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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과학기술과 외교의 시대

작성자 : 김승환 ㅣ 등록일 : 2021-07-12 ㅣ 조회수 : 1,937

캡션 김 승 환
한국물리학회 제26대 회장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21세기 격동의 시대에 인류 지식의 경계를 어떻게 더 확장해 나갈 것인가? 세계의 국가들이 어떻게 바이러스와 함께 싸우고 공중보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핵기술의 위험과 혜택을 어떻게 균형 있게 지속하는가? 국가 주권 밖 공간을 어떻게 집단적으로 관할할 것인가? 지구 전반에 긴장이 조성되는 안보의 새 시대를 헤치고 어떻게 번영을 지속해 나갈 것인가?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와 담대한 도전에 대응해 올바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 때론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하지만 – 과학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예컨대 과학기술은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는 팬데믹, 기후변화, 지진 등 다중 위기와 재난뿐 아니라 물 부족, 음식 안전, 환경 오염, 에너지원 등 주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미국과학기술진흥협회(AAAS)에 의하면 “오늘날 세상에서 어떤 나라도 과학기술 없이 혼자 존립하거나 번영할 수 없다.”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언택트(untact) 시대가 순식간에 우리 곁으로 다가와 개인 삶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및 산업 구조 등 전반에 걸친 거시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최근 격화되는 세계적 첨단기술 경쟁은 경제, 외교, 그리고 안보 등으로 전선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여파로 세계 각국이 신기술 투자의 선점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가속화, 그리고 가치기반 동맹/파트너쉽 강화 등 기존 국제 질서도 크게 바뀌고 있다. 글로벌 변혁의 시대에 국가 전반의 과학기술혁신 역량과 신뢰있는 대응 전략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은 오랫동안 글로벌 무대에서 높은 이동성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또한 과학기술자 특유의 근거에 기초한 설득력 있는 파워와 세계 시민으로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네트워크 협업과 연대를 만들어내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의 강점은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가진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고, 다양한 체제, 인종, 국가를 넘어 어느 정도 중립적인 환경 속에서 상호 교류, 신뢰를 축적하는 최고의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과학기술은 글로벌 협업과 외교가 자연스럽게 수행되는 안전지대로 부각되어 왔으며, 더 나아가 과학기술이 공공외교의 전략, 도구, 전술과 결합하는 과학기술외교(science diplomacy)가 글로벌 무대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과학기술과 외교는 인류 역사 속에서 함께 해왔다. 과학기술 발전은 오랫동안 인적, 물적, 아이디어의 국제 교류에 의존해왔고, 사람, 도시국가, 그리고 국가 간 관계도 항상 어느 정도 과학기술에 연계되어 왔다. 근대 이후 영국왕립학회의 국제 활동, 냉전시기의 아폴로-소유즈 우주협력과 남극조약의 체결, 유엔 기후변화 협약, 그리고 물리학 관련 거대 국제협력 프로젝트-국제이론물리연구센터(ICTP),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국제핵융합로(ITER) - 등 인류 역사 속에서 과학기술이 외교와 평화구축의 도구로도 활용된 사례는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글로벌 다중 위기를 넘어 지속적 성장을 담보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들은 인공지능(AI), 5G/6G, 반도체, 배터리, 백신, 바이오, 양자, 우주, 사이버 등 신기술 핵심 분야를 선점, 선도하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각국은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 생산거점 확보 및 공급망 다변화 등 민첩한 대응 전략 수립과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 다양한 파트너쉽/동맹 등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기술은 글로벌 혁신과 변혁의 원천이 되기도 하며, 또한 대중의 마음을 얻고 신뢰를 축적해나가는 소프트파워로도 작동할 수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기술패권 경쟁, 그리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가속화되는 과학기술혁신의 영향권은 경제를 넘어 공공 및 외교, 안보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있다. 글로벌 변혁과 국제관계의 대전환 속에 오늘날 외교는 더 이상 국가에 의해 독점되지 않고, 과학기술계뿐 아니라 시민학술단체, 대학, 연구소, 기업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민간외교에 동참하고 있다. 이제 과학기술자들도 국제협력과 교류의 익숙한 <외교 속 과학기술>, 더 나아가 <과학기술을 위한 외교> 협업 활동 영역을 넘어 <외교를 위한 과학기술>로 더욱 확장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의 민간 외교자산을 최대한 활용해야 글로벌 다중위기의 빠른 극복을 넘어 진정한 선진국이자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의 자리매김을 도모할 수 있다.

한국물리학회를 포함한 더 많은 과학기술단체들과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이 지구촌 전체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올바른 미래를 열기 위한 과학기술외교의 여정에 적극 동참하길 기대한다.

(swan@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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