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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뉴턴의 사과나무와 표준

작성자 : 박현민 ㅣ 등록일 : 2021-06-02 ㅣ 조회수 : 31

캡션 박 현 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1975년 설립된 국가측정표준 대표기관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는 유일하게 헌법에 임무가 명시된 기관으로, △측정표준의 국제협력을 통한 국제동등성 확보 및 선도적 측정기술 개발 △경제성장, 산업화 수요와 함께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측정표준·과학기술 개발 강화 △4차 산업 고도화 대응 및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미래 유망 측정 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는 국가표준과 관련된 많은 국가표준기 이외에도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다. 16‒17세기 과학혁명을 촉발시킨 뉴턴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류인력 법칙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과학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과나무를 통해 뉴턴과 간접적으로나마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뉴턴의 생가에서 1820년께 마지막으로 쓰러질 때까지 버팀목으로 보호되었던 사과나무는 죽기 전에 접목되어 이스트 몰링 연구소로 보내졌다. 1943년에는 이스트 몰링연구소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 역사편찬 위원회에 보내졌고, 이후 1957년, 미국립표준기술연구소(NBS, 現 NIST)로 옮겨졌다. 1977년에 한국표준연구소(現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산파 역할을 했던 NBS에서 한미과학기술협력의 상징으로 뉴턴의 사과나무 묘목 세 그루를 한국표준연구소에 기증하였으며, 이것이 뉴턴의 사과나무와 표준과학연구원 간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이 뉴턴의 사과나무를 통해 현대 과학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사과나무를 매개로 측정표준이라는 화두를 통해 꾸준히 과학과 기술, 대중과의 소통을 수행하여 왔다.

지난 2019년 5월 20일을 기준으로 SI 기본단위 7분야(시간, 길이, 질량, 전류, 온도, 물질의 양, 광도) 가운데 4분야의 정의가 바뀌어 새로운 국제단위계가 정의되었다. 이제 7개 기본단위 모두 변하지 않는 물리상수(ΔνCs, c, h, e, k, NA, Kcd)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중 질량 단위의 재정의가 가장 핵심이었는데, 프랑스 BIPM(국제도량형국)에 보관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인공물인 국제킬로그램원기 대신 플랑크상수(h)로 정의를 대체한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은 50 마이크로그램 정도 변한 것으로 측정되었다. 이는 머리카락 한 가닥 정도의 작은 질량에 불과하지만, 국제 질량 표준의 기준이 변했다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번 단위 재정의를 통해 플랑크상수로 킬로그램이 정의되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불변의 정의를 갖게 된 것이다. 다만 키블저울을 이용하여 질량 표준을 현시해야 하는데, 현재 키블저울의 측정불확도는 기존의 원기보다 커서 세계 국가측정표준기관들은 키블저울의 불확도를 줄이기 위해 앞다투어 노력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2012년부터 키블저울 연구를 시작한 이래 작년에 1.2\(\small\times\)10‒7 수준의 불확도를 가진 키블저울 1호기를 완성하고, BIPM, 캐나다, 미국, 중국 등과 국제비교에 참가에 성공했다. 아직 10‒8 측정불확도 수준을 가진 선발주자 연구기관보다는 약간 못 미치지만, 올해부터 1\(\small\times\)10‒8 측정불확도를 목표로 새롭게 키블저울 2호기 제작에 들어갔다. 선진국보다 30년 이상 늦게 시작한 연구지만 최단기간 내에 키블저울을 개발하고 국제비교에 참가하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6년 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측정불확도를 가진 키블저울 보유국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표준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양은 보편성과 불변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이러한 보편성과 불변성을 갖추지 못했던 분야가 질량이었다. 즉, 임시방편으로 150여 년 동안 Pt-Ir 합금으로 만든 표준원기를 사용해 왔다. 이번에 질량이 플랑크상수로 정의됨으로써 시간에 따라 변했던 상대적 기준에서 불변 상수로의 절대적 기준으로 바뀌게 되어 측정표준의 기본 속성을 만족하게 되었다. 이는 지난 150여 년 동안 우리가 노력해왔던 절대측정의 꿈에 도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과거에 비해 SI 기본단위 정의가 어려운 과학적 지식으로 환원되어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워진 점은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또 하나의 숙제이다.

덧붙여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지금까지 제조업 중심의 3차 산업혁명 사회에 최적화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분야의 측정 기준을 제공하기 위하여 국가측정표준을 유지하고 보급하는데 집중하였다면, 앞으로 데이터 기반의 4차 혁명시대에서는 국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측정 데이터의 표준을 확립하고 소급성을 제공하여 국가의 데이터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hmpark@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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