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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이야기

클러크-맥스웰의 <전기자기론>은 어떻게 집필되었을까?

작성자 : 김재영 ㅣ 등록일 : 2021-11-24 ㅣ 조회수 : 1,176

저자약력

김재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물리학 기초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거쳐 현재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물리철학 및 물리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 『정보혁명』, 『양자, 정보, 생명』,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이 있고, 공역으로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에너지, 힘, 물질』 등이 있다. (zyghim@ksa.kaist.ac.kr)

1873년에 출판된 제임스 클러크-맥스웰(James Clerk-Maxwell, 1831‒1879)의 <전기자기론>(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은 물리학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저술로서, 뉴턴의 <프린키피아>에 버금가는 매우 중요한 고전이다. 이 책은 뉴턴의 역학을 전기, 자기, 빛과 관련된 현상으로까지 확장하여 명실공히 고전역학을 완성한 집대성인 동시에, 이후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포괄하는 현대 물리학의 출발점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면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고”가 된다. 대개 논고로 번역되는 Treatise는 라틴어 Tractatus에서 온 것으로서 특정한 주제를 체계적으로 깊이 다루면서 모든 면을 망라하는 저작을 가리킨다. 2021년에 출간된 한국어판에서는 이를 “전기자기론”으로 옮겼는데, 이는 동아시아에서 ‘경(經)’에 대한 해설을 상세하게 다룬 것을 ‘론(論)’으로 부르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그림 1. James Clerk-Maxwell (1831-1879).그림 1. James Clerk-Maxwell (1831-1879).

그런데 이 중요한 물리학의 고전은 어떻게 집필되었던 것일까? <전기자기론>이 출판된 것은 1873년이며, 아마 1867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론이므로, 이 세기적인 걸작은 7년에 걸쳐 집필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집필과정을 주로 맥스웰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하여 추적하고자 한다.

그림 2. Peter Guthrie Tait (1831-1901).그림 2. Peter Guthrie Tait (1831-1901).

특히 고향친구 피터 거쓰리 타이트(Peter Guthrie Tait, 1831‒1901)와의 편지가 핵심적인 사료이다. 동갑내기인 이 두 사람은 에딘버러 학교(Edinburgh Academy)를 함께 다녔다. 맥스웰이 타이트보다 한 학년 위의 학급에 다니게 되었지만, 에딘버러 대학에는 같은 학번이었다. 타이트가 1년만에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겼지만, 맥스웰도 나중에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가게 되면서, 비슷한 경력을 쌓아가게 된다. 맥스웰과 타이트는 서로 1등과 2등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대학에 취직할 때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독특한 우정을 과시했다.

그림 3.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 (1873) 표지.그림 3.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 (1873) 표지.

맥스웰은 타이트의 책에 나오는 방정식 dp/dt = J. C. M.을 원용하여 타이트에게 보내는 엽서에 늘 “dp/dt 보냄”이라고 썼다. 타이트는 윌리엄 톰슨 즉 켈빈 남작(William Thomson, Baron Kelvin, 1824‒1907)과 많은 것을 같이 했고, 맥스웰은 톰슨과 타이트를 곧잘 T&T'으로 지칭했다.

그림 4. 맥스웰이 타이트에게 보낸 엽서(1871). 맥스웰은 자신의 이름을 dp/dt로 적었다.그림 4. 맥스웰이 타이트에게 보낸 엽서(1871). 맥스웰은 자신의 이름을 dp/dt로 적었다.

톰슨과 타이트가 쓴 <자연철학론> (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새롭게 계승한 19세기 판 ‘프린키피아’였다. 바로 이 책에 운동에너지며 일이며 퍼텐셜 에너지며 기타 등등의 역학의 기본개념들이 다 논의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역학의 체계는 지금도 많은 역학 교과서에서 그 전반적인 틀이 유지될 정도로 고전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톰슨과 타이트는 6년 뒤에 출판된 맥스웰의 <전기자기론>을 <자연철학론>의 제2권으로 여길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림 5. 톰슨과 타이트의 <자연철학론>(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 표지그림 5. 톰슨과 타이트의 <자연철학론>(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 표지.

맥스웰이 타이트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늦어도 1867년에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저를 쓰려는 의도가 나타나 있다(1867년 11월 27일, 1867년 12월 6일). 맥스웰은 1868년 2월에 윌리엄 톰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부터 이 저작이 수학적인 문체로 서술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 편지에서는 특별히 그린의 정리나 구면조화함수 해석학과 같은 퍼텐셜 이론의 주요 개념이 언급되고 있다. <전기자기론>의 출판계획은 1867년에 출판된 톰슨과 타이트의 <자연철학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해 말에 수학의 퍼텐셜 이론을 정전기학에 응용하는 문제라든가, 구면조화함수라든가, 라플라스 연산자의 표현에 적합한 기호체계의 개발 등에 대한 맥스웰의 관심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어쩌면 이 시기에 이미 <전기자기론>의 저술을 시작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1868년에서 1871년 사이에 맥스웰이 톰슨 및 타이트(T&T′)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전기자기론>의 저술 과정을 차례로 추적해 볼 수 있다. 이 편지들에서 다루어진 주제를 보면 맥스웰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 톰슨과 타이트가 지니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특별한 식견과 학문적 관심을 크게 존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868년 무렵에 톰슨에게 보낸 편지는 정전기학과 자기학에 대한 논의로 가득 차 있는 반면, 타이트와 주고받은 편지(특히 1870년 11월 이후)는 특히 수학적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톰슨이 맥스웰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맥스웰과 타이트가 주고받은 편지는 훨씬 더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타이트에게 맥스웰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 지식과 비판적 통찰의 샘과도 같았다. 반면, 맥스웰은 타이트가 지니고 있는 구면조화함수와 사원수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구면조화함수와 사원수는 바로 맥스웰이 <전기자기론>에서 적용하려 애썼던 수학이론이었다.

맥스웰은 자신의 전자기장의 이론의 토대에 놓일 더 심오한 쟁점들에 대한 생각을 톰슨과 교환하곤 했다. 맥스웰의 마당이론은 유럽 대륙의 전기동역학에서 비롯한 이론들과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대륙의 전기동역학은 대체로 점전하의 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맥스웰의 마당이론에서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전하를 전자기장의 발현으로 본다는 점이었다. <전기자기론>의 맨 마지막 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내용은 1860년대에 걸쳐 상당한 개념적 발전과 명료화를 거쳐 나온 산물이다. 맥스웰의 전기 전하의 마당이론은 1869년 6월에 톰슨에게 보낸 편지에 이미 잘 서술되어 있는데 <전기자기론>에 서술된 것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전기 전하의 이론은 ‘전기체의 변위’(displacement of electricity)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는 결국 ‘전하’(electric charge)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 이론의 또 다른 바탕은 전기체와 비압축성 유체의 흐름 사이에 나타나는 유비와 기전력을 유전체(절연체)의 분극의 원인으로 보는 접근이다.

맥스웰은 1869년 10월 톰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칼 노이만의 “퍼텐셜의 전달”에 관한 이론이 지니는 난점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맥스웰이 자기 자신의 전자기장 이론과 독일의 물리학자들이 제안했던 다양한 원격작용 전기동역학들을 뚜렷하게 대조하여 말한 것은 타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다. 이 편지에는 이미 리만의 이론과 베버의 이론에 대한 헬름홀츠의 비판이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다. <전기자기론>에서는 전자기장의 이론이 빌헬름 베버에서 시작하여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에 이르는 연구 프로그램을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것은 곧 전자기력의 전파에 대해, 가우스가 말한 ‘일관된 표상(construirbare Vorstellung, consistent representation)’을 구성하는 일이었다. 전자기력은 “순간적인 작용이 아니라 빛의 경우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간에 따라 전달되는 작용”(<전기자기론> 861절)인 것이다.

맥스웰은 출판된 <전기자기론>의 4부 구성의 구조(제1부 총론, 제2부 전기운동학, 제3부 자기, 제4부 전자기)에 따라 차례로 집필을 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1868년 7월에 타이트와 톰슨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무렵에 구면조화함수를 연구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얻을 수 있다. 구면조화함수는 <전기자기론> 제1부에서 퍼텐셜 이론의 ‘정전기학’에 대한 응용을 다룰 때 기본이 되는 이론이었다. 1868년 9월과 10월에 톰슨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퍼텐셜 이론의 문제점들과 정전기 장치의 이론을 논의하고 있다. 1869년 5월 무렵에는 톰슨에게 논저의 첫 부분을 끝마쳐 간다고 얘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차하는 구면에 있는 전기체의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톰슨의 전기 이미지(이미지 전하)의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도 서술하고 있다. 전기화된 격자의 퍼텐셜에 대한 표현도 1869년 여름에 스토크스와 톰슨에게 보낸 편지에 논의되어 있으며, 1870년 5월에는 존 윌리엄 스트럿에게 평행한 전기판 사이의 퍼텐셜에 대한 논의를 설명하고 있다. 이 두 문제는 모두 정전기 장치의 이론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문제이다.

이 무렵 <전기자기학>의 제2부, 즉 ‘전기운동학’의 집필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868년 8월에 톰슨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기 도체에 관한 장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1년 뒤에는 이 부분이 거의 완성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1869년 10월 무렵에는 제3부, 즉 ‘자기’에 관한 부분을 쓰고 있다는 얘기가 언급되기 시작한다. 한 달쯤 뒤가 되면, 전자기의 이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급속한 진전은 1869년 12월에 타이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편지에서 맥스웰은 이제 “내 책의 4부 중 네 번째, 즉 전자기이론”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전기자기론>의 초고 중 보존되어있는 것은 이 무렵에 쓴 것으로 추정되며, 책의 목차를 위한 개요를 보여준다. 이 초고에는 제1부터 제3부까지의 각 장의 제목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으며, 제4부 ‘전자기’에 관한 도입부 성격의 장으로 끝난다.

맥스웰은 1870년 초에 <열의 이론>(Theory of Heat)을 집필하기 위해 <전기자기론>의 작업을 잠시 멈춘 적이 있다. 1870년 11월에 타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맥스웰은 <전기자기론>의 작업을 다시 시작했음을 알리면서 전자기이론의 해설에 사원수를 도입하려 한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후의 편지나 저작으로 판단하건대, <열의 이론>을 집필할 무렵에도 제4부의 주요 부분에 대한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기자기론>에 주된 특징은 논저 전체에 걸쳐 퍼져 있는 수리물리학적인 스타일이다. 이 스타일에서는 역학적 모형을 통한 직접적인 표상을 사용하는 대신에 물리량을 수학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강조된다. 당시까지의 물리학 분야의 논저에는 이런 스타일이 매우 드물었고 대부분 역학적 모형을 통한 직접적인 표상에 중점을 두었다. <전기자기론>에는 논문 “물리적인 힘의 선에 관하여”(On physical lines of force, 1861)에서 다루던 물리적 역학보다는 “전자기장의 동역학 이론”(A dynamical theory of the electromagnetic field, 1864)에서 다룬 라그랑주의 해석역학의 영향이 더 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그랑주의 <해석역학>(Mécanique analytique)의 대수적 형식을 그대로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라그랑주 해석학의 기호들에 대한 물리적 해석을 강조했다. <전기자기론>의 수학적 스타일에는 논문 “패러데이의 힘의 선에 관하여”(On Faraday’s lines of force, 1855)에 나오는 물리적 기하학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맥스웰은 이 논문에서 힘의 선에 관한 이론을 비압축성 유체의 흐름의 선과 기하학적으로 유비시킴으로써 새로운 이론의 토대를 잡으려 했다. <전기자기론>에 나타나는 해석학적 및 기하학적 스타일은 이전의 방법들을 확충하고 결집시켰으며, 네 가지 수학적 근본 개념 곧 사원수(즉 벡터의 개념), 적분 정리, 위상수학, 해석동역학의 라그랑주-해밀턴 방법을 통합했다.

위상수학 논변과 적분 정리는 전자기장을 기하학적 용어로 표현하는 데에 더 엄밀한 도구가 되어 주었다.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힘의 선에 관하여”에서 마당 방정식을 전기와 자기의 ‘양’(quantities)과 ‘세기’(intensities) 사이의 관계로 정식화했다. 여기에서 선적분을 면적분으로 변환하는 스토크스의 정리를 사용하고 있지만, 수학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전기자기론>에서는 이 개념들이 해석학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맥스웰은 1871년 1월에 스토크스에게 보낸 편지와 그 해 4월에 타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정리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묻고 있다.

맥스웰은 1867년 11월과 12월에 타이트에게 보낸 두 편지에서 매듭의 위상수학과 그 전자기적 유비를 논의했다. 이것은 <전기자기론>의 집필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다. 맥스웰은 위상수학을 ‘위치의 기하학’이라 불렀는데, 이 학문분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소용돌이 운동에 관한 톰슨의 연구에서 자극을 받아 시작된 것이다. 톰슨의 연구는 헬름홀츠의 고전적인 연구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곡면을 위상수학상의 연결가능성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리만의 이론이 사용되고 있다. 리만은 이를 복소함수이론의 연구를 위해 발전시켰다. 맥스웰은 곡면의 위상수학상의 성질들을 표현하는 데에 적분정리들을 사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것이 전자기의 이론이나 유체 소용돌이의 운동에 응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맥스웰은 헬름홀츠의 소용돌이 운동과 전자기 이론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곡선과 곡면의 위상수학을 논의하고 있다.

1869년 2월에 맥스웰은 런던 수학협회에서 기하학적 도형들의 위상수학의 연구서인 리스팅(Johann Benedict Listing)의 <공간적 복잡성의 탐구>(Der Census räumlicher Complexe)에 대한 논의를 발표했다. 맥스웰은 <전기자기론>의 수학적 논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직선운동과 회전운동의 방향을 규정하기 위한 규약을 정의하기 위해 리스팅의 <위상수학의 기초연구>(Vorstudien zur Topologie)를 응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는 힘의 선과 전기회로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1871년 5월에 타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맥스웰은 이 문제를 런던 수학협회의 모임에서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맥스웰은 <전기자기론>의 18절에서 24절에 이르는 분량을 할애하면서 물리적 기하학을 확장하여 곡선과 곡면을 위상수학으로 다루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1870년 11월에 타이트에게 쓴 편지에서는 사원수의 개념과 방법과 기호에 대한 맥스웰의 예리한 관심이 잘 드러난다. 이 편지에는 <전기자기론>의 집필을 재개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수학적 논변을 어떻게 재구성하려 하는지에 대한 맥스웰의 의도도 잘 나타난다. 맥스웰은 이 무렵에 사원수에 깊이 심취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벡터를 어떻게 전자기학의 수학으로 응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이 사원수의 해석학을 발전시킨 것은 대수학의 연구를 위한 것이었다. 해밀턴은 복소수를 연구하다가 이를 3차원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느꼈고 1843년에 드디어 ‘사원수’(四元數, quaternion)를 처음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사원수는 1개의 실수부와 3개의 허수부로 구성되는 수(\(\small x_0 + ix_1 + jx_2 + kx_3\))이다. 해밀턴은 3개의 허수부를 서로 직교하는 공간의 세 축에 걸쳐 있는 ‘벡터’로 해석하고, 1개의 실수부를 ‘스칼라’로 해석했다. <전기자기론>에서 맥스웰은 벡터가 물리량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 됨을 강조하고 있다. 맥스웰은 사원수의 방법을 전기와 자기에 관련된 여러 물리량에 물리적 의미를 덧붙이면서도 직접적인 표상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기하학적 및 물리적 양을 고려하는 이 방식은” 데카르트 직각좌표를 사용하는 다른 방법들보다 “더 원초적이며 더 자연스럽다”(10절)라고 말하고 있다.

맥스웰의 사원수에 대한 열정은 타이트의 논문 “그린의 정리와 관련 정리들에 관하여(On Green’s and other allied theorems, 1870)”를 통해 더 강화되었다. 맥스웰은 이 논문을 정말 훌륭한 걸작이라고 추켜세웠는데, 타이트는 이 논문에서 그린의 정리와 스토크스의 정리를 사원수의 형태로 표현하고, 라플라스 방정식을 만족하는 해석학적 및 물리적 크기의 성질들의 상호관계를 사원수로 얼마나 간단하고 명료하게 밝힐 수 있는가를 강조했다. 여기에는 해밀턴의 연산자 \(\small \nabla\)의 물리적 응용이 얼마나 유용한가라는 논의도 포함된다. 맥스웰이 사원수의 개념을 얼마나 재빨리 습득해서 전기와 자기의 개념들에 응용할 수 있었는지는 1871년 초에 타이트와 주고받은 편지에 잘 나타난다.

맥스웰은 애초부터 “사원수의 연산과 이를 사용하는 방법에서 두드러지는 개념들을 도입하는 것이 우리 주제의 모든 분야의 연구, 특히 전기역학에서 우리에게 매우 유용할 것임을 확신”(<전기자기론> 10절)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기역학에서 우리는 많은 물리량을 다루어야 하는데 그 물리량들의 상호 관계는 보통 방정식보다는 해밀턴의 사원수 계산법의 표현을 사용하면 훨씬 더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10절) 1873년에 출간된 켈런드(Phillip Kelland)와 타이트의 <사원수 입문>(Introduction to Quaternions)에 대한 서평에서도 이러한 호평은 반복되었다. 맥스웰은 타이트에게 “해밀턴의 벡터 개념의 가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라고 쓰고 있다.

<전기자기론>에서 쓰인 또 다른 수학적 장치는 전자기장의 일반화된 라그랑주 이론이다. 이것은 뉴턴역학을 작용량의 변분원리로부터 유도하는 데 성공했던 해석역학의 성과를 전자기장의 이론으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전자기장의 라그랑주 이론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64년 12월에 왕립협회에서 발표했던 논문 “전자기장의 동역학적 이론”에서였다. 맥스웰은 이 논문에서 역학계의 해석학적 방정식을 써서 이론을 상술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으며, 동역학의 라그랑주 형식화 이외에는 특정한 역학적 모형, 특히 에테르의 역학적 모형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1867년 12월에 타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설명했듯이, 이전의 논문 “물리적 힘의 선에 관하여”에서 사용한 에테르 모형은 단지 “그 현상을 그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으며, 이것은 마치 태양계의 복잡한 운동을 보여 주기 위해 기계적으로 구성한 태양계 모형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전기자기론>에서도 이와 같이 구체적인 표상보다는 추상적인 표상을 더 선호하는 태도가 견지되고 있다. 특히 역학적 설명으로 새로 제기하는 가설적인 에테르 모형에 관한 주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 여러 차례 강조되고 있다(831절 참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맥스웰이 모든 논의를 추상적인 수학적 및 대수적 서술로 환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1872년 5월과 6월에 타이트에게 보낸 엽서를 보면, 맥스웰이 해석역학을 전자기이론에 응용하는 과제를 어느 정도 범위의 일로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맥스웰은 톰슨과 타이트가 <자연철학론>에서 채택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서, 충격력으로부터 일반화된 운동방정식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맥스웰이 보기에, “라그랑주와 그 추종자들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그 방법을 보여주는 방식에만 집중했고, 눈앞에 놓인 기호들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 순수 양을 제외한 모든 개념들을 없애느라 노력했다.”(<전기자기론> 567절) 맥스웰은 동역학의 수학적 형식화와 동역학이 그리고 있는 물리적 실재 사이의 연결고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라그랑주가 전개한 운동방정식의 형태보다 해밀턴이 제시한 형태를 더 선호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수학적인 논의를 강조하던 라그랑주보다는 물리적 개념에 충실한 해밀턴의 방식을 더 맘에 들어 했다는 것이다. <전기자기론>에서 설명하듯이, 맥스웰의 주된 목표는 “수학자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사용하여 그 결과를 해석학의 언어로부터 동역학의 언어로 다시 번역함으로써, 우리의 언어가 대수학적인 과정이 아니라 움직이는 물체가 갖는 성질에 대한 마음속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554절) 하는 것이었다.

1870년 가을에 <전기자기론>의 본문을 개정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난 뒤에, 맥스웰은 옥스퍼드의 클러렌던 출판사의 대표간사였던 바쏠로뮤 프라이스(Bartholomew Price)에게 작업의 진전에 대해 알리는 편지를 썼다. 1871년 1월 4일에 프라이스가 맥스웰에게 보낸 답장에는 “우리가 바로 인쇄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작업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니 무척 기쁩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계약이 체결된 것은 1871년 5월 10일의 일이었다. 이 날짜에 타이트에게 보낸 편지에는 “오늘 클러렌던 출판사에 갔었고,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곧이어 줄 간격 등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맥스웰은 타이트에게 원고의 23절을 재빨리 보내면서 급하게 답장을 달라고 요청한다. “이 정도면 괜찮겠나? 바로 인쇄에 들어가도록 속히 답해 주게!”

1871년 6월에는 조판작업이 완료되어 맥스웰이 교정지를 보고 있었으며, 8월에는 작업이 아주 순조로워서, 구면조화함수에 관한 논의를 고쳐 나가던 중이었다.

그림 6. J. J. 톰슨의 <전기와 자기의 최신 연구 노트: 클러크-맥스웰 교수의 전기자기론의 속편>그림 6. J. J. 톰슨의 <전기와 자기의 최신 연구 노트: 클러크-맥스웰 교수의 전기자기론의 속편>.

톰슨과 타이트도 이 교정 작업에 기꺼이 동참했다. <전기자기론>의 서문에서도 이에 대한 감사가 나타나 있다. 이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큰 도움을 주고받았다. 당시에 톰슨은 <정전기학과 자기>에 관한 논문의 개정판을 내려 하고 있었는데, 맥스웰은 자신의 원고를 꼼꼼하게 읽어준 톰슨에 대한 답례로 이 원고를 읽어주었다. 타이트와 구면조화함수에 관해 의견을 나눈 덕분에 맥스웰은 타이트가 그 무렵 새로 시작했던 열전기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라고의 회전원판을 설명하기 위한 톰슨의 전기 이미지 이론을 어떻게 새롭게 응용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가 모이기 시작했다. 열전기와 아라고의 회전원판은 모두 <전기자기론>에서도 상세하게 다루어지는 주제가 되었다. 베버의 칼 노이만의 이론에 있는 문제점도 이 논의과정에서 드러났다. 드디어 본문의 마지막 교정이 끝난 것은 1873년 1월이었다. 서문을 쓴 날짜는 1873년 2월 1일이었고, 한 달 뒤인 3월에 사람들은 세기의 역작을 눈에 보게 되었다.

<전기자기론>은 1873년에 처음 클러랜던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1권은 425쪽, 2권은 444쪽 분량이었다. 1881년에 나온 2판을 편집한 것은 윌리엄 니벤(William D. Niven, 1842‒1917)이었다. 니벤은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였으며, 1882년부터 그리지지의 왕립해군학교 연구소장을 맡았다. 니벤은 1890년에 맥스웰의 과학논문 전집을 편집하여 간행하기도 했다. 1891년에 나온 3판은 조제프 존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이 편집했다. 톰슨은 1893년에 <전기자기론>의 주요 내용을 해설하고 20여 년 사이에 달라진 것을 추가하여 <전기와 자기의 최신 연구 노트: 클러크-맥스웰 교수의 전기자기론의 속편(Notes on recent researches in electricity and magnetism: Intended as a sequel to Professor Clerk-Maxwell’s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1954년에 영인된 판본은 톰슨이 편집한 3판이며, 1998년에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다시 발행한 영인본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처음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은 독일어였다. 1883년에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 바인슈타인(Max Bernhard Weinstein, 1852‒1918)이 Lehrbuch der Electricität und des Magnetismus이란 제목으로 독일어판을 출간했다. 바인슈타인은 헬름홀츠의 제자로서 막스 플랑크, 빌헬름 빈, 베르너 폰 지멘스 등과 학문적으로 교류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던 아인슈타인이 읽었던 책은 바로 이 독일어판이었다. 프랑스어판은 셀리그망-뤼(G. Séligman-Lui)가 번역하고 코르뉘(A. Cornu), 포티에(A. Potier), 사로(E. Sarrau)의 주석을 추가하여 Traité d’électricité et de magnétisme이란 제목으로 각 권이 1885년과 1887년에 출간되었다. 이탈리아어판은 1973년에 에반드로 아가치(Evandro Agazzi)가 Trattato di elettricità e magnetismo라는 제목으로 UTET에서 출간했다. 1989년에는 러시아어판은 Трактат об электричестве и магнетизме (Б.М. Болотовского, И.Л. Бурштейна, М.А. Миллера, Е.В. Суворов)라는 제목으로 나우카(Наука)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어판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지만, 187쪽 분량의 축약본이 『マックスウェルの電磁気学』라는 제목 아래 이구치 가즈모토(井口和基)의 번역으로 2012년에 太陽書房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2021년에 한국어 완역본이 <전기자기론>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림 7. <전기자기론>의 번역판 표지. 왼쪽부터 독일어판, 프랑스어판, 이탈리어판, 러시아어판, 한국어판 표지.
그림 7. <전기자기론>의 번역판 표지. 왼쪽부터 독일어판, 프랑스어판, 이탈리어판, 러시아어판, 한국어판 표지.

* 이 글은 <전기자기론>(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지음, 김재영·구자현 옮김, 한길사 2021)에 있는 해제의 일부를 편집하여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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