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창
비대면 시대와 미래의 교육
작성자 : 국형태 ㅣ 등록일 : 2021-05-11 ㅣ 조회수 : 1,794
국 형 태
가천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웹진 HORIZON 편집위원
최근 필자의 대학에서는 창의적인 학습을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창의 NTree 캠프’라는 이름의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인지라 지난 학기에는 온라인 상에서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아두이노를 활용한 임의의 장치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학생들은 7~8명 정도로 팀을 만들어서 과제를 수행했다. 팀별로 할당된 지도교수는 수업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므로 실상 그 역할은 별 것이 없다. 온라인 대화방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는 정도였다. 사실 아두이노와 관련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만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개입할 여지도 없어 보였다. 다만, 목표도 막연하고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사뭇 놀라웠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구체적인 목표를 이끌어내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았으며, 결국 며칠 만에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물의 완성도를 굳이 평가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진행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여줬던 창의적인 의견 제시와 열의는 평소 수업에서 보기 어려웠던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참여 학생들은 문제를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이 수업을 즐기는 듯 보였다.
한 발치 떨어져서 구경한 이 수업을 자연스럽게 기존 방식으로 해왔던 다른 수업들과 비교하게 된다. 통상적인 수업에서는 한 명의 강사가 강단을 맡아 다수의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강의를 한다. 질문과 토론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수업 시작부터 이미 수동적으로 듣는 것에만 안주해버린 학생들은 도통 나서려고 하질 않는다. 이런 수업에서 강사는 이미 잘 다듬어진 지식을 그것을 이해하는 자신의 주관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뿐이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지식을 습득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다행스럽지만, 강단의 연기가 흥미를 끌지 못하면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다반사이다. 위에서 언급한 팀과제수행 수업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동기만 부여된다면 학생들은 필요한 지식들을 얼마든지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지식이 학습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학습은 교실에서 강사가 대면으로 강의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2020학년도는 각급 학교들에서 학기 대부분을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하면서 많은 혼란을 겪어야만 했던 느닷없이 다가온 해였다. 비대면의 요구는 올해에도 사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여전히 그 끝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학교만 하더라도 비대면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터넷 강의나 화상회의가 도입된 것은 오래전 일이고 자료 검색도 유튜브로 하는 시대에 와있다. 디지털 시대와 인터넷 시대에 접어든 것이 이미 오래 되었고, 비대면 시대는 필연적인 귀결점이었다. 코로나19는 다만 선택의 여지가 없이 누구라도 비대면 시대로 밀어 넣었을 뿐이다. 어쨌든 학교에서 비대면 시대는 이미 시작된 듯하다. 혼란은 있었지만 지난 해의 경험은 비대면 수업으로도 기존 수업의 목표가 상당수준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물론 실험이나 실습의 경우에는 아직 상당한 제약이 있다.
비대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개입하지 않고 그저 학생들의 학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미래학자는 교실이 없는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기도 하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사라질 직업으로 교사가 꼽히기도 한다. 과연 교사는 사라질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이 완전한 존재로 태어나고, 사회에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새로운 의문이 더 이상 남지 않은 세상이 오지 않는 한 교육은 늘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학교와 교사도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외형과 역할은 심오하게 달라질 듯하다. 특히 교사의 역할은 변혁이 불가피해 보인다. 프렌스키(Marc Prensky)는 디지털 원어민(digital nativ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여 이 시대를 특징짓는 새로운 세대를 정의하기도 했다. 그 개념을 빌려 과장되게 말하자면, 기존의 교육은 국어를 모르는 외국인(digital immigrant)이 한국인 학생(digital native)에게 국어를 가르치려는 격이다. 우스꽝스러운 교육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원어민인 학생은 이주민 교사가 평가하기 어려운 잠재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교사는 지식을 옮기는 전달자에서, 학생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돕는 학습의 조력자, 혹은 상담자로 그 역할의 중심을 옮겨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