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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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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창

과학경제학, 과학정치학

작성자 : 조율래 ㅣ 등록일 : 2021-04-05 ㅣ 조회수 : 1,145

캡션 조 율 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권두 칼럼난의 이름이 ‘과학의 창(Window of Science)’이다. 창은 쌍방향이다. 과학자의 시각이 있는가 하면 과학계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도 있다. 외부의 시각을 규정하는 기본 프레임은 과학경제학과 과학정치학이다. 과학정책을 오랫동안 다루면서 연구 현장을 이해한다는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과학경제학(Economics of Science)은 연구비 투자의 효율성에 주목한다. 물론 재원 배분 과정의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개별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의 효율성이 주된 관심사이다. 90년대 미국에서는 게놈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생물정보학이 각광을 받으면서 1998년부터 5년간 국립보건원 예산이 두 배로 급격히 늘어난 적이 있다. 각 대학은 경쟁적으로 생의학 관련 연구소를 설치하고 해당 분야 교수 채용과 석박사과정을 급격히 늘렸는데, 이후 국립보건원 예산이 정체 내지 줄어들면서 박사후연구원 고용시장의 위축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이를 계기로 게놈프로젝트 외에 세른의 강입자가속기 등 대형 설비와 기자재 투자를 둘러싸고 미국 내 과학경제학 논의가 본격화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과학경제학이라는 용어가 낯설지만, 일정 규모 이상 대형 신규연구프로그램이나 시설·장비구축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과학기술적+경제적)을 검토하고 있다. 지나친 효율성 강조는 기초과학연구의 본질 -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 에 반할 수 있지만, 개별 연구에서 집단연구로, 대형연구로 연구 형태가 바뀌고 연구비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왜 하는지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따라 올 수밖에 없다.

이를 바라보는 과학계의 시선은 세대별, 분야별, 현재 처한 상황별로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재원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적 기대와 효용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합리적 설득의 상당 부분은 과학계의 몫이기도 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효율성을 언급하는 것은 과학연구의 본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고, 오히려 규제로 인한 비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최근 생의학, 나노과학 분야에서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연구성과가 곧바로 산업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이오, 나노, 로봇, 디지털 혁신, AI 분야는 전통적인 학술지 발표가 아닌 연구 투자제안서, 세미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민간투자는 물론 정부 제도의 변화, 예산 투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소위 기대의 과학, 약속의 과학(Promissory Science)이 과학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혁신적 연구성과가 학술지에 발표되는 순간, 연구실 밖에서는 스타트업 창업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기대와 비전에 기반을 둔 약속의 과학 투자에 맛을 들인 자본이 줄을 서고 있다. 물리학도 ‘퀀텀’ 이름을 딴 스타트업 창업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QuantumScape는 리튬이온전지를 대체할 전고체전지 개발로 2020년 11월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물리학과 첨단기술’ 학회지의 이름 역시 물리학이 온전히 자연현상의 궁극적 진리를 추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문명 발전을 위한 기술적 효용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경제학이 효율성에 주목한다면 과학정치학(Politics of Sci- ence)은 정부재원의 배분에 관심이 있다. 국가의 성장이 정체될수록 정부재원은 한정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치의 영역은 막강해진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재원 배분권력의 중심이 정부관료에서 정치권으로 넘어가면서 과학의 정치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정부시절 기초과학을 포함한 정부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늘어난다. 그런 가운데 상징적 프로그램으로 과학비지니스벨트가 기획되고 중이온가속기 건설이 포함된다. 대선과정에서 과학 관련 포럼에 참여했던 일부 물리학자들의 요구와 상징적인 과학연구를 정치적 수사로 활용하고자 했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다.

아쉽게도 한국에 왜 중이온 가속기가 있어야 하는지, 그만한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과학계 내의 치열한 논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의 비판적 목소리도 있었지만 정부연구비 규모가 커지면 다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에 묻혀버렸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양성자가속기를 둘러싼 지역간 유치경쟁에서도 과학의 정치적 측면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국립과학재단의 ‘과학혁신정책의 과학화’ 계획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성장이 둔화되고 고령화 등에 따른 사회복지비용의 증가로 미래투자 재원이 빠듯한 시대에, 국가연구개발사업에도 재원 배분과 투자의 효율성에 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과학의 창을 통해 외부의 다른 시각을 강조하다 보니 다소 지나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과학 특히 기초과학에 대해 투자를 하는 이유는 자연현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인간 본연의) 순수한 열정에 대한 지원과 경제와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성장지상주의의 중간쯤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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