 있습니다. LIGO와 VIRGO는 중력파를 실제로 관측하였고, KAGRA는 현재 업그레이드 과정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실험은 LIGO와 KAGRA인데요. 제가 주로 기여하고 있는 분야는, 중력파 검출기의 잡음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저감시키는 일입니다.
LIGO는 지금까지 총 3번의 관측 가동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는 3번째 관측 가동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논문들이 준비되고 있고, 기기는 업그레이드 중에 있습니다. 이것이 끝나게 되면 기기의 감도가 설계 목표치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중성자별 신호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4번째 관측 가동이 예정되어 있고 이때는 KAGRA도 함께 중력파 관측에 참여할 것입니다.
박찬: 실제로 Hanford 사막에 가셔서 LIGO 가동을 하셨잖아요?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김영민: 2016년 7월에 가서 2017년 1월까지 있었는데요. LIGO의 2번째 관측 가동이 막 시작됐을 때였습니다. 그 기간 중에 실제 블랙홀 쌍성의 중력파 신호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연휴가 막 끝났을 때라 검출기 주변의 사람 활동이 적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Hanford에 눈이 굉장히 많이 내렸고 새벽에 알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중력파가 관측이 되고 나면 다양한 방식으로 신호의 오류 가능성을 검증하는데요. 제가 맡은 부분은 센서에 잡힌 전기적 신호들의 time delay가 정상적인 것인지를 검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관측된 중력파는 GW170104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박찬: 실제로 중력파를 현장에서 직접 봤다라는 것이 굉장히 흥분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박미옥 박사님께 연구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공간의 본질
박미옥: 저는 시공간의 본질적인 특성을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삶의 근본 요소는 시간과 공간인데, 아직 그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잖아요. 우선 시공간 연구에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들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고전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를 찾고, 해의 안정성을 본다든가 여러 가지 시공간의 대칭과 그에 대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연구, 블랙홀 주변에서 테스트 입자의 운동 또는 천체의 운동을 보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굽어진 공간에서 양자적인 효과를 연구하는 방향도 있습니다. 아직 성공적인 양자 중력 이론을 이루어내지는 못하였지만, 근사를 통하여 굽어진 공간에서 양자 효과를 연구하여 얻은 가장 대표적인 결과가 호킹 복사입니다. 이것이 토대가 되어 블랙홀이 다체계 시스템의 성질을 기술하는 열역학 법칙을 만족한다는 중요한 성질이 증명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공간의 고전적인 성질뿐만 아니라 양자적인 측면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블랙홀 열역학이 양자 중력 이론으로 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호킹 복사의 결과로서 블랙홀에서 호킹 온도를 정의할 수 있고, 호킹 온도와 블랙홀 열역학 법칙으로부터 블랙홀의 엔트로피가 사건의 지평선의 면적에 대응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블랙홀의 엔트로피는 분명 양자 중력의 결과로 해석되지만, 우리는 아직 블랙홀 엔트로피에 대한 미시적 이해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마도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블랙홀 열역학에 대한 깊은 이해 혹은 엔트로피의 비밀을 푸는 것이 양자 중력을 이루어 내는 중요한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찬: 역사적으로 보면, 물질의 엔트로피도 현대적 원자론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열역학에서 사용되던 개념이었습니다. 후에 볼츠만이 원자의 다체계를 해석하여 엔트로피에 대한 미시적 관점을 정립했듯이 블랙홀에도 볼츠만의 원자에 대응되는 어떤 이론이 필요한 상황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중력이론도 잘 알고 있고 양자장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아직 양자 중력 이론은 잘 모르는 것인가요? 양자 중력을 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박미옥: 중력 이론이 재규격화(renormalization)가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양자장론에서 루프(loop)를 포함한 계산을 할 때 대개 그 값이 발산하게 되는데, 발산하는 항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방법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재규격화라고 하는데, 구부러진 시공간에서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수학적인 방법들이 적용되지 않아서 체계적으로 루프 계산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관심 있게 연구하고 있는 점근적 안전 이론(asymptotic safety)이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스티븐 와인버그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중력 이론이 재규격화 가능하지 않다면 굽어진 공간에서 양자 효과를 계산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 이론과 양자장론으로부터 “과연” 양자 중력 이론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한 것 같아요. 당시 응집물리 분야에서 양자 임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윌슨 재규격화 방법이 사용되었고 이에 아이디어를 얻어 재규격화군 흐름(renormalization group flow)에 자명하지 않은 UV(ultraviolet) 고정점이 있다면 중력 이론과 양자장론으로 기술되는 양자 중력 이론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양자 중력 이론에 접근하는 점근적 안전이론이 지금까지 연구가 되어오고 있습니다.
양자 중력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론으로, 스트링 이론에서 발견되어진 홀로그래피 관점을 적용한 AdS/CFT 대응 가설이 있습니다. 다체계 열역학의 엔트로피는 부피에 비례하는데 블랙홀의 엔트로피는 면적에 비례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제라드 토프트는 양자 중력 영역에서는 모든 정보가 시공간의 경계면에 저장된다는 홀로그래피 추측을 합니다. 그 추측이 있은 다음, 후안 말다세나가, 초대칭이 있는 5차원 AdS (Anti de Sitter) 시공간의 대칭과 경계면에 살고 있는 초대칭장론의 대칭 사이에 대응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AdS/CFT 대응성을 말하고 토프트가 말한 홀로그래피 원리의 성공적인 사례가 된 것이죠.
박찬: 어려운 내용이라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점근적 안정이론이 응집물리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듯이, AdS/CFT 또한 물질의 다체계와 비교를 하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미옥: 예. 저도 정말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실제로 반데르 발스 기체 시스템과 charged AdS 블랙홀의 열역학적 특성을 비교하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우연히 혹은 좋은 직관으로부터 다체계와 블랙홀의 공통적인 양상을 발견한 흥미로운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홀로그래피 연구가 이 부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AdS/CFT를 사용하면 시공간에서 얻어진 결과를 다체계의 결과로 해석할 수가 있어서, 시공간과 다체계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가 가능해졌고요.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좀 더 긴밀하게 시공간과 다체계를 비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시공간이 열역학적 성질을 나타내는 것인지, 다체계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우리 시공간을 다체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등 많은 흥미로운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한 연구들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김영민: 양자 중력과 관련된 실험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박미옥: 우리 시공간에 덧차원(extra dimension)이 있다면 고차원 마이크로 블랙홀로부터 나오는 호킹 복사를 TeV 스케일의 실험에서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실제로 LHC(Large Hadron Collider)에서 관련 실험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력파가 지나가고 나면 공간상 두 지점의 상대적 위치가 변하게 되는데 이것을 중력파 기억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도 양자 중력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찬: 말씀 정말 잘 들었습니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서 배영복 박사님의 연구 소개를 듣겠습니다.
블랙홀 쌍성
Fig. 2. Configuration of the conformal factor in numerical relativistic simulation of binary black hole.
배영복: 제가 주로 하는 연구는 중력파를 방출하는 블랙홀 쌍성에 대한 것입니다. 블랙홀 쌍성은 우리가 관측하는 중력파의 주요한 파원이기 때문에 그 특성과 생성 과정, 발생 빈도 등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구성성단과 같이 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블랙홀 쌍성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별이 핵융합 에너지를 소진하면 중력에 의해 수축을 하듯이, 성단에서도 역시 중력에 의해 별들이 중심으로 모여드는데, 특히 블랙홀은 성단을 이루는 다른 별들보다 질량이 커서 더 빨리 성단의 중심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성단 중심부에서의 상호작용에 의해 블랙홀 쌍성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주로 삼체과정(three-body process,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질량들이 상호작용하여 그 중 두 개가 쌍성으로 묶이는 과정), 또는 중력파 방출을 통한 블랙홀 포획으로 쌍성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블랙홀 쌍성은 다른 블랙홀이나 별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단단하게 묶이고 속도가 증가하여 성단을 탈출하게 됩니다. 성단에서 블랙홀 쌍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렇게 형성된 블랙홀 쌍성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저의 주요 연구 주제입니다. 보통 수치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n체(n-body) 시뮬레이션이나 수치상대론적인 시뮬레이션을 사용하여 블랙홀 쌍성이 만들어지는 과정, 상대적 거리, 이심률, 성단에서의 탈출 속도, 발생 빈도, 중력파로 방출되는 에너지의 양, 블랙홀 포획이 일어나기 위한 단면적(cross section), 중력파형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박찬: 우주에 분포하고 있는 블랙홀 쌍성은 주로 구상성단에서 만들어진 것인가요?
배영복: 블랙홀 쌍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은 크게 2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은하 내의 일반적인 환경입니다. 태양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보통은 꽤 많은 경우 별들이 쌍성으로 묶여 있습니다. 쌍성을 구성하는 각각의 별들이 진화를 통해 블랙홀이 되어 블랙홀 쌍성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별이 블랙홀로 진화하기 전 겪는 폭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쌍성이 깨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의 경우에는 끝까지 묶여 있어 블랙홀 쌍성이 됩니다. 두 번째는, 방금 전 소개드린 바와 같이 구상성단과 같은 별들이 밀집되어 있는 집단에서 블랙홀 간의 역학적인 상호작용으로 쌍성이 만들어지는 경우이고 이것이 제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박찬: 관측된 중력파가 블랙홀 쌍성으로부터 온 것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배영복: 그래서 블랙홀 쌍성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중력파의 파형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포스트 뉴토니안 (post-Newtonian)이나 EOB(effective-one-body)와 같은 근사 이론이나 수치상대론적인 시뮬레이션으로 얻습니다. 중력파의 파형은 쌍성의 질량 비율, 스핀, 이심률 등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다양한 파라미터들에 대한 중력파 파형들을 사전에 계산해 놓은 것을 중력파 템플릿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중력파 관측에서 사용하는 템플릿은 주로 블랙홀 2개가 병합 직전에 거의 원궤도를 갖는 경우에 대한 파형입니다. 블랙홀 쌍성의 궤도가 초기에 이심률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중력파 방출을 통해 원궤도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것은 포물선이나 쌍곡선의 궤도를 가진 블랙홀 쌍성이 궤도가 충분히 원형화되기 전에 스쳐 지나가거나 병합하면서 중력파를 방출하는 경우입니다. 블랙홀 포획을 통한 형성 과정 중 일부에서 이런 궤도를 예상할 수 있고, 이 경우 생성되는 중력파형은 나선궤도-병합-잦아듦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준원형 궤도에서의 파형과는 달리, 나선궤도 단계 없이 바로 병합-잦아듦으로 이어지거나 단시간에 펄스같이 방출되는 형태도 가능합니다.
박찬: 이에 대한 중력파 템플릿을 만들면 LIGO에서 실제 관측을 할 수 있겠네요?
배영복: 발생빈도에 달렸지만 원칙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실제 LIGO의 burst 신호분석 팀에서도 이것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기계학습을 통해 분류 방법을 연구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분발하면 한국 그룹이 이 분야를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미옥: 천문학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아는데 물리학과랑 학부 커리큘럼이 많이 다른가요?
배영복: 학부 커리큘럼은 많이 다르긴 한데 천문학과 학생 대부분이 물리학과 커리큘럼을 같이 듣습니다. 고전역학, 전자기학, 통계역학, 양자역학 같은 수업을 주로 듣습니다. 저도 수업을 듣다 보니 아까워서 물리학과를 복수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박찬: 배영복 박사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홍성욱 박사님께 연구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주론
Fig. 3. Four ways of studying cosmology. From top-left to clockwise direction: observational survey, statistical analysis, instrumentation, and numerical simulation. Cartoon drawn by Sungwook E. Hong.
홍성욱: 저는 우주의 구조와 물리의 기본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 우주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주론을 연구하는 사람들끼리도 우주론에 대한 정의가 굉장히 다릅니다. 굳이 나누자면 초기 우주론과 후기 우주론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기 우주론은 중력이론과 입자 장론을 사용하여 입자의 생성을 다루는데, 우주의 첫 번째 빛인 우주배경 복사는 관심 있는 시기보다 상당히 뒤에 벌어진 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주의 시간을 가늠하는 척도로서 주로 에너지 규모를 사용합니다. 우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에너지 규모가 작아지고, 이에 따라 적용되는 물리학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로 후기의 우주를 다룹니다. 제 입장에서 우주배경복사는 굉장히 일찍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시간을 말할 때도 주로 적색이동을 이용하여 말합니다. 우주 팽창에 의해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후퇴 속도가 커서 도플러 효과에 의한 적색이동이 커지는데, 멀리 있는 천체는 과거의 천체이기도 하므로 적색이동을 시간에 대한 척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초기 우주의 밀도는 양자 요동에 의해 대략 가우시안 분포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후기 우주에서는 팽창 및 중력에 의해 물질들이 거대한 그물 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를 분석하여 우주론 모형을 검증하고 이해하는 것이 제가 하는 우주론입니다.
박찬: 현재 우주론의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가요?
홍성욱: 최근 우주론에서 흥미를 끄는 문제는 크게 2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암흑에너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물질은 우주의 전체 에너지에서 약 5%밖에 안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질과 특성이 비슷하지만, 빛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직접 볼 수 없는 암흑물질이 대략 27%이고, 음의 압력을 가질 것으로 생각되는 암흑에너지가 68%입니다. 암흑에너지가 중요한 이유는, 현재 우주가 암흑에너지 때문에 가속 팽창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흑에너지가 어떠한 성질을 가지냐에 따라 미래의 우주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는데, 팽창이 제한된 시간에 무한대가 되면서 우주가 찢어지는 모형, 아인슈타인의 실수로부터 시작됐다고 하는 우주상수 모형, 우주상수 모형보다는 가속이 느리지만 끝없이 가속팽창하는 모형 등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관측에 의하면 암흑에너지는 우주상수 모형에 가깝긴 한데, 관측의 오차를 고려하면 아직은 3가지 가능성이 다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상수 모형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있는데, 우주상수의 관측값이 입자물리에서 예측하는 기대값에 비해 10‒120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초기우주는 양자적 상태이기 때문에 수많은 방식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우주가 되었냐는 미세 조정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 중 하나로 인류원리라는 것이 있는데, 수많은 가능성의 우주들에서 과학적 관측이 이루어지려면 지적존재가 출현해야 하고, 우리는 그 중, 극히 작은 확률이지만,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하나의 우주에 태어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흥미로운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상수가 아닌 다른 암흑에너지 모형을 제시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허블상수 문제입니다. 허블상수는 은하의 후퇴 속도를 거리로 나눈 값으로서, 현대 우주론 모형에 의하면 이것은 우주의 팽창률을 뜻합니다. 제가 학생이던 2000‒2010년대만 해도, 거리 사다리를 이용해 은하의 후퇴 속도를 직접 측정한 허블상수와, 현대 우주론을 가정하고 우주배경 복사 관측을 통해 측정한 우주의 팽창률이 서로 잘 들어맞았습니다. 즉, 현대 우주론이 정합적으로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거리 사다리 관측과 우주배경 복사 관측이 더 정밀해짐에 따라 각 관측에서 제시하는 오차가 확 줄어들고 각각의 값이 72 km/s/Mpc 및 67 km/s/Mpc 정도가 되었는데, 이 차이가 무려 5 sigma나 됩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특히 학계의 원로분들)은 ‘이것이 여전히 관측의 문제이며, 각 관측을 더 많이 하면 둘의 값이 다시 하나의 값으로 합쳐질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의 관측이 틀렸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론가들은 두 관측이 모두 맞다고 가정하고,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되는 좀 더 특수한 우주론 모형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가 우주론에 있어 앞으로 가장 중요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박찬: 국내의 우주론 연구 현황은 어떤가요?
홍성욱: 우주론과 관련된 연구들을 카테고리로 나누면 탐사관측, 통계분석, 시뮬레이션, 기기개발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커뮤니티는 시뮬레이션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가장 큰 우주론 시뮬레이션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중력 효과만 고려한 n체 시뮬레이션들을 해왔는데, 점점 우주 관측이 정밀해짐에 따라 실제 은하의 유체역학이 고려되지 않으면 분석하기 어려운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한국에서는 수십 억 광년 크기의 박스에 은하 하나가 보일 정도의 해상도를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인 Horizon Run 5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DESI(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 등 예정된 향후 우주 관측에 비교해보면 여전히 부피가 작다는 문제가 있고, 이것이 현재의 중요한 도전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는 기계학습을 이용해 n체 시뮬레이션과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합쳐 원하는 스케일과 해상도를 얻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탐사관측에서도 한국이 계속 참여해왔던 SDSS(Sloan Digital Sky Survey)를 비롯해 DESI, 베라 루빈 천문대, SPHEREx(Spectro-Photometer for the History of the Universe, Epoch of Reionization, and Ices Explorer), SKA(Square Kilometre Array) 등 다양한 차세대 관측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외국에서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한국이 공동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국이 관측기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존재합니다만, 과학연구와 공조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아직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주도하는 다천체분광기 개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우주를 완전하게 관측하기 위해 올해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망원경 끝에 달리는 여러 개의 로봇이 각각 움직여서 천구 상에 있는 은하나 별의 위치를 잡고, 로봇에 부착되어 있는 광섬유가 빛을 받아서 분광기에서 천체의 스펙트럼을 관측하게 됩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의 기기 개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박찬: 국내 자체 기술로 진행하는 기기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을 했다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홍성욱 박사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연구를 하는데 어려움
박찬: 연구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천체물리학자들은 실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배영복: 저는 연구를 하면서 수치 시뮬레이션을 많이 하는데 이미 개발되어 공개된 코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용하는 입장에선 이것이 약간 블랙박스같이 느껴집니다. 보통은 연구 목적에 맞게 코드를 변경해야 하는데, 제가 개발한 코드가 아니다보니 수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코드를 직접 개발한 분이 옆에서 한번 설명해주시면 조금 빠를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분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요.
특히, 제가 사용하는 수치상대론 코드는 과학자부터 컴퓨터 기술자까지 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수십 년간 누적되어 만들어진 코드입니다. 이런 코드를 전부 이해하거나, 직접 개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의 수치 시뮬레이션 연구자들 역시 대부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뉴턴의 말처럼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 위치가 조금 안정이 된다면 시간을 들여 직접 자신만의 코드를 개발해보고 싶습니다.
박찬: ‘거인’을 혼자서 만들 수는 없겠지요. 한 인간이 일생을 통틀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텐데, 연구자들은 이것을 초월하기를 요구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홍성욱: 저의 경우도 우주론 연구를 해오면서 방금 전 소개드린 세부 분야(탐사관측, 통계분석, 시뮬레이션, 기기개발)의 여러 부분을 거쳐 왔습니다. 장점은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것이고, 단점으로는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기개발을 할 때는 제가 학위를 받은 분야와 너무 달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주변에 기기개발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습니다. 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렵고, 어려우니 하는 사람이 없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 그것을 한 덕분에 일자리 창출이 계속 이어져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박찬: 요즘 IT 분야에서 back-end부터 front-end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다하는 개발자라는 의미로 full stacker라는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 full stacking을 하셨네요.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계속 천체물리를 하고 계신 분들인데 그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내가 천체물리학을 하는 이유
박미옥: 사실 제 연구 분야가 천체 물리학이라고 말씀 드리기에는 살짝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요, 실험 또는 관측과 연관된 연구를 한 적은 없어서요. 아직은 고에너지 순수이론 물리학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더 적절할거 같은데, 나중에는 실제 관측과 관련된 연구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박찬 박사님이나 배영복 박사님, 그 분야의 분들을 귀찮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연구를 하는 이유는 시공간의 근본 성질은 제 오랜 궁금증이었고, 이런 연구가 제 성향과도 잘 맞는 것 같고, 재미도 있고요. 제가 작년에 캐나다 모교에 4개월 동안 방문연구를 갔었는데, 중간에 코비드-19 확산으로 연구소까지 전부 셧다운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숙소에서 연구를 계속 했는데, 이걸 들은 다른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냐고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 제 연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또한 일과가 자율적일 수 있는 점, 연구를 하면서 국내외 연구자들을 방문하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고요. 계속 이 분야를 공부하면서 천체물리학자로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박찬: 이론물리학자 혹은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박사님의 말씀이 소중할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조언을 좀 부탁드립니다.
박미옥: 실제로 가끔 학생들이 이메일을 보내거나 직접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론물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 ‘너 그거 해서 밥 벌어 먹기도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대학원생은 지도교수님이 ‘너 그거해서 연구소에 가도 월급 적고 직업도 찾기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하신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들에 대한 사실 유무를 실제 연구자들에게서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저는 이 분야의 상황을 사실대로 설명을 해주고 있고요. 요즘 학생들은 정보가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이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본인의 열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학자로 자리를 잡고, 그 과정이 다른 분야보다는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러나 자연스럽게 분야에 관심이 간다면, 해보고 싶은 것을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요즘에는 나중에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도 다른 분야로 갈 수 있는 많은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학생 때는 원하는 바를 맘껏 추구해보시길 바랍니다.
박찬: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배영복 박사님은 어떠신가요? 천체물리학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배영복: 저는 어려서부터 꿈이 천문학자였습니다. 이모 집에 놀러 가면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과학책이 많았는데 천문학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읽다가 이때부터 천문학자를 꿈꾸게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 친구가 ‘그거 해서 뭐 먹고 살래’라는 이야기를 해도 ‘뭐라도 먹고 살겠지’ 하는 생각으로 천문학과 진학을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고민이 많아졌는데, 많은 동기나 후배들이 취직을 하거나 다른 길을 찾아 가고 학교에 남은 동기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만 학계에 남아 세상 물정 모르고 고여 있는 것인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들을 했습니다. 저는 학위 과정 중에 결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도, 공부를 몇 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혼이 가능할지, 가정을 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천체물리학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냥 재미가 있어서입니다. 꿈이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고. 재미라는 것을 빼곤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연구라는 것이 반복되는 일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것을 해보는 일이잖아요. 그게 또 재미가 있습니다. 결국 재미입니다. 제 아내가 들으면 제가 무책임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네요.(^^) 한번 사는데 원하는 것을 해야죠.
박찬: 저에게도 힘이 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분들은 질문 없으신가요? 그러면 홍성욱 박사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홍성욱: 서로 질문이 없는 이유가 아마 다들 생각이 비슷해서인 듯 싶습니다. 결국 천체물리학을 하는 이유는 재미겠죠. 주변 사람들을 보면, 삶이 어떤 궤적을 거치더라도, 그 재미 때문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박찬: 은하 중심부를 돌고 있는 별들 같은 존재네요. 김영민 박사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영민: 저도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 특히 물리를 좋아했습니다. 물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막연한 우주에 대한 호기심들과 아인슈타인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리학과에 진학을 했는데, 막상 물리학과에 와보면 굉장히 기초적인 4대역학(고전, 전자기, 통계, 양자)을 배우게 되잖아요. 보통은 각각의 세부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기초 과목을 종합적으로 공부하고 응용할 수 있는 천체물리학에 더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천체물리가 워낙 방대하고 어렵다 보니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고, 하나하나 발견되는 사실들도 많고, 그래서 지금도 재미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고들 하잖아요. 그러나 보통은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고 공부와 일을 접목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분야는 노후까지 그런 것이 가능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당장의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겠죠.
박찬: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멋집니다. 천체물리학을 하시는 이유들에 대해서 충분히 들어본 것 같습니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현실적 문제
박찬: 젊은 연구자들은 연구에 대한 어려움 외에도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정규 연구원들의 저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민: 실제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실제 포닥 연구비 수준을 듣고 이 분야에 오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석사까지만 하다가 연구를 포기하고 취직을 하는 경우도 많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홍성욱: 포닥 인력 창출이 많이 되면 좋을 텐데, 정작 연구소 등에서는 이미 포닥을 너무 많이 고용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포닥 임금을 올리면 이미 소속을 가진 포닥들에게는 좋겠지만, 전체적인 고용 숫자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배영복: 제 의견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닥의 임금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 연구소에서 첫 번째 포닥을 했었는데, 그 당시는 포닥 임금이 오르기 전으로, 현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 둘을 키우면서 생활하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포닥 임금이 너무 올라도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 인간다운 삶을 꾸려나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성욱: 연구소뿐 아니라, 대학도 포닥 임금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시니어 연구자분들은 전 세계 어디든 포닥 임금은 비슷한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위험한 논리일 수는 있지만, 연구 현장이 국내로 한정된 것이 아니니 염두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영민: 그래서 요즘은 많은 분들이 한국연구재단(NRF) 연구 과제를 많이 신청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분야든 노력을 통해 성과를 이루어 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과제를 따오는 등 현실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배영복: 예전에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한다는 명목 하에 이공계 학부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는 현업에 있는 연구자들의 인건비를 올리거나 정규직 자리를 늘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연구가 재밌어서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 높은 임금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살아가는데 충분하고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재미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천체물리에 흥미를 갖고,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지금은 당장 힘들더라도 선배 연구자들의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원하는 연구들을 하는 모습을 본다면 이러한 기피 현상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입니다.
홍성욱: 정부 관료들은 천체물리와 같은 보호 학문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식 증진에 관심이 있는 천체물리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을 같은 논리로 다루려고 하고, 여기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정규직 규모를 늘리는 것도, 경쟁을 해야 퀄리티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숫자를 늘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운 좋게 그 길을 통과했지만, 뒤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똑같은 길을 겪어야만 할까요?
박찬: 다소 어두운 이야기였지만 열띤 토론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천체물리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김영민 박사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천체물리학의 미래
김영민: 향후 건설이 예정된 중력파 검출기로서 차세대 초대형 간섭계인 아인슈타인 망원경, Cosmic Explorer 및 우주로 발사되는 LISA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기들은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많은 중력파 신호 관측을 하며 중력과 천체 물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 깊게 해줄 것입니다. 광학 관측에 있어서도 베라 루빈 천문대 같은 새로운 장비들이 건설되어 무수히 많은 관측 결과들을 쏟아낼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언제든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천체물리를 연구하는 것은 계속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홍성욱: 전 세계적으로 과학 연구의 규모가 거대해짐에 따라 커다란 프로젝트로 자원과 인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이전에는 여러 가지 한계에 가로막혀 있어 연구가 쉽지 않던 주제들을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돌파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먼저, 거대 프로젝트 중에는 논문 저자가 수백‒수천 명 단위가 되도록 요구하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 경우, 저자 중 누가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서 연구 그룹의 리더 한두 명은 빛나겠지만, 일반 저자들은 이 성과만으로 학계 전반에서 주목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특정 프로젝트에 소속이 되면 하는 일의 범위가 한정되어 개인이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축소됩니다. 이것이 학문의 다양성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대형 프로젝트를 주체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다른 나라의 장비를 활용하여 연구하는 것에 주로 관심이 있고,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할 기기 제작이나 컴퓨터 기술 개발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실현 수단들을 앞으로도 가지지 못한다면, 엄청난 이론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김영민: 홍성욱 박사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국내 연구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고 많은 현실적 문제들에 봉착해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새롭거나 기간이 오래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들은 연구비 심사에서 선정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단기간에 완성 가능하고 안전한 프로젝트만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선 정부의 대범한 투자가 필요한데, 지금 상황에서는 잘 주고 있는 현재 연구비라도 안 자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구자들 자체의 노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프로젝트 기획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고, 지금부터 작은 연구들을 수행해 나가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 연구자들이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소규모 프로젝트들과 협업들을 주도해나가야 합니다.
박미옥: 저도 김영민 박사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연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리를 잡고, 좋은 연구 결과를 만들어서, 이론 물리를 연구해도 미래가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와 더불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대중의 지적 호기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대중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면, 결국 그 결과가 우리에게 돌아오며 선순환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홍성욱: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미래에는 대학원의 교육 방식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현재 대학원 교육은 학생의 연구 능력을 키워 각박한 연구 현장에서 생존이 가능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치열한 교육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학계를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분야로 진출하여 사회의 주역이 되었을 때, 천체물리학에 대한 좋은 인상을 만들어낼지 의문입니다. 모두가 정규직 연구자가 되기는 힘든 현실에서, 대학원 교육이 사회의 저변을 넓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찬: 말씀들을 들어보니 여기 계신 분들이 천체물리학의 미래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들을 정말 많이 해주셨는데, 글로 잘 옮겨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겠습니다.
배영복: 원고료 받으시면 한턱 쏘셔야죠~
Fig. 4. Group photo of panels. From the upper left, Young-Min Kim, Chan Park, Miok Park, Sungwook E Hong, and Yeong-Bok Bae.
박찬: 예. 원고료가 나오면 한 번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오늘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단체 촬영을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김치~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